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72)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72)화(72/171)
디하트의 꿈을 꾸는 횟수가 늘어났다. 더불어 세벨리아는 아침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일어나 이곳이 현실인지 매번 확인해야 했다.
“또야…….”
오늘은 온실에 들어가자며 실랑이를 하는 꿈이었다. 자신은 선약이 있다며 거절했고, 그는 평소답지 않게 떼를 썼다.
[왜 항상 나는 뒷전이지?]으르렁거리던 디하트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챘고, 자신은 그대로…….
“때렸,나?”
아무리 꿈이라지만 폭력을 휘둘렀다니. 세벨리아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꿈의 잔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악몽일 뿐이야.’
하지만 요즘 따라 디하트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건 사실이었다. 마치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집요하리만치 등장하는 그의 모습에 세벨리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연락 하나 없으면서. 참 꿈속에서조차 이기적인 남자야.”
그렇지 않아도 세벨리아는 환영술을 공부하는 틈틈이 그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그에게 원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 * *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워츠의 말이 크게 작용했다. 함께 무너진 약초저장고의 잔해를 수습하던 중 워츠가 갑자기 앓던 속을 꺼내듯 고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벨라 양.”
세벨리아는 숯이 되어 버린 자재를 치우다 말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워츠는 이미 몸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당장 고해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한때나마 당신의 치료를 포기할 뻔했습니다.”
“네, 네?”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제가 쌓아 온 물질적인 것들이 저 자신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게 없다면 저는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겁니다.”
쓰디쓴 미소와 함께 워츠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는 세벨리아가 자신을 탓해도 상관없다며 두 눈을 슬프게 깜빡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음. 결국에는 절 포기하지 않으신 거잖아요.”
세벨리아는 당황스러움을 갈무리하고 겨우 대답했다. 혼란 속에 쥐어짜 낸 말이었으나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워츠는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지금도 밤마다 연구소에서 약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
“벨라 양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아, 이런. 전 정말… 약은 사람이군요.”
세벨리아의 따뜻한 말에도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조하듯 말했다.
“범인을 치료해 준 것조차 실은 저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었으니 복수를 하는 것보다는 살려서 보내는 편이 제 알량한 위선을 만족시킬 테니까요.”
세벨리아는 그제야 헨킷이라는 기사가 살아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디하트가 그를 죽였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녀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가 살아 있었군요.”
“예, 구속한 뒤 처벌을 받게 할 거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틈을 타 도망쳤지만요.”
워츠는 그렇게 말하며 세벨리아에게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비용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벨리아는 잠시 고민하다 그의 호의를 거절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보답해 달라고 말했다.
“다른 방식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워츠 씨는 러크우드의 의료 문헌을 읽으실 만큼 그들 말에 조예가 깊으시죠. 그 능력을 빌리고 싶어요.”
“그 말씀은 러크우드와 관계된 일을 하시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워츠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세벨리아는 기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러크우드가 점점 개방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워츠 씨께서도 말씀하셨죠. 그걸 기억하고 저번에 서프레디에 내려갔을 때 무역과 관련된 신문을 사 왔어요.”
세벨리아가 몇 번이나 읽어 손을 탄 신문지를 내밀며 말했다.
“제 생각과 다르지 않더군요. 러크우드 산 목재가 점점 시장에 풀리며 벨크람 산 목재를 취급하는 이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그 말은…….”
“약재들도 서서히 풀릴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네,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세벨리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단단한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 앞에서 워츠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일이 잘 풀리면 유리눈꽃을 보다 손쉽게 얻게 되겠군요. 그래요, 한발 앞선 생각입니다.”
그의 말에는 약간의 감탄이 어려 있었다. 의원으로서는 뛰어나지만 다른 데에는 허술한 워츠에게 세벨리아의 계획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세벨리아는 자신의 계획이 그저 원대하기만 할 뿐, 성사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워츠의 칭찬을 능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군가를 앞지르고자 떠올린 계획은 아니에요. 살아야 하니까, 그 약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고민하다 보니 이곳까지 닿게 된 거죠.”
일주일 동안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으니까요, 라고 세벨리아가 덧붙이며 시선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죠.”
워츠는 치료비 대신 통역을 대신해 주기로 세벨리아와 약속했다. 이 또한 결국 그녀에게 가진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세벨리아에게는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세벨리아는 그의 행동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디하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 * *
[어차피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었으니 복수를 하는 것보다는 살려서 보내는 편이 제 알량한 위선을 만족시킬 테니까요.]워츠의 말은 세벨리아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했다. 힐렌드 홀을 떠날 적의 그녀는 워츠처럼 앞으로 모든 걸 잃을 거라 생각했다.
죽음으로써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게 될 테니 그 무엇에도 미련을 가지지 않고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다. 그렌과 플로라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방으로 돌아온 세벨리아는 탁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워츠는 자신의 위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헨킷에게 복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제 잃을 게 없는 나는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걸까?’
세벨리아는 그와 함께 있을 때 느끼곤 하던 기묘한 전율을 떠올렸다.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 차오르는 희열과 가슴 속에서 들끓는 원망을 생각하니 복수를 원하는 걸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의 복수를 하고 싶은 거지.’
살아생전 복수라는 건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던 세벨리아였다. 웨든 후작가와 힐렌드 홀에서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녀는 복수라는 생각은 차마 떠올리지도 못했다.
떠나기 전 네이튼과 플로라를 환영으로 골탕 먹이긴 했으나 그걸 복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받은 대로 돌려줬을 뿐이니까. 그러면 왜 그 이상으로 돌려줄 생각은 못 했을까. 왜 힐렌드 홀을 완전히 뒤엎고 당한 만큼 돌려주려 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그렇게 길러졌으니까.”
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사라졌다.
세벨리아라는 사람은 폭력 앞에 무릎 꿇고 억울한 상황에도 순종하며 체념을 가슴 깊숙이 뿌리 내리게 하도록 어려서부터 교육받았다. 식기를 떨어트리면 바로 식사를 빼앗기고, 어쩌다 한 번 짜증을 부리면 바로 옷장에 가둬지는 식으로.
그렇게 자랐으니 자기방어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에 대해 깨달을수록 왜 비참함만 커질까.’
세벨리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손에 쥔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고명한 철학자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 했지만, 자신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니 과거의 자신은 복수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감히 그걸 꿈꾸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잘 길들여진 개나 다름없었어.’
창문에 비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던 세벨리아가 시선을 내렸다. 창문에 비친 푸른 보석이 마치 눈밭에 떨어진 열매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아버지가 보내 준 상인에게 구입한 물건이었지.”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벨리아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향한 그의 체벌과 교육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 생각하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게 배신당했을 때에도 복수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되돌아보니 참 어리석은 삶이었네.”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슬픔에 떨리지도, 고통에 힘겨워하지도 않는 평범한 목소리였다.
“불쌍한 삶이기도 했고…….”
세벨리아는 힐렌드 홀을 떠나 늦은 나이에 세상을 접했다. 많지는 않았으나 의미 있는 경험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순종적으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는 깨달은 바를 통해 한 단계 앞으로 도약할 차례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작금의 혼란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과거를 완전히 끊어 내는 건 불가능하니, 새로운 방안이 필요해.”
장례를 치러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를 한다 하더라도, 자신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벨리아 인버네스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걸 깨달은 이상 세벨리아는 더 이상 디하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디하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원망을 퍼부을 사람으로, 복수의 대상으로서 대하면 되는 걸까?
“후우…….”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선명하지 않았다. 세벨리아는 혼란 속에 가려진 제 본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답답했다.
세벨리아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클로드는 수업 준비를 마치고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아, 클로드 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세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맞이했다. 이제 디하트에 대한 건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깊은 협곡 속에서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조차, 더 이상 해서는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