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5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57)화(57/171)
데니사와 연락을 취하기 위한 방법은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환영을 만드는 것. 이미 수차례 해 봤던 일이니 연습을 몇 번 거치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디하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상황이 조금 미묘해졌다.
“이걸 어쩐다.”
그가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을 보인 이상, 빨리 치료를 끝내는 게 좋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한다. 병의 치료와 데니사와의 연락.
전자를 위해서는 집 안에 머무르며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데니사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환영 만드는 연습을 강행해야 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뇌하고 있는 찰나, 창가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톡톡.
아주 작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창문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세벨리아는 가까이 갔다가 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흘렸다.
“귀여워.”
지난번 그녀의 팔목을 야멸차게 물어 버렸던 회색 털의 고양이가 앞발로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녀가 귀여움에 빤히 바라보고 있자 조금씩 성질이 나는지 두들기는 힘이 점차 강해졌다.
“으음…….”
고민하던 세벨리아는 창문을 열었다. 먘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폴짝 창틀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팔목쯤이야 다시 내줘도 상관없게 만드는 귀여움이었다.
“앩옹.”
고양이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발목에 등을 비볐다. 이게 바로 고양이식 화해인가? 세벨리아는 감탄하며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비록 꾸물텅하며 바로 빠져나가 버렸지만.
“어.”
그리고 세벨리아는 곧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고양이가… 고양이가 문을 열고 있었다.
“어?”
충격에 굳어 버린 세벨리아를 뒤로 하고 고양이는 태연하게 복도로 진입했다. 그리고 잠시 뒤, 클로드의 비명이 저택을 울렸다.
“마야! 도대체 여태껏 어디 있다가 온 거야!”
그는 이름 있는 고양이였다.
* * *
클로드는 무릎 위에 늘어져 골골거리는 마야를 쓰다듬으며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야가 원래 여기 숲 태생이거든요. 그래서 가끔씩 이렇게 가출해서 사람 마음을 찢어 놓지요.”
“아…….”
세벨리아는 그제야 거실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쿠션이 마야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쩐지 지나치게 아기자기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어쩐지 워츠가 어제 갑자기 곧 마야가 올 거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었을 줄이야.”
클로드가 흑흑 거리며 마야의 앞발에 뺨을 댔다. 퍽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가고 세벨리아는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후후, 마야. 건강하구나.”
다행이었다. 그는 화난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 보였다. 세벨리아는 이유 모를 소름이 돋았다. 클로드가 그녀의 어색한 반응을 알아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흠, 미안해요. 그런데 마야가 벨라 양을 마음에 들어 하나 보네요.”
“그런가요?”
어느새 제 옆구리를 파고드는 회색 털 뭉치를 바라보며 세벨리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거지. 세벨리아는 몸을 덜덜 떠는 마야를 걱정스레 내려다보았다.
“정원에서 만났다고 했죠?”
“아, 네.”
세벨리아가 순순히 대답하자 클로드가 눈을 휘며 웃었다. 걸려들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분명 워츠가 정원까지 나가지 말라고 했던 거로 아는데요.”
세벨리아의 입술이 딱 달라붙었다. 그녀는 항변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슥슥, 마야의 털은 참 매혹적인 감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딴청 피우는 모습을 보며 클로드가 낮게 웃었다.
“그래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니까.”
이제는 벨라가 세벨리아라는 걸 알고 있는 클로드였다. 그는 뒤늦게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찾아보았고 그녀가 힐렌드 홀에서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한 가족으로 묶여 있던 사이니까.
“마야와 함께라면 호숫가까지는 산책 겸 다녀와도 돼요.”
“정말이세요?”
클로드의 말에 세벨리아가 화색을 띠었다. 그녀가 이 정도로 감정을 드러낸 건 처음이라 그는 조금 놀랐다.
‘역시 갇혀 있다시피 한 게 힘들었나 보군.’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때 신체의 자유를 빼앗겼던 사람이다. 치료 목적에서 권한 일이긴 해도 그녀에겐 힘든 시간이었을 게 분명했다.
클로드가 마야에게 시선을 주며 확언했다.
“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야와 같이 간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까요.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곧장 알리러 올 테고.”
“똑똑한 고양이인가 봐요.”
세벨리아가 마야의 턱을 긁어 주며 말했다. 클로드가 자식 자랑하는 어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캐트시거든요.”
‘캐트시?’
캐트시는 고양이 모습을 한 정령으로 보통 깊은 숲에서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긴 수명을 가지고 있고 지능은 어린아이 정도이며, 가끔가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는 캐트시도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져 왔다.
‘세상에,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한때 신의 도시라고 불렸던 서프레디인 건가.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역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곳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가 남아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구나, 마야. 너는 캐트시였구나.”
세벨리아는 고개를 숙여 마야와 시선을 맞췄다. 보석처럼 영롱한 초록색 눈이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쩐지 그냥 고양이 같지 않았어.”
그녀는 클로드에게서 건네받은 고양이용 간식을 작게 부숴 마야에게 주었다. 마야의 귀환 축하 겸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제 방해 없이 숲에 가서 환영 연습을 하면 되겠어.’
다른 이도 아닌 마야가 제 곁을 지켜 줄 테니 여러모로 든든했다.
* * *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동안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디하트는 문을 열고 기함했다.
“이 빌어먹을 고양… 윽!”
마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감하게 뛰어올라 디하트의 턱을 후려쳤다. 디하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는 회색 털 뭉치를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고양이한테 맞은 건가?’
금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얼얼한 턱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너는 방금 고양이한테 주먹으로 얻어맞았다고.
“허!”
디하트는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며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앞으로 세벨리아가 마야와 함께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거짓말이죠?”
“그럴 리가요.”
세벨리아가 화사하게 웃으며 답했다. 어느새 기어들어 온 털 뭉치가 그녀의 옆구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클로드는 혀 짧은소리를 내며 그 털 뭉치의 관심을 받으려고 발악 중이었다.
“캐트시래요. 어쩐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세벨리아는 디하트를 바라보며 하악질 하는 마야의 등을 느리게 쓸었다. 디하트는 침음을 흘리며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클로드가 산 뒤편 마을로 내려가는 날이 도래했다. 디하트는 그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이상한 놈이니까 길게 엮일 필요 없어.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돌아와.”
“알았다니까.”
“만약 서프레디 남작이 직접 움직였다면 내가 조만간 따로 서신을 보낼 테니 잠시 멈춰 달라는 말도 하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 그만해 줬으면 좋겠구나.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야.”
쯧, 혀를 찬 디하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직접 내려갈 수가 없으니 당신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한다고. 그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지 알아?”
“이불 빨래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네게 집을 맡기고 떠나는 것보다는 덜 신경 쓰이는 일이겠지.”
클로드가 그를 비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찌를듯한 시선이 제 등에 꽂히고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경량화 마법이 걸린 가방과 자루 등을 챙긴 클로드가 현관을 나섰다. 마침 마야와 함께 산책하고 돌아오던 세벨리아가 그와 마주쳤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려가세요? 이틀 후에 가신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일이 그렇게 됐어요. 급히 처리해야 할 게 생겨서요.”
워츠가 이번 주까지 보내기로 한 논문을 보내지 않았다며, 클로드가 있는 힘껏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고달픔이 엿보이는 모습에 세벨리아가 그를 위로했다.
“그럼 다음 주에나 다시 가시겠네요.”
“그렇죠. 일주일에 두 번은 아무래도 무리예요.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이제 나이가 있어서인지 힘들더라구요.”
클로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참,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음…. 보온 마법이 걸린 돌 같은 게 있다고 들었어요. 침대를 데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거요. 밤에 너무 추워서 그런 게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세벨리아의 주문을 새겨 넣었다. 확실히 요새 밤공기가 차가워지기는 했다. 새벽에 복도를 지나면 입김이 나올 정도니.
“그것 외에는 따로 필요한 건 없으신 건가요?”
“네, 그거면 됐어요. 가능하면 다섯 개 정도 구해 주세요.”
추위를 많이 타는구나. 하긴, 북부 출신이 아니었지. 클로드는 이제는 한 가족이 아니게 된 조카며느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연약한 몸으로 힐렌드 홀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아니지, 버티지 못했으니 도망을 친 거겠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만일 자신이 그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만 않았어도 형네 부부는 죽지 않았을 테고, 디하트는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면 참 많은 게 바뀌었을 거야.’
유년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금의 디하트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할 때면 클로드는 뿌리 깊은 죄책감에 온몸을 뒤틀었다. 특히 세벨리아의 앞에서 순진한 청년 행세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죄책감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게 네가 원래 되어야 했던 모습이 아닐까.’
그날 아무 일 없이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다면. 부모의 보호 아래 근심 걱정 없이 자라났다면. 훗날 어른이 된 너는 그렇게 미소 지으며 세벨리아와 함께 하지 않았을까.
“하아…….”
하지만 이런 가정은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다. 클로드는 마야를 품에 안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벨리아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다녀올게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세벨리아가 마야의 앞발을 잡고 클로드를 향해 흔들었다. 그들의 뒤에서 디하트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현실이었다. 그러니 헛된 가정에 힘을 쏟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클로드는 배낭을 고쳐 매고 깊은 숲속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