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58)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58)화(58/171)
클로드가 떠난 다음 날도 세벨리아는 마야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디하트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워츠가 허락했기에 무어라 항변하지 못했다.
“언제 다시 사람을 해칠지 모르는 동물과 함께하게 놔둔다니. 다들 너무 물러요.”
세벨리아는 조금 신기했다. 그가 한낱 고양이에게 위협을 느낄지 몰랐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나?’
디하트가 알면 몹시 억울해할 일이었으나 그가 알 도리는 없었다. 세벨리아는 공터에 다다라 소매 안에서 몸부림치는 파란 새를 꺼냈다.
삐빗-!
그러자 발치에서 함께 걷고 있던 마야의 눈이 커다래지는 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튀어 오를 기세였다.
냐악!
마야는 파란 새와 함께 있는 걸 좋아했다. 노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난폭했고, 싫어한다고 하기엔 파란 새가 없으면 기운을 잃는 게 눈에 보여 그냥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당분간 파란 새를 돌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환영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 마야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삐이-! 먉!
“그래, 그래. 잠깐만 기다려.”
세벨리아는 공터에 파란 새와 마야를 풀어놓았다. 파란 새는 순식간에 포르르 날아올라 마야의 머리 위에 콩 하고 앉더니 도망쳤다. 약 올리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이었다.
“멀리 나가면 안 돼.”
마야가 그녀를 한 번 돌아보더니 걱정 말라는 듯 지그시 눈을 맞추고 다시 파란 새를 잡으러 튀어 나갔다. 그녀는 작게 미소 짓고 그루터기에 앉았다.
이윽고 빛과 함께 세벨리아의 환영이 나타났다. 중간에 살짝 흐려지려는 것 같았으나 힘을 더 불어넣자 형체가 뚜렷해졌다.
그녀는 자신과 똑 닮은 환영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윽고 환영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멈췄다. 세벨리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벨라, 약 먹을래?”
“머리가 아파서 쉬고 싶어요.”
“저녁 식사로 송어 괜찮아?”
“전 괜찮으니 혼자 있게 해 주세요.”
해괴한 선문답이었다. 역시 안되나. 세벨리아는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아무래도 어렵네. 역시 상황에 맞춰 자연스러운 대답을 하게 만드는 건 무리인가.”
머리가 아파서 쉬고 싶어요, 전 괜찮으니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이 두 가지 말은 방금 전 세벨리아가 환영에게 불어넣은 말이었다. 이렇게 하면 특정한 때에 환영에게 말을 하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원하는 말을 골라서 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역시 환영이 만능은 아니구나.”
플로라를 겁주고 디하트를 떼어 놓을 때는 이런 문제점이 있는지 몰랐다. 그때는 저주를 퍼붓거나 몇 마디 말만 하고 사라지게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저택에 남아 있을 환영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사라져도 안 되고, 정체를 들켜서도 안 됐다. 적어도 잠시나마 세 남자의 시선을 속일 만큼 자연스러워야 했다.
“으으.”
끙끙 앓던 세벨리아의 발목에 부드러운 감촉이 스쳤다. 고개를 내리자 마야가 머리에 파란 새를 얹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산책은 딱 한 시간만. 마야와의 산책을 허락해 주는 대신 워츠가 내건 조건이었다. 세벨리아는 아쉬운 얼굴로 환영을 돌려보냈다.
“…그래,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치료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잖아.”
가시나무병은 치료는 가능하나 방법이 까다로운 병이었다. 약에 들어가는 원재료부터 러크우드산이 대부분인 데다 공정도 복잡했기에 워츠는 매일같이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세벨리아는 불안함을 억누르며 파란 새를 안아 들었다.
삐-
곧 마야가 위풍당당하게 그녀의 앞에 서서 따라오라는 듯 눈을 맞췄다. 세벨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연구소 저택의 화단에는 온갖 야생화가 제멋대로 자라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들장미는 물론이고 작은 제비꽃과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한데 뭉친 광경은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그 앞에 한 사내가 전정가위를 들고 서 있었다. 워츠에게 내쫓긴 디하트였다.
“…….”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화단을 쓱 훑어보고 이름 없는 들꽃부터 뽑아내기 시작했다. 감정이 실려 있는 손짓에 들꽃들은 사정없이 뿌리뽑혔다.
“의원만 아니었으면…….”
디하트의 눈이 서재가 있는 2층을 흘끗 올려다보았다가 도로 내려왔다. 그가 서재에서 쫓겨난 이유는 정신이 산만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연히 디하트는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은 세벨리아가 때에 맞춰 잘 돌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가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건 사라진 줄 알았던 세벨리아를 정원에서 발견한 뒤 생긴 강박증이었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가 돌아오는 모습을 두 눈으로 담아야만 안심이 되었다.
‘이런 것도 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의원이 되어서 환자를 차별하다니. 디하트가 들꽃을 뽑다 말고 으르렁거렸다. 게다가 산만함의 이유도 어이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창가에 서서 숨만 쉬었는데, 그게 거슬린단다. 덧붙여 하는 말도 충격적이었다.
[클로드에게 듣기로는 효율을 중시하는 성격이라던데, 벨라 양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보낼 게 아니라 일이라도 하지 그러십니까.]워츠는 그렇게 말하며 제게 정원 관리에 필요한 것들을 한 무더기 안겨 주었다.
[음침하게 구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적어도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인 걸 보여 줘야죠, 쯧.]무척 열 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워츠의 말대로 자신은 그녀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그래도 그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아.’
세벨리아의 병을 고칠 유일한 의원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반 시체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 건지 그 의원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아쉽군.”
디하트는 워츠에게서 뺏어 온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의 발치에는 어느새 하얀 들꽃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가 들장미를 솎아 내기 위해 전정가위를 집어 든 순간이었다.
저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쾌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
디하트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단지 화단을 정리하러 나온 것뿐이야. 음침하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고. 그는 세벨리아가 돌아온 걸 못 알아차린 것처럼 열심히 가위를 놀렸다.
싹둑, 싹둑.
긴장해서일까. 계획과는 다르게 장미를 솎아 낼 때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자존심에 깊은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발걸음 소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디하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숨을 쉬려 노력했다. 자박자박. 가벼운 발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이쯤이면 됐을까.’
핵심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마치 일에 몰두하다 방금 기척을 느낀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녀를 맞이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세벨리아가 자신을 조금 멀리하는 것 같았기에 디하트의 초조함은 식을 줄 몰랐다.
‘젠장, 좋은 타이밍이란 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애꿎은 장미만 계속 죽일 수는 없었다. 자신이 먼저 아는 척하지 않는다면 세벨리아는 그대로 들어가 버리고 말 게 틀림없었다. 그럼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은 불안증에 시달리며 계속 그녀 곁에 있으려 하겠지.
‘그럴 수는 없어.’
디하트는 곁눈질로 세벨리아의 그림자를 찾았다. 아직 거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언제 저 망할 고양이를 쫓는답시고 방향을 바꿀지 모르니까.
결심한 그는 으흠, 헛기침을 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 세벨리아와 마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
“…….”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 새카만 어둠이 넘실거렸다. 디하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머나먼 곳을 헤매는 듯한 그 눈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한 줄기 불길 같은 의문이 가슴을 치고 목구멍을 그을렸다. 그러나 차마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자신은 그녀의 남편이었던 디하트 인버네스가 아니니까.
‘나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자신을 두고 떠나 버린 그녀 옆에 머무르기 위해 과거를 부정한 결과가 바로 이렇게 돌아왔다. 디하트는 말 그대로 그녀 옆에 자리할 수는 있지만 그뿐이었다.
“벨라.”
디하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쓴물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녀와 어떤 접점도 없는 평범한 청년인 디하트는 세벨리아에게 내가 아닌 누구를 보고 있는 거냐고 물을 수 없으니까.
“벨라, 괜찮아요?”
디하트가 한 발자국 다가오며 다시 물었다. 그제야 세벨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낯을 했으나 이윽고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디하트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에 고통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있던 세벨리아는 당연히 보지 못했다.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집에 온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잠깐 놀란 거예요.”
세벨리아가 안아 달라 팔을 뻗는 마야를 들어 올리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디하트 씨는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건가요?”
“…화단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잡초들이 뒤엉켜 자라서.”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제 눈에는 뭐가 잡초고 꽃인지 구분이 안 가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디하트는 완전히 기운을 잃은 채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세벨리아는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수고하세요.”
“그래요. 들어가서 쉬어요.”
세벨리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금색 눈동자가 그녀의 뒤를 쫓았다가 기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하마터면 그대로 뒤돌아 도망칠 뻔했어.’
현관 안에 들어선 세벨리아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