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6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62)화(62/171)
클로드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된 데에는 돌변한 디하트의 태도 탓도 있었다. 디하트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처럼 더 이상 세벨리아의 주위를 맴돌지도, 그녀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뒷마당으로 향하려던 클로드를 붙든 디하트가 그에게 일레이에게 보낼 편지를 건넸다.
“되도록 빨리 부탁할게.”
“서프레디로 돌아가 일행과 합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클로드가 말끝을 흐리며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는 디하트가 당장 힐렌드 홀로 돌아가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림스 숙부님은 어떻게든 제 고집을 관철할 분이야. 네가 대리인으로 세운 자가 아무리 기개 높은 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상대가 되지는 못해.”
“걱정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하지만 조언이라면 필요 없어.”
디하트가 딱 잘라 말하며 클로드와 시선을 맞부딪혔다. 날카롭게 잘라 내는 듯한 그의 말에 클로드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클로드, 당신은 내가 그날의 기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그날에 대한 진실을 내게 알려 주지 않았지. 마치 나는 언제까지고 그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어린아이인 것 마냥.”
“…….”
“당신이 나를 동등한 존재로 생각했다면 내게 결백을 주장하고 그날의 일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협조를 구해야 했어.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건 침묵이었지. 나처럼 어린아이에게 그런 참혹한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안타까운 눈으로 내게서 시선을 돌렸어.”
클로드는 입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디하트는 정확하게 그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를 아직도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제 얄팍한 이기심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껏 눈감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날 걱정할 수는 있어도, 내게 조언할 수는 없어. 당신은 나를 힐렌드 홀과 인버네스의 주인이 아니라 연약한 어린애로만 보고 있으니까.”
디하트가 마지막으로 강렬한 눈빛과 함께 밀어붙이듯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클로드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가 주고 간 편지를 품에 넣었다.
“그래, 분부대로 따르지요. 공작님.”
클로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건가. 방금 전의 디하트는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형제, 길런드를 똑 닮아 있었다.
* * *
디하트와 이야기를 나눈 뒤로 나흘이 흘렀다. 그동안 세벨리아는 그와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디하트가 삼 층에서 내려오지 않았기에 그와 만날 일조차 없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숲속 공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환영 연습에 매달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굳이 그의 눈을 피해 가면서 아랫마을에 다녀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클로드 씨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할까, 아니면 직접 내려갈까.”
아직도 클로드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지만 예전만큼 크게 경계심이 들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디하트였으니까. 그가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모든 건 만사형통이었다.
‘사흘 동안이나 잠잠한 걸 보니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나 보지.’
아무래도 그녀가 마지막에 그에게 남긴 말이 결정타였을 것이다.
“난 주제 파악을 잘하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요…….”
그리고 난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요.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디하트 씨.
세벨리아가 말한 ‘기대’란 더 이상 자신에게 매달려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는 말이었다. 자신을 세벨리아 인버네스가 아니라 벨라로 인정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리고 요 사흘 동안 디하트는 그녀의 기대를 잘 충족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마무리야.”
엉망진창이었던 우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정말 좋은 끝맺음이라고. 세벨리아는 제 품을 파고드는 마야를 꼭 끌어안으며 되뇌었다.
“이제 남은 건 치료를 끝내고 데니사와 만나는 것밖에 없어.”
세벨리아는 그날을 꿈꾸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서프레디로부터 머나먼 곳 북부, 그곳의 힐렌드 홀에서는 때아닌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엔하이 남작님께서 도착하셨다. 어서 그분을 방으로 모시고 짐을 옮겨!”
“페린 영애께서 수선을 맡긴 드레스를 찾으시는데. 누가 담당이지?”
수십 명의 하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하녀들은 무언가를 손에 들고 정신없이 복도를 거닐었다.
굳게 닫혀 있던 힐렌드 홀의 문을 림스 후작이 억지로 비틀어 연 이후 처음으로 연회가 열리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엔하이 남작님.”
“음.”
초대장을 받은 귀족들은 미리 힐렌드 홀을 방문해 연회가 열리는 날까지 회포를 풀며 다른 이들과 교류했다. 이게 바로 림스가 바라던 것이었다.
“시끌벅적하고 좋군. 제가 주인이라도 된 것마냥 떠들고 다니던 그 기사놈이 입을 딱 다물고 있는 꼴을 보니 아주 속이 시원해.”
결국 승리를 결정짓는 건 기세였다.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게 누구인지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
“오, 어서 오십시오, 유프렌 부인. 부인을 이곳에서 보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그래서 림스 후작은 힐렌드 홀의 분위기를 제 편으로 끌어오기 위해 사교계의 온갖 명사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힐렌드 홀을 휘저었다.
그리고 라이언은 그 모습을 모두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플로라와 함께 다정하게 산책길을 걷는 네이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웨든 후작까지 왔단 말이지.”
죽은 공작부인의 부친이자 그녀와 합심해 인버네스의 정보를 빼돌렸던 인물. 장례식이 끝난 뒤로 그가 계속 북부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연회에까지 참석하려 들 줄은 몰랐다.
‘무슨 속셈이지?’
단순히 표면적인 사실로만 따지자면 아끼던 막내딸을 잃은 슬픔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히 적당해야지. 과도한 애상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로랑.”
“예, 라이언 경.”
“웨든 후작이 어디에 머물고 있지?”
“라투르 관에 머물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본관이 화재로 소실되어 인버네스 가문의 사람들마저 동관과 서관에 나누어 지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편의를 위해서라도 연회를 위해 초대한 이들은 힐렌드 홀 내에 있는 다른 건물을 내줘야 했다.
“라투르 관이라. 거긴 묘역과 가까워 손님에게 내줄만한 곳이 아닐 텐데.”
“예, 하지만 림스 후작께서는 그걸 의도하신 걸지도 모릅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시지만 중앙 출신 귀족들을 은근히 경멸하시는 분이니까요.”
로랑은 덧붙여 중앙 출신 귀족들이 웨든 후작과 함께 모두 라투르 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속 좁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배치에 라이언은 혀를 찼다.
“이대로 연회가 성사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연회는 림스 후작의 혈기를 돋구고 그들의 단결력을 강화해서 결국 힐렌드 홀을 뒤흔들려 할 것이다. 라이언은 드와이어를 재촉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 다급히 문을 두들겼다. 라이언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상대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책상 앞까지 달려왔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호들갑인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전달하라 하셨기에…!”
얼굴을 보니 디하트의 실종을 알게 된 뒤 일레이에게 보낸 기사 중 한 명이었다. 라이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젠장, 드디어!”
라이언의 얼굴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물들었다. 그건 디하트의 편지였다.
* * *
디하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닷새가 되었다. 세벨리아는 조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의 전 부인으로서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그가 다치거나 죽길 바라지 않을 뿐.
그래도 다행인 건 클로드가 주기적으로 3층을 드나든다는 점이었다.
‘식사는 제대로 하나 보네.’
음식물을 양껏 담은 쟁반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면 텅텅 비었다. 그때마다 세벨리아는 디하트의 생존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벨리아는 약초저장고 앞에서 클로드와 맞부딪혔다.
“아.”
“아, 음. 벨라 양, 무슨 일인가요?”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사실 세벨리아는 클로드가 자신과 디하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디하트와 일이 생긴 직후부터 갑자기 자신을 어색하게 대할 리가 없으니까.
“워츠 씨가 말한 약재를 가지러 왔어요. 공부하는 데 필요하거든요.”
세벨리아가 눈으로 약초저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뒷마당에 있는 약초저장고는 워츠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었다.
귀한 약재들이 효용을 잃지 않도록 마법을 통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맞춰 놓은 공간으로 세벨리아는 최근 그곳의 출입을 허가받았다.
클로드는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잊고 있었네요. 들어가요.”
그대로 그녀를 스쳐 지나가려던 클로드를 세벨리아가 붙잡았다.
“잠시만요.”
“벨라 양?”
당황한 듯, 크게 뜨인 금색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가까이서 보니 더 비슷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클로드가 디하트의 가까운 혈족인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자신과 그의 관계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겠지.
‘알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건 이제 싫어.’
디하트와도 끝낸 일이었다. 그러니 이젠 클로드의 차례였다. 결심한 세벨리아는 클로드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디하트 인버네스와 관련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
그녀가 이리 직설적으로 나올 줄 몰랐던 클로드는 당황함에 입을 크게 벌렸다. 세벨리아는 물러서지 않고 기세를 몰아 클로드에게 물었다.
“그가 서프레디까지 데려온 기사들은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나요?”
지금 세벨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데니사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서프레디로 내려갔을 때 그녀를 방해할 사람들이 있는가.
“벨라, 아니 세벨리아 양.”
역시 그는 제 본명을 알고 있었다. 세벨리아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맺히는 걸 느끼며 담담히 말했다.
“벨라라고 계속 부르세요, 클로드 씨. 세벨리아 인버네스 공작부인이 죽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하…….”
클로드의 장탄식이 뒷마당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