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6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65)화(65/171)
갑자기 숲을 집어삼킨 화마는 다행히 저택 뒷부분을 일부 그슬린 채 끝났다. 범인을 붙잡은 디하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 냈다.
“이 미친 새끼가!”
착란상태에 빠진 헨킷을 두들겨 패서 알아낸 사실은 어처구니없었다. 그는 악몽의 숲에 먼저 들어갔던 이들을 통해 안쪽의 사정을 알아낸 뒤 준비물을 챙겼다고 한다.
잡화점에서 사람들이 챙기던 야영 세트가 아닌 환영과 주술을 파괴하는 부적을.
“공작님, 아아, 공작님. 제가 당신을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 당장 공작님 곁에서 떨어지지 못해!”
헨킷의 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는 텅 빈 제 옆자리를 보며 디하트를 찾고, 정작 진짜 디하트에게는 악당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은 새끼. 감히 인버네스 공작을 붙잡고도 너희가 무사할 줄 아느냐!”
“하, 미치겠군.”
디하트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악몽의 숲을 빠져나왔음에도 헨킷은 착란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가 사용한 가짜 부적 때문이었다.
“이딴 허접쓰레기 같은 걸 들고 내 뒤를 쫓았단 말이지.”
서프레디 뒷골목에서 구한 부적이 제대로 된 물건일 리가 없었다. 클로드가 이마를 짚은 채 두 눈을 꾹 감았다.
“이번에도 그냥 내 뒤를 쫓아온 어중이떠중이 학자인 줄 알았는데. 내 실책이야.”
클로드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당분간 숲을 아예 닫아 두어야겠군.”
차라리 아예 아무 능력도 없는 종잇장이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되다 만 부적은 결계 속의 환영을 뒤틀어 헨킷에게 ‘그가 보고 싶은 장면’을 보게 했다.
“걱정 마십시오, 공작님. 제가 본대에 신호를 보내 놓았습니다. 곧 그걸 보고 사람들이 올 겁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당신을 구하러 온 건 저뿐이라는… 아악!”
“네까짓 놈한테 구해질 목숨이었다면 난 진작에 지옥을 뒹굴고 있었을 거다.”
디하트가 으르렁거리며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이 미친놈은 신호를 보낸답시고 조잡한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숲을 태워 먹었다. 아니, 숲으로도 모자라 저택을 완전히 잿가루로 만들 뻔했다.
스릉-
디하트가 검을 빼 들었다. 클로드가 서늘한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검은 디하트가 연구소에 실려 온 날 그가 몰래 숨겨 둔 물건이었다.
“너, 언제?”
“그 의원을 적당히 협박하니 갖다주던걸.”
클로드는 신음을 흘렸다. 협박은 핑계에 불과했다. 워츠는 협박에 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그도 분노하고 있던 것이리라.
“하긴 약초저장고가 완전히 소실되었으니.”
저장고에는 그간 워츠가 모아 온 귀한 약재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건 단순히 치료 약의 재료일 뿐만 아니라 연구에 필요한 소중한 자료이기도 했다. 그걸 전부 잃어버린 워츠의 원한은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깊을 게 분명했다.
“제 뒤로 숨으십시오, 공작님! 이 고얀 놈, 너는 내 주인의 몸에는 손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이 헨킷이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 아아아악!”
피가 튀고 뼈가 깎여 나가는 소리가 지하연구실을 울렸다. 그렇게 헨킷은 평생 검을 잡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잠시 뒤, 디하트가 연구실의 문을 열며 클로드에게 말했다.
“이 뒤는 의원에게 맡기지.”
“…….”
“살리든 말든 난 상관하지 않겠다.”
가신의 생살여탈권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말이었다. 아무런 인명피해도 나지 않은 사고치고는 꽤나 가혹한 처사였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볼 뿐, 반대하지 않았다. 디하트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이윽고 문이 닫혔다. 그림자 진 계단을 올라가며 디하트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젠장…….”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게 너무 힘겨웠다. 고작 열 계단도 안 되는 거리였으나 그에게는 천릿길과도 같았다. 마지막 계단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은 예전에 복용하던 약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해요. 아무래도 당분간 기성 제품을 사용하는 수밖에는…….”
멀리서 워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감해하는 어조에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헨킷에 대한 분노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약초저장고의 소실. 그건 바로 막바지에 이른 세벨리아의 치료가 중단된다는 말이었다.
* * *
가시나무병은 러크우드의 풍토병이었다. 많은 이들이 걸리지는 않으나 그래도 적지 않은 환자들이 있었고 덕분에 치료법도 존재했다.
“문제는 이 까다로운 병이 그만큼 까다로운 약재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워츠의 목소리가 타다 만 숲을 울렸다. 그는 디하트와 함께 그나마 멀쩡한 숲을 뒤져 쓸만한 약재를 찾는 중이었다.
“러크우드가 그렇게 폐쇄적이지만 않았어도 약재 수급에 문제는 없었을 텐데.”
워츠가 눈가를 문지르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환자가 러크우드 사람이라면 사실 별로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재료들이 모두 러크우드에서 흔히 나는 약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서리숲 너머에 위치한 벨크람 제국. 그중에서도 다른 곳과 교류가 적기로 유명한 서프레디의 깊은 산맥 속이었다.
“그 정도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인가? 전반적인 풍토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디하트가 검은 손톱풀을 잡아 뜯으며 물었다. 그는 공작의 신분에도 땅에 무릎 꿇고 워츠의 지시에 따라 약초를 채취하고 있었다.
워츠가 그의 곁에 주저앉으며 답했다.
“글쎄요. 지금 뜯고 계신 검은 손톱풀도 유리눈꽃만큼은 아니지만 벨크람에서 찾기 힘들죠. 하지만 이곳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리눈꽃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 설명해 봐.”
오만한 말투에 워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나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건 아주 차갑고 깊은 계곡에서만 자랍니다. 벨크람에 그런 곳은 흔치 않죠. 또 자생한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채취해야 하니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거지.”
“거의 불가능하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벨라 양의 치료제로 쓰려 했던 유리눈꽃도 겨우 채취한 다섯 뿌리 중 반을 가져온 거니까요. 참고로 십 년 만에 나온 벨크람 산이었습니다.”
워츠는 희망을 품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으나 디하트는 언제나 그렇듯 아주 다른 시각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 벨크람 산 유리눈꽃을 채취한 약초꾼의 연락처를 내게 넘겨.”
디하트가 무릎을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워츠가 가망 없는 꿈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소용없을 겁니다. 그가 유리눈꽃을 채취했던 협곡은 이미 오래전에…….”
그러자 디하트가 사납게 웃으며 일갈했다.
“당신이 생각보다 나약한 의지를 가진 의원이라는 건 아주 잘 알겠군. 하지만 그 볼품없는 의욕 때문에 세벨리아의 치료를 포기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둬.”
원색적인 비난과 가차 없는 폭언에 워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 안쪽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네가 이번 일로 의원 일을 때려치우든, 회의감이 들어 연구소 문을 닫든 상관 안 해. 단, 세벨리아를 완벽하게 낫게 한 뒤에 해. 그 뒤에는 네 똑똑한 머리를 어디에 쓰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내가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왜 아니지?”
디하트가 차갑게 웃었다.
“네 입으로 벨크람에서 찾을 수 있는 약초들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포기하고 있다는 걸 내가 못 알아차릴 것 같나.”
“나는 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건 네 현실이지, 의원. 똑똑한 머리밖에 없는 너와 달리 나는 불가능한 것들도 가능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어.”
그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태양을 등진 채 우뚝 서 있는 디하트의 얼굴에서 금빛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힐렌드 홀의 주인이고, 인버네스를 이끄는 공작이자 북부를 대표하는 자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깟 약초가 얼마나 희귀하든, 얼마나 비싸던 상관없어. 내게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
“그러니 너는 세벨리아를 낫게 하는 데에만 집중해. 혀 빼물고 뒤진 짐승처럼 다 식어 가는 눈깔은 그녀 앞에서 치우고.”
디하트가 그를 지나쳐 사라졌다. 워츠는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눈에는 분노가 아닌 수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환자를 포기했었나?’
한순간이나마 나는 정말로 세벨리아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나. 그는 며칠간 이어진 자신의 행적을 뒤돌아보며 답을 찾았다. 그리고 곧 디하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제길…….”
워츠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 *
한편, 세벨리아는 뜻하지 않은 날벼락에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어떤 시련과 고난도 극복해 냈던 그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하아.”
마치 신이 그녀를 두고 장난을 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인생에 이렇게 수많은 곡절이 있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지치네.’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번 단단함을 지킬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완치를 새로운 삶을 위한 도약점이라 여겼기에 우울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어쩌지. 이럴 줄 알았다면 데니사를 찾지 말 걸 그랬어.”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자책감이 들었다. 섣불리 행동했다는 생각에 자꾸만 후회를 거듭했다. 세벨리아는 침대에 틀어박혀 클로드가 급히 약제상에서 사 온 약을 삼키며 시간을 보냈다.
“하아…….”
방 밖으로도 나가기 싫고, 산책은 더욱더 싫었다. 가끔 마야가 이러지 말라는 듯 그녀를 괴롭혔으나 세벨리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안. 잠시만 이대로 있게 해 줘.”
큰 상실감에 세벨리아는 하루 종일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가슴 깊이 파고든 허탈함과 공허함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벨리아는 식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잠에서 깨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벨라, 이러지 말고 잠시라도 나와서 걸어요. 누워 있으면 더 우울해질 뿐이에요…….”
다 먹은 식기를 치우며 클로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대답 대신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녀는 커다란 베개를 품에 껴안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클로드의 한숨이 들렸다. 세벨리아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모든 게 그녀를 지치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