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53)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53)화(53/171)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세벨리아는 당혹스러웠다. 놀라고, 얼떨떨하고 기묘함을 느꼈으며 한편으로는 떨떠름했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나 자신을 도외시하던 남편이었다.
“그럼 맛있게 먹어요.”
디하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세벨리아는 푸짐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를 내려다보며 입을 여러 번 벙긋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가운데 어디선가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포크를 들어 샐러드부터 공략했다. 각기 다른 드레싱과 제철 과일들이 들어간 샐러드는 식욕을 돋우기에 최적이었다.
‘살다 살다 디하트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아차 싶었다. 지금 디하트는 과거의 그와 달랐다. 자신이 그러하듯, 그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대해야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얼굴, 같은 체격, 같은 목소리. 아무리 기억이 없다 해도 그의 모든 것이 자꾸만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갑자기 입맛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입맛에 맞는 게 없어요?”
세벨리아가 샐러드를 깨작거리자 벽에 붙어 있던 디하트가 망설이다 물었다. 그녀는 디하트가 아직도 방 안에 남아 있는 줄 몰랐기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디하트가 재빨리 다가와 흔들리는 의자를 붙잡아 주었다.
“어, 언제 거기 있었어요?”
“처음부터 여기 있었는데… 내가 놀라게 했군요.”
디하트가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사과했다. 세벨리아는 들고 있던 포크로 제 손등을 찌를 뻔했다. 기억을 잃은 디하트는 이상할 정도로 곰살가웠으나,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다.
‘정말 디하트가 맞는 걸까? 얼굴만 똑같은 다른 사람 아니야?’
그녀의 머릿속으로 과거와 현재의 디하트가 교차하여 지나갔다. 하녀들의 조롱을 견디며 복도를 지나가던 때,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흘기며 지나가던 그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서 기죽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해 있는 모습.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세벨리아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깊이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디하트는 아예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세벨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 식사 시중까지 들 생각은 아니시겠죠? 디하트 씨, 당신은 하인이 아니에요.”
“하인은 아니지만 워츠 씨에게서 벨라를 도우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디하트가 새큼한 샐러드를 멀리 치우며 말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였다. 세벨리아가 멀어지는 접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우라는 말이 언제 식사를 지켜보라는 말이 된 건지 모르겠네요.”
“식사를 하다 갑자기 쓰러지면 위험하니까요. 지금 들고 계신 게 얼마나 흉악한 도구인지 모르시죠?”
디하트는 담담히 대꾸하며 빈 잔에 물을 채워 주었다. 능숙한 솜씨가 마치 실력 있는 집사 같았다.
“디하트, 이건.”
“친구끼리 이 정도도 못 해 주나요?”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어요?’
목 끄트머리에서 말이 턱 걸렸다. 세벨리아는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게 다 경험 차이였다. 그녀는 살면서 모진 말을 들었을지언정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런 건 불편해요.”
세벨리아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차라리 맞은편에 앉으세요.”
“제가요?”
“그럼 여기 누가 더 있겠어요?”
세벨리아가 빵을 손으로 찢으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제 성격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이마를 한 대 때리고 싶더니.
‘내 안에 이런 나쁜 면이 있었나?’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학대당한 경험 때문일까. 그녀는 스스로가 폭력을 휘두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모진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한편, 세벨리아에게 합석을 허가받은 디하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의자를 가져오기 위해 방을 나섰다. 때마침 복도를 지나던 클로드가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 * *
디하트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클로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워츠는 늦잠을 자고 있어서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획대로 잘 되는 것 같아?”
클로드가 프라이팬 위에 달걀을 깨트리며 물었다. 디하트는 세벨리아가 먹을 후식의 종류를 세다 멈칫했다. 우물거리는 그의 태도를 읽은 클로드가 인상을 쓰며 몸을 돌렸다.
“이번엔 뭐가 문제야.”
“…….”
“디하트, 이야기를 해. 혼자 끙끙 앓고 있는다고 해서 순탄하게 풀리는 일은 없다는 걸 이제 알고 있잖아.”
디하트가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탁자를 짚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린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모르겠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는 백지장이 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서 내가 제대로 말은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필이면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아 곁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에게 호감과 신뢰를 쌓으려고 이것저것 노력하고 싶은데 오히려 망치는 것 같았다.
방금 전 세벨리아를 놀라게 한 아침 식사도 실은 그녀의 입맛을 기억하고 공들여 만든 음식들이었다. 특히나 세벨리아가 좋아하던 매운 향신료를 구하는 데 클로드가 퍽 고생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아침이라 매운 건 당기지 않았던 걸까. 매운 향신료가 든 샐러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새큼한 과일을 자주 먹던 걸 기억해서 준비한 상큼한 샐러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음번을 기하는 수밖에 없나.”
가짜라고 상정한 채 속을 캐내고 뒤를 추적하려 드는 건 쉬웠다. 쉽고 간편한 길이었으며 마음고생 또한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그녀는 그저 분노를 쏟아 낼 대상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니… 제 앞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막막하군.”
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한숨을 내쉰 클로드는 계란프라이를 접시에 옮겨 담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도 그 감정 잘 알지. 어제 내가 그랬거든.”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네가 미친 줄 알았다, 디하트. 그 빌어먹을 약의 부작용 중에 정신병이 있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겨우 만난 조카가 진짜로 미쳤다니. 눈앞이 새카매지는 기분이었어.”
디하트는 어제 클로드에게 벨라를 쫓고 있던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세벨리아 인버네스이며, 자신의 죽은 아내라고.
클로드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 * *
“네 아내? 힐렌드 홀의 묘역에 묻힌 그 아내 말하는 거야?”
그때, 클로드는 차분하게 말하며 디하트를 기절시키기 위한 무기가 어디 없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디하트는 그것도 모르고 비탄에 빠져 자기 이야기를 하기 바빴지만.
“맞아. 그래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벨라가 가짜라고 생각했었어. 날 꼬여내기 위해 그녀의 모습을 훔쳤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왜 가짜가 그런 고통스러운 병을 앓고 있지? 앞뒤가 맞지 않아.”
디하트가 목에 차고 있던 펜던트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어 클로드에게 건넸다. 그 안에 있는 건 그가 아는 벨라였다. 지금과 머리 색과 길이가 다를 뿐, 같은 사람이 그 안에 있었다.
“…….”
“처음부터 그녀를 발견한 것도 나고, 쫓은 것도 나야. 만약 그녀가 무고하다면, 그녀는 병을 치료하고자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지. 나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세벨리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게 아니라.”
그래서 클로드는 탐탁지 않았지만 일단 디하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디하트의 증언에서 한 가지 수상한 점을 포착했다.
“잠깐, 기다려 봐. 여관에서 떨어지는 세벨리아를 받아 들었을 때 혹시 무게가 느껴졌어?”
“무게……? 그랬던 것 같아. 순간이나마 진짜 그녀를 받아 들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촉감과 무게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며 디하트가 말하자 클로드가 헛웃음을 삼켰다. 세상에 어떤 초월적인 마법사가 나타난 게 아니라면, 그건 마법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그건 환영 술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클로드는 확신했다. 악몽의 숲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건 환영 술사인 자신과 주술사가 합작해서 만들어 낸 작품이었으니까.
* * *
그 후, 클로드는 환영 술사에 대한 정보들을 디하트에게 알려 주었다. 그는 큰 충격에 빠진 듯했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광분하여 방 안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그러니까, 그 환영술이라는 게 실제 사람과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지…!”
“영원한 건 아니지만 가능은 하지. 만약 그녀가 환영 술사의 도움을 받아 자기와 똑같은 시체를 준비했다면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것도 이해 가능한 일이야.”
“하, 하…!”
디하트는 마치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제처럼 무릎을 꿇고서 전율했다.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고통 속에 헤매던 미로의 끝이 보였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 세벨리아가 살아 있다는 마지막 정답이 마침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렇게 내게서 도망친 거였어.”
갈색 머리의 세벨리아가 실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직감을 한사코 뒤흔들었던 모든 증거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진흙이 묻은 신발로 뛰어 들어갔던 그 날의 장례식, 관 안에 누워 있던 하얀 얼굴의 세벨리아. 그녀의 이마 위에 남긴 마지막 키스. 땅 아래 영원히 잠든 그녀의 관.
이성의 편에 서서 흔들리는 그의 마음에 창날을 꽂았던 ‘사실’들이 거짓이 되었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녀는 죽었다며 들이밀던 증거들은 이제 힘을 잃었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세벨리아는 그날, 죽지 않았다.
“아.”
디하트는 탈진하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것마저 당장은 가능성 중의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이 실낱같은 희망이 마치 감로수 같았다.
방금 전까지 그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장례식에서 죽어 있는 그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의 뇌리에 잊고 있던 무언가가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는 벨라라고 부르세요, 디하트 씨.]자신이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벨라라고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