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주인을 무는 개 (1)
지난 번에는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에 마리아 회장이 함께였지만, 오늘은 두 사람만의 독대.
인도 음식점이 아니라, IBM 본사 근처에 있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클럽 라운지였다.
“오랜만이네요.”
“네. 지난 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아마도 이건 비서였던 제니가 정보를 인텔에 팔았던 것에 대한 사과.
회장이 모든 직원들의 개인사까지 관여할 수는 없겠지만, 제니는 다름아닌 카밀라 회장의 비서였다.
그녀가 미안해 하는 건 당연하지만, 굳이 이제와 따질 마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알지 않나.
“괜찮습니다. 직원들이 참 제 마음같지가 않죠.”
“그래도 설마 오마르 회장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은 정말이지···.”
같은 업계에 오래 있다보면 경쟁자여도 친분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IBM과 인텔은 컴퓨터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들이고, 온갖 풍파를 겪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감이라는 게 생겼을 거다.
아주 좋은 사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은연중에 서로를 인정했을 게 분명한 그런 사이.
비록 늘 공정한 경쟁을 해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가 최후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기에 충격은 컸을 거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늘 그보다 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하죠.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지만,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이기도 하니까요.”
“훗. 꼭 저보다 더 오래 산 사람 같네요.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우선 본론부터 이야기 할게요.”
“네.”
어차피 제니의 일은 이미 마무리됐다.
인텔은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서로 자료를 공유해가며 조사하는 중이고.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 마무리를 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언제고 서로에게 마음의 짐으로 남았을 이야기이게 치워버린 것.
물론 직원의 잘못이었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겠지만, 서로가 앞으로 이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말자는 의미였을 뿐이다.
“오늘 뵙자고 한 건··· 반도체 설계에 양자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해서 입니다.”
역시.
예상대로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카밀라의 입장에서는 꽤나 고심하고 꺼낸 이야기겠지만, 솔직히 처음에 1만 큐빗의 양자 컴퓨터를 부탁했을 때부터 이런 시점이 올 거라 생각했던 것도 있다.
“전혀 놀라지 않으시네요.”
“네, 뭐···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컴퓨터는 0과 1의 숫자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2진법 4자리로 이뤄진 단위를 4비트라고 하고, 0부터 15까지 16개의 수를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8비트는 0부터 255까지의 256개 숫자를 표현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걸 보통 바이트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컴퓨터의 경우에는 한 자리에 0이나 1,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표현이 가능하지만, 양자는 0과 1을 동시에 가지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병렬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를 말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건 관측을 하기 전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양자의 상태를 어떤 식으로든 ‘관측’하게 되면 양자는 그 성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계산을 할 수는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 과정을 절대 관측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점]흔히 특이점이라고 부르는 시점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여 이해와 통제를 벗어나는 시점을 말한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지는 시기가 바로 인공지능이 다시 인공지능을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인공지능의 성능과 능력이 급증하기 시작하면 인간이 그간 쌓아온 에측과 경험이 무용지물이 되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바로 지금이 그 시작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 달라는 사람한테 양자 컴퓨터의 성능이 필요하다니 제가 생각해도 황당한 요구네요.”
양자 컴퓨터는 사실 반도체라고 할 수는 없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를 제어할 수 있는 게 반도체이지만, 양자 컴퓨터는 전기 저항 자체가 없는 초전도체 소자로 이뤄져 있으니까.
양자 상태를 저장할 수 있는 슈퍼컨덕팅 큐비트.
지금 IBM에서 사용하는 양자 컴퓨팅 방식이다.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슈퍼컨덕팅 루프 내에서 복잡한 회로를 이루면서 자기장이 양자의 얽힘 상태를 조작하는 것으로, 하나의 크기가 마이크로 미터 단위의 초전도체 소자다.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그 회로 설계이겠지.
“2나노 미터를 기준으로 루프의 회로를 설계했는데,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루프가 얽히면서 회로의 연산 검증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양자 컴퓨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회로는 완성 했지만, 그걸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내가 부탁한 작업이니 이 정도 도움은 주는 게 맞다.
그걸 말하는데 뭘 이렇게 어렵게···.
‘아마 다른 곳에도 판매할 생각으로 이러는 거겠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판매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판매하는 건 어려울 거다.
지금 판매중인 양자 컴퓨터도 결국 중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텐데.
뭐, 중력이야 우주 공간에 만들면 해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극저온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전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딜레마가 생겨난다.
물론 언젠가는 모두 해결할 수 있을 날이 오겠지만, 당장은 요원한 일이지.
“그 정도 도움은 드리는 게 맞죠. 돌아가면 바로 리소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바로 해드릴 수 있겠네요.”
“여기서 지금 바로요?”
“네, 잠시만요.”
‘아라야, 이야기 들었지?’
– 네, 마스터. IBM 서버를 통해 카밀라 회장 개인에게 회선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 네, 이미 완료됐습니다.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암호같은 것도 필요없다.
회선이라는 것도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이고, 누가 접속하고 어떤 작업에 리소스를 사용하는지는 아라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제어까지 하고 있으니까.
“됐습니다. 단, IBM 서버를 통해서만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쉽게 도와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후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 급한 사람은 저니까요.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아니겠습니까.”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마다 양자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지금 있는 양자 컴퓨터는 이제 곧 만들어질 신제품에 비하면 계산기 수준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다고나 할까?
“그럼 저는 언제쯤 물건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막 회로 설계가 끝났을 뿐이에요. 우선 한국의 일성전자와 2나노 공정에 대해 이야기도 해봐야 하는데, 만약 그쪽에서 거절하면 TSMC에서 개발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그건 걱정마세요. 일성에서 제안을 거절할 일은 없을 테니까.”
이런 생각하면 안되지만, 왠지 2나노 공정 기술은 이제 내가 마음대로 써먹어도 될 것 같아.
***
이수용 회장이 일성전자의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세워진 일성 핵융합 연구소.
그곳에 조용하게 진동음을 내고 있는 커다란 핵융합로 앞에는 오늘도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이미 완성된 설비이지만, 이들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소장님,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지금 토카막 내부 압력 수치 보이십니까? 무려 1조 하고도 4500억 파스칼입니다.”
“이 놈아, 나도 눈이 있으니 보인다.”
“이 입력을 수심으로 따지면 1만 미터도 넘는다는 말인데, 우리가 설계한 토카막으로는 이 정도 압력을 절대 견딜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어허, 나도 알고 있다니까 이놈이 자꾸···.”
연구원은 소장의 반응이 답답한지 고개를 휘저으면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이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니까요?! ···아버지!”
딱-!
“소장님.”
“···아유! 제발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소. 장. 님!”
“왜 말이 안돼. 압력이 설비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플라즈마에만 영향을 주면 가능하지.”
“그건 더 말이 안되죠. 세상에 그런 기술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있긴? 지금 네 눈으로 보는 건 뭐냐.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과학은 발전하지 못하는 법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으면 그걸 인정하고 따라갈 줄도 알아야지.”
원론적인 이야기에 연구원은 답답할 지경이지만, 뭐라고 대꾸를 하지는 못했다.
소장의 말이 정답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건 너무 한참 벗어난 것 아니에요?”
“옛날에는 인공태양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과연 상식이었을까?”
“그거야···. 아우, 진짜 미치겠네. 그럼 도대체 이게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작동 방식은 뭔지. 그런 거라도 알려줘야죠.”
과학이라는 건 대부분 이론이 먼저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숫자와 문자들로 이뤄진 공식을 이용해 이론을 증명하고, 수많은 논쟁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연구가 진행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학회에 발표를 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본 후에 실험을 진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의무는 아니다.
“···언젠가는 알려줄 날이 오겠지. 이런 건 보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냐.”
“그래도 핵융합로를 관리해야 하는 우리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그걸 안다고 고장이 나지 않을까. 쯧쯧- 차라리 직접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알려달라고 빌어보던가.”
그런다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가서 골백번이라도 꿇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그리 쉽게 알려줄까?
‘그럴 리가 없겠지.’
앞으로도 30년은 더 지나야 겨우 상용화가 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게 바로 핵융합이다.
주변에서 천재 소리 꽤나 들으며 자란 사람들 수백, 수천이 모여서 밥 먹고 연구만 해도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한 사람이 혼자서 몇 달도 되지 않아 뚝딱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과학자도, 전공 분야를 공부한 사람도 아닌 사업가가.
사업가인 사람이 돈이 되는 정보를 공유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넌 그래도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다행이 아니냐. 죽기 전에는 궁금증을 해결할 가능성이 높으니.”
“···아버지도 참, 여기서 그런 말을···.”
딱-.
다시 꿀밤을 때린 연구소장은 어딘가 느긋해진 표정이 되어 말했다.
“소장님.”
***
이제는 두 사람의 공식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린 레스토랑.
오늘도 역시 우리 두 사람만이 음식과 와인을 함께 즐기고 있었는데, 지난 번에 왔을 때 문득 떠올렸던 계획을 말해봤다.
“여기에 집을 구하려고?”
“응. 아무래도 앞으로도 자주 오게 될 것 같고, 늘 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별로라.”
“으응···.”
미국에 집을 구한다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표정이 별로다.
리아는 뉴욕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데, 나는 캘리포니아에 집을 얻는다고 해서 그런가?
뉴욕과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는 완전히 반대 편이니까.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뉴욕에는 딱히 갈 일이 없다.
데카 랩이 뉴욕에서 제법 가까운 뉴햄프셔 주에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 내가 직접 갈 일도 거의 없어졌고.
“왜? 별로야?”
“그게 아니라··· 나도 얼마 전에 비벌리힐스에 집을 구했거든.”
“아, 그랬어? 잘 됐네. 그럼 나도 그 근처로 알아보면 되겠다.”
그 말에 리아의 귀여운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음··· 사람들한테 너무 눈치 보이려나?”
“···자기야.”
“으, 응?”
아는 사람은 안다.
지금 리아가 부른 자기야는 달콤하게 연인을 부르는 단어이지만,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걸.
“우리 집 넓어.”
“···우리 집?”
아, 여기는 개방적인 미국이었지.
미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