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51)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51)화(51/171)
두 사람은 바로 실신한 세벨리아를 그녀의 방으로 옮겼다. 디하트가 곁을 지키는 동안 클로드가 연구실에 있던 워츠를 데려왔다.
“가서 따뜻한 물과 수건부터 가져와.”
워츠의 말에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야를 들고 방으로 돌아온 그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의 눈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석상처럼 굳어 있는 디하트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
그래,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 클로드의 입술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고작 거짓말 하나 캐내겠답시고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는 협탁에 대야를 내려놓으며 디하트를 다시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
[나는 진실을 원하고, 그녀는 그걸 숨기고 있어.]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둘 다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건가 싶었다. 이를테면 벨라가 거짓 정보를 흘리고 도망쳤나 하는 일. 하지만 제가 본 그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희귀병 환자였고,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서 살기 위해 자신들을 찾아왔으니까.
그리고 클로드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수건과 대야는 여기에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려가서 가져올 테니까.”
“당장은 괜찮아.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피로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 같군. 면역력이 좀 떨어졌나. 당분간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어.”
워츠가 몸을 일으키며 담담하게 고했다. 그러자 그의 맞은편에 서 있던 디하트의 안색이 일변하는 게 보였다. 창백했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다시 본래 색으로 돌아왔다.
“병이… 있다고?”
흐릿한 목소리가 아주 잠깐 방을 울렸다. 이윽고 그는 언제 말했냐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턱에 힘을 주었다. 고집스러운 모습에 클로드는 한숨을 삼켰다.
‘이럴 거면 도대체 기억상실 같은 짓은 왜 한 거야. 벨라 양을 무슨 죄인인 것처럼 말하더니 나보다 더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잖아.’
클로드는 그의 멱살을 붙잡아 탈탈 털고 싶은 걸 참으며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한 날을 떠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디하트라고 합니다.]솔직히 자신은 긴장하고 있었다. 디하트가 약속을 깨고 갑자기 세벨리아에게 벼락이라도 떨어트릴까 싶어 아무도 모르게 힘을 모으고 있었다.
[혹시 저를 알고 계신 분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기억을 잃어서…….]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차분하게 그녀를 마주했다. 심지어 상대를 쫓는 그의 시선에는 그 어떤 흉측한 의도도 없었다. 배신당한 사람들이 보이곤 하는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배신감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주 어릴 때지만 그를 키우다시피 했던 제게는 그 모습들이 너무 잘 보였다.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닿고 싶은 것처럼 움찔거리는 디하트의 손이며, 무의식중에 들어 올린 발꿈치 하며…….
[아…. 저도 비린내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아서. 죄송해요.]그때가 절정이었지.
“쯧.”
클로드는 워츠가 나간 뒤, 어느새 침대 옆에 무릎 꿇은 디하트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얘는 정말 뭐가 문제인 걸까. 그는 배배 꼬이고 뒤틀린 디하트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당분간은 내가 간호할 테니 너는 돌아가.”
“싫어.”
“억지 부리지 말고 돌아가. 벨라 양이 깨어났을 때 널 보면 얼마나 놀랄지 생각해 보라고.”
“…….”
쏘아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뭐, 어찌 되었든 그 비밀이라는 게 생각만큼 심각한 게 아닌 건 확실했다. 신문과 여러 창구를 통해 접한 그의 조카는 배신자를 곱게 지켜보기는커녕 당장에라도 고문실로 끌고 들어가는 타입이었으니까.
클로드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물수건을 비틀었다.
“무슨 병이지?”
“뭐?”
클로드가 되물었다. 그는 물수건으로 세벨리아의 이마를 닦아 주던 중이었다. 디하트가 인상을 썼다. 클로드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제 일에 집중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거냐고…!”
두 눈을 곱게 감은 채, 잠이 든 듯 평화롭게 누워 있는 세벨리아로부터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그가 짓씹듯 내뱉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금빛 눈동자 가장자리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파직, 허공에서 불꽃이 터져 나갔다.
“…워츠, 당장 이리 와!”
클로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 *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장소는 안개가 가득한 호숫가였다. 허리를 훌쩍 넘는 부드러운 갈대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룻배에 올라탔다.
긴장했나? 그랬던 것 같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며 자신은 초조해했다. 하지만 팽팽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심해요.]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노를 저은 순간, 물방울이 얼굴로 튀어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한순간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 주려 그가 손을 뻗었다.
반짝, 하고 그의 손목에 매달린 무언가가 빛을 내뿜었다.
“아.”
세벨리아는 느리게 눈을 뜨며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반짝이는 걸 본 것 같은데. 그녀는 주변을 훑었다. 익숙한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눈앞이 핑 돌더니 어지럼증이 생겼지.’
그리고는 무어라 할 새도 없이 바로 쓰러졌었다.
“두 사람이 옮겨 줬나 보네.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손거울로 제 모습을 살폈다. 혹시나 피를 토하지는 않았나 싶어서였다.
‘평소보다 창백하기는 한데…….’
목 안이 화끈하거나 부어오른 느낌도 없으니 피를 토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확인을 마친 뒤 그녀는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안심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다행이다…….”
꿈을 꾸었다는 기억은 어느새 휘발되었다. 눈을 뜰 때까지만 해도 어렴풋이 남아 있던 잔상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슬퍼할 이유는 없었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덧없는 몽상이란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클로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벨라 양, 혹시 몰라서 물어봐요. 일어나셨습니까?”
“아. 일어났어요.”
“다행이에요. 워츠가 깨어나면 먹을 약을 만들어 줬는데 아무래도 지금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럴게요.”
문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세벨리아는 작게 미소 지었다. 이윽고 문고리가 달칵이는 소리가 들렸다. 세벨리아는 손거울을 내려놓고 협탁에 놓인 물잔에 물을 따랐다. 그런데 문이 갑자기 열리다 말고 쾅 하고 다시 닫혔다.
“…?”
세벨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문 너머에서는 작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클로드를 돌려세운 디하트가 한껏 억누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할게.”
“됐으니 방으로 돌아가. 아까 일 기억 못 해? 너도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 중 한 명이야. 아직 금단증상이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디하트는 쓰러진 세벨리아 옆에서 하마터면 다시 발작을 일으킬 뻔했다. 그런 이를 다시 방 안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
클로드는 몸을 돌려 자신을 붙잡은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문고리에 손을 얹자 디하트가 이번엔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주사 맞고 왔어.”
“하, 나참…….”
클로드는 이마를 짚고 한탄했다. 디하트가 클로드의 품에서 쟁반을 뺏어 들었다. 그사이, 세벨리아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침대에서 일어난 참이었다.
클로드를 뒤로 밀어 버린 디하트가 정중하게 노크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세벨리아는 걸음을 멈췄다. 이윽고 디하트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벨라, 실례가 안 된다면 문을 열어도 될까요? 불편하시면 약이 담긴 쟁반을 문 앞에 두고 갈게요. 편할 때 가져가세요.”
“…아, 들어오셔도 괜찮은데. 잠시만요.”
세벨리아는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디하트가 거보란 듯 클로드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클로드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다시 한번 손거울로 얼굴을 확인한 세벨리아가 말했다.
“지금 들어오셔도 괜찮아요.”
“그럼 실례할게요.”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디하트가 쟁반을 들고 들어섰다. 아침과 달리 한결 가라앉아 보이는 분위기였다. 이어 들어온 클로드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세벨리아와 디하트를 번갈아 보았다.
“드시면 속이 한결 편안해지실 거예요.”
“고마워요.”
세벨리아는 망설임 없이 그가 건네준 약을 삼켰다. 두 남자가 망설이는 기색으로 자신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클로드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몸은 괜찮아요? 갑자기 쓰러져서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아…. 많이 놀라지는 않았어요. 그냥, 이런 일이 언젠가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 왔어서.”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해 왔다고요?”
디하트가 쌍심지를 켜며 끼어들었다. 세벨리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제야 자신이 과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요. 그게, 나는…. 미안합니다. 큰 소리를 내려던 건 아니었어요.”
“놀라서 그런 걸 겁니다. 벨라 양이 쓰러진 걸 보고 달려와서 받은 게 그거든요.”
클로드가 그를 두둔하듯 말을 보탰다. 흐음. 세벨리아가 빈 물잔의 테두리를 매만지며 시선을 살짝 내렸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깬 건 갑자기 협탁을 뒤적이는 디하트의 행동이었다.
“디하트…씨?”
“잊으실까 봐 챙겨 놓았습니다.”
서랍 안에서 나온 건 세벨리아가 읽고 있던 책이었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세벨리아가 작게 입을 벌리며 책을 받아 들었다.
‘날 방까지 옮기고 한 번 더 다녀온 건가?’
굳이 왜? 이슬 젖은 표지를 쓸어내리는 세벨리아의 눈이 가라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와 부부일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챙김을 받은 적이 없는데.
‘이게 그의 본모습인 걸까.’
가슴 속에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식으로 당신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세벨리아가 책을 곁에 내려놓으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뭘요.”
클로드가 한 발자국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