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5)화(5/171)
그 순간 네이튼은 너무 화가 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 경험했다.
“그간 내가 너를 너무 내버려 뒀구나.”
그는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내던졌다.
“윽…!”
가까스로 침대에 부딪히는 걸 피한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뭐?”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가 말했다.
“구석지고 추워서 그런가…. 제 방엔 종종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오거든요.”
그 순간 네이튼은 자신의 발목을 타고 무언가가 기어올라 오는 걸 느꼈다.
“……!”
‘설마.’
네이튼은 창백해진 얼굴로 차마 고개를 숙이지 못한 채, 겨우 눈만 내렸다.
수십 마리의 거미가 그의 다리에 달라붙어 기어오르고 있었다.
* * *
쾅!
“아.”
세벨리아는 그대로 졸도해 쓰러진 네이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로 거미를 무서워하는구나.’
재빨리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과거의 경험 덕이었다.
[그러길래 병신 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잖아.]천둥이 치는 날, 나무에 묶여 빵 한 조각 먹지 못한 그녀 앞에서 고기를 뜯던 네이튼.
[이번에도 또 수도원에 버려지고 싶은 거냐?]어릴 적 웨든 후작은 딱 한 번 그녀를 수도원에 버리고 온 적 있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의도였다. 그 후로 그녀는 수도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기름진 입술로 그녀를 비웃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벼락이 내리침과 동시에 나무에 매달려 있던 거미가 그의 얼굴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얼굴과 닮았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부르르 몸을 떠는 네이튼을 무심한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처음이야. 이렇게 얼굴을 들여다보는 건.’
그의 앞에선 매번 주눅 들어 고개조차 들지 못했었다. 멍하니 네이튼을 내려다보던 세벨리아는 허공에 손을 뻗어 슥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거미 떼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때마침 복도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이쪽에서 소리가 났는데?”
비싼 얼굴 한 번 보여 주지 않았던 사용인들의 등장이었다.
‘빠르네.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봐.’
세벨리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집사 한 명이 사용인들을 대동한 채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세상에!”
“네이튼 님!”
그들은 경악 서린 얼굴로 달려와 네이튼을 부축했다.
“네이튼 님, 괜찮으신가요?”
자신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네이튼을 챙기는 모습에 세벨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자신을 못 본 척하는 것에 의구심이 든 건 아니었다. 그냥….
‘도대체 언제 봤다고 저렇게 챙기는 거지?’
대다수의 북부인은 중앙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중앙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에겐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웨든 후작 저택의 담장 밖으로 나가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결혼한 뒤 저택에 도착해서 몹시 당황했다. 북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터라 그들의 적개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잘 알지만 말이지.’
세벨리아는 점점 힘이 풀리는 몸을 벽에 기댄 채 실려 나가는 네이튼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그리도 콧대 높고 도도한 북부인들이 네이튼을 저렇게 싸고돌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세벨리아는 궁금증에 가물거리는 눈에 힘을 주었다. 그때, 상황을 지휘하던 집사가 한숨을 쉬며 그녀를 추궁했다.
“마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안경을 낀 나이 지긋한 집사는 온실 앞에서 세벨리아를 가로막은 인물이었다. 힐렌드 홀의 집사장, 그로스. 그가 콧수염을 파르르 떨며 물었다.
“하필이면 공작님이 출타하신 틈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정말이지…….”
세벨리아는 그 깐깐한 얼굴이 구겨지는 걸 감상하며 아무렇게나 말했다.
“글쎄. 며칠 밤을 새운 것 같던데. 그것 때문일 지도.”
“예?”
그로스가 눈을 치켜뜨며 세벨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무엄한 시선에도 세벨리아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그 시선을 맞받아쳤다. 그러자 그로스의 수염이 흠칫 떨렸다. 그는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허허……급하게 달려오셨다더니, 그것참.”
그로스는 일부러 긴 한숨을 내쉬며 골치 아프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사라지는 하인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습니다. 그럼 네이튼 님은 저희가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쉬십시오.”
그는 마지막으로 좁은 방 안을 쓱 훑더니 세벨리아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번 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겨우 태연한 척 고통을 참아 내던 세벨리아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버렸다.
“…흐읏.”
차가운 바닥에 뺨을 맞댄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빨리 떠나야겠네.”
쓰디쓴 미소와 함께 그녀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 * *
“출발한다!”
“이봐, 늦장 부리지 마. 아직 실어야 할 게 산더미라고!”
소금기 가득한 항구.
떼 지어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선원들의 고함이 디하트의 고막을 괴롭혔다.
‘시끄럽고 불결하군.’
디하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눈을 치켜떴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오만 곳이 죄다 정신머리 없고 지저분했다.
게다가 이 끔찍한 냄새라니. 이미 시각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상태인데, 더 있다가는 후각마저 잃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러나 디하트는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 광산에서 빼돌려진 광석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괜찮으십니까, 공작님?]소식을 전하던 라이언은 그가 배신감을 느낄까 걱정했지만…… 디하트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날 배신하는 놈이 없을 리가 없지.]건조하게 내뱉은 말에 라이언이 어떤 표정을 했더라.
‘모르겠군.’
디하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팔짱을 꼈다. 짠내 가득한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
어차피 누구 하나 믿지 않았다. 자신은 타고나기를 그런 놈이었다. 그에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고.
그런데 배신감이라니. 신뢰한 적도 없는 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그런 걸 느낄 리가 없잖은가.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지.”
디하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넘실거리는 바다를 응시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제가 품고 있던 생각이 현실임을 입증하는 꼴밖에 되지 못했다.
그게 누구든, 얼마나 자신의 곁을 오래 지키고 헌신했든 사람이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던 것처럼.
“…….”
세벨리아를 떠올린 디하트의 얼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은 얼어붙은 빙벽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자 멀리서 그를 보고 수줍어하던 여인들이 흠칫 놀랐다.
“어머, 저 사람…….”
“안 좋은 일이 있나 봐. 그냥 가자.”
검은 고수머리에 나른한 금빛 눈동자를 한 사내는 순식간에 독기 어린 기운을 풍겼다. 특히 황금처럼 부드럽던 두 눈동자는 마치 달에 가려진 듯 어둡게 변해 음산함을 더했다.
“주인님.”
그때, 라이언이 일부러 그를 공작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부르며 다가왔다.
“꼬리를 잡았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말에 디하트가 입매를 매만졌다.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바로 가지. 이리 쉽게 추적당할 정도면 그 꼴이 뻔하겠군.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오해를 사겠어.”
“무슨 오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이언이 건네준 검은 가죽 장갑을 끼며 디하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배신자를 사지 고이 내버려 두는 건 내 부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란 말이야.”
“아.”
“허튼 놈들이 내 부인이 된 것마냥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지. 그렇지 않은가?”
머리 위를 덮는 그림자에 디하트가 고개를 들었다.
먼바다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딱 좋은 타이밍이군.”
* * *
‘네이튼도 학습 능력이란 게 없는 걸까.’
세벨리아는 제정신을 차린 건지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마차로 실려 가는 네이튼을 내려다보았다.
저대로 돌아간다면 아마 아버지에게 크게 혼날 것이다. 평판에 집착하는 네이튼의 성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
“옛날엔 나도 그랬었지.”
사실 그녀는 평판보다는 그로 인해 버려질 수 있는 자신의 처지에 더 두려워했다.
“왜 그렇게도 사랑받고 싶었을까.”
아버지는 내게 따스한 눈빛 한 번 주신 적 없는데.
창틀을 짚은 그녀의 손가락 끄트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을까…….”
아픈 미소가 입가에서 부서졌다. 학습 능력이 없다는 말은 그녀가 저택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항상 ‘학습 능력도 없는 버러지’라며 그녀를 벽장에 가두곤 했었으니까. 그때마다 세벨리아는 벽장 안에서 자신이 무얼 잘못한 건지 되뇌었다.
[다시는 음식을 한입에 넣지 말아야지.] [다음번에는 식기를 올바르게 써야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지….]천 번씩 되새기고 나면 데니사가 울면서 그녀를 꺼내 주곤 했다.
‘하지만 결국 식탁에서조차 쫓겨나고 말았지.’
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몸이 떨려 식기를 놓치기 일쑤. 그녀는 결국 디하트와 결혼하기 전까지 가족과 겸상하지 못했다.
뭐, 그건 결국 여기서도 마찬가지가 되었지만.
“읏…….”
그때를 떠올려서일까. 아니면 그저 몸이 그녀에게 경고를 보내는 걸까. 장기가 후벼 파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누군가 가슴팍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허억.”
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한껏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슬픔을 다스리듯, 고통을 집어삼켰다.
“하아.”
식은땀으로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들 때쯤 고통이 가셨다.
세벨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릴 땐 이렇게 침대 밑에 수그리고 있을 때마다 넬리아가 오곤 했는데.
‘참 바보 같은 방법으로 기분을 푼다며 타박하곤 했지.’
[기분이 나쁘면 보석을 사면 되잖아.]그녀는 진심으로 의아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넬리아에게만 허락된 방법이었다. 세벨리아는 가만히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참금으로 가져온 보석들도 넬리아가 골랐잖아.’
원래는 넬리아가 디하트와 결혼할 예정이었기에, 모든 게 그녀의 취향에 맞춰졌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세벨리아는 좋은 생각이 난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럼 분명 상당히 고가일 텐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지금껏 잊고 있었다.
“그날 바로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세벨리아는 데니사에게 고마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넬리아의 보석들을 판다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집사에게 지하 금고 열쇠를 달라고 해야겠어.”
세벨리아는 식은땀에 젖은 채로 미소 지었다.
“삐이-”
어느새 다가온 푸른새가 그녀의 뺨에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