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6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64)화(64/171)
헨킷은 서프레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이언 경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왔지만 솔직히 말해 이곳의 모든 게 한심했다. 가장 한심한 건 라이언 경의 추천 하나로 실력도 없는 주제에 공작님의 보좌를 맡았던 일레이지만.
“그 녀석이 제대로 하기만 했어도 공작님이 실종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만일 자신이 라이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먼저 사촌 동생이고 뭐고 봐주는 일 없이 바로 일레이를 파직시켰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사라진 공작님을 찾아 직접 이곳까지 왔겠지.
‘힐렌드 홀에 앉아 말만 지껄이지 않고 말이지!’
헨킷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골목을 지났다. 가까운 곳에 우편국의 모습이 보였다.
“헨킷, 오늘도 혼자 순찰하는 거야?”
“아아.”
동료 기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순찰 임무는 저번 주로 끝났는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굴어? 좀 쉬엄쉬엄해.”
“됐어, 너는 가 봐.”
헨킷이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동료 기사를 보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사라졌다. 순찰 경계 임무가 없어진 지 일주일.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디하트가 편지를 보내 더 이상 세벨리아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한심한 머저리들뿐이야. 내가 단장이 되면 저런 놈들은 싹 다 잘라 버려야지.’
헨킷은 자신을 칼 어펜츠라고 소개하며 디하트의 편지를 주고 간 중년의 사내를 떠올렸다.
어딜 봐도 ‘나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써 붙인 듯한 외모와 듣기 좋은 목소리. 헨킷은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건 함정이었다. 생각도 짧고 멍청한 일레이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그는 디하트가 가짜 공작부인에게 붙잡혀 있으며, 협박을 받아 강제로 편지를 썼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공작님은 붙잡혀 계신 게 틀림없어.’
그리고 그를 구해 낼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헨킷은 콧김을 내뿜으며 오늘도 서프레디를 열심히 순찰했다. 그리고 그가 우편국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이제 돌아갈까요?”
“아, 온 김에 서점에 좀 들러도 될까요?”
칼 어펜츠가 망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여인과 함께 우편국 앞에 서 있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이상한 차림은 아니었으나 헨킷은 그녀가 수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흠. 서점이요. 마지막으로 들린 지 오래되어서 가는 길을 좀 헤맬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네, 저는 상관없어요. 참 그렇지. 가는 길에 마야에게 줄 간식도 사 가요.”
“좋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웃으며 헨킷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인이 상대를 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저 사람은…!’
헨킷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곧 그의 얼굴이 희열로 달아올랐다.
‘가짜 공작부인!’
역시 두 사람이 같은 편이었구나. 공작님은 놈들에게 붙잡혀 있는 거였어! 헨킷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뒤를 쫓으며 안주머니를 확인했다. 디하트를 구하기 위해 미리 사 놓은 준비물들이 그곳에 안전히 있었다.
‘일레이, 너도 이제 끝이다.’
헨킷의 야심이 하늘을 찔렀다.
* * *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기 전에 세벨리아는 연구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클로드에게서 받은 펜던트를 가볍게 흔들자 빛이 멎었다.
“앩옹.”
현관문을 열자 마야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세벨리아의 발목에 등허리를 비비더니 클로드는 왜 없냐는 듯 짧게 울었다.
“클로드 씨는 들러야 할 데가 있다고 하셨어. 아마 저녁이 지나서 오실 거야.”
“먀악.”
마야는 그러냐는 듯 대답하고는 꼬리를 살랑이며 멀어져 갔다. 세벨리아는 아쉬움을 느끼며 짐을 풀었다.
“워츠 씨, 여기 부탁하신 책들이에요.”
“고마워요, 클로드는 오늘도 늦는가 보군요.”
세벨리아는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짓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계단을 오르는데 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게 느껴졌다. 그제야 세벨리아는 자신이 은 십자가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세벨리아는 고민하며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그때,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았다.
디하트가 소파에 앉아 머뭇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
“미안.”
짧은 사과와 함께 디하트가 입술을 짓씹었다.
“괜찮다면 여기 있어도 될까?”
세벨리아는 그가 왜 사과를 한 건지 알 수 없어 잠시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디하트의 낯빛이 새카맣게 변했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 미안해.”
다시 한번 사과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벨리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디하트.”
“…….”
“당신을 부른 게 맞아요.”
돌아보는 금색 눈동자에 희미한 망설임이 느껴졌다. 세벨리아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을 뒤적이던 그녀는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힐렌드 홀에서 내가 저런 모습이었구나.’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디하트를 마주쳤을 때. 자신은 그의 눈치를 보며 함께 있어도 되냐 물었었다. 괜찮다는 허락을 받으면 기쁘면서도 그걸 티 낼 수 없어 비참한 기분이 들었었고.
‘그런데 이렇게 반대 상황이 될 줄이야.’
세벨리아는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디하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목덜미를 붉혔다. 그 모습에 세벨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별로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마야한테 뺏긴 물건이 있죠?”
“뭐? 아…….”
디하트가 눈을 깜빡였다. 입을 살짝 벌리고서 고개를 대각선으로 숙이는 모습이 퍽 아쉬워 보였다. 아마도 세벨리아가 다른 이유로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가져가요.”
세벨리아가 주머니에서 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디하트는 복잡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손이 아주 잠깐 동안 닿았다. 부드러운 꽃잎에 스친 듯한 감각이었다. 디하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고, 고마워. 정말로. 그리고 미안해.”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헉…….”
가슴이 두근거렸다. 디하트는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느끼며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꼴사납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내 주제에 이런 거로 기뻐하다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자신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그녀에게 닿다니.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때, 또다시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디하트가 어딘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
문틈 사이로 두 개의 녹색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앩, 하고 경고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디하트는 에메랄드 같은 눈을 바라보더니 손에 꽉 쥐고 있던 은 십자가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전과 달리 아주 관대하고 또 무방비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타닷.
작은 발자국 소리가 방을 울렸다.
* * *
세벨리아의 말처럼 느지막이 연구소로 돌아온 클로드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디하트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하던 녀석이 갑자기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으니 이상할 법했다.
“여기 답장받아 왔다.”
하지만 디하트가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인가. 클로드는 기분 변화의 이유를 묻는 대신 일레이에게 부탁받은 편지와 서류를 건넸다.
“흠.”
다행히도 하늘 높이 치솟았던 그의 기분은 일거리를 받아 들자 빠르게 지상으로 낙하했다. 클로드는 바로 자리를 뜨려 했으나 디하트가 그를 막았다.
“잠시 여기 있어.”
“괜찮은 거냐?”
걱정은 받지만 조언은 받지 않겠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 클로드가 조금은 삐딱하게 말했다.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고 서류를 집어 들던 디하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속 좁기는.”
“너.”
“림스 할아버님과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어.”
디하트가 클로드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클로드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모르는 척 튕길까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조카를 상대로 자존심을 세워 봤자 꼴사납기만 했다.
“뭔데?”
“그가 유명한 도검 수집가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정확지 않아서. 신화시대의 유물에도 손을 뻗을 정도인가?”
디하트가 서류를 팔락이며 말했다. 최근 힐렌드 홀과 연락이 닿게 된 그는 라이언을 통해 그가 함정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예를 들면 에퀴테이아의 검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디하트의 말에 클로드가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 디하트는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 당연히 환장하지. 림스 숙부는 이십 년 전에도 왕가의 보물을 탐냈던 사람이야. 보석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날은 무딘 그런 바보 같은 검을 말이지.”
“실제로 사용 가능한지는 중요치 않다는 거군. 희소성과 명성에 집착한다 이 말이지.”
계획대로 진행해도 되겠어. 디하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라이언과 그는 가짜 유물을 제작해 림스가 자주 출몰한다는 암시장에 내놓을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 라이언은 미리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섭외해 놓았다.
“좋은 정보 고마워.”
산뜻한 인사에 클로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방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멀리서부터 시작된 파동이 저택을 휩쓸었다.
“…?!”
가장 먼저 낌새를 알아차린 건 디하트였다. 그는 재빨리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호숫가 주변 숲에서부터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순식간에 저택까지 불길이 닿을 게 뻔했다.
“클로드, 당장 내려가서 세벨리아 데리고 피해.”
금속처럼 차갑게 벼려진 금색 눈동자 위로 넘실거리는 불꽃이 춤을 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