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4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46)화(46/171)
세벨리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물결치는 듯한 나뭇결의 무늬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벨리아의 푸른 눈이 유영하듯 움직였다.
바로 어제, 그녀는 한 가지 의문을 해소하고 또 다른 질문을 떠안았다. 전자는 자신의 병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과거와 관련된 일이었다.
‘삶은 가시밭길이라더니, 역시 쉽지 않구나.’
세벨리아는 읽다 만 책을 돌아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오늘은 디하트가 자유의 몸이 되는 날이었다. 어감이 이상했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세벨리아는 그간 자신이 열심히 그에 대해 떠올리기를 거부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구소에 도착한 초창기에는 그가 일찍 떠날 거라 생각했고, 그 후에는 휘둘리지 말고 잘 밀어내자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후우…….”
하지만 막상 그를 대면하는 날이 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세벨리아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여러 차례 심호흡했다. 그럼에도 긴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날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할까.’
화를 낼까, 원망할까? 아니야, 돌아오라며 윽박지를 수도 있지. 악몽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겪으며 절규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쫓아온 걸까.’
디하트는 모르겠지만, 세벨리아는 그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이곳까지 추적해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추측은 일견 타당했다. 세벨리아는 그동안 디하트가 어떻게 지냈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세벨리아의 생각은 그가 자신이 죽은 뒤에 조금은 죄책감을 가지고 후회했구나, 정도에만 머물렀다. 디하트가 그녀가 죽은 뒤 갑자기 죽음의 진상을 캐내겠다며 힐렌드 홀을 폐쇄하고, 가족들을 탑에 감금하고, 유모를 찾아갔다가 옆구리나 찔리고 다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담담하고 차분하게 상대해야 해.”
세벨리아는 붙잡은 두 손을 이마에 대고 기도하듯 읊조렸다. 클로드가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도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재회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리고 세벨리아는 겨우 끌어모은 침착함을 모두 날려 보낸 채 얼어붙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디하트라고 합니다.”
디하트 인버네스가, 그 사납고 비틀린 성격의 남자가, 자신을 향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생 본 적 없는 순수하고 소박한 얼굴로 자신을 흘끗 훔쳐보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디… 디하트?”
“혹시 저를 알고 계신 분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기억을 잃어서…….”
해사한 미소에 세벨리아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 * *
물론 디하트의 기억상실은 같잖은 수작질이었다.
클로드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가증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디하트를 바라보다 속이 울렁거려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워츠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식사를 해치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저녁, 디하트의 구속구를 풀어 주기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건 워츠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들어온 다음에 생긴 일이었다.
“잠깐만 지금 풀어 주려는 거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클로드가 그를 가로막자, 워츠가 고개를 기울이며 열쇠 꾸러미를 흔들었다.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질질 끌던 일을 겨우 해치우려는 시점에 뜻하지 않은 방해를 받은 얼굴이었다.
“허락받고 왔어. 세 번이나 물어봤고, 세 번 다 괜찮다고 했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정확히 무슨 사이인지 알아야…….”
“거진 이십 년 만에 만난 조카가 애틋하고 안타까워서 미치겠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말이야, 카디. 네 조카는 북부의 가장 큰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자 올해로 스물아홉이나 먹은 성인이야.”
워츠가 혀를 쯧쯧 차며 디하트를 가로막듯 서 있는 클로드를 위아래로 훑었다.
“솔직히 말하지그래. 벨라 양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네 조카가 그녀에게 해코지하는 놈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 두 사람을 격리하려는 거잖아.”
“워츠, 말이 심하잖아.”
“하아……. 클로드, 만나게 하지 않으면 그런 끔찍한 일은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네 소망을 내가 모를 리 없잖아. 두 사람은 독립된 판단을 할 줄 아는 성인이고, 네게 그걸 가로막을 권리는 없어. 그러니 비켜. 구속구를 풀어야 하니까.”
숨이 턱하고 막혔다. 클로드는 반박하기 위해 입을 뗐으나 바람 빠지는 소리만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그의 뒤에서 디하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퍽 못 미더웠나 보지.”
“환자분의 널리 알려진 행실을 참고했을 때 그리 신뢰가 가지는 않죠.”
워츠가 신문마다 실린 그의 기행을 콕 짚어 말했다. 디하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윽고 표정을 풀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를테면 방화라던지, 살인교사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야.”
디하트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나하나 예를 짚어 나가는 것들이 어째선지 무척 섬뜩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그가 클로드 쪽을 보며 말했다.
“정 신경 쓰인다면 한 가지만 말해 주지. 물론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어처구니없어서 해 주는 거라는 건 알아 둬.”
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있던 클로드가 어깨를 움찔했다. 워츠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다 말고 행동을 멈췄다. 디하트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야. 아래층의 여자가 내게서 진실을 숨기고 있거든. 뭐, 단순히 내가 미친 거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그녀의 거짓말이 뭔지 알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거야.”
내가 미쳐서 그녀가 진짜 세벨리아라고 믿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녀가 내 정신을 무너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함정이거나. 아주 간단한 말이었다. 그리고 디하트는 둘 중 어느 한 가지 답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절대 해를 가하지 않을 거야, 클로드. 물론 그 진실이라는 게 나를 상처 내기 위한 음모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지만.”
“디하트, 너…….”
“이제 대충 알아들었으면 그녀와 나 사이에서 이상한 수작질 부리는 건 멈춰. 앞으로 내가 뭘 하든 제발 내버려 두고. 이 나이 먹고 사춘기 애송이 취급을 받는 건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긴 하지만, 좀 불쾌하거든.”
디하트가 질색하며 말을 마쳤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워츠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는 탐탁지 않은 듯 긴 한숨을 내쉬더니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창고를 뒤지길 잘했군.”
“그건 뭐야?”
워츠가 들고 있는 작은 상자를 본 클로드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워츠는 상자를 가져가는 클로드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달칵이는 소리가 들리고 클로드가 의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귀걸이…?”
“제어구지.”
워츠가 붉은 보석이 달린 귀걸이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에는 열쇠를, 다른 한 손에는 귀걸이처럼 생긴 제어구를 든 그가 디하트에게 말했다.
“둘 다 받아들이든가, 둘 다 거절하든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한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하. 정말 멋진 친구를 두셨군, 삼촌. 좋아, 얼마든지 수용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워츠가 뭐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보석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디하트가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그녀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방해하지 마.”
“그런 두루뭉술하고 막연한 조건은 수긍할 수 없어.”
“어려운 게 아니야, 의원. 말했잖아,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나는 진실을 원하고, 그녀는 그걸 숨기고 있어. 그리고 그걸 어떻게 끌어내냐 하는 건 다 방법의 문제거든…….”
느릿하게 웃은 그가 구속구로 묶인 손목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나는 그저 그녀와 처음부터 신뢰를 쌓아 가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 협조해 주겠어?”
파직!
그 순간, 흑철로 만들어진 구속구와 침대 프레임 위로 살벌한 파열음이 튀었다. 클로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워츠의 입매가 굳었다. 완벽하게 회복한 그의 힘은 그들의 예측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나는 자비로우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해 주지. 협조하고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각자의 길을 가거나, 협조하지 않고 여기서 함께 불타 죽거나. 어떻게 할래?”
타닥, 타닥. 허공에서 수백 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건 확실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를 말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쳤다더니. 확실하군.”
워츠의 중얼거림을 들은 클로드가 워츠의 손에서 제어구와 열쇠를 빼앗아 들었다. 그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디하트를 향해 말했다.
“아주 작은 소동이라도 생기면 바로 쫓겨날 줄 알아. 내가 모든 힘을 소진해서라도 널 쫓아내고 말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난 약속은 지켜.”
“말은 잘하는구나.”
클로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디하트의 양쪽 귀에 제어구를 박아 넣었다. 후욱, 하고 뜨거운 바람이 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제어구의 봉인이 활성화되었다.
‘이딴 건 언제든 부숴 버릴 수 있어.’
그만큼 힘을 쓰면 아마 피를 토하고 다시 환자 신세가 되어야겠지만… 상관없었다. 따끔한 감촉과 함께 뜨끈하게 흘러내리는 피를 느끼며 그가 웃었다. 공포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모습이었다.
* * *
클로드는 그의 구속구를 풀어 주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이 미친놈이 약속은 개나 주라면서 벨라 양에게 해를 끼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그의 조카는 안타깝게도 예의 바르게 미친놈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쩜 이렇게 공손하게 돌아 버린 놈이 있을까. 아침 식사를 위해 모두 모인 자리. 긴장하고 있는 벨라 앞에 나타난 그는 마치 순박한 시골 청년마냥 순수하고 정결한 분위기였다.
“디하트?”
벨라가 당황스러운 어조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클로드와 워츠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디하트에게서 가만히 있으라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만일 여기서 사실을 밝히면 연구소는 통째로 불길에 휩싸여 버리리라.
‘게다가 정말로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벨라는 그에게서 진실을 감추며 모르는 척하고, 디하트는 그걸 알아내기 위해 함께 거짓을 연기하고. 목숨을 담보로 협박당하는 입장이라면 이쯤에서 빠져 주는 게 옳았다.
“혹시 저를 알고 계신 분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기억을 잃어서…….”
클로드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