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94)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94)화(94/171)
“이 무슨 역겨운 짓을……!”
라이언이 겨우 사일러스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세벨리아의 묘지를 파헤친 뒤였다. 둔덕처럼 쌓인 흙이 훗날 디하트가 묻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변명을 들을 필요도 없겠군요. 사일러스 웨든 후작, 그대를 이 자리에서 체포하겠습니다.”
경어를 생략한 라이언이 그대로 멸시 어린 시선을 사일러스에게 던졌다. 매일 데리고 다니던 아들도 없이 홀로 서 있는 그는 답지 않게 우아함이 넘쳤다.
‘소후작은 없는 건가. 그나마 다행이군.’
사일러스의 행방을 찾느라 기사들을 힐렌드 홀 전체로 퍼트린 탓에 라이언은 혼자였다. 그는 칼집에 손을 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기괴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끼이익, 구덩이 아래에 들어가 있던 사일러스의 하인이 관 뚜껑을 여는 소리였다.
라이언이 역겨움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가 하인을 향해 큰소리를 외치려는 찰나,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라이언은 그대로 입을 닫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사일러스의 웃음이 묘역을 울렸다. 몹시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하하.”
숨 막히는 정적 아래 라이언은 침묵했다. 황량한 바람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라이언은 입술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겨우 라이언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거칠어져 있었다.
“당신이 저지른 짓입니까.”
“그럴 리가.”
사일러스의 입술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장갑 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라이언 경. 자네도 눈이 달렸다면 지금 이 상황이 보일 게 아닌가. 현행범? 내가 현행범이라고? 아니지, 그게 아니야.”
“…….”
“그대들은 짐작도 하지 못한 끔찍한 범행 현장을 내가 손수 밝혀냈다고 말해야지, 라이언 경.”
사일러스가 툭 하고 땅을 걷어찼다. 데구르르 굴러간 돌이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다.
팅.
텅 빈 관 속에서 돌멩이가 튀어 오르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검집을 움켜쥔 라이언을 응시하며 사일러스가 뱀처럼 간교하게 속삭였다.
“설마 텅 빈 관을 열었다는 혐의로 나를 체포할 건가? 아니면 누군가 공작부인의 시신을 훔쳐 갔다는 걸 멍청이처럼 눈치도 못 챘다는 사실을 밝혀낸 혐의로? 흠, 그것도 괜찮군. 인버네스의 명성을 진창으로 처박을 수 있겠어.”
라이언의 눈을 본 사일러스가 두 손을 펼치며 보란 듯 제 딸의 관을 가리켰다.
“둘 중에 뭐가 좋은지 골라 보게, 경. 중앙의 귀족인 날 체포하려면 중앙치안국에 내 혐의를 공표해야 하지 않겠나.”
“…….”
라이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작부인의 관이 열린 이래,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이를 악무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세벨리아 인버네스의 관. 작고한 공작부인이자 디하트가 그토록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여인이 잠들어 있을 마지막 휴식의 공간.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거라곤 굴러다니는 향낭과 금화 몇 닢뿐. 세벨리아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도대체……!’
라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못 박힌 관 뚜껑이 열렸을 때 그가 기대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건 생기를 잃은 피부, 삭아 들어가기 시작한 아름다움이었다.
썩어 들어가는 살점과 그 위를 뒤덮은 모슬린, 구더기의 악취와 관 곳곳에 넣은 향낭의 달콤함이 섞여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야 했다.
하나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모욕당해야 하는 시신은 그 자리에 없었고, 감히 인버네스의 묘역을 파헤친 범죄자는 제가 끔찍한 범죄를 밝혀낸 것이라 주장했다.
이건 고작 가주 대리인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라이언은 빠르게 혼란을 정리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된다.’
사일러스가 당당하게 구는 이유는 라이언도 납득했다. 첫째로 묘지를 파헤친 끔찍한 행위는 모욕당한 시신 본인이 없으니 성립하기 힘들었다. 둘째로 그는.
“아버지로서 통탄하기 그지없는 현실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남편에게 박대당하다 미쳐 제 손으로 숨을 끊은 거로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이리 비참한 꼴이 되다니!”
…제가 공작부인의 시신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는 걸 밝혀낸 공신이라 주장할 것이 분명했다.
“헛소리는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디하트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라이언이 까득 이를 갈고 외쳤다. 칼집에서 칼을 뽑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
명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사일러스는 여유로웠다. 라이언이 땅을 박차며 나갔다.
화악-!
“큭!”
그 순간 강력한 힘과 함께 라이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나뒹굴어지지 않은 건 순전히 그가 중심을 잘 잡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 주술사인가!”
눈앞을 가로막은 결계에 라이언이 포효했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끝에서부터 힘이 퍼져 나갔다. 검신을 감싸는 빛은 옅은 금색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처음부터 그와 싸울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자네는 날 막을 수 없네, 라이언 경. 처음부터 승패는 결정된 일이었어. 나는 불쌍하게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아버지이고, 자네들은 가엾은 공작부인을 홀대하다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만든 괴물들이니.”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딸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어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묘지를 파헤쳤다면 모두 나를 동정하지 자네들의 편을 들지는 않을걸.”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동시에 결계가 강한 빛을 발하며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라이언은 주술사의 결계가 사일러스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결계는 그를 가두기 위한 용도였다.
“빌어먹을……!”
빛이 어린 검신이 수차례 결계를 두드렸으나 소용없었다. 라이언을 가둔 결계가 해제된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라이언 경!”
힐렌드 홀 전체로 흩어졌던 기사들이 그를 찾아 묘역으로 찾아온 뒤였다.
* * *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속에서부터 들끓어 오른 감정에 한숨마저 비명처럼 흘러나왔다. 사일러스를 붙잡아 두기는커녕 그가 세벨리아의 시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니, 그야말로 최악의 소식이었다.
디하트는 장탄식을 흘리며 그대로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얽히고설킨 현실 앞에 미친 듯이 날뛰던 힘도 기세를 잃었다. 용맹하게 불타오르던 복수심은 어느새 세벨리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뒤로 밀려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교활하고 역겨운 사일러스보다 세벨리아의 안전과 평화가 먼저였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닥친 가장 큰 역경은 이 사실을 세벨리아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젠장…….”
타닥, 튀어 오르던 불꽃들이 맥을 못 추고 사그라들었다.
“안 좋은 소식입니까, 공작님? 당장 내려가서 북부로 갈 채비를 하라 할까요?”
이전보다 한결 차분해진 그의 분위기에 일레이가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으나 조용히 무시당했다. 디하트에겐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겨를 따위는 없었으니까.
“후.”
한숨을 내쉬던 디하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일레이가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조금 튀어 올랐다.
“됐으니 내려가서 짐이나 싸도록 해라. 그리고 봉쇄령은 취소한다.”
디하트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디하트의 뒤를 억울한 눈으로 응시하던 일레이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디하트가 내팽개치고 간 편지가 그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상관의 물건, 그것도 봉인까지 되어 있던 편지에 손을 대는 것은 엄연히 경을 칠만한 죄였다. 한데 손도 대지 않고 그냥 펼쳐져 있는 걸 눈으로 훑는 건 문제 없지 않을까?
슬쩍, 일레이의 발이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 집무실 앞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가 조심스럽게 상체를 숙였다.
“이런 미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일레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딘가로 달려 나가던 디하트와… 죽은 공작부인과 너무나 닮은 벨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지. 아니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레이는 눈치가 없는 사내가 아니었다.
* * *
세벨리아를 찾아가면서도 디하트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계획이 없다고나 할까, 계획을 수립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그녀의 뜻이야.’
사일러스가 어떻게 세벨리아의 시신이 관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묘지를 파헤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 이후에 무슨 짓을 벌이든지 간에 디하트는 전력을 다해 그를 막아설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세벨리아가 원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디하트는 자꾸만 딱딱 부딪히는 이를 힘주어 다물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벨라, 혹시 지금 시간 됩니까?”
“…….”
“벨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디하트는 몇 차례 더 문을 두드리다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디하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등을 돌렸다. 관리인에서 빼앗은 열쇠를 가져올 참이었다.
“디하트.”
“…클로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건지 몇 걸음 떨어진 방에서 클로드가 나와서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벨라 양을 찾아온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그와 실랑이를 벌일 여유는 없기에 디하트는 그대로 클로드를 지나치려 했다. 클로드가 그 소리만 안 했어도,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벨라 양이라면 아까 속달 우편을 받고 누굴 만나러 가는 것 같던데.”
“…뭐?”
“아, 정확히 말하자면 마중을 나갔다고 해야 하나.”
클로드가 천천히 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의 눈이 디하트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으려나 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에 디하트가 눈을 치켜뜨며 으르렁거리자 클로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둘이 어느 정도 화해를 한 것 같으니.’
디하트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클로드는 지난밤에 그가 쏟아 낸 눈물의 사과를 본의 아니게 엿듣고 말았다. 그의 방이 세벨리아의 방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탓이었다.
“벨라 양에게 유일한 가족이라는데, 그 사람이 얼마 전까지 얼시크에 있었거든. 원래라면 답장을 받고 올 계획이었나 본데… 아마 기다릴 수가 없어서 먼저 움직인 모양이야. 이 근처 도시에서 속달 우편을 보냈길래 벨라 양이 마중 나갔지.”
“하, 젠장. 일이 꼬여도 아주 제대로…….”
침음을 삼킨 디하트는 메마른 세수를 하고서 바로 공관을 뛰쳐나갔다. 그는 클로드의 말을 듣고 바로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데니사, 그 여자로군.’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