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7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76)화(76/171)
날카로운 빛이 점점 곡선으로 휘어지며 내려찍는 힘에 속도가 붙었다. 헨킷의 눈에 희열이 들어찼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강한 반발력이 그의 손목을 튕겨 냈다.
“아악!”
볼품없는 비명이었다. 전류를 맞아 벌벌 떠는 손을 쥐고 헨킷이 뒷걸음질 쳤다. 디하트는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카만 옷감 위로 섬뜩한 빛이 흘러내렸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살벌했다. 순간적으로 벼락을 둘러쳐 헨킷의 공격을 막은 그는 이성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숨어들었는지,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약재의 안위뿐.
흘끗 뒤를 돌아보는 눈동자가 하얗게 물들었다. 다행히 유리눈꽃은 상하지 않았다. 꽈악, 손을 움켜쥐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울렸다. 안도감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하지만 그게 헨킷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애초에 의원 녀석에게 네 처분을 맡기면 안 되었는데.”
디하트가 서늘하게 웃으며 칼을 꺼내 들었다. 야광석의 희끄무레한 빛이 아래서부터 그를 감쌌다. 그러자 헨킷이 발작하듯 외쳤다.
“너는 진짜 공작님이 아니야! 그분께서는 날 지키다 돌아가셨다, 아아. 공작님, 용서하소서. 저 악마 놈이 당신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당신의 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디하트의 싸늘한 얼굴에 경멸이 어렸다. 알 만했다. 악몽의 숲에서 착란을 일으킨 순간부터 헨킷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마 자신이 일을 그르쳤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제멋대로의 상상을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붙잡혀 있는 공작님을 발견했지만, 구출해 내지는 못하고 자신만 탈출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라든지.
‘하지만 내가 그 사정을 봐줘야 할 이유는 없지.’
파직, 불꽃이 튀고,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빛이 그를 휘감았다. 디하트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악마의 자식들아!”
헨킷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외치더니 갑자기 뒤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디하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미치면 지능도 같이 떨어지나 보지. 하긴.”
내 꼴을 보면 알 만하지. 디하트가 피식 웃었다. 헨킷이 도망쳤음에도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는 검을 집어넣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협곡의 어둠이 터져 나가는 빛에 잠식당했다.
파직. 파지지직-!
수천 개의 빛무리가 떠올랐다. 어둠이 지워진 사이로 헨킷의 모습이 드러났다. 디하트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손목을 뒤로 당겼다. 텅 빈 그의 손에 긴 빛무리가 어린 순간이었다.
“신이시여. 불쌍한 어린 양을 도우소서!”
동굴 안으로 뛰어든 헨킷이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디하트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벼락이 헨킷에게 떨어져 내렸다.
“헉……!”
아주 작고 날카롭게 응축한 벼락의 창은 순식간에 헨킷의 상체를 꿰뚫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헨킷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맺혔다.
콰광-!
“뭐…!”
굉음이 땅을 울렸다. 디하트가 크게 뜬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이건 벼락 때문이 아니었다. 디하트는 그제야 헨킷의 손에서 떨어진 성유물을 발견했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고민할 시간 따위 없었다. 디하트는 바로 등을 돌렸다. 그때였다.
“공작님!”
반대편에서 소란을 듣고 달려온 라이언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디하트를 바라보았다. 붉게 빛나기 시작한 성유물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흙먼지가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콰과광!
협곡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콰앙-!
산맥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충격음이었다. 세벨리아는 클로드의 뒤를 쫓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워츠가 다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건 같았다.
“괜찮습니까?”
“저는, 저는 괜찮아요. 그렇지만 클로드 씨가……!”
세벨리아의 시선이 능선 위를 향했다. 기사를 내팽개치고 달려 나가던 그는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저는 괜찮으니까 가 보세요.”
세벨리아가 워츠를 밀어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워츠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클로드에게로 가려 했다. 그러나 그도 쉽지 않았다.
쿠릉-!
땅이 자꾸만 흔들렸다. 산짐승 하나 없는 숲은 음산한 소리를 내며 이파리를 떨어 댔다. 세벨리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요.”
세벨리아는 워츠의 팔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뗐다. 곧 고통 섞인 신음이 귓가를 찔렀다. 클로드가 땅 위를 뒹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심장이 뜯겨 나간 사람처럼 두 눈을 까뒤집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안, 돼. 아, 허억…!”
“정신 차리세요, 클로드 씨!”
혼몽 속을 헤매던 클로드의 눈이 어느 순간 갑자기 빛을 되찾았다. 마치 시체가 소생하는 순간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벨리아가 놀라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클로드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알로스가 역소환되었어.”
“네?”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클로드가 세벨리아를 붙잡으며 외쳤다. 세벨리아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클로드가 말하는 ‘그 애’는 알로스가 아닌, 디하트였다. 곧 클로드는 세벨리아를 두고 달려가 버렸다.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세벨리아는 멍하니 서서 두 눈을 깜빡였다.
‘설마.’
그녀의 두 귀는 분명히 클로드의 말을 똑똑히 담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뇌는 그 말을 해석하기를 거부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땅, 저 멀리서 끊이지 않고 울리는 굉음, 그리고 알로스가 역소환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달려 나가는 클로드. 그 상황이 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안 돼.”
땅을 짚은 그녀의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쩡 하고 누군가 머리를 정으로 쪼개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벨리아는 온몸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아니, 아니야. 아닐 거야. 위험한 일을 자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그는 괜찮을 거야.
세벨리아는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램프를 쥐는 손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후우…….”
그녀는 겨우 호흡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클로드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자꾸만 귓가를 울려 대는 끔찍한 소리에 몸이 멈칫거렸다.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깊은 흔들림이 그녀를 집어삼키려 했다.
쿠웅…. 쿵.
저 멀리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귓가를 찔러 댔다. 세벨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빛 한 점 없는 숲을 힘겹게 걸어 나가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정신 차리자.’
그는 멀쩡할 것이다. 아무런 상처 없이, 지독히도 오만하고 잘난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그의 입으로 분명히,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덜컹, 램프의 불빛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비췄다. 협곡에서부터 밀려온 바람이 그녀를 강하게 떠밀었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흙먼지 뒤엉킨 바람이 깊게 눌러쓴 후드를 날려 보냈지만 알아차릴 겨를도 없었다. 억지로 뜬 두 눈은 먼지로 뒤덮였고, 멀찍이 달려 나간 클로드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무사할 거야. 무사해야만 해, 당신은 그래야 해.’
세벨리아는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그의 모습을 봐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만에 하나라도 그가 멍청한 결정에 자신을 희생시켰다면…….
어둠 속을 뚫고 나가는 푸른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 *
동굴 아래 잠들어 있던 성유물이 성역을 벗어난 순간, 두꺼운 장막처럼 협곡을 둘러싸고 있던 높은 암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바람에 협곡 안쪽을 가득 메웠던 어둠은 불그스름한 노을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빛을 되찾은 사람들은 그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적막으로 가득했던 협곡 안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돼……!”
암벽이 무너져 협곡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걸 본 기사들은 경악했다. 그들의 머릿속으로 디하트의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 한 사람이 정신을 차려 외쳤다.
“당장 산맥 아래 주둔지에 연락을 넣어서 마법사들을 데려와!”
살아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디하트가 죽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멍청하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인버네스의 기사로서, 힐렌드 홀의 가신으로서 그들은 디하트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게 돌아갔다.
“안 돼. 협곡으로 올라오는 길이 무너졌어.”
좁은 암벽 틈 사이로 난 길은 조금 전의 지진으로 막혀 버렸다. 기사들의 얼굴에 한순간이지만 절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이를 악물고 돌들을 하나하나 치워 내기 시작했다.
“멀쩡한 놈들은 이리 와서 거들어!”
짐꾼이며 약초꾼이며 너나 할 것 없이 돌을 치우는 데 동원되었다. 나머지 기사들은 아직도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뚝.
움켜쥔 그들의 주먹 사이로 핏물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꽈르릉-!
차가운 빛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마치 신의 분노처럼 끔찍한 소리와 형상이었다. 그러나 인버네스의 기사들에게는 희망의 표식이었다.
덜거덕. 협곡 아래까지 연결된 사다리가 흔들렸다. 시끄럽게 외쳐 대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침묵 위로 먼지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씨발.”
턱, 하고 상처 가득한 손이 낭떠러지 위를 짚었다. 두꺼운 힘줄이 솟은 손은 땅을 밀어내듯 힘을 주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형체를 낭떠러지 위로 올려 보냈다.
“이 빌어먹을 도시,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 버리고 말겠어.”
결코 살아나 올 수 없는 참극을 두 발로 딛고 일어선 디하트가 무시무시한 안광을 흩뿌렸다. 그의 머리 위를 보호하듯 장막처럼 둘러쳐져 있던 붉은 불꽃이 하늘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알로스의 잔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