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
1화. 돌아왔다.
‘돌아··· 온 건가?’
하얀색 석고로 만들어진 천장.
그게 곧 질문의 답이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저 독특한 물결 무늬의 패턴이 새겨진 석고판.
그게 바로 내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증거니까.
까딱.
한참이나 힘을 주고서야 겨우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
얼마나 누워있었던 건지, 감도 오질 않는다.
‘근육이 퇴화할 정도면··· 적어도 몇 달은 누워있었겠구나.’
급할 건 없다.
실험적인 마법은 결국 성공했고, 나는 돌아왔으니까.
교통 사고의 후유증이 있어도 상관없다.
지금 내게는 마나라는 무기가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여유도 생기고,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설마 정말로 트럭에 치여서 이세계로 가다니.’
아마 누구도 믿지 못할 이야기겠지.
아니, 어쩌면 정말로 그 모든 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꾼 꿈이었을 수도 있을까?
‘···그건 아니지.’
손끝에서 마나의 흐름이 이렇게 또렷히 느껴지는데.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지금의 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익숙하게 느껴지고 있다.
까딱.
아직은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움직여 순풍처럼 살랑이던 마나의 흐름을 살짝 뒤틀었다.
가만히 있어도 천천히 나아질 몸이지만, 지금은 그걸 기다리는 것조차 너무 아까우니까.
‘우선 일어나는 것부터.’
얼마나 누워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몸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 여기저기 막혀 있는 게 느껴진다.
심지어 신경이 손상된 부분도 있었다.
교통 사고 이후에 병원에 와서 수술을 했지만 미처 다 살리지 못한 거겠지.
‘이건··· 조금 천천히 치료해야겠네.’
억지로 마나를 이어 신경을 붙일 수도 있지만, 괜히 서두르다가 마나 중독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게 더 골치아프니까.
어차피 재활 기간이 필요할 테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치료하면 된다.
***
훌쩍.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낸 엄마를 마지막으로 가족들 모두가 드디어 눈물을 그쳤다.
“걱정시켜서 미안.”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뭐가 미안해. 이제 일어났으니까 다 괜찮아.”
“···병원비 많이 나왔지?”
사실 깨어나고 가장 걱정이 됐던 게 바로 병원비였다.
교통 사고였으니 보험이나 보상금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혼수상태 환자의 가장 큰 무서운 점은 바로 언제 깨어날 지 기약이 없다는 거다.
들어가는 돈도 돈이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었을 텐데.
돈 이야기가 나오니 엄마랑 아빠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갔다.
“넌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얼른 기운 차려서 일어날 생각이나 해. 알았지?”
“나 여기 얼마나 누워있었어?”
“육 개월.”
대답을 한 건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내 동생.
“넌···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 아냐?”
“지금 방학이거든?”
“여름 방학··· 은 아니겠네.”
가족들의 옷이 패딩인 걸 보면.
“보면 몰라? 당연히 겨울이지.”
내 인생에서 26살의 여름과 가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60년의 기억이 남았다.
‘···뭐, 이만하면.’
손해는 아니겠지.
***
“와, 진짜 말도 안되는 속돈데요?! 제가 재활 훈련사로 일하면서 이렇게 빠르게 회복하는 분은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젊어서 그런 가 봐요.”
재활 훈련사의 말에 어색하게 답을 했지만 이건 진심이다.
물론 마나의 힘이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노인의 육체에 익숙했던 내게는 정말 색다른 감각이었으니까.
‘이게 젊음이구나.’
처음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어린 아이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는 그저 꿈인 줄 알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던 몸에 적응하는 데만 꽤 걸렸을 정도였고, 적응을 한 뒤에도 어딘가 계속 어색함을 느껴야 했다.
그 뒤로도 무려 60년을 살았지만 마지막까지 내 몸이 아니라는 감각만은 여전했으니까.
‘이게 진짜 내 몸.’
우스운 말이지만, 이제야 진짜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온 몸에서 전해지는 감각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기분이 얼마나 짜릿한지, 아마 다른 사람은 알 길이 없겠지.
한 번 잃어봐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이 정도면 다음 주부터는 통원하셔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세 달은 재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재활 훈련을 시작한 지 고작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입원비를 아낄 수 있다는 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너무 평범함에서 벗어나면 위험한데···.’
사람들이 만에 하나라도 마법을 의심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튀어나온 못은 결국 망치를 얻어맞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래도 경과가 너무 좋아서 괜찮을 것 같아요. 혼자 다니는데도 무리 없어 보이는데··· 맞죠?”
“···어느 정도 괜찮긴 합니다.”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70% 정도는 치유가 된 상태다.
혼자 걷는 건 물론이고, 가벼운 조깅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보면 통원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인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추적 검사는 계속 해야 합니다. 특히 수술한 다리는 꾸준히 검사받는 게 좋아요. 후유증 생길지도 모르고.”
“네, 꼭 명심할게요. 감사합니다.”
***
한 번 정해지고 나니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혼수상태에서 6개월 만에 깨어났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 끌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금세 가라앉았고.
퇴원 수속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다.
“여기도 이제 안녕이네.”
“왜? 그새 정이라도 들은 거야? 아쉬워?”
“임설!”
동생은 그 말을 하고 결국 등짝을 한 대 맞아야 했지만,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는 제법 가벼워졌다.
“이제 짐은 다 챙긴거지? 난 차 가지고 갈 테니까, 애들이랑 정문 앞으로 내려와.”
“응, 알았어.”
아빠가 먼저 한 손에 짐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가장 홀가분한 상태인 나는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봤다.
내게는 6개월이 아니라, 60년의 세월을 보낸 장소라는 기분도 들어서 묘하게 아쉬운 기분인 것 같기도 하고.
“···훗. 아쉽기는 개뿔.”
드륵-.
다시는 올 일이 없다는 듯, 문을 닫았다.
“이제 집에 갈까?”
엄마가 살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 손을 드디어 잡을 수 있게 됐다.
60년 만에.
***
불과 6개월 전의 모습이었을 내 방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이곳에 돌아오기로 마음 먹었을 때, 불안감은 있었다.
만약 죽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그곳에서도 다른 몸에 들어갔으니 어쩌면 돌아와도 엉뚱한 사람의 몸을 빼앗는 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영혼인 채로 떠돌거나, 최악의 경우엔 소멸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뭘 혼자 중얼거려?”
여동생이 들어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왜?”
“엄마가 오빠 도와줄 거 없나 들어가 보래서··· 근데 보통 몇 달은 재활 한다던대, 오빤 너무 빨리 퇴원한 거 아냐?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줄곧 툴툴거리기만 하던 녀석이지만 그래도 걱정은 된 모양인지.
“괜찮으니까 퇴원했지. 당분간 병원은 계속 다녀야 하지만.”
“···다행이네. 참, 오빠 병원에 있는 동안 컴퓨터는 내 방으로 옮겼어. 필요하면 다시 갖다 줄까?”
“게임하려고 가져간 건 아니지?”
그런 이유라면 다시 가져오려고 했는데.
“나 이제 고3 이거든? 인강 들으려고 가져간 거야.”
“그럼 괜찮아. 계속 써.”
“진짜지?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다?”
목적이 있어서 온 거였나.
내 허락에 설이는 웃으면서 다시 방문을 나섰다.
“도와주려고 왔다며?”
“내가 도와줄 거 있어?”
“···없어.”
“힛, 그럴 줄 알았어.”
엄마! 오빠가 도와줄 거 없대!
설이는 그렇게 소리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 왜 조금 허전한가 싶었는데, 컴퓨터가 있었던 자리가 휑하다.
“선우야.”
“응?”
이번에는 주차를 하고 뒤늦게 집으로 온 아빠가 찾아왔다.
“컴퓨터가 없어서 허전하지?”
“아니, 괜찮아.”
“설이 녀석이 가져가 버려서··· 주말에 같이 사러 갈까?”
당분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신세이니 컴퓨터가 필요하기는 하다.
심심함을 달랠 용도도 있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혼자 건너 뛰었으니 그간 있었던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인터넷을 뒤지는 게 가장 빠를 테니까.
하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비쌀 텐데···.’
그런 내 걱정을 눈치챈 건지.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그건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럼··· 그냥 중고로 살게.”
“중고로?”
전자 제품, 그 중에서도 특히 컴퓨터 같이 민감한 제품들은 중고로 사지 않는다.
그게 내 철칙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6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순위를 바꾸기에 충분한 기간이었으니까.
“어차피 게임을 할 것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쓸 거니까. 그렇게 좋은 건 필요없을 것 같아서.”
사양이 낮아도 상관없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는 건 결코 원치 않으니까.
“자, 받아.”
“카드는 왜?”
“컴퓨터 산다며. 그리고 혹시 필요한 일 있을 때 쓰고.”
“···응.”
27살이나 되어서 부모님의 카드를 쓴다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지금 내 처지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
나중에 보답을 할 시간이 있을 거다.
분명 그렇게 믿었다.
***
저녁 상에 올라온 건, 엄마의 된장찌개.
이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냄새만 맡았는데도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을 정도로.
오랜만에 잡는 젓가락이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가?’
추측이긴 하지만 꽤 그럴 듯 했다.
실제로 나는 생각보다 이곳에 빠르게 적응을 했으니까.
마치 다른 세계에서 보낸 시간들이 정말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도 집중만 하면 당장 눈 앞에 일렁이는 마나의 흐름이 없었다면 정말 그렇게 믿었을 지도 모르지.
“자, 선우야. 이것도 먹어봐.”
흑미를 조금 섞어 보랏빛이 감도는 따끈한 밥 위로 얹어지는 갈치 구이 한 조각.
가운데 부분에 두 줄로 이어지는 두툼한 부위다.
아마도 갈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괜찮아. 내가 먹을게.”
“됐어. 엄마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넌 얼른 먹기나 해.”
설이와 아빠의 눈치가 살짝 보이지만 그래도 좋다.
오래 이어져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런 호사를 조금 누려도 되지 않을까.
부드러운 갈치의 살과 고슬한 밥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참, 아빠 회사는 어때요?”
“응? 아, 회사? ···하하, 공장이야 늘 똑같지 뭐.”
어라, 이거 반응이 조금 이상한데?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삭막하게 식사를 하지도 않았었다.
근황도 궁금해서 가볍게 물었던 건데,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나 동생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이고.
‘뭐가 잘 안 풀리나?’
아빠는 작은 공업소를 경영하고 있다.
소규모로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곳이라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해오셨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제법 평판이 좋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상황은 6개월 전이지만.
“왜 그래요? 혹시 공업소가 어려워요?”
“그런 거 아냐. 넌 걱정할 것 없어. 아빠가 다 알아서 해결을···.”
“여보.”
“아, 크흠. 아무튼 너는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건강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 알았지?”
“···네.”
아빠의 입에서 해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은 분명히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데.
‘삼촌들한테 전화해 볼까···.’
공업소 일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빠와 함께 오래 일하신 분들은 안다.
두 분 모두 아빠에게는 형제와 다름 없는 분들이고, 가족 행사나 명절이면 늘 얼굴을 봐왔던 분들이니까.
아무래도 내일은 컴퓨터보다 우선 핸드폰 개통을 먼저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