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6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66)화(66/171)
세벨리아가 실의에 빠져 있는 일주일 동안 디하트는 서프레디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그가 직접 힐렌드 홀로 갔다면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겠으나, 디하트는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서 오로지 그것만을 지웠다.
‘그녀를 이렇게 두고 떠날 수는 없어.’
그가 보기에 지금 세벨리아는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단순히 건강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 일로 그녀의 마음은 아주 연약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쉽사리 그녀의 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식을 전해 줘야만 해.’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그는 당장 이곳을 떠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오늘, 디하트는 바라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게 약초꾼에게서 온 편지입니까?”
워츠가 디하트에게 물었다. 그는 요 일주일간 서프레디에 내려가 있었다.
그곳에는 디하트가 사방에서 탈탈 털어 온 약재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워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버네스 공작이라는 이름을 대지 않고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디하트는 인버네스 공작에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일갈했으나, 실제로 직함을 이용해 약재를 모으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세벨리아가 위험해질 테니까.
하지만 워츠에게는 그 모습 또한 겸손의 일환으로 보일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유리눈꽃뿐이군.’
유리눈꽃은 한두 뿌리만 있어도 충분했으나 가지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십 년 전에 채취된 다섯 뿌리가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디하트는 유리눈꽃을 채취했던 약초꾼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타국에 머무르고 있어 붙잡아 오는 대신 편지를 받아 와야만 했다.
하지만 디하트에게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자생지와 확인하지 않았으나 유리눈꽃이 자랄 수 있는 풍토를 가진 협곡을 모두 적으라 했다. 가까운 곳부터 탐색에 들어갈 거야.”
편지를 건네준 디하트는 워츠가 내용을 다 읽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이게 사실입니까?”
이윽고 그가 바라던 반응이 나오자 디하트가 팔짱을 낀 채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한껏 끌어올린 입꼬리에서 거만함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본래대로였다면 그 모습을 아니꼽게 보았을 워츠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가 알아 온 정보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확실히 서프레디를 둘러싼 산맥은 벨크람의 다른 어느 곳보다 험준하죠. 하지만 세 번째 언덕 뒤를 둘러싼 산에 그렇게 깊은 협곡이 있을 줄이야.”
“신의 땅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개발은커녕 간단한 지역 조사도 안 한 머저리들 덕이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것들.”
역대 서프레디 남작들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다. 워츠는 그의 날카로운 비난을 귓등으로 흘리며 감격에 젖었다.
“이리 가까운 곳에 두고 먼 곳을 헤매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도 눈 나쁜 놈이 또 있었군.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검은 손톱풀이 이곳 숲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그 말은 이 산맥 어딘가에 그만큼 희귀한 약초가 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디하트의 날카로운 지적에 워츠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작게 벌려진 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디하트가 그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들며 말했다.
“이렇게 됐으니 나는 한동안 자리를 비우지.”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워츠가 당황스러움에 그를 붙잡았다. 디하트는 손쉽게 붙잡는 손을 떨쳐 내고 그와 마주 섰다.
“설마 내가 다른 이들을 협곡으로 밀어 넣고 약초가 손에 들어올 때까지 초조하게 앉아서 기다릴 거라 생각했나?”
“미쳤군요. 협곡으로 직접 가겠다는 말이라면 당장 철회하십시오. 유리눈꽃이 자라는 환경이라면 일반인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워츠가 정색하며 그를 말렸다. 그가 보기에 디하트는 사랑하는 이를 살려야 한다는 감상에 젖어 위험에 몸을 던지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를 일반인이라 생각해 주는 이는 처음이군. 색다른 느낌이야. 하지만 걱정이라면 사양하지. 삼촌에게서 받는 거로도 충분해서 말이야.”
디하트가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건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야, 의원.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당신의 사명감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도망친 놈이 나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걸.”
그 순간 워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결국 헨킷을 죽게 내버려 두지 못했다. 그에게는 의원으로서의 사명이 복수심보다 우선했기에. 하지만 치료를 끝마친 뒤 일레이에게 넘겨진 헨킷은 그대로 새벽을 틈타 도망쳐 버렸다. 디하트는 일부러 공들여 그의 뒤를 쫓지 않았다. 어차피 그것밖에 되지 않는 놈이니까.
“알량한 걱정은 집어치워.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뿐이니까.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할 책무야.”
그는 마지막으로 짓씹듯 내뱉고는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곧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홀로 남은 워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아…….”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잠시 동안 그렇게 신음하던 워츠는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부엌으로 달려 내려갔다.
“클로드!”
그가 한껏 억누른 목소리로 클로드를 불렀다.
* * *
정신이 몽롱했다. 언제 아침이 밝았고 또 저녁이 지났는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다름이 없고 무의미했다. 그녀는 약초저장고가 타 버리고, 워츠로부터 완치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클로드는 때때로 무언가 말을 해 주고 싶어 했지만 세벨리아가 거부했다. 당분간 치료와 관련된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로드 씨, 미안하지만 ‘가능성’이나 ‘희망적인 소식’은 제게 아무런 힘도 불어넣지 못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 생각이 짧았군요. 그래요. 희망적인 소식에 기대는 것조차 지금의 벨라 양에게는 힘겨운 일이군요.]그래서 세벨리아는 워츠와 디하트가 그녀의 약을 찾으러 다닌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클로드는 모든 게 확정된 뒤에 그녀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만 더 이러고 있자.’
세벨리아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마야를 품에 껴안았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달려왔잖아. 잠시 쉬는 것뿐이야.’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지친 마음을 달래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세벨리아는 그렇게 합리화하고 눈을 감았다. 곧 익숙하고 편안한 잠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잊게 해 줄 달콤하고 나른한 잠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급한 일인지 두드리는 손길이 성급했다. 세벨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끈질겼다.
“벨라 양.”
“…….”
평소와 달리 어딘가 떨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망설이던 세벨리아는 재차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문을 열어 줄 용기는 없었다.
“부탁할게.”
“냑.”
마야가 그녀를 대신해 문을 열었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야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땅에 착지했다.
“벨라.”
클로드가 혼란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들어와 침대 옆에 무릎 꿇었다. 세벨리아는 놀라서 베개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나 클로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듯했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부탁할게요.”
“무슨 말씀이세요?”
오랜만에 말해서인지 세벨리아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가 갈라진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묻자 클로드가 처량한 얼굴로 말했다.
“디하트 그 녀석이 오늘 밤 협곡으로 떠난답니다.”
“네?”
너무 급했던 탓일까. 앞뒤를 잘라먹은 이야기에 세벨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클로드가 세차게 고개를 내젓더니 다시 제대로 된 설명을 덧붙였다.
“벨라 양이 방 안에 있는 동안 디하트는 전국을 뒤져 소실된 약들을 전부 그러모았어요.”
“무슨…!”
“딱 하나, 유리눈꽃만 빼고.”
이어서 클로드가 알려 준 소식들은 하나같이 놀라우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세벨리아는 이게 진짜인가 싶어 제 손등을 비틀었다 날카로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가 마지막 약초를 찾으러 직접 협곡으로 가겠다고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게다가 그 협곡이란 곳이 일반적인 계곡이 아니라.”
“햇빛이 들지 않고 냉기가 흐르며 한 번 내린 눈이 결코 녹지 않는 곳. 예, 맞습니다. 약초꾼도 아닌 놈이 지금 거기를 들어가겠답시고 짐을 꾸리는 중입니다.”
“…미쳤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그 말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벨리아가 연신 미쳤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혼란스러워하자 클로드가 그녀를 설득했다.
“실력 좋은 약초꾼이라면 얼마든지 모집할 수 있습니다. 위험하다고는 하나 그만큼의 목숨값을 지불하면 지원할 사람이 넘쳐나죠. 그런데 그 멍청한 놈이…!”
클로드는 분통이 터지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디하트가 감정에 휩쓸려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벨리아도 이에 동의했다.
“그럼 제게 하실 부탁이란 건 그를 설득해 달라는 거로군요.”
“부탁드립니다, 벨라 양. 그 녀석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모든 게 다 자신의 탓이라면서 누군가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요.”
“하.”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주일 전 약초저장고를 태운 범인이 그를 뒤따라온 인버네스의 기사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지 디하트의 탓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러나 동시에 세벨리아는 그가 그 책임을 결코 벗어 던지지 않을 거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죠?”
“3층에, 있어요. 당장 붙잡아야 합니다. 이대로 서프레디로 내려가 기사들과 함께 협곡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알겠어요. 죄송한데 부축 좀 해 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세벨리아가 한숨과 함께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로드는 그녀가 다시 마음을 바꿀까 싶어 잽싸게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안았다.
“가죠.”
세벨리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걸음을 떼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