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6)화(6/171)
“제, 제발…….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 곳에는 간 적도, 아악……!”
디하트는 심드렁한 눈으로 팔짱을 꼈다.
꼬리를 잡은 지 반나절.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놈은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다.
‘여기서 끊겨서는 안 돼.’
쯧, 혀를 찬 디하트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가 손짓하자 수하가 고문을 멈췄다.
“적당히 하고 숨은 붙여 둬. 그리고…….”
그때 불쾌한 냄새와 함께 거슬리는 온기가 피 냄새 가득한 방에 퍼졌다. 고개를 돌린 그는 라이언이 무언가를 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그것을 응시하자 라이언이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든 걸 내밀었다.
“계속 식사를 거르시면 좋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음을 넘어서 디하트는 불쾌한 냄새의 원인부터 파악했다. 디하트는 포장지에 싸인 붉디붉은 고기를 내려다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향신료를 잔뜩 뿌린 매캐한 냄새가 그의 후각을 괴롭혔다.
침묵이 길어지자 라이언이 무덤덤하게 말을 얹었다.
“근처 시장에서 팔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많던데요.”
“내가 지금 그걸 궁금해하는 것 같나, 라이언?”
눈썹을 치켜올린 디하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건 자네나 먹어. 그 해괴망측한 입맛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자네나 그녀…….”
불만스럽게 말을 잇던 디하트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는 잠시 제가 한 말을 돌이켜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피 냄새는 사람을 돌게 만든다더니.”
입을 가린 채 중얼거린 디하트는 부러 거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라이언이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한편, 세벨리아는 집사와 말다툼 중이었다.
“그건 내 권리입니다, 그로스.”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마님.”
세벨리아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두 사람은 지하 금고에 들어가는 일로 의견충돌 중이었다. 그녀가 물러갈 것 같지 않자 그로스는 난색을 표했다.
솔직히 그는 지금 세벨리아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안주인 노릇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그로스는 세벨리아가 요사이 이상해진 걸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온실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그 눈이라니.
‘분명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그로스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세벨리아를 훑었다. 그에게 지참금을 가져가겠다는 세벨리아의 말은 그저 핑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 금고에는 마님의 지참금 외에도 다른 재물들이 많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로스가 대충 아무 말이나 길게 늘이자, 세벨리아가 그의 말꼬리를 잘랐다.
“내가 도둑질이라도 할까 염려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세벨리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로스는 일부러 과장되게 놀란 척 어깨를 으쓱였다.
“허허, 그걸 또 그렇게 받아들이시는군요. 하여간 마님께서는 만사에 너무 예민하시다니까요.”
그는 이전에 그녀의 기에 눌렸던 일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유독 까칠하게 굴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그가 콧수염을 건드리며 말했다.
“뭐,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군요.”
“…….”
“그리고 제가 일부러 이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서서 그를 내려다보던 세벨리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마님의 경솔한 행동 탓 아닙니까?”
그가 비웃듯 세벨리아를 올려 보며 말했다.
“그러니 정 지하 금고에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주인님의 허락을 받아 오십시오.”
그로스는 그렇게 말하고선 바로 펜을 들어 서류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완전한 무시였다. 세벨리아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말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하.”
세벨리아는 바로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어젖혔다. 집사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신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 * *
“향이 좋네.”
세벨리아의 방과는 달리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방 안. 마치 공작부인의 방을 연상케 꾸민 방에서 플로라는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이렇게 좋은 걸 왜 썩히고 계시는지 모르겠어.”
디하트의 사촌 동생인 그녀는 오만하고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그 성격을 알면서도 감싸 준다는 점이었다.
“후, 보고 싶다.”
플로라가 혼자 칭얼거리며 입술을 비죽였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그녀와 디하트가 친남매처럼 함께 자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를 잃은 디하트를 숙부인 라쉬가 거둬들여 친아들처럼 키웠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이번에야말로 공작부인 방을 내게 달라고 해야겠어. 먼지 구덩이로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낫잖아.”
물론, 그녀는 디하트를 단순한 사촌 오빠가 아닌 그 이상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플로라가 콧노래를 부르며 진한 홍차에 우유를 부었다. 스푼을 휘젓는 손길이 몹시 즐거워 보였다. 멍청한 중앙 촌년이 제 발로 저택을 나갈 날을 계산하며 그녀는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밀크티를 완성한 그녀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과자 하나를 집어 들려던 찰나였다.
“아가씨.”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생김새의 하녀 한 명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침부터 널 보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네.”
투덜거리는 말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다. 그러나 하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연히 인사를 올리고는 본론을 꺼냈다.
“방금 전 그로스 집사장의 집무실에 세벨리아 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뭐?”
하늘이 뒤집혔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플로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 하녀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직은 소문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대로라면 세벨리아 님께서 지하 금고의 열쇠를 요구하신 듯합니다.”
“웨든의 사생아가 뭘 요구했다고? 세상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이어 웃긴 소식을 들은 것처럼 그녀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붉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물결쳤다.
“근래에 들어 이렇게 웃긴 일은 처음이야. 아하하.”
플로라는 터진 웃음 때문에 가빠진 숨을 고르며 하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니. 우리 고명한 사생아께서 금고에 들어가셨다니?”
그녀의 물음에 하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로스 집사장이 공작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세벨리아 님의 청을 거절하셔서.”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플로라 아가씨….”
말을 이으면서도 하녀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내심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이라도 아가씨께서 세벨리아 님의 보석에 손을 댄 걸 알면 일이 심각해집니다.”
섣부른 걱정에 플로라가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럴 일은 없어. 그리고 손을 대긴 누가 손을 댔다는 거야. 아무도 쓰지 않는 것을 내가 잠깐 쓰다 다른 데 빌려준 거지.”
플로라는 천연덕스럽게 차를 마시고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뻔뻔하다 못해 당당한 태도에 하녀는 순간적으로 모든 걱정을 잊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누가 감히 나를 혼내겠어?”
사실 그녀의 지극히 뻔뻔하고 이기적인 태도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지하 금고 열쇠를 아버지에게 맡긴 건 디하트였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이 없을 때 재산 관리를 부탁한다고 말했었다.
그 말인즉슨, 원하는 대로 이용하라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자신과 어머니는 그 버러지 같은 사생아 대신 공작가 전반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짜 공작부인은 자신인 셈이지.
“언제든 다시 가져올 수 있는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하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를 흘긋 올려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는 건 공작부인만이 처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가씨.”
대대로 공작부인들이 소유했던 보석들과 세벨리아가 가져온 지참금이 보관되어 있는 곳.
원칙대로 따지면 방계인 플로라는 지하 금고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너……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지?”
플로라가 눈을 치켜뜨며 하녀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오라버니는 그년이 지하 금고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제법 기운을 차린 건지, 플로라가 다시 자세를 바로 세우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는 풋 하고 웃더니 뻐기듯 말했다.
“오라버니의 뒤통수를 친 거로도 모자라 공작가 재산을 빈민한테 탕진하려던 멍청한 년한테 그럴 권리를 줄 리가 없지.”
세벨리아가 그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손을 놓았던 공작부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겠다며 빈민 구제 사업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선의는 오히려 디하트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바보 같은 년. 누가 너한테 그따위 것을 바란 줄 알고.’
플로라는 세벨리아의 멍청하고 순진한 생각을 비웃으며 턱을 들어 올렸다.
“집사장은 오라버니의 뜻을 대신 진행한 것이니 아무 문제 없어. 괜찮아.”
플로라가 턱을 치켜들며 도도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가서 그 멍청한 사생아나 잘 감시해. 알았어?”
그리고선 서랍을 열어 금화 한 움큼을 꺼내 하녀의 손에 떨어트렸다. 그 금빛 찬란한 광경을 목도한 하녀의 얼굴에 탐욕이 물들었다.
“아가씨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플로라는 하녀가 급하게 가져온 소식에 기함했다.
“오라버니께 감히 편지를 보내려 했다고?”
“예, 아침에 우편국에 가려는 걸 그로스 집사장이 붙들어 말렸다고…….”
플로라는 그 주제넘은 행동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벙찐 그녀를 바라보며 하녀가 말했다.
“이제 어쩌죠, 아가씨? 혹시라도 공작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그게 미쳤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안 그래도 네이튼이 실려 가며 그녀가 완전히 미쳐 버렸다고 소리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쪽팔려서 한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플로라는 손끝을 까득, 깨물었다.
“안 되겠다.”
“네?”
“내가 직접 가 봐야겠어.”
예감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