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시끄러웠다.
“데릭! 그만 먹어! 너, 내일 대표팀 소집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많이 먹어 둬야지.”
“흥! 머릿속에 먹을 생각밖에 없는 미련한 새끼.”
“흥! 흥! 흥!”
데릭은 로빈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시 위에 돼지고기 파이 한 조각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저 파이는 아이언 디쉬에서 공수한 내가 좋아하는 파이였다.
나도 그동안 식단 조절 때문에 참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소중한 파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지금 내가 인상을 쓰고 앉아 있는 소파는 EMA 직원 휴게실의 소파였다.
그렇다.
여기는 EMA 1층에 있는 직원 휴게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주인들인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뭐, 일요일이기도 했으니까.
휴게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녀석들은 데릭과 로빈뿐만이 아니라 맥주를 함께 나눠 마시고 있는 페어와 레온.
냉장고 앞에서 샴페인 한 병을 두고 투닥거리고 있는 마이크와 릴.
한쪽 구석에서 우리의 눈치를 살피는 맥스와 조나단, 찰스까지.
러시 그린 훈련장의 휴게실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차라리 데이브라도 데려오지.’
하지만 신혼부부가 이곳까지 올 일은 없었다.
“치우야. 데이비드 부부가 왔어.”
아니었다.
“역시. 왁자지껄하네? 리치하고 폴은? 레이는?”
‘뭐야! 다 오기로 한 거였어?’
나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분명히 내가 초대한 사람은 페어와 레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페어. 내일 우리 사무실에서 8강 대진 추첨 함께 봐요. 레온도 데려오고. 그 녀석 헤르만이 독일로 돌아간 다음부터 말수가 부쩍 줄었어요.”
“그럼 나야 고맙지. 일요일인데, 사무실을 열어도 괜찮아?”
“일요일이니까요. 직원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일은 식단에서도 해방이니까요.”
“그래. 내일 저녁에 사무실로 갈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녀석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도 얼마 준비하지 않았다.
“리치하고 폴은 아이언 디쉬에서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어. 레이 차로 움직인다고 했으니까 함께 올 거야.”
나의 고민은 생기는 족족 해결되고 있었다.
“이야! 여기는 올 때마다 뭔가 풍족해지네! 역시 한국의 재벌다워! 악! 제인!”
“쓸데없는 소리! 한! 초대해 줘서 고마워. 여기 와인. 이 사람이 샴페인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제인이 데이비드의 팔을 심하게 꼬집는 것이 와인보다 더 위로가 되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파티 분위기를 내도 좋을 것 같았다.
동런던 참사 이후, 이런 자리가 없었고, 감독님께서 병실에 누워 계신 이후로 선수들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맥스! 뭐해!? 오늘의 호스트는 너와 나니까 접대를 제대로 해야겠지? 존에게 연락해서 야간에 청소 업무가 가능한 업체를 알아봐 달라고 해. 직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 여기서 파티를 해야겠다.”
“예!”
“역시! 한이야!”
“데이브와 데릭은 적당히 알아서 조절해. 찰스와 맥스도 출전하게 될지 모르니까 술은 마시지 마. 나머지는 운이 없게도 우리의 상대가 누가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자고!”
잠시 후, 모일 사람이 모두 모이고, 휴게실의 커다란 나무 테이블 위에는 와인과 맥주, 아이언 디쉬에서 가져온 음식들이 놓였다.
“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티브이에서 UEFA 본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 * *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몸에 제법 살이 붙었지만, 그래도 젊었을 적에는 고왔을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모리슨 영의 얼굴을 피한 채, 말하고 있었다.
“…….”
“다음부터는 오지 않을 거예요. 냉정하게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이미 우리는 관계를 끝낸 사람들입니다. 저와 딸들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신경 써 주신 점은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그래도…….”
“영. 이 사람은 제가 없어도 일어날 사람이에요. 가족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두고 계속 누워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제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오랜만에 전에 살던 집에 가 보니, 저와 딸들이 떠나던 날과 그대로더군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어요. 그렇듯이 이 사람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겠죠. 우리는 참 많이 기다렸어요. 언제면 일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 줄지. 언제면 클럽의 선수보다 두 딸을 먼저 챙겨 줄지. 하지만 이 사람에게 전부는 가족이 아니었죠. 딸들의 생일, 졸업식에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칠십 번도 넘는 그 숫자 안에 단 한 번도 없었죠.”
“…….”
“젊었을 때는 아이들이 없었고, 열정적으로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았었죠. 그래서 캔터베리를 떠나 런던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고, 이 사람을 믿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죠. 당신도 알겠지만, 행복했을 때였어요.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날이 늘어 갔어요. 딸들이 없었다면, 오래전에 캔터베리로 돌아갔을 거예요.”
“…….”
“저와 딸들을 원망해도 좋습니다. 우린 더 오랜 세월을 이 사람을 원망하며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이 사람 곁으로 돌아올 수는 없어요.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 사람 곁을 지키는 일은.”
모리슨 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부탁도 할 수 없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고 있어 봤자, 환자에게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새끼! 말이라도 해 주지! 빌어먹을!’
그냥 속으로 미련한 친구를 향해 욕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전 이 사람이 깨어나면, 우리에 관한 기억을 모두 잊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죠. 이 사람도 힘들었을 거예요. 점점 멀어지는 가족을 보며 상처도 많이 받았을 테고. 그러니 이제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잊고, 깨어나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나중에 그렇게 전해 주세요. 편지 같은 건 남길 생각이 없으니까요.”
“…….”
그렇게 계속 그랜트 부인의 말은 이어졌고, 모리슨은 가만히 듣고 있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둘은 보지 못했지만, 그랜트 감독의 주름진 눈가에 살짝 물이 고였다가 사라졌다.
“건강한 모습은 되찾았으면 해요. 진심으로요.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니까요. 이번 시즌이 끝나서 은퇴한다고 했었나요? 아버지의 자리는 남겨 둘 거예요. 그러니 어서 일어나 그동안 해 주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 * *
러시 그린 훈련장으로 한치우의 볼보가 들어가고 있었다.
월드컵 예선 기간 중이라 공식적인 훈련 일정은 없었지만, 조나단의 개인 훈련을 위해 한치우는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었다.
“뭐야?”
“왜?”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한치우가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차를 세우려고 자리를 잡던 박민석이 묻자,
“아아. 부지런한 녀석이 아닌데, 차가 보여서요.”
주차장에는 릴의 차가 보였던 것이다.
“데릭이 옆에 없으면 부지런해지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릴은 이미 그라운드 외곽을 따라 달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조나단과 페어, 레온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왔어!?”
“예. 일찍 나왔네요?”
“그냥, 누워 있기도 그래서. 레온도 일찍 일어났더라고.”
“코치님은요?”
“사무실에서 뭐 좀 정리하고 나온 데.”
“예.”
한치우는 페어와 인사를 나눈 다음, 가볍게 몸을 풀고, 재빨리 릴의 옆으로 뛰어갔다.
“뭐야? 너도 나온 거야?”
“응.”
릴의 안색이 평소와는 달리 살짝 굳어 있었다.
“왜 그래?”
“후우 – 후우 – ! 솔직히 이제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겠어.”
“뭘?”
“후우 – !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한치우는 느낄 수 있었다.
8강 대진표 추첨 이후, 릴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아니. 후우, 후! 솔직히 국가대표는 욕심내지 않았어. 내 자리에는 뛰어난 녀석들이 많으니까. 후우 – 후우 – !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 나는 해머스의 오른쪽 날개이고, 내가 제대로 뛰지 못하면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할 거야.”
“그래서 어쩌려고?”
“몰라. 그냥 집에 있는 게 답답해서.”
파바바바 –
릴이 속도를 끌어올리며 저 앞으로 먼저 달려 나갔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한치우는 일부러 쫓지 않았다.
지금 릴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곤 채우려고 노력하려는 것이었다.
‘그래. 좋아. 그렇게 하나씩 하면 돼.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어?’
그런데 그라운드로 나오는 입구가 시끄러워졌다.
한치우가 고개를 돌리자, 마이크와 리치, 폴, 레이가 가볍게 몸을 풀면서 페어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흥! 말 좀 들어라. 쉬라고 할 때, 쉬면 어디가 아파?”
그리고 로빈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라운드에 모인 동료를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저 새끼의 주둥아리는.”
로빈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다퉜다던 레이가 지지 않고 받아치는 모습까지, 평소 훈련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자, 자! 주목!”
그리고 앤드루 시어 전술 코치가 손에 파일을 들고 그라운드로 올라와 선수들을 모이게 했다.
“음. 오늘은 조나단의 개인 훈련을 진행하려 했는데, 고맙게도 많이 모여 줘서 일정을 좀 바꾸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은 각자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그다음에는 21세 이하 팀과 8 : 8 게임을 해 볼 생각이야. 이미 클라크 감독과는 이야기했어.”
“코치님. 이 녀석들이 오늘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새벽부터 전화가 어찌나 오는지, 오늘 훈련장에 몇 시에 가면 되느냐고 말이야.”
“흠, 흠!”
“나, 난 그냥 잔디를 밟는 게 좋아서.”
오늘 예정에 없던 선수들의 얼굴이 붉어지며 입으로 핑계를 뱉어 냈다.
“하하! 물론, 개인 훈련도 좋지만, 이럴 때 간단한 게임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어린 선수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몸을 풀어! 한, 그리고 페어와 레온은 조나단과 함께 나를 따라오고. 레이도 나온 김에 우리를 도와줘.”
“예!”
앤드루가 조나단의 개인 훈련을 위해 부른 선수들을 데리고 한쪽 골대로 향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는 훈련장의 직원들이 빵빵하게 공기를 채워 넣은 오뚝이 인형을 세워 놓고 있었다.
착! 착! 착!
앤드루가 오뚝이 인형 네 개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 옆에 접시 콘을 던지며 외쳤다.
“조나단! 절대 인형들의 범위를 넘지 말고, 날아오는 크로스의 방향에 맞춰 공을 잡은 다음, 한에게 연결한다! 주의할 점은 인형은 물론이고, 접시 콘을 건드려서는 안 돼! 페어는 크로스를, 레온은 페어를 견제한다! 이해했지?”
“예!”
조나단이 함부로 수비 범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위치를 강요하는 훈련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막상 저 인형들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답답하다.
어떻게 날아올지도 모르는 공을 좁은 공간에서 확실히 잡고, 한치우에게 정확하게 연결하려면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삑!
툭 –
앤드루가 목에 건 휘슬을 입으로 불고, 공 하나를 한치우에게 밀어 주었다.
투 – 웅 –
한치우는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굴러오는 공을 바로 왼쪽 아웃라인에 서 있는 페어를 향해 감아 찼다.
화악!
순간,
한치우의 두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이런 좋은 훈련 기회를 마다할 한치우가 아니었다.
* * *
꽈아 –
시원하게 씻고 나온 나는 거실의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댔다.
“오늘도 아카데미 녀석들과 함께 훈련했어?”
“어. 나름대로 도움이 많이 돼. 잔뜩 굳은 녀석들의 힘을 빼기에도 적당하고, 어린 녀석들은 우리를 보고 배우는 것이 많아. 서로 윈윈이지.”
“아무래도 8강 상대가 결정되어서 그렇지?”
“그래. 처음에는 프리미어 리그 소속팀 전부 8강 진출에 성공한 것을 두고 다행이라며 떠들던 녀석들이 막상, 상대가 결정되니까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야.”
“흐흐흐. 하긴, 긴장할 만도 하지. 뭐, 오랜만에 파리에 가게 생겼네. 아! 이번에는 퓨어와 함께 갈 거야. 아무래도 오랫동안 공부했던 곳이기도 해서.”
굳이 내게 그것까지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는데.
“어. 그래.”
일부러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가끔, 이모도 그렇고, 서우도 그렇고 내게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아니, 병원에서 그렇게 친해졌으면서 직접 물어보면 될 것을 왜 내게 묻는단 말인가.
“흠, 흠. 오늘 아슈르의 경기이지?”
“어. 코트디부아르와 예선전이지.”
“아무래도 카메룬이 우세하지?”
“뭐, 코끼리 군단(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이 예전만큼은 못하니까. 미드필더진은 뛰어난데, 포워드가 약해. 그래서인지 강력한 한 방이 없지.”
“내일 오전에는 대한민국의 경기, 저녁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평가전이 있군.”
“뭐, 그것까지 신경 써. 어차피 한국이야 아무리 못해도 2차 예선 정도는 통과할 테고, 평가전은 거의 이벤트 경기라 해도 틀리지 않은데.”
“누가 들으면,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내일은 오전까지 푹 잘 거야. 평가전이 있는 날이라 훈련장도 쉬니까.”
“오늘도 그걸 한 거야?”
“물론. 지금도 머리 위에 뭔가 올라탄 느낌이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함부로 쓰는 건 아니야?”
존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느껴졌다.
뭐, 지은 죄가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괜찮아. 다시 쓰러지는 일이 없으려면, 내 의지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오늘 경기가 끝나면, 푹 잘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민석이 형! 내일 오전에는 저 집에만 있어요!”
“어! 알았어!”
주방에서 먹을 것을 챙기는 민석이 형이 잘 들릴 수 있도록 크게 외쳐 주었다.
아파트에만 오면 살림꾼이 따로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좋다고 하는 사람을 말리지도 못하겠고.
잠시 후.
티브이 화면에서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의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이 시작된다는 타이틀이 비쳤다.
화악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눈이 뻑뻑해지며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