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독주 (1)
론 실버는 도저히 옆에 앉아 있는 남자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벌써 함께 자리한 지도 삼십 분이 넘어가고 있는데, 둘은 인사를 제외하고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휴가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도 참으라고 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론은 나스르의 눈치를 보느라 벌써 식어 버린 홍차를 들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경기는 전반전 2분 만에 터진 마이크의 선제골 이후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맨시티는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움직임보다 공의 소유권을 지키는 데 집중했고, 웨스트햄 역시 무리하게 공을 뺏으려는 움직임보다 자리를 지키며 단단한 아이언 실드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차라리 경기라도 빠르게 진행됐다면, 덜 신경 쓰였을 텐데.’
딸깍 –
이제는 비어 버린 찻잔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론은 눈을 감았다.
최근 카타르 쪽에서 투자하는 금액이 눈에 띄게 불어나서 솔직히 경기장을 찾은 이 시간이 아까웠다.
동생의 부탁으로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클럽의 일을 휴가 도맡아 하듯이 실버 인베스트먼트의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의상, 스마트폰의 진동을 약하게 바꾸었지만, 지금 론의 안주머니에서는 메시지가 수신된다는 짧은 울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을 파리로 보내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야. 이것은 기회다!’
솔직히 론 실버는 한치우의 존재가 두려웠지만, 고맙기도 했다.
동생의 감을 믿었기 때문에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한동안 한국의 일로 시끄러웠을 때는 진심으로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합리적인 성격에 안전함을 추구하는 론 실버는 동생이 감정적으로 한치우와 깊숙한 관계를 맺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실버 인베스트먼트의 자금이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인데, 그래도 지금은 회복하고 있었고.
거기에다 한치우가 파리와 연결되며 신뢰도가 높은 곳에서 투자까지 받게 되어 웨스트햄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만큼 실버 인베스트 역시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었다.
“휴 실버는 오늘 이곳에 오지 않을 모양이로군요?”
처음으로 나스르의 입이 열렸다.
“아! 예. 지금 그랜트 감독님을 뵈러 갔습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회복되지는 않으셨지만, 이곳으로 오게 될지는 저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흠…….”
론 실버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나스르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나는 안중에도 없구나! 이제 알겠어. 나와 이야기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순간적인 표정 변화였지만, 론 실버는 그 안에서 나스르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눈치가 있었다.
동생을 대신해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론 실버 역시 표정의 변화를 주지 않으며 나스르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을 조심했다.
“경기장에 올 수 있을지 알아볼까요?”
“아닙니다.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면,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이유도 없어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지금 런던에 있다면, 맨체스터까지 올 이유도 없겠죠.”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말에 30분 만에 이루어진 대화는 뚝 끊겼고, VIP룸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흐르고, 창문 밖으로는 선수들이 라커룸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전반전이 종료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스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우웅 – 우우웅 – 우우웅 –
“나스르입니다.”
“하하! 맨체스터에 가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구단주와 감독이 만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형이 너무 심심해서 지루하셨더라도 여기까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공항입니다. 아마 경기가 끝난 다음에야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오! 아닙니다. 형제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하하!”
나스르가 론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휴?’
론은 나스르의 미소를 마주하며 들리는 내용으로 전화의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리 론이라 할지라도 표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분명히 나스르와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그랜트 감독의 병실을 찾아간 동생이었다.
굳이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전화를 걸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론 실버는 아까와는 전혀 달라진 나스르의 말투에 속으로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동생의 전화를 받는 나스르의 눈은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만족감과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잠깐 형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겠습니까?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좋으실 대로.”
“배려에 감사합니다.”
나스르가 한껏 부드러워진 자세로 전화를 끊었다.
우우웅 – 우우웅 – 우우웅 –
이번에는 론의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길게 울렸다.
나스르에게 양해를 구하고 VIP 라운지 밖으로 나오자 론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뭐야!?”
“구단주로서 책임을 다해야지.”
“나도 구단주다.”
“나스르가 인정하지 않을 거야.”
“후 – ! 그래서 하템 회장의 충고를 무시하겠다는 거야?”
“아니. 더 잘하려고. 무섭다고 도망치면 안 되지. 주인이 먼저 도망치는데, 내 밑에 선수들은 어떻겠어. 피하지 않을 거야. 아직, 묠니르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단단한 해머스이니까. 바로 맨체스터 공항으로 날아갈 거야. 하하하!”
론은 동생이 다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나스르의 눈에서 본 감정보다 지금 귀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더 자신만만하게 느껴졌다.
* * *
“좋아! 전반전은 잘 버텨 주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없겠지?”
“예!”
“내가 생각이란 것을 해 봤는데…….”
할스 감독이 묘하게 웃자, 맨시티 라커룸의 분위기가 긴장으로 물들었다.
감독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이해하기 힘든 전술 지시가 떨어진다는 것을 선수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훈련장이 아니라 후반전이 남은 라커룸이었다.
물론, 가끔 훈련장에서 준비한 것이 아닌 즉흥적인 전술 지시를 내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 할스 감독이 보여 주는 미소는 선수들을 긴장하게 할 정도로 짙었다.
“자! 자! 어려운 게 아니니까 긴장 풀고 잘 들어! 만일, 이게 성공하면 미구엘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
“미, 미구엘이요!?”
“축구의 신을 잡을 수 있다면, 한을 잡는 것은 당연하지!”
“감독님! 어서 말씀해 주세요!”
할스 감독의 말에 라커룸은 긴장에서 흥분으로 바뀌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감독님. 후반전은 우리가 공격할 차례입니다.”
“…….”
하지만 팀의 주장인 제임스 파머의 말에 라커룸의 분위기는 빠르게 식었다.
“그, 그래. 일단, 동점 골에 성공해야겠지?”
‘동점 골 먼저!’
파블로는 감독의 전술 지시를 떠올리며 주위를 훑었다.
‘도대체!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거지?’
양 팀 다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온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똑같은 선수로 다른 수비 진형을 갖춘 녀석들의 모습에 기가 찼다.
‘전반전에는 원래 즐겨 쓰던 4-1-3-2 형태로 맞섰다. 하지만 지금은 수비로 더 내려간 3-5-2. 여기서 우리가 공격의 속도를 끌어올리면, 바로 5-3-2로 바꾸겠지. 무엇보다 저 어린 홀딩 녀석이 쓰리백 안에 들어갔다는 게 걸려. 로빈의 멀티 플레이라면 순식간에 스위퍼에서 리베로가 되어 올라가 버린다. 카운터도 주의해야지. 발이 빠른 포워드가 두 명, 거기에다 더 빠른 날개까지. 한을 막아 보기도 전에 이대로 경기가 끝날 판이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치우가 들어온 웨스트햄을 가장 많이 상대한 팀을 꼽으라면 당연히 맨시티였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는 것을 반복하던 두 팀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현재 웨스트햄의 모습은 스리백에서 파이브백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진형을 갖추었다.
그 중심에는 조나단, 로빈, 데이비드 순으로 서 있는 쓰리백이었고, 리치와 페어가 윙백으로 올라가 언제든지 파이브백으로 합류할 수 있는 위치를 잡고 있었다.
중앙에는 릴과 한치우 마이크가 버티고 서 있었고, 하프 라인에는 아슈르와 찰스가 역습의 때를 노리고 있었다.
툭 – 툭 – 툭 –
맨시티의 미드필더들은 섣불리 전방으로 공을 밀어 넣지 못하고, 포백과 함께 공을 주고받으며 틈을 엿보고 있었다.
선제골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는 상황이 후반전이 시작되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뚫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경기는 이대로 끝이 나고 만다!’
척!
촤악 –
파바박!
파블로는 고민을 멈추고, 프레디가 밀어 주는 공을 발로 밟은 채, 몸을 돌리며 마이크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때를 맞춰 히카르두가 공을 받아 주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파블로가 빠진 중앙으로 프레디가 오른쪽 아웃라인을 따라 지몬과 페트릭이 동시에 움직였다.
한쪽 측면에서 확실한 숫자의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서 오른쪽 풀백인 조르주까지 오버래핑을 시도하면 오른쪽을 공략하는 맨시티의 공격 숫자만 다섯 명이 된다.
팟! 파박!
마이크를 속도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파블로가 오른발 바깥으로 공의 방향을 꺾었다가 앞으로 밀어내며 조금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툭 –
투웅!
그리고 데이비드의 옆에서 빠져나온 히카르두가 파블로의 발에서 떠난 공을 살짝 띄우며 페어의 키를 넘겼다.
그래도 노련한 페어는 바로 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지몬이 떨어지는 공을 잡는 시간에 데이비드의 위치를 확인하며 골대로 넘어갈 수 있는 각도를 좁혔다.
‘끝난 게 아니야!’
아직 한치우의 옆에는 프레디가 계속 시선을 끌어 주고 있었고, 마이크가 허겁지겁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수비를 도와주려고 중앙으로 움직이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빠르게 주위를 살핀 파블로는 페트릭과 함께 공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했다.
“빨리!”
툭!
지몬은 무리하게 페어의 안쪽으로 돌파하지 않고, 아직 상대를 만나지 못한 페트릭의 발 앞으로 빠르게 공을 연결했다.
“빨리! 빨리!”
‘지금 이쪽으로 중심이 쏠렸을 때 반대로 연결해야 해!’
고개를 홱홱 돌리며 사방을 확인하는 파블로의 외침이 간절하게 들릴 정도였다.
툭 –
촤아아아아 –
페트릭이 마이크가 뒤에서 붙는 것이 보이는 데도 파블로에게 공을 연결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파블로 역시 기대에 부응하며 굴러오는 공을 오른발 안쪽으로 감아서 도는 동작으로 방향을 바꾸며 마이크의 옆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왼쪽!?’
“조심!”
“뒤에!”
“뭐야!?”
파박!
파블로의 귀에 동료의 경고는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 언제!?’
촤악!
불쑥 나타난 아슈르의 모습에 시야 전체가 검게 물들어 버린 탓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고,
파블로의 오른발 앞에 놓여 있어야 할 공도 벌써 아슈르의 발로 넘어가 있었다.
툭 –
그리고 다시 공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힘차게 굴러갔다.
* * *
투 – 웅
파바바바바바!
“정신 차려!”
“젠장!”
파바바바바바 –
파바바바바바 –
‘좋았어! 아쉬!’
나는 외롭게 홀로 공간으로 굴러가는 공을 길게 밀어내며 더 넓게 비어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뒤로 들리는 맨시티 녀석들의 성난 외침과 쫓아오는 소리가 내 다리를 더 가볍게 해 주며 하프 라인까지는 육상 선수가 된 듯이 질주할 수 있었다.
파블로 녀석이 고맙게도 저 좁은 곳에 잔뜩 동료를 소집해 준 이유도 한몫했지만.
아무래도 시티즌 녀석들이 오랜만에 우리를 만나서 그런지 감을 잊은 것 같다.
‘할스 감독이 뭔가 따로 중요한 지시를 내렸겠지. 이제 아이언 실드는 공격수와 수비수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을 만큼.’
뭐,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이제는 앞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할 때.
멀리 골대에서 위고가 악을 쓰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뭐지?’
뭔가 있었다.
하프 라인을 넘어 하프 서클을 지나가고 있음에도 빨리 튀어나와 내 앞을 막아서는 녀석이 없었다.
찰스가 센터백 사이로 파고들며 시선을 끌어 준다고 해도 적어도 한 놈은 막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새끼들이?’
파악!
설마 하는 마음에 슛하는 동작으로 바꾸며 오른 다리를 슬쩍 뒤로 들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위고가 화들짝 놀라 뒤로 황급히 물러났고, 가브리엘이 커진 눈으로 나를 향해 튀어나왔다.
“안 돼! 멈춰!”
그리고 제임스가 가브리엘을 말리는 외침까지 들렸다.
‘일단, 넣고 생각하자!’
역습의 기회였다.
투웅 –
스아아아 –
가브리엘이 앞으로 튀어나와 준 덕분에 찰스가 옆으로 새로 생긴 공간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고, 내 오른발 인사이드에 맞은 공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잔디 위를 쓸었다,
저 녀석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이 공격은 반드시 골이 된다!
지금 찰스와 내가 보여 주는 움직임, 패스 연결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것도 같은 팀을 상대로.
‘뭐, 그때보다 더 쉽지.’
파바바바바 –
그래서 나는 골대를 향해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