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I Died, My Husband Went Mad RAW novel - Chapter (97)
내가 죽고 남편이 미쳤다 (97)화(97/171)
사람들은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보다 허황될지라도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게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라 하더라도 무심코 눈길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그럴듯하기까지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일레이처럼.
‘미치겠네.’
라이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은 뒤 일레이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워졌다. 무엇이 참을 수 없는고 하니, 세벨리아에게 달려가서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진짜일까? 진짜면 도대체 어떻게 똑같이 생긴 시체를 구한 거지?’
“헉, 설마…….”
“일레이, 혼잣말 좀 그만하고 집중해! 도대체 몇 번 째야?”
“아, 미안.”
일레이는 동료 기사에게 사과하고 잘못 묶은 끈을 풀었다. 그들은 디하트의 명에 따라 서프레디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도중이었다.
“돌아 버리겠네.”
일레이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아마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세벨리아를 붙잡고 ‘혹시 돌아가신 공작 부인이십니까?’ 라고 물어볼 게 뻔했다.
‘그리고 공작님에게 단칼에 목이 날아가겠지.’
으으, 일레이가 부들부들 어깨를 떨고 있을 때였다. 기사 한 명이 다가와 그의 등을 툭 쳤다.
“억!”
일레이의 과격한 반응에 덩달아 놀란 기사는 그에게 공작님이 부르신다고 말했다. 일레이는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날아가듯 집무실까지 다다랐다.
똑똑.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찌어찌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디하트뿐만 아니라 세벨리아와 워츠, 클로드가 있었다. 예상외의 조합에 일레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눈을 돌리는 일레이를 향해 디하트가 던지듯 물었다.
“준비는 끝났나?”
“예, 기사들 모두 짐을 꾸렸습니다. 식량은 가는 길에 보급이 가능하니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만 챙겼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일레이가 신속히 답했다.
북부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미리 식량을 가득 채워 가느니 길목마다 있는 큰 도시에 들러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보급하는 편이 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일레이의 눈에 세벨리아가 들어왔다. 그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외쳤다.
“아, 그러고 보니 의원분들이 합류하시는 걸 계산에 넣지 않았군요. 먹기 편한 음식 종류로 넉넉하게 챙겨 두겠습니다.”
중간에 도시를 들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노숙을 해야 했다. 허나 공작 부인이 그걸 제대로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일레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을 하는데, 디하트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럴 필요 없다. 계획이 변경되었으니까. 식량은 대충 챙기도록 해. 내려가서 기사들에게 전해라. 우리는 북부가 아닌 중앙으로 간다.”
“……네?”
뭐라구요? 일레이는 저도 모르게 되물을 뻔했으나 가까스로 뒷말을 삼켰다. 중앙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일레이가 이전보다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공작님. 지금 힐렌드 홀은 전에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림스 후작이 감히 무력으로 저택을 짓밟고…….”
“외람된 걸 알면 꺼내지 마. 그리고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나?”
디하트가 날카롭게 내뱉으며 일레이를 흘겨보았다.
“나가. 출발은 한 시간 뒤다.”
“예? 아직 아침이 밝지 않았는데요. 저희가 무슨 좀도둑도 아니고 야심한 밤을 틈타 서프레디를 빠져나갈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번에는 숨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의문을 토해 내 버리고 말았다.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일레이는 뒤늦게 제 입을 가렸으나 디하트는 이미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은 뒤였다.
다행히 일레이의 허벅지를 걷어차려는 그를 말린 건 세벨리아였다.
“좀 진정해요, 디하트. 그리고 그럴 만한 연유가 있으니 너무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일레이 경.”
“아. 제가 섣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레이는 화급히 고개를 숙였다. 강렬한 예감이 그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그래, 평민치고는 너무 대범하게 디하트와 자신을 대한다고 했다.
‘정말로 공작 부인인걸까.’
그렇게 되면 장례식장에서 관 안에 들어 있던 시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하지만 그 문제조차 빠르게 풀렸다. 그는 여관 발코니에서 직접 뛰어내렸던 가짜 세벨리아를 보지 않았던가!
꽈악, 주먹 쥔 손에 힘을 준 일레이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한 시간 내에 서프레디를 떠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성을 다해 말을 마친 일레이가 바람보다 빠르게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떠난 뒤, 짧은 침묵이 흐르고 세벨리아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병이 거의 완치되었다고는 하나 당신은 아직도 평범한 사람보다 많은 면에서 약해요. 게다가 아직 힘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제자를 그런 위험에 홀로 보내는 스승이 어디 있답니까?”
클로드가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몇 분 전, 그는 작별 인사를 한답시고 제 상황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세벨리아의 말에 그 자리에서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세벨리아가 디하트를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나 클로드는 단호했다. 그가 헛숨을 삼키며 말했다.
“벨라, 정말……. 하, 당신은 아직도 순진하기 짝이 없네요. 복수를 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며 보내 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어요.”
“…….”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네요. 이렇게 순진한 사람을 어떻게 디하트와 단둘이 보내겠어요. 그렇지, 워츠?”
“클로드의 말이 맞습니다. 더군다나 벨라 양은 저와 약속한 게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서로 떨어져서는 제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을 텐데요.”
워츠는 러크우드 어딘가에 살고 있을 세벨리아의 어머니 쪽 가족을 찾는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정확히 짚어 낸 맹점에 세벨리아는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이렇게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이 제 사정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겪지 않아도 될 일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녀의 얼굴을 본 디하트가 숨을 삼켰다.
“벨라,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버릇처럼 세벨리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제 손을 겹치며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일이 복잡해지면 내가 나서서 저들을 연구소로 내쫓아 버릴 테니까, 당신은 복수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돼요.”
“저 자식 말하는 거 보게. 야, 내가 없으면 벨라 양의 시민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말하는 거냐?”
클로드가 뒷목을 잡으며 신음했다. 디하트는 그 모습이 다 보임에도 꿋꿋하게 무시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디하트가 이를 갈며 대꾸했다. 맨 처음 클로드가 자신도 함께 중앙에 가겠다며 생떼를 부렸을 때, 디하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자 클로드는 기다렸다는 듯 아주 달콤한 미끼를 꺼내 들었다.
[내가 사일러스의 헛수작을 상쇄할 수 있는데도?]클로드의 미끼는 정말 강력했다. 그건 바로 세벨리아를 ‘칼 어펜츠’의 조카로 소개해 사일러스의 더러운 수작을 떨쳐 내는 것이었다.
클로드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두 팔을 펼치며 세벨리아에게 안기라는 듯 말했다.
“벨라 양, 아니. 벨라, 우리 조카. 저런 흉악한 놈은 삼촌이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저 시커먼 놈은 내버려 두고 이리 와요.”
“내가 사람이 아니라 개를 가족으로 두고 있었군. 짖는 솜씨가 아주 탁월해.”
디하트가 으르렁거렸으나 그 이상으로 험한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그도 클로드의 계획이 그럴듯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칼 어펜츠의 호적에 세벨리아가 등재되면 법적으로나마 그녀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사일러스가 별의별 트집을 다 잡아 무효화시키려들 수도 있겠지만 일단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희곡의 한 장면을 보듯 인버네스 일가를 관람하던 워츠가 벽에 걸린 시계를 훑었다. 그가 무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정리된 거로 생각하고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아직 짐을 챙기지 않아서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챙길 게 있어.”
워츠를 따라 일어난 클로드가 집무실을 나가기 전 세벨리아에게 손짓했다. 세벨리아는 낑낑거리는 강아지처럼 달라붙는 디하트를 내버려 두고 문가로 움직였다.
세벨리아가 가까이 오자 클로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알로스가 돌아왔어요.”
“……!”
“그러니 이제 그만 파랑새를 불러내도 돼요, 벨라. 내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숨만 내쉬는 세벨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인 클로드가 집무실을 나섰다. 세벨리아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몸을 돌렸다.
‘알고 있었구나.’
협곡에서의 일로 세벨리아는 내심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파랑새와 달리 산산조각이 난 알로스. 그게 마치 무능한 자신을 탓하는 것 같아 세벨리아는 공관으로 돌아온 뒤 파랑새를 돌려보내고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그걸 알아차린 클로드는 굳이 세벨리아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알로스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소식을 알려 줬을 뿐이다.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는다고, 알로스의 역소환은 그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클로드가 뭐라고 한 겁니까?”
어느새 걱정 어린 얼굴로 제 앞에 선 디하트를 올려다보며 세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뻔했다.
정신을 차린 세벨리아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별말 아니었어요.”
두 손을 움켜쥐며 세벨리아가 속삭였다. 교차한 손가락 사이로 푸른 빛이 움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