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사업자를 내는 방법 (1)
단순히 내 물건을 해체해 연구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건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거든. 진짜로.
문제는 그런 일을 해놓고도 자신들이 아직 내 위에 있다는 듯 내려보는 듯한 저 거만한 자세다.
-우리가 이미 여기까지 알아냈으니 곧 모두 밝혀낼 수 있다.
그 말을 정확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숨겨진 뜻을 내가 모를 리가.
내가 기분이 상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말로는 자기들이 잘못했다고는 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는 거.
“···좋아요. 단순히 예뻐서 은을 사용했다니, 믿어야겠죠. 어차피 제가 임선우 씨를 찾아온 이유는 그게 궁금해서가 아니었으니 상관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기술력을 팔 생각은 없다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성급하게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네요. 이유야 어찌됐든 가격이라도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팔 수가 없단 말이다.
뭐라 설명을 못하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다.
‘기초 마법진이긴 하지만··· 가치가 얼마나 되려나?’
사실 쿨러에 쓰인 마법진은 두 가지 마법진을 중첩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기초 중에서도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법진을 처음 배울 때, 연습 삼아 그릴 정도라고나 할까.
비록 그런 마법진이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작은 혁신을 일으켰다.
그래서 문득 궁금하기는 하다.
얼마나 할지.
“좋아요. 가격이나 들어보죠. 어차피 팔 생각은 전혀-.”
“500만 달러를 드리죠.”
···500만 달러?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50억이 훌쩍 넘는 돈이다.
물론 환율에 따라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인은 숫자만 들어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금액.
한국에서는 중소 기업에서 신기술 하나를 개발하면 어떻게든 대기업에 빼앗기고 만다고 한다.
그도 아니면 거의 헐값을 주고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거나.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지 않나?
소송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것 하나까지 법의 심판에 맡기는 곳이고, 일단 패소했다하면 수십, 수백 억은 우습게 뚜드려 맞는 곳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큰 금액도 아니네.’
역시, 이 여자는 아직도 날 자기 아래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500만 달러를 부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기대했나 본데.
“너무 싼 거 아닙니까? 인텔에서는 겨우 그 정도 수준의 기술로 보고 있었나 보네요.”
“700만 달러 드리죠.”
“안 팝니다.”
1억 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지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
···물론 팔 수 있으면 팔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어차피 쿨러에 쓰인 마법진이야 아까울 것 없으니 50억으로 가족들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근데 생각하니 또 열받네?’
처음부터 500만 달러 이상을 생각했으면서도 간을 본 것 아냐.
진짜 영성 실업의 이욱기 과장과는 천지 차이다.
아니, 이욱기 과장이 이상한 건가?
어쨌든 이제 이러면 이제 팔 수 있어도 안 팔고 싶어지지.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시네요. 이건 팔아도 그쪽에서 사용을 못한다니까요.”
“그건 저희 쪽 연구진이 해결할 수 있어요.”
쓸모없는 소모전이 이어진다.
말이 700만 달러지, 계획만 잘 세우면 평생 놀고 먹을 수도 있는 돈이다.
실제로 우리 가족들이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편하게 살면 충분하다 싶은 마음으로 크게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긴 하지만, 막상 눈 앞에서 억 단위의 돈이 오가니 조금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조금.
“그럼 계속 연구해 보세요. 특허 신청도 안 됐는데, 그렇게 자신있으면 알아내서 신청하시면 되겠네요.”
“···인텔의 연구진은 세계 최고예요.”
“네네, 알죠.”
내가 나온 지방 대학이랑은 비교도 안되는 명문대를 졸업한 수재들이 잔뜩 모여있을 테지.
안소영 대표는 내 심드렁한 대꾸에 잠시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고.
“좋아요. 그럼 협업은 어떠세요? OEM이라면 공업소에서 흔히 진행하는 방식이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그건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네? 어째서죠?”
어째서기는.
내가 만든 마법진을 어떻게 할 건지야 내가 결정할 수 있지만, 공업소 경영이나 계약에 참견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빠의 영역이고, 그 영역을 침범하고 싶지 않으니까.
‘뭐야,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고 온 건가?’
확실히 뒷조사를 한 건 아닌 모양이네.
“그야 제가 영일 공업소 사장이 아니니까 그렇죠.”
“대표가··· 아니라고요?”
안소영 대표의 표정이 만남 이후 처음으로 변했다.
***
“선우,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네? 뭐가요?”
지금 막 조리해서 따끈한 소고기 장조림 속에 메추리알.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의 장조림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아빠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녀석, 다 알면서 모른 척은. 인텔 말이다.”
“벌써 공업소로 연락이 갔어요?”
“연락이 뭐냐, 사무실까지 찾아왔었는데.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더라.”
“와··· 대단하네.”
행동력 지리네.
그럼 뭐야, 나랑 헤어지자마자 공업소로 처들어간 건가?
미국에서 자랐지만 빨리빨리 한국인의 피는 어디 가지 않았나 보다.
‘하긴 그러니까 그 나이에 대표까지 올라갔겠지.’
얼마 전까지 인텔코리아는 그저 인텔의 한국 지부 정도라고만 생각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부품의 소비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인텔에서 내세운 전략적 혁신을 위해 세웠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공대 출신의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여성으로서 핵심 지부의 CEO 자리까지 올랐다는 건 그만큼 남다른 행동력 덕분일 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내 생각보다는 네 생각이 중요할 것 같은데. 일단 결정은 보류하기로 했다.”
“전 아빠가 하자는 대로 할게요.”
“갑자기 인텔이 왜 나와? 거기 유명한 회사잖아.”
“인텔이라면 엄마도 들은 적이 있는데?”
메추리알을 열심히 젓가락으로 집다가 포기한 건지, 숟가락 위에 간장에 물든 메추리알을 올린 설이가 대뜸 물었다.
회사 이야기는 원체 잘 하지 않는 아빠라 엄마도 관심을 보였다.
인텔이라는 이름이 워낙에 유명하기도 했고.
“인텔에서 우리한테 OEM요청을 해왔거든.”
무심하게 뱉은 아빠의 말에 두 사람은 잠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름 컴퓨터로 게임을 즐겼던 설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주부이긴 하지만 인텔이라는 회사 정도는 알고 계셨으니까.
“···인텔이, 그 인텔? 내가 아는 그 외국 회사?”
“응, 맞아.”
“그렇게 큰 회사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는 말이야?”
“아직 결정한 건 아니야.”
아빠는 지금 어떤 심정이실까?
사실 나는 그 부분이 제일 걱정된다.
“아빠, 근데 그걸 왜 오빠한테 물어봐?”
“이번에 인텔에서 연락 온 이유가 선우가 만든 물건 때문이거든.”
“오빠가 뭘 만들어? 오빠가 그런 것도 할 줄 안다고?”
이 녀석은 대체 평소에 나를 어떻게 보고 있던 걸까.
문득 궁금하네.
나중에 진지하게 남매 간의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대단한 뭘 한 건 아니고, 작은 아이디어였는데, 그게 운이 좋게 맞아 떨어진 거야.”
“오오, 그래도 대단한 거 아냐? 그 인텔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면.”
“아빠야 아무래도 좋은데, 괜히 네가 그 일 때문에 바빠지면 건강이라도 해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마 거기랑 계약하게 되면 영성 실업에는 물건을 납품하지 못하게 될 거 같아요. 저는 그건···.”
영성 실업에는 고마운 마음이 크니까.
배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관계가 끝나는 건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아빠도 같은 마음이 아니셨을까?
“알았다. 인텔에서 한 제안은 거절하마.”
욕심이 나지 않으셨을 리가 없다.
인텔에서 받을 수 있는 돈도 돈이지만, 그로 인해 영일 공업소의 이름이 알려지게 될 테니까.
아마 아빠가 한 마디만 하셨더라면 나는 따랐을 거다.
영성 실업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쪽에는 다른 식으로 도움을 주면 되는 일이고.
그런데도 한 마디도 의견을 내지 않으셨다.
‘묻지도 않으시네.’
아빠는 철강 업계에서 이미 30년을 넘게 일하신 분이다.
영성 실업에서 만든 쿨러가 비상식적인 성능을 냈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걸 모르실 리가 없는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
언젠가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함께 소주 잔을 기울이고 싶다.
***
“···거절? 그쪽에서 거절했단 말야?”
“네. 조금 전 메일로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안소영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커다란 회사도 아니고, 그런 작은 공업소에서 천하의 인텔에서 한 제안을 거절한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가져와야겠네.”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니.
따라주는 수 밖에.
“···어떻게 할까요?”
목적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안소영이다.
장 비서는 그런 자신의 상사가 어떤 성격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영일 공업소랑 거래하는 업체들 리스트 전부 가져와. 아, 그리고 대만에 왔던··· 영성 실업이라고 했나?”
“박람회에 참가했던 업체 말이군요.”
“그래. 거기 대표한테 연락해서 조만간 식사 한 번 하자고 하고.”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장 비서.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알겠습니다.”
대기업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안소영이란 사람이 어떻게 이 자리에 올라왔는지.
영일 공업소는 아직 모르고 있다.
***
인텔에서 사람이 찾아왔던 이후로는 꽤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공업소는 영성 실업의 주문으로 이전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설이는 고3이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산책이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인 사람 같았고, 엄마는 여전히 편의점과 집을 오가셨다.
그렇게 낮에 집에서 거의 혼자 있으니 겨우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제야 겨우 시간이 생겼네.”
병원에서 깨어나고, 재활 훈련을 끝내기가 무섭게 터져버린 공업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퇴원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날씨는 더 추워졌고, 그 사이 몇 번이고 내린 눈에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산은 여전히 하얗게 보일 정도다.
그제서야 인터넷을 뒤적이며 6개월 간의 세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별히 시간 별로 정리를 해가면서까지 볼 필요까지는 없어서 그저 너튜브와 초록창에서 검색을 하면서 뒤적이는데, 문득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AMD, 인텔에 선전포고 하나?]최근에 인텔과 묘한 신경전을 겪어서 그런지, 인텔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기사라기 보다는 칼럼에 가까운 글이었는데 꽤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AMD의 상승세를 느낄 수 있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PC(Personal Cumputer)라고 하면 대부분 인텔의 프로세서가 장착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2010년을 지나면서 AMD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형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기자가 AMD에게 어느 정도는 호의를 가지고 쓴 글인지, 그 뒤로도 AMD에 대한 회사 소개나 제품군, 현 시점에서 회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한 평가까지 이어졌다.
[독점하다시피 했던 인텔의 프로세서 비중이 점차 줄어들면서 AMD에서 본격적으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는 AMD의 마리아 수 대표는 이미 미래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반도체 디자인의 혁신에 앞장 설 준비를 마쳤다며 자신감을···.]확실히 아직 인텔이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AMD의 기세가 최근 남다르긴 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CPU는 무조건 인텔이지’ 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되려 어떤 면에서는 AMD의 CPU를 채용하는 게 더 좋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니까.
정말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는 충분히 인텔과 대등한 경쟁 구도를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뭐, 나랑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거대한 육식 공룡 두 마리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다툼을 벌이는데, 나 같은 초식 동물이야 멀리서 구경이나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웅-.
짧은 문자 도착음과 함께,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녕하세요. AMD 코리아에서 연락드립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통화 가능하십니까?]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혹시 누가 여기 CCTV라도 달아둔 건가.
그게 아니면 대체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락을 할 수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