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7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75)화(75/171)
점심에 내려보낸 약초꾼들이 돌아왔다. 유리눈꽃 채취는커녕 동굴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온 그들은 곧장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젠장, 갑자기 미쳤나.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그래도 기사는 무서웠던지, 읊조리는 음성이 쥐꼬리만큼 작았다. 드리켄이 손스를 한심하다는 듯 흘끗 보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교대를 위해 올라온 약초꾼들은 당분간 채취 작업을 중단한다는 통보를 들었다. 더디다 못해 성과가 없다시피 한 게 문제였다.
“이게 말이 되냐고! 처음에 한 말과 다르잖아!”
“내가 이런 취급 당하려고 이 험지까지 올라온 줄 알아?”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기사들은 흔들리지 않고 성 난 약초꾼들을 천막으로 되돌려 보냈다. 손스는 마지막까지 버티다 하는 수 없이 등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길래 조금씩 채취하면서 상황을 봐야 한다고 진작 말했거늘.’
드리켄이 혀를 차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천막으로 돌아온 약초꾼들은 불안을 삼키며 몰래 그러모은 약초들을 숨기려 애썼다. 동굴에서 발견한 희귀한 약초들이었다.
“쯧.”
드리켄이 고개를 젓는데 누군가 천막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레오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음 사람을 찾아 데려갔다.
‘뭐지?’
레오는 손스의 뒤를 쫄랑거리며 따라다니던 신입 약초꾼이었다. 당연히 손스와 함께 돌아왔을 텐데. 그러나 깊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드리켄!”
기사가 그를 호명했다. 드리켄은 인상을 쓰며 천막을 나섰다. 툴툴대며 기사의 뒤를 따르는 드리켄의 눈에 저 멀리 협곡 근처에 서 있는 디하트의 모습이 보였다.
* * *
깊은 어둠이 광활한 협곡을 채우고 있었다. 디하트는 낭떠러지 앞에 서서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내려가실 겁니까?”
일레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디하트는 꼼작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알로스까지 나서서 그를 설득해야 했다.
[무모해요. 주인님이 아시면 크게 화를 내실 거라고요.]“내든 말든.”
디하트가 짧은 웃음을 터트리며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하나같이 나를 약초꾼보다 못한 놈으로 보는군. 숫자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눈은 공작마저 일개 약골로 취급하나 보지?”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입 열어도 된다고 허락한 적 없다, 일레이.”
칼 같은 대꾸에 일레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다물었다. 알로스가 분주하게 디하트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불꽃을 흩뿌렸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좀 더 침착하게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그 시간만큼 그녀의 목숨은 위험해지겠지.”
디하트의 눈이 흔들림 없이 알로스를 직시했다. 붉은 나비는 그의 시선에 포박되기라도 한 듯 한 자리에서 천천히 날갯짓했다.
“같이 내려가고 싶어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게 아니라면 다들 관심 끄고 꺼져 줬으면 좋겠군. 짐 덩어리 주렁주렁 달고 내려가서 죽을 생각은 나도 없으니까.”
“…….”
일레이가 다문 입술에 한 차례 더 힘을 주고 디하트의 뒤에 바싹 붙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디하트와 함께 협곡 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속 말리는 척 밑밥을 깔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알로스가 한심하다는 듯 응시했다. 마법으로 만든 나비에게도 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레이는 그렇게 느꼈다.
[하아. 그래요. 주인님마저 말리지 못한 당신을 제가 설득할 수 있을 리가.]얌전하게 날개를 접은 나비는 디하트의 앞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디하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러나 알로스는 이미 파란 새의 곁에 자리 잡은 뒤였다.
“한 시간 후에 출발한다. 따라올 놈들은 네가 알아서 추려.”
디하트가 일레이를 향해 일갈했다. 파직,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가에서부터 튀어 오른 전류가 눈송이를 녹였다.
* * *
세 번째 언덕 뒤로 이어진 산은 여섯 번째 길과는 달리 스산했다. 높이 솟은 침엽수 아래로 검은 그림자가 뚝 떨어져 햇빛을 좀먹었다.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쩐지 으스스하군요. 앞이 보이지 않는 건 협곡에서부터인 줄 알았는데 벌써 이렇게 어두워질 줄 몰랐습니다.”
워츠가 세벨리아의 곁으로 붙으며 속삭였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터라 가까이서 말하지 않고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야광석 램프를 들어 올렸다. 기름 램프와 달리 먼 곳을 비추지 못하는 물건이었지만 이렇게 바람이 거친 곳에서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래서 올라가는 데만도 하루가 걸린다는 거였군요.”
세벨리아가 목도리를 여미며 앞서가는 클로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뺨을 할퀴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좁은 산길을 거침없이 걸어 올랐다.
“빨리 가야 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윽.”
클로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건 산길을 반쯤 올라간 때였다. 그는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처럼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거친 숨을 내뱉었다.
“커헉.”
앞서가던 기사는 뒤따라 오는 기척이 없는 걸 느끼고 재빨리 돌아왔다. 야광석 램프의 빛이 클로드를 비췄다. 창백한 중년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기사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잔뿌리가 많아 언제 걸려 넘어지실지 모릅니다.”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기사를 무시한 채 땅을 디디려 하는 그 순간이었다.
“칼 씨!”
뒤처졌던 세벨리아와 워츠가 지척까지 왔다. 클로드는 그 자리에 멈칫했다. 기사가 그들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램프의 빛이 멀어졌다.
“괜찮아요?”
“그러길래 서두르지 말라고 했잖아.”
세벨리아와 워츠는 클로드를 보자마자 타박부터 했다. 그가 너무 서두르다 넘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혹시 속이 울렁거리는 거라면…….”
온기 한 점 없는 차가운 손가락이 세벨리아의 손목을 붙들었다. 워츠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불안한 눈으로 클로드를 응시했다.
“당장 올라가야 해.”
거친 바람에 희미한 목소리가 뒤섞였다. 낮게 깔린 목소리는 불안 속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세벨리아가 숨을 삼켰다. 클로드가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속삭였다.
“알로스가 불안해하고 있어.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네?”
“미안, 먼저 올라가 볼게. 너희들은 천천히 와도 돼. 하지만 나는 안 돼. 난 당장 그 아이에게 가 봐야 해.”
속삭이는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단단해졌다. 그러나 램프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에 비춘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워츠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클로드는 두 사람을 두고 기사를 지나쳐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램프를 든 기사의 경악에 찬 외침이 산을 울렸다.
“지금 이게 무슨… 당장 멈추십시오!”
칼바람이 세벨리아의 뺨을 조롱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인버네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배려심 같은 게 결여되어 있어.’
사정을 설명하면 얼마나 좋아. 말 한마디 한다고 자신들이 그를 억지로 기절시켜 붙잡아 놓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득, 입술을 깨문 세벨리아는 시린 눈을 치켜떴다. 역시 인버네스 남자들은 날뛰기 전에 제압하는 게 가장 현명한 대처방안인 것 같았다. 비록 이번에는 한발 늦었지만.
“당장 따라가요. 그의 반응을 보아서는 디하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으니까.”
램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세벨리아가 워츠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세벨리아 못지않게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갑시다.”
덜컹, 램프가 거칠게 흔들리며 빛을 흩뿌렸다.
* * *
야광석의 빛은 참으로 보잘것없고 한미했다. 디하트는 협곡 바닥의 벽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야광석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딴 걸 가지고 이 넓은 곳을 비추려 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발상이지.”
처음부터 자신이 내려왔어야 했다. 조소를 흘린 디하트는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펼쳤다.
파직-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벽을 때리며 공간을 울렸다. 디하트를 따라 협곡 바닥에 발을 디딘 기사들은 날카로운 빛이 순식간에 어둠을 찢어발기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건…….”
수천 개의 눈송이가 허공에 붙들려 있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빛을 품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벼락으로 가득 찬 협곡은 아름다웠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에 다들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일레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머리 위에서 은하수가 흐르는 듯한 광경에 기사들이 넋을 놓은 사이, 디하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반으로 나눠서 양쪽 끝에서부터 시작해 가운데로 모인다. 나는 왼쪽을 맡지. 일레이, 너는 나머지 기사들과 함께 오른쪽으로 가.”
“예!”
일레이가 몇 안 되는 기사들을 그러모아 협곡의 오른편으로 달려 나갔다. 왜 디하트 혼자서 왼쪽으로 가냐는 가당찮은 물음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보름 동안 유리눈꽃 끄트머리 하나 보지 못한 그는 심기가 불편하다 못해 꼬투리만 잡혀도 그대로 목을 부러트릴 것처럼 날카로웠다. 이런 순간에 괜히 그의 곁에서 알짱거리다 애꿎은 유리눈꽃의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하면 그 자리에서 이승을 떠날 게 분명했다.
‘물이 고여서 얼어붙은 곳부터 찾아야겠군.’
쿨럭, 입을 막자 핏물이 튀어나왔다. 제어구를 빼고 능력을 과용한 탓에 속이 다시 엉망진창이 된 탓이었다. 그는 새어 나오는 핏물을 닦으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처구니없게도 유리눈꽃을 발견했다. 약초꾼들의 무능함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하!”
디하트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가지고 온 채집 장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협곡을 비추던 벼락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후우.”
집중하자. 디하트는 떨리는 손으로 채취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이제 어둠 속에서 유리눈꽃을 밝히는 건 희미한 야광석의 빛뿐이었다.
솔직히 눈앞이 침침한 게 짜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리눈꽃을 캐내는 건 섬세한 작업이었다. 그러니 정신력을 벼락을 유지하는 데 쓸 수는 없었다.
“…….”
어느새 유리눈꽃의 뿌리가 드러났다. 그가 부드러운 붓을 들어 뿌리에 엉긴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 내던 순간이었다.
자박.
시선이 마주친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디하트가 등 뒤에 서 있던 그를 알아본 것 또한.
“헨킷…!”
허름한 약초꾼의 복장을 하고, 얼굴을 칭칭 동여맨 헨킷이 낫을 치켜들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 잘 벼려진 날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