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인텔 (1)
여유롭고 한가한 나른한 토요일 오후.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은 딱 하나다.
병원을 다니면서 건겅을 회복하는 것.
“진짜 놀랍네요. ···이 정도면 학회에 보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그저 회복 속도가 남들보다 조금 빠른 것 뿐인데요.”
“이건 조금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그럼 이제 병원은 더 이상 올 필요 없는 건가요?”
얼른 말을 돌렸다.
의사가 진짜 학회에 보고를 한다고 하기 전에 말이다.
“솔직히 전 최소한 일 년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네, 이 정도면 앞으로 매주 병원에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아, 그래도 만약에 어디가 불편하거나 수술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면 언제든 바로···.”
“네, 그때는 바로 올게요.”
“그래도 정말 대단하네요. 수술 부위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고, 이게 정말 엄청난 건데···.”
“그럼 다음에··· 아니다. 이제는 안 뵙는 게 좋은 일이겠네요.”
당연한 결과긴 했지만, 그래도 확답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더 편안해 졌다.
내가 건강해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
“정말? 이제 다 괜찮대?”
“그래.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세요.”
병원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가장 먼저 부모님에게 전화로 알려드렸다.
수화기 너머로 살짝 물기에 젖은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이 살짝 아려온다.
트럭에 치인 게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간 말도 못할 정도로 걱정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내가 조금 더 주의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인생에서 6개월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지는 않았겠지만,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이런 능력도 없었겠지.’
눈 앞에서 내 손짓을 따라 노니는 바람처럼 아른거리는 마나.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하니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집으로 바로 올 거야?”
“아뇨. 잠깐 들를 곳이 있어서요.”
엄마는 굳이 어딘지 묻지 않았고, 나도 자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오늘 외출은 병원에 검사를 받기 위함도 있지만, 솔직히 진짜 목적은 이거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인기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실제 현장의 상황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었달까.
병원에서 나와 곧장 용산으로 향했다.
일명 드래곤 마운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
진짜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네.
***
“와, 사람이 이렇게 많아?”
주말 오후.
용산은 늘 그렇듯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라 교복을 입지는 않지만 한 눈에 봐도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게임에 진심인 어른들까지 한 마음으로 모여드는 곳.
“뭐 찾으세요? 싸게 해드릴게요.”
“여기저기 다녀봐야 똑같아. 일단 들어와서 상담만 받아보라니까요.”
반말과 존대, 협박과 회유가 교묘하게 뒤섞인 말투.
아직은 나를 학생으로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동네이던가.
호객 행위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문득 익숙한 모양의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이건···.”
“아, 쿨러 찾으시는 구나? 이거 쿨링 마스터라고 요즘 제일 인기 많은 쿨러죠. 성능이 아주 작살 나요. 우리 가게도 다 팔리고 이거 하나 남은 거에요.”
“잘 나갑니까?”
“말도 마요. 쿨링 마스터 없으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사람들 천지니까. 아예 정가보다 더 높게 받고 파는 곳도 많아요. 그래도 우리는 양심적인 가격만 받으니까 걱정 마시고.”
[쿨링 마스터]영성 실업과 계약하면서 디자인이 조금 변경되어서 마법진까지 수정해야 했다.
마법진이라는 건 전체적인 외형이 변하면 그에 맞춰서 조금씩 변형이 필요하니까.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물론이고, 내부의 형태까지 완벽하게 숙지해야만 제대로 작동하는 마법진을 그릴 수가 있다.
‘내가 몰라 볼 수가 없지.’
문득 궁금했다.
영성 실업에서 과연 이 쿨러를 얼마에 팔고 있을까.
“이건 얼마나 합니까?”
“크흠. 우린 진짜 양심적인 가격만 받아요. 현금? 카드? 현금으로 하면 딱 109,000원에 드릴게.”
무슨 홈쇼핑도 아니고, 가격을 왜 저렇게 받지?
게다가 생각보다 가격이 꽤 비싸다.
“보기보다 비싼데요?”
“모르는 소리. 얼마 전까지 공랭 쿨러에서 대장이라고 불리던 애들이 암살자나 녹서스가 있었는데, 얘 나오자 마자 죄다 찌그러졌어요. 걔들보다 성능은 훨씬 좋은데, 가격은 더 싸니 당연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비싼 건 절대 아니지.”
“성능이 그렇게 좋아요? 그래봐야 쿨러가···.”
“평소엔 비슷해. 근데 얘는 오버클럭을 해도 온도를 기가 막히게 잡아요. 그게 진짜 신기한 일이지만··· 아무튼, 성능은 진짜 미쳤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안돼.”
‘오버클럭?’
CPU는 출고 당시 성능에 제한을 둔다.
그 제한을 일부 해제해서 출고 시의 성능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걸 오버클럭이라고 하는데, 성능이 오른 만큼 발열이 높아지면서 수명이 짧아지곤 한다.
컴퓨터의 성능과 수명을 맞바꾸는 셈인데, 그 이유가 바로 발열이다.
하지만 만약 성능을 올리면서도 수명이 짧아지지 않는다면?
‘···이거였구나.’
어쩐지 조금 찜찜하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쿨러에 전기 에너지를 마나로 변환하는 마법진을 새겨넣었는데, 그게 문제의 발단이었던 거다.
성능을 높이면서 소모되는 전력이 높아지고, 변환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면서 냉각 마법도 덩달아 강해지게 된 거다.
“형, 이거 안 살거죠? 아저씨, 이거 저 주세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쿨링 마스터의 박스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누가 말할 새도 없이 불쑥 내밀어지는 돈.
정확히 11만원이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그래도 먼저 온 손님이니까, 결정권은 드려야지.”
“전 괜찮습니다. 이 학생한테 파세요.”
“다른 데 가도 이제 이건 못 구해요. 아마 다음 주나 되야 추가 물량 나온다는데,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알지.”
“전 정말 괜찮아요.”
집에 많거든요.
***
집에 오자마자 우선 인터넷부터 켰다.
저절로 손이 간 사이트는 국내 최대 컴퓨터 플랫폼인 다와라.
거기서 쿨링 마스터 제품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세상 쿨러가 아니다.] [쿨링 마스터]홈페이지의 메인 배너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광고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 쿨러가 아니라니.
‘깜짝 놀랐네.’
진짜 이 세상 기술로 만든 쿨러가 아니라 괜히 뜨끔했다.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저런 촌스러운 카피가 나왔을지 내심 궁금해 하면서 상품 리뷰 페이지로 들어갔다.
판매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수백 건이 넘는 리뷰가 달렸다.
-쿨링 마스터 써본 사람? 이거 성능 실화냐?
-120mm팬 하나인데, 대체 어떻게 이런 온도 유지가 가능한 거지? 누가 설명 좀 해봐.
-이과 애들은 꼭 이럴 땐 조용하더라.
-현재 한국대 컴공과 재학중이다.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거 만든 사람 마법사임.
이번에도 살짝 뜨끔하긴 했지만, 이런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없겠지.
마우스 스크롤을 더 내렸다.
한참을 내리면서 댓글을 훑어봤지만 부정적인 의견은 거의 없었다.
‘이 속도면··· 곧 추가 발주한다고 전화 오겠는데?’
정확히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산에 물건이 떨어져서 못 팔 정도라면 시중에 풀려있는 재고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아마 공장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어도 곧 연락이···.
우웅-.
“와, 이 아저씨 진짜 양반은 못 되시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국에 양반은 없겠지만.
“네, 임선우입니다.”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죠?”
목소리가 한결 밝다.
얼마 전에 대만에서 왔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오늘은 주말인데?
설마 주말에도 일하는 건가?
“하하. 주말에도 회사를 나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이제 알았네요.”
“네?”
이욱기 과장, 혹시 영성 실업 대표의 아들인가? 아니면 적어도 사돈 정도는 되나?
그렇지 않고서야 받는 월급이 뻔한 직장인이 주말까지 반납하고 회사에 나갔다고 즐거워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 저희 추가 발주 가능한 거죠?”
계약서 상으로는 300만 개의 방열핀으로 끝이지만, 구두 계약도 엄연한 계약.
이제와서 그걸 어길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이죠. 근데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완성품으로 5만 개의 쿨러다.
나 역시 이제 컴퓨터 부품 시장에 발을 디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돼서 나름 조사를 해봤는데, 한국에서 한 해에 판매되는 컴퓨터는 대략 500에서 600만 대.
그 중에서 절반이 랩탑(노트북)이긴 하지만, 데스크탑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3~4년에 한 번씩 교체한다는 건 최신 성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다는 말이다.
일 년에 200만대가 넘는 컴퓨터가 조립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5만 개가 그렇게 많은 게 아니긴 하네.’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가격이 있는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쿨링 마스터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영성 실업이 중소 기업이라는 점도 그렇고, 애초에 오버클럭을 하지 않고 기본 쿨러만 사용하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니까.
“절대 서두르는 거 아닙니다. 벌써 50% 이상은 출고가 완료됐고, 남은 것도 대부분 예약이 끝났어요. 서두르지 않으면 품절 사태가 올 겁니다.”
‘용산에서는 이미 품절이던데···.’
아직 모르는 건가?
아니면 그 때문에 주말에도 회사에 나온 건가.
“생각보다 빠르네요.”
팔리는 속도가 아니라, 생산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300만 개를 전부 납품한 게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벌써 5만 개의 쿨러를 제조하고 한편으로는 대만에 박람회 참가도 하고.
다와라에서 보니 한국 내에서도 상당한 홍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할 정도로 영성이 튼실한 기업이었나 싶기도 하고.
“저희도 사실 놀라는 중입니다. 물론 처음 샘플을 봤을 때부터 자신이 있긴 했는데··· 솔직히 이 정도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거든요.”
“방열핀 생산을 계속하고 있긴 한데··· 우선 30만 개 단위로 납품을 할게요.”
꽤 많은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겨우 5천 개.
이욱기 과장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사장님, 혹시··· 기계를 더 늘리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 부분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아직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대에 수억을 넘어가는 기계 가격도 가격이지만 영성 실업과의 계약 하나만 보고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된다.
‘성광 산업 사태를 경험해 봤으니까.’
만약 이 능력이 아니라면 내가 어찌할 수 없었을 상황.
그저 기다리면서 기도만 해야 하는 상황을 다시 겪는 건 결단코 사절이다.
‘이미 충분히 겪어봤어.’
그런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린 아이의 몸에서 깨어났던 경험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기계는 조금만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 그건 또 그렇죠? 제가 너무 성급했나 봅니다. 이거, 저보다 더 생각이 어른스러우시네요.”
“그런 건 아닙니다. 혹시 변경이나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지금이야 물건을 만드는 건 우리지만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 물건을 유통하는 영성 실업이니까.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항상 중요한 법이다.
“지금도 너무 평이 좋은데요. 아직 개선할 부분은··· 아, 그보다 혹시 인텔에서 연락은 없었습니까?”
“네, 딱히 없었어요.”
“이상하네요. 그 때 분위기로 봐선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들이밀 기세던데.”
“하하. 설마요.”
상대는 초거대 글로벌 기업인 인텔이다.
컴퓨터에서 빠질 수 없는 부품인 CPU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고, 최근에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 시장까지 진출했다.
그런 곳에서 고작 쿨러 하나 때문에 호들갑을 떨 이유는 어딜 봐도 없다.
‘그래도 연락처를 받아갔으니까.’
연락이 정말 올까?
솔직히 조금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특히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 공정이 점차 세밀해지면서 발열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쿨링 시스템 역시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실정이고.
이제는 얼마나 열을 빠르게 잘 식혀줄 수 있는 지가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할 정도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흐음. 그렇게 생각하면 욕심이 날 법도 한데.’
직접 눈으로 보고 샘플까지 사갔으니 분명 테스트를 했을 거고.
“아하.”
연구 중이구나.
아마 샘플로 구매해간 쿨러를 뜯어서 연구를 하고 있으려나?
하지만 뜯는 순간 마법진은 무용지물이 되고, 다시 조립한다고 해도 작동하지는 않을 텐데.
‘그 사람들, 골치 좀 썩겠네.’
그게 연구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