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80)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80)화(80/171)
워츠가 길 잃은 클로드를 데리고 협곡 안쪽으로 발을 들인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기사는 워츠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들을 디하트의 천막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풀죽은 디하트와 그의 곁에서 파란 새를 보듬고 있는 세벨리아를 발견했다. 물론 두 사람을 보자마자 디하트의 금빛 찬란한 두 눈은 다시 신경질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클…아니, 칼 씨.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오다가 길이라도 잃으셨던 거예요?”
세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푸른 눈이 반쯤 정신을 놓은 클로드를 스쳐 지나가 워츠에게 향했다. 설명을 바라는 시선이었다.
워츠가 클로드를 침대 위에 눕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단편적인 사고와 멍청한 고집의 합작은 바보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걸 몸으로 증명한 셈이죠.”
클로드는 차마 그에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하도 깨물어 너덜너덜해진 입술을 움직여 디하트의 안부를 물을 따름이었다.
“알로스가 역소환된 걸 느꼈다. 다친 곳은 없는 거지?”
알로스는 세벨리아의 파란 새와 달리 이름을 부여받아 자아를 완전히 자각한 소환마였다. 당연히 그만큼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도 컸으며, 그 자체로 펼칠 수 있는 영향력 또한 막대했다.
그런 알로스가 역소환되었다는 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소진했다는 이야기. 클로드는 흔들리는 눈으로 디하트의 몸 곳곳을 훑었다. 그리고 디하트의 눈이 불쾌함에 일그러졌다.
“소름 돋게 뭐 하는 짓이야. 멀쩡하니까 그만 훑어봐.”
“그의 말이 맞아요. 힘을 과용해서 피를 토한 걸 빼면 꽤 멀쩡한 상태죠.”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말을 잘랐다. 디하트가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외에는 핏줄이 터져 생긴 멍이 여러 군데 있고… 성유물의 파편이 상처마다 박혀 있었어요. 그래도 멀쩡한 거라고 말하면 저야 어쩔 수 없지만요.”
차분하게 이어지는 말에 디하트는 완전히 몸을 옆으로 돌렸다. 방석 위에 잠든 파란 새를 힘없이 쓰다듬는 그를 흘끗 바라본 세벨리아가 책상 쪽을 가리켰다.
“큰 파편들은 빼서 모아 뒀어요. 하지만 그보다 작은 건 워츠 씨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네요.”
피로 물든 거즈 위에는 산산조각이 난 성유물의 파편들이 놓여 있었다. 난데없이 던져진 성유물이라는 단어에 워츠와 클로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유물이라니. 그런 게 왜…….”
말을 잇던 클로드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잊혀진 신의 도시 서프레디. 그중에서도 아직 파헤치지 못한 신비가 남아 있는 산맥 안이었다.
“그럼 아까 느꼈던 지진과 충격도 모두 그것 때문이겠구나.”
땅을 울리던 굉음에는 디하트의 벼락도 한몫했으나,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고수했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을 워츠에게 던지며 제 옆에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유리눈꽃을 보라 눈짓했다.
“이건.”
워츠는 쉽게 그의 수작에 걸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천막으로 오는 동안 기사에게서 유리눈꽃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눈으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정말 협곡 아래에 유리눈꽃이 자라고 있었군요.”
워츠가 감격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세벨리아를 치료할 수 있었다. 금이 갔던 의원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시킬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빨리 돌아갑시다, 벨라 양.”
워츠가 호기롭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하트가 무사한지 확인했고, 유리눈꽃을 확보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남은 건 세벨리아의 치료뿐.
“드디어 끝이 왔어요.”
워츠의 말에 디하트와 세벨리아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치료가 끝나면, 그들은 더 이상 함께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 * *
디하트는 채비를 서둘렀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욱 힘들기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물론 그 도중 일레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자꾸만 세벨리아를 바라봐 으름장을 놓아야만 했지만.
“눈깔 관리 잘해라, 일레이. 그리고 아래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흘리지 마. 유리눈꽃을 채취하다 잘못해서 성유물을 건드렸다고 얼버무려.”
“서프레디 남작이 그 말을 믿을까요?”
“믿지 않으면 어쩔 거지?”
디하트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냉소했다.
“지금 이 꼴을 봐서는 내가 성지의 발굴권을 주장해도 할 말 없을 텐데.”
“그건… 맞는 말씀이십니다. 역시 공작님이시군요.”
일레이가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남긴 채 멀찍이 서 있는 세벨리아를 향해 흘끗 목례했다.
“그럼 약초꾼들과 성유물이 있던 동굴을 정리하고 남작에게 감독을 위임한 뒤 찾아뵙겠습니다.”
헨킷의 시신은 성유물의 폭발과 동시에 산화했기 때문에 별달리 치울 것도 없었다. 디하트는 오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걸음에 세벨리아에게로 다가갔다.
“다 끝났으니 얼른 내려가도록 하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길 잃은 아이처럼 눈물을 글썽였으면서, 천막 밖으로 나오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세벨리아는 그의 극단적인 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바닥에 놓인 램프를 손에 들었다.
물론 야광석 램프는 순식간에 디하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런 건 내가 드는 게 나아.”
어딘가 쌀쌀맞은 기운이 감도는 말에 디하트는 제가 내뱉고도 놀라 눈을 깜빡였다. 시선을 내리자 세벨리아가 멀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차고선 다급히 덧붙였다.
“내 키가 더 크잖아. 당신은 작으니까 불빛이 멀리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대로 해요.”
세벨리아는 관심 없다는 듯 망토를 여미며 클로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디하트는 그녀의 뒤를 빤히 응시하다 괜스레 클로드를 노려보았다.
“누가…. 하, 참나.”
그 따가운 시선을 느낀 클로드는 곧 누가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클로드는 코웃음을 쳤다.
칼 어펜츠의 얼굴을 한 클로드는 당장이라도 디하트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싶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내 눈이 뭐가 어때서 하는 말이지?”
빈정거리는 목소리는 어딜 봐도 뾰족뾰족 모가 나 있었다. 클로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연구소로 곧장 가지 말자는 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천막을 나서기 전, 클로드는 연구소로 직행하자는 디하트의 의견에 반대했다. 협곡을 나서 산 밑까지 내려가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였다. 둘이나 되는 환자를 데리고 그런 강행군을 펼칠 수는 없었다.
워츠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세벨리아 또한 도시에 묵었다 가는 일정에 찬성했다.
‘속 좁은 놈.’
이러니 세벨리아가 죽은 척하고 도망가지. 클로드는 디하트가 들으면 길길이 날뛸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디하트는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나쁜 기분을 풀 새도 없이 준비를 마친 기사들이 다가와 가볍게 목을 숙였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공작님.”
“…그래. 내려가지.”
“램프는 제가 들겠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해.”
디하트가 탐탁지 않은 눈으로 클로드를 훑으며 기사를 지나쳤다. 협곡과 숲을 잇던 비좁은 암벽길은 어느새 세 사람 정도는 가뿐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어져 있었다.
이게 다 디하트의 살벌한 재촉을 받은 일레이의 수완 덕이었다.
“다른 사람은 제 몸 하나는 잘 지킬 수 있을 테니 아가씨를 최우선으로 생각해라.”
디하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세벨리아는 눈을 크게 떴고, 두 남자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기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큰 소리로 예, 하고 소리쳤다.
이윽고 스산한 어둠이 그들을 감쌌다.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어둠이었다. 디하트는 램프를 들며 차분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이제 정말 끝이 다가왔군.’
세벨리아의 치료 약이 완성되면 어떤 하찮은 명분을 대더라도 그녀 곁에 쉽게 남을 수 없으리라. 디하트는 새카맣게 타는 속을 견디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고 싶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불퉁한 표현이 나온 건 그 때문이었다. 디하트는 후회를 주워 삼키며 입술을 맞물었다. 램프를 든 손에 힘이 없었다.
* * *
일행을 따라 서프레디로 돌아온 세벨리아는 여관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앞서가는 디하트의 태도가 워낙 단호해 뭐라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여관이 아니라 서프레디 남작이 손님이나 사절단을 위해 내주고는 하던 공관이었다. 넓고 화사한 공관의 홀을 바라보고 있으니, 뒤에 서 있던 디하트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큼.”
세벨리아의 푸른 눈이 그를 향하자 디하트는 그제야 안도한 듯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들어가서 쉬도록 해.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어울리지 않는 다정함을 반쯤 섞은 목소리로 말한 디하트는 바로 등을 돌려 공관을 나서려 했다. 그때, 세벨리아가 그의 팔목을 잡았다.
“아.”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세벨리아는 자신을 돌아보는 디하트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천막을 나서려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생각 없이 붙잡고 말았다. 세벨리아는 난감함에 입술을 안쪽으로 말았다. 디하트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주변을 훑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그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공관에서 일하는 서프레디 사람들이었다. 디하트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님.”
너른 홀 너머로 보이는 정원을 가로질러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당당한 태도와 그에 걸맞은 기품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아버님의 지시대로 머무르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녀는 서프레디 남작의 딸이자 그의 후계자, 리시아 서프레디였다.
단숨에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녀가 디하트를 응시하다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세벨리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녹빛 눈동자에 탐탁지 않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분은?”
낮은 목소리가 차갑게 귓가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