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85)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85)화(85/171)
디하트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돌려준 지 오늘로 닷새. 세벨리아는 그 이후로 그의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식사 때도 매번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날 피하는 거겠지.’
금이 간 보석처럼 처참했던 디하트의 눈을 떠올리며 세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산맥 한가운데서 짙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건가?”
연기의 정체는 성지와 성유물 발굴에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새벽에도 쉴 틈 없이 하늘로 솟구치던 연기를 떠올린 세벨리아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디하트가 성지와 성유물 발굴에 대한 권리를 서프레디 남작에게 넘겼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성지와 성유물에 대한 발굴과 일체의 권리는 보통 최초 발견자가 소유한다. 성지 관리를 귀찮아하는 귀족들이 영지에 성지나 성유물이 발견되면 그대로 덮어 버리려는 경우가 많아 생긴 법이었다.
그래서 서프레디 남작의 영지 근처인 산맥에서 발견한 성지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디하트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남작에게 권리를 양도했다.
그 이유는 자신 때문이었다.
‘유리눈꽃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고…….’
죄책감이 깊었나 봐. 이미 약으로 쓸 만큼 충분한 양을 확보했는데 왜 굳이 자생지까지 가지려 하는 걸까.
디하트의 심리를 짚어 보려던 세벨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사고구조는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기억을 잃은 척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것 외에, 당신이 무슨 이유로 왜 내게 미안한지 한 번이라도 말한 적 있나요?]그날, 그는 그대로 도망쳤다. 차가운 말을 들은 디하트는 말을 잃고 몸을 떨다 충격에 깨져 버린 눈으로 방을 나가 버렸다. 마치 귀신에 홀린 모양새였다.
세벨리아는 굳이 그를 붙잡지 않고 내버려 뒀다. 그가 이유를 찾을 때까지, 하다못해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 자신에게 알려 달라며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벨리아를 찾아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묻는 대신 자신의 방법으로 죄책감을 갚으려 들었다.
‘내 오판이었어… 나도 참 한결같네. 그 사람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면서.’
세벨리아는 쓴웃음을 삼키며 찻잔을 매만졌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 자신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이야, 디하트. 더는 기다려 주지 않을 거니까…….”
일주일, 그게 자신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이었다.
구름에 섞여 드는 연기를 바라보며 세벨리아는 멍하니 눈꺼풀을 깜빡였다. 아마 지금 연구소에도 저것과 비슷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을 터였다. 클로드의 결계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제 워츠가 내려오면 내 치료는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지.’
유리눈꽃을 들고 연구소로 돌아간 워츠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기로 약속한 게 바로 이틀 뒤. 그날이 도래하면 이제 완치될 일만 남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디하트는 그 이전에 제게 와야 했다. 두 사람을 이어 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기기 전에 그 어설픈 도망을 끝내야 했다.
* * *
세벨리아가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 가는 것도 모르고 디하트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
“공작님, 리시아 영애께서 접견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일레이가 자그마한 카드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디하트는 그걸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그럴 시간 없다고 해.”
디하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약을 한 움큼 집어 먹었다. 불면증과 편두통이 재발해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일전에는 다급한 일이라며 약초를 걸고넘어지더니만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날 방해하려는 거야.”
짜증을 넘어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는 마치 가시를 품은 듯 날카롭고 사나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지를 발견하지 않은 척할 걸 그랬다며 디하트는 이를 갈았다.
물론 불가능한 말이었다. 협곡에서 일어난 지진은 서프레디 남작의 저택까지 뒤흔들 정도였으니, 성지에 관한 사실을 숨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분노한 상관 앞에서 일레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협곡 아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핑계를 대는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 써야 한다나 뭐라나.”
“개소리를 계속 늘어놓으면 성지에 대한 권리 양도는 없는 일로 하겠다고 전해. 쓸모없는 고깃덩이라 그냥 던져 줬더니 제 분수도 모르는군.”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일레이는 고개를 숙이며 혀를 찼다. 무심하다 못해 성질 더러운 제 상관은 모르겠지만, 리시아 서프레디는 아무래도 디하트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끈질기게 굴겠어.’
이전에도 몇 차례나 디하트는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성의 없는 거절을 반복했다. 웬만한 여성이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관둘 관계였으나, 리시아는 집요했다.
‘차기 공작부인의 자리라도 노리는 건가.’
일레이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인 서프레디 남작과 달리 리시아는 야망이 크고 담대한 성격으로 보였다. 그런 성격은 서프레디 영지나 가문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이쪽에서는 그리 반길만한 성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디하트에게는 벨라가 있었다.
죽은 공작부인을 닮아 그의 광증을 안정시켜 준 존재 말이다. 그러니 일레이는 제 주인을 위해서라도 리시아를 막아 낼 필요가 있었다.
“흐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일레이가 팔짱을 끼며 수상쩍은 생각을 이어 나가던 중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페텔입니다, 공작님.”
“…들어와.”
디하트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페텔이 들어와 품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 본 디하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중앙에서 온 소식입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디하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페텔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일레이는 디하트의 눈치를 보다 페텔의 뒤를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달갑지 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디하트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편지봉투를 응시하며 침음을 흘렸다. 펜을 쥔 그의 손이 움찔거렸다.
‘세벨리아.’
페텔이 가지고 온 것은 중앙으로 보낸 첩자에게서 온 소식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웨든 후작가가 아닌, 얄팍한 휘장 아래 숨겨진 진짜 웨든 후작가에 대한 정보.
힐렌드 홀로 오기 전까지 세벨리아 웨든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아아…….”
디하트는 창백한 얼굴로 손을 떨었다. 어째서일까. 분명 자신이 알고자 했고, 알아 오라 명령했는데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한 겹밖에 되지 않는 종이봉투를 찢어 그 안의 진실을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디하트는 펜을 떨어트렸다. 텅 빈 두 손은 편지 쪽으로 향하는 대신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밤이 새고 새벽이 찾아왔다.
투둑.
핏발 선 눈으로 그가 얇디얇은 봉투를 잡아 뜯었다.
* * *
“우편국에 들를 예정인데 같이 가겠습니까, 벨라?”
한 손에 중절모를 든 클로드가 세벨리아에게 물었다. 칼 어펜츠의 모습을 한 그는 연구소에서 지낼 때와 달리 옷차림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위엄 있는 중년 남성으로 보이고 싶은 모양인데…….
“예, 좋아요. 외투를 챙겨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1층 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눈이 너무 초롱초롱해서 그다지 위엄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에게 가볍게 웃어 준 세벨리아는 방으로 돌아가 지갑과 가벼운 케이프 코트를 챙겨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며칠 전 그녀에게 면박을 주었던 하녀와 마주쳤으나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세벨리아를 노려보았을 뿐.
“갑시다.”
클로드가 팔을 내밀며 세벨리아에게 말했다. 숙녀를 에스코트하는 신사 같은 행동에 세벨리아가 짧게 웃으며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삼촌과 조카처럼 다정하게 거리를 걷던 중, 세벨리아가 물었다.
“우편국에는 무슨 일로 들리시는 건가요?”
“아. 이야기하는 걸 잊었군요.”
클로드가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우편 보관함에 편지와 소포 몇 개가 도착했다는 발송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공관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그리로 보냈더군요. 헌데…… 흠.”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었나요?”
“아뇨, 아닙니다. 제 설레발이 괜스레 벨라 양의 기쁨을 빼앗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 것뿐이에요.”
“기쁨이라니…….”
세벨리아가 의아한 눈으로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짐짓 힌트를 준다는 듯 말을 흘렸다.
“사실 이번 달에는 워츠나 제게 올 만한 편지와 소포가 없어요, 벨라. 워츠는 약초저장고가 불탄 바람에 모든 연구가 중단됐고, 저는 저 나름대로 속 썩이는 조카 때문에 하던 일을 관뒀어야 하니까요. 우리 둘 다 한동안 바쁠 테니 연락하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 뒀죠.”
아직도 세벨리아는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그녀의 푸른 눈은 얼어붙었다.
“그러면 남는 건 한 사람뿐입니다. 203호 보관함은 지금 워츠와 저, 당신이 함께 쓰는 곳이니까. 그럼 답이 쉽게 나오죠.”
“네? 하지만 누가 제게 소포와 편지를… 아.”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세벨리아는 고장 난 태엽 인형마냥 움직임을 멈췄다. 클로드는 뒤늦게 허전해진 팔을 느끼고서 걸음을 멈췄다. 그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가쁜 숨을 내쉬는 세벨리아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것도 잠깐. 클로드는 바람처럼 달려와 자신의 팔을 낚아챈 세벨리아에 의해 우편국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야만 했다.
“자, 잠깐만요. 지금 이 타이밍에서는 눈물을 흘리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나중에 혼자 할 테니 일단 열어 주세요. 제발요.”
“애원하지 않아도 열어 줄 거예요.”
클로드를 우편 보관함 앞으로 끌고 간 세벨리아는 그가 열쇠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서야 떨리는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데니사.’
자신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명, 그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