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96)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96)화(96/171)
상황은 이러했다. 데니사는 원래 얼시크에 머무르며 세벨리아의 답장을 기다리려 했다. 그러던 와중 힐렌드 홀에서 사일러스가 세벨리아의 관을 열어젖히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일러스는 바라던 대로 그녀의 생존을 확인했고, 공작 없는 힐렌드 홀은 그대로 어쩔 줄 모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라이언은 사일러스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럴 명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명분을 함부로 꺼낼 수가 없었다.
힐렌드 홀 안에 안치된 공작 부인의 시신이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다니!
그건 인버네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끔찍한 추문 거리였다. 그래서 라이언은 다급하게 디하트에게 급보를 보냈으나,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사일러스 웨든은 잃어버린 자신의 딸을 찾는 광고를 내걸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건 죽은 세벨리아 웨든을 찾는 광고가 아니었다.
“사실 내 막내딸은 쌍둥이였다오. 그 애가 어릴 적 소풍을 나갔다가 다른 한 명을 잃어버렸지. 그래서 그 이후로는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세벨리아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거요.”
어딜 봐도 흠잡을 곳 없는 정신 나간 헛소리였다. 실상을 아는 자들이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말.
하지만 문제는 이 수작질이 사람들의 흥미를 너무 적절하게 끌어 버렸다는 것이다.
죽은 공작 부인이 쌍둥이였다니. 심지어 어릴 적 잃어버렸다니! 사람들은 이제야 세벨리아를 가둬 키운 사일러스를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일러스는 그들의 동정심을 기꺼이 받아먹었다.
“그동안은 너무 상처가 커 잊고 있었지만… 세벨리아를 잃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들더군. 이제라도 그 아이를 찾아야겠소. 불쌍한 내 딸,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받아 보지 못했을 내 딸을 찾아오는 이에게 그에 걸맞은 보상을 주지.”
중앙에서 발간하는 모든 일간지와 소식지에 세벨리아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사일러스는 그 밑에 ‘생김새는 같으나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이 다를 수 있다.’는 주의문구까지 아주 친절하게 넣어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세벨리아의 쌍둥이를 찾아다녔다. 이제 세벨리아는 어디를 가든 그녀를 찾는 시선에 얽매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사일러스의 수작은 참으로 악독하고 그다웠다.
* * *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한 데니사가 다 식은 차를 꿀꺽꿀꺽 삼키고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중앙에서 발간되는 신문에는 모두 아가씨를 찾는 광고가 실려 있었어요. 얼시크의 가판대에서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공작님은 모르실 겁니다.”
차라리 세벨리아가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이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벨리아의 쌍둥이라니, 그녀를 찾는 이에게는 상금을 준다니!
“참으로 후작님다운 계책이에요. 그분은 직접 검을 드는 것보다 상대방을 서서히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걸 즐기시는 분이니까요.”
데니사는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자마자 후작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도망친 세벨리아가 제 발로 그에게 돌아오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요.”
데니사가 세벨리아의 손을 붙든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세벨리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을 잘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 아직 중앙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소식이 많이 퍼지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 당장 이곳을 떠나서 국경으로 가요.”
데니사가 세벨리아를 조곤조곤 설득하는 사이 디하트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차갑게 벼려진 칼날처럼 냉정한 그의 눈에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세벨리아가 살아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해.’
사일러스는 일을 치기 전에 미리 손을 써 둔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다렸다는 듯 모든 신문에 동일한 광고가 실릴 리 없으니까.
‘게다가 세벨리아가 아닌 세벨리아의 쌍둥이를 원했다는 건…….’
으득, 디하트의 턱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났다. 금빛 찬란한 그의 눈동자에 시린 빛이 한순간 번뜩였다 사라졌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웨든 후작은 자유로운 당신을 원하는 거였군.”
디하트의 시선이 세벨리아에게 닿았다. 어딘지 멍한 얼굴로 데니사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인버네스라는 족쇄를 달고 있지 않은 당신을 원하는 거야.”
세벨리아의 텅 빈 관을 사일러스가 확인했다는 편지만 받았을 때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사랑하기는커녕 장기 말로만 써 온 딸의 생사를 파악하려 굳이 힐렌드 홀에서 그 사달을 일으켰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세벨리아를 확실히 옭아맬 생각이었던 것이다.
“뱀 같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군. 이토록 교활한 자였을 줄이야.”
중앙의 귀족인 웨든 후작을 감옥에 넣으려면 그의 죄목을 중앙에 알려야 하고, 이는 곧 인버네스의 위신을 땅바닥에 처박는 일이 된다. 결국 인버네스는 세벨리아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걸 대외적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사이 사일러스는 세벨리아의 쌍둥이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손아귀에 넣는 것이다. 뒤늦게 인버네스가 그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떠올렸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살아 있다 하더라도 되찾아 오려고 하지 않겠지.’
세벨리아와의 결혼은 단순히 가문 간의 결합이 아닌, 중앙과 북부의 평화 조약이었으니까.
으득, 이 가는 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데니사가 그 소리에 놀라 디하트를 흘끗 건너다보았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디하트의 얼굴은 무참하리만치 일그러져 있었다.
“후우…….”
디하트가 거친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사일러스의 완벽해 보이는 계책에도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내가 먼저 당신을 만났어.’
내 곁이 고통스러워 도망친 당신을, 아픈 몸을 이끌고 죽을 자리를 찾아 사라진 당신을 내가 먼저 발견해 버렸어.
만일 자신이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시신이 사라진 걸 알고는 미쳐 날뛰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감히 그 사실을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어 문드러진 속을 애써 감추고는 범인을 찾기 위해 병력을 동원했겠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당신이 정말로 죽었다고 믿고 있었을 테니까.’
관 속에 평안하게 누워 있던 그녀의 환영을 떠올리자 디하트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디하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세벨리아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조금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던 거로군요. 그런데도 찾지 않고 저를 내버려 두셨던 거예요. 언제든…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세게 물어뜯어 붉게 부풀어 오른 입술 사이로 쓸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푸른 눈동자가 한 군데 머무르지 못하고 정처 없이 흔들렸다.
“그에게 저는 영원히 장기 말일 뿐이군요.”
세벨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했다.
“그래요. 정말로 그것뿐이었어.”
“벨라.”
“괜찮아요.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이라 확언받고 싶지 않아 외면하던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에요.”
“…….”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별로네요.”
기운 없는 웃음을 흘리던 세벨리아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데니사에게 붙잡혀 있던 손을 빼낸 그녀가 두 손을 움켜쥐며 디하트를 응시했다.
“디하트.”
“……응.”
뼈가 시리도록 외로워 보였던 푸른 눈에는 이내 어떤 차가운 빛 같은 것이 어렸다. 투명하고 단단한 빛이었다.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요.”
그 아름다운 빛을 감탄 어린 낯으로 응시하며 디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순간 세벨리아가 그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기꺼이 그에 따를 용의가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 하더라도.
“부탁이라는 거창한 말은 필요 없어, 벨라. 나는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거니까.”
디하트는 정도를 모르고 미쳐 날뛰는 심장을 내리누르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사일러스를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 하고 여러 유혈사태를 그려 보았다.
그러나 세벨리아는 그의 예상을 훨씬 밑도는 부탁을 했다.
“당신이 지난밤 내게 제안했던 그 일. 나를 괴롭히고 몰아붙인 이들에게 복수를 하자는 그 말, 아직도 유효한가요?”
“아가씨, 그게 무슨 말이세요? 복수라뇨.”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데니사가 놀라서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복수라니, 설마 웨든 후작에게 복수를 한다는 말인가? 세벨리아가 그저 평안하고 안전하게 여생을 보내길 바라는 데니사에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왜 굳이 가시밭길로 걸어 들어가려 하세요.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고통스러운 과거는 모두 잊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응, 알아. 잊지 않았어. 나도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 데니사.”
“그러면……!”
“하지만 부딪히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인생은 절대로 평범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데니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눈물 젖은 얼굴로 세벨리아를 붙들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세벨리아는 단호했다.
“아버지가 마음먹었다면 내가 어디로 숨어들든 찾아내실 거야. 데니사도 알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힐렌드 홀을 떠나기로 한 날, 날 붙잡고 말렸잖아.”
그 말에 데니사는 결국 세벨리아를 데리고 국외로 도망간다는 선택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기운을 잃은 그녀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디하트는 곧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대답해요, 디하트. 당신의 제안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상체를 곧게 세운 세벨리아가 우아한 태도로 대답을 종용했다. 디하트는 바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푸른 눈이 흔들림 없이 그를 응시했다.
“당신과의 약속에 유효기간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그대로 디하트는 세벨리아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이러다 고장이 날 것만 같았다.
“원하기만 해요, 무엇이든 이뤄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