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문래동 캐슬 (2)
공장의 안쪽은 붉은 벽돌 덕분에 삭막하기까지 보이는 바깥과는 너무 상반되는 곳이었다.
일부러 촌스럽게 보이려고 외관을 그렇게 만든 건가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의도적으로 똥칠을 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은 이상에야···.
“어떠냐? 이만하면 썩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서울 한 복판에 이런 공장이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해봤어요.”
기계가 가득한 공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 공장 가동이 전부 중단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4층 높이로 지어진 공장은 절반은 일반적인 건물처럼 층으로 나뉘고, 나머지 절반은 거대한 기계도 들어갈 수 있도록 중간에 층이 없도록 건설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진짜 거대한 쇼핑몰이나 백화점을 만들어도 어울릴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게.
겉으로 보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호석 삼촌도 건물 내부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우리 두 사람은 서울에 막 올라온 촌사람처럼 어르신을 따라가며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여기가 바로 서버실이다.”
보안키와 지문 인식을 통해 들어가는 서버실 안에는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나 보던 그 음료 자판기 같이 생긴 거대한 컴퓨터가 늘어서 있었다.
“머시닝센터나 자동복합 CNC선반의 미세 조정도 원격으로 가능하도록 구축했지. 언제까지 산업용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만 생산해서야 뒤쳐질 게 뻔하니까. 만약에라도 외부에서 해킹이 있을 걸 대비해서 사내 인트라넷으로만 연결된 서버에 실시간으로 백업을 하도록 해놨다.”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현장에서 뛰었다고 하지만 80세가 넘은 노인이 서버 보안을 이렇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게다가 나는 알지도 못하는 단어가 오가기 시작하니 이 자리에 있는 조금 창피할 지경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서 중간이라도 가야겠다.
어르신의 조용한 설명과 함께 건물의 마지막 층까지 도달했다.
“자, 여기가 내가 쓰려고 만든 사무실이다. 여차하면 회의도 할 수 있게 만들었지.”
기계가 설치된 구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도록 통 유리창으로 된 사무실 한쪽에는 와인과 양주가 구비된 와인바가 놓여있고, 그 반대편의 공간에는 족히 20명은 앉을 수 있어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작업 구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유리창의 바로 앞에는 출입구를 바라보도록 내 침대보다도 커 보이는 책상이 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그룹 회장실 같네요.”
천장에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지는 않지만 벽이며, 천장에 쓰인 마감재는 인테리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꽤나 고급스럽다는 게 느껴질 정도니까.
“큼! 그냥 늙은이 취향이라고 생각하거라.”
확실히 전체적인 분위기가 젊지는 않다.
어딘가 중후한 멋을 풍기는 회장님이 앉아 있으면 딱 어울릴 듯한 공간.
하지만 등 뒤로 거대한 기계들이 작동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꽤 멋지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육중한 덩치에서 거대한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어째서 이런 구조로 지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비슷했었지.’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살짝 스치고 지나가고 나니 어르신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솔직히 너무 마음에 든다.
건물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리적인 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디 문래동에 철강 산업이 자리를 잡은 이유가 뭔가.
따지고 보면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한국 전쟁이 끝나고 문래동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물류의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차가 다니는 영등포역과 가까우면서, 동시에 화물선이 지날 수 있는 한강과도 가까운 곳.
지금이야 한강으로 지나다니는 화물선이 많이 없지만, 여전히 바지선을 비롯해 꽤 다양한 화물선이 지나다닌다.
철은 무겁고 값이 싼 재료인데다 대량으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운을 통해 운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철강 산업이 발전하기에는 이 정도로 지리적으로 좋은 곳을 찾기 힘들다.
“어떠냐?”
“정말, 너무 마음에 듭니다. 특히 내부가 동선이나 업무에 효율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거, 보는 눈이 있어.”
오성락 어른신은 그 말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 내 평생의 노하우가 저 건물에 전부 녹아들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적어도 한국에서라면 이 오성락보다 철강 산업에 대해 잘 아는 놈은 없으니까.”
정말 마음에 쏙 들긴 하지만 문제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부족한데···.’
건물의 크기와 근처에 있는 창고까지 생각했봤을 때, 적어도 수천 평 이상의 규모.
내부 설비까지 계산해보면 이건 500만 달러가 아니라 1,000만 달러가 한 번에 통장에 꽂힌다고 해도 어림도 없다.
AMD가 아무리 돈이 많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무런 성과도 없는 이에게 수천 억 규모의 지원을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렇게 요구하기에는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지.
“저, 어르신. 그··· 매달 임대료는 얼마나 할까요?”
방금 전까지 기분 좋은 웃음을 짓던 인자한 할아버지 같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을 뿐인데.
‘뭐야··· 내가 뭘 잘못 한 건가?’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호석 삼촌을 쳐다봤는데, 삼촌이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뭔가 잘못을 하긴 했구나.
‘근데 뭘 잘못한 거지?’
그걸 모르겠다.
“크흐으음! 이번 만남은 없던 일로 하지.”
“···네?”
아니, 지금 몇 시간동안 건물 구경시켜주고 이제와서 없던 일로 하자니.
관심도 없던 옛날 추억여행 이야기까지 참고 다 들어줬는데요!
설마 건물을 대여해 주려고 보여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자랑하려고 불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르신! 잠시만요.”
“할 말 없다.”
······.
뭐 저런 황당한 노인네가 다 있지?
전설이고 나발이고 쫓아가서 따지고 싶어진다.
대체 뭐가 불만인 거냐고.
“선우야,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어르신은 내가 쫓아가 볼게.”
“어··· 네에. 잠깐만요. 삼촌, 근데 제가 대체 뭘 잘못한 거예요?”
“이건 네가 잘못한 건 아니고, 저 양반 심보가 꼬여서 그런 거야. 하여튼 노인네 성질하고는··· 아무튼 집에가 있어. 삼촌이 전화할게.”
걸음도 어찌나 빠른지, 삼촌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달려서 쫓아갔다.
황당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저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만의 고집이 생기는 법이다.
굳이 다른 사람과 생각을 맞추며 살지 않게 되는 시기.
한 마디로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
호석 삼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어제 뭘 잘못한 건지.
조금 황당한 이유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도 되고.
“그러니까, 돈을 내라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 어차피 돈이야 쌓아놓고 사는 양반이라 관심이 없다는 게 맞을 거다. 그 분은 그냥 능력있고 젊은 네가 문래동에서 자기가 이룬 철강 산업의 뒤를 이어주길 바라는 거야.”
“대체 절 뭘 믿고요?”
나에 대해 아는 게 있긴 한가? 어제 처음 만났는데.
“나도 설마 만나자마자 널 거기로 데려가실 줄은 몰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 선우 널 보고 한 눈에 마음에 들어하신 모양이야.”
“무슨 소개팅도 아니고, 첫눈에 반하는 게 말이 되요?”
징그럽게.
“어제 내가 쫓아갔더니 이 말을 하시더라.”
“무슨 말이요?”
[이제 죽을 날 받아놓고 보니, 아무것도 남길 게 없더란 말이다. 어디 쓸만한 놈을 하나 앉혀서 철강소나 물려줄까 싶었더니 생각나는 게 네놈 셋이었다. 영일이 놈, 만호 놈에 너까지 딱 셋. 근데 이미 제 앞길 잘 찾아서 살고 있는 놈들 꼬시자니 어째 찜찜하더란 말이지. 근데 마침 그때···.]“제가 나타난 거란 말이죠?”
“그래. 거기다 네가 이번에 만들었던 방열핀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계셨더라. 사실 어제 오라고 한 것도 내가 부른 게 아니라, 어르신이 먼저 널 보자고 하셨던 거였어. 넌 그냥 타이밍 좋게 전화를 한 거고.”
그래서 어제 바로 문래동으로 오라고 했던 거구나.
이건 뭐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어도 느려서 답답하다고 할 정도로 급한 성격이네.
“근데 네가 갑자기 거기서 돈 이야기를 꺼내버리니까···.”
“그럼 그냥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씀을 하셨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만약 저런 건물을 공짜로 쓰게 해달라고 했으면, 아마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하셨을 걸요?”
“하하, 그건 그래. 그 분 성격이면 아마도 그랬을 거다.”
아마 그땐 또 어린 놈이 싹수가 노랗다느니, 돈에 눈이 뒤집혔다느니 했을 거다.
뭐, 민감하다면 민감한 금액 이야기를 너무 급하게 꺼낸 나도 잘못했다면 한 거지만, 그런 문제야 말로 처음부터 확실히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삼촌, 그 어르신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응? 조금만 더 지나서 보면 어떻겠냐? 지금은 만나봐야 역효과만 날 것 같은데.”
“아뇨. 그러다 저 꿀단지를 다른 놈한테 뺐기면 어떡하고요.”
무려 무료 임대다.
작은 상가도 아니고, 어지간한 상가 건물 정도는 압도할 정도로 커다란 건물.
안에 설비는 또 어떻고?
아마 정식으로 임대를 한다면 한 달에 수십 억을 내도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 눈 앞에 왔다가 멀어질 판인데, 손가락 빨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분도 아무한테나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야.”
“그렇겠죠. 아무리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생판 남한테 큰 돈을 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만나야 한다.
이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아마 단순히 문래동에서 철강 산업이 사라지는 것만 바라는 건 아닐거란 예감이 든다.
정말로 원하는 게 그거 하나라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물려줄 사람 하나가 없을 리가 없지.
늦기 전에 그게 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삼촌, 혹시 공장에···.”
***
어르신과의 약속은 바로 다음 날로 잡혔다.
최대한 빠르게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바로 내일이라니.
다시 만나기 전, 우선 문래동의 상황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문래동 재개발 박차 가하나?] [시공사 선정 후보에 한국 대형 건설사 네 곳 모두 신청] [한국 철강 산업의 중심지였던 문래동, 과거의 영광으로 남는다.]문래동은 재개발 이슈로 잡음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중이다.
우선 소공인들이 하나 둘 빠지면서 그 자리에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하는 음식점이나 카페, 공방들이 자리를 채우는 중이다.
예술의 거리라는 별칭까지 생겨나면서 젊은 층의 방문도 늘었고.
덕분에 동네가 조금 활기를 찾는 듯 보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다.
사람들이 아직은 잘 찾지 않는 구석진 곳에는 여전히 어렵사리 철강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 철강소에 대부분의 일감을 빼앗기긴 했지만, 소규모의 주문 제작은 여전히 수요가 있으니까.
그 중에서는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은 젊은 사람들도 꽤 된다.
특수 산업용 기계나 의료 기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처럼 수요가 많지 않으면서도 세밀한 공정이 필요한 일에는 여전히 대형 철강소에서는 불가능해서.
“의료 기기에 들어가는 부품 생산도 많구나.”
철강 산업이라고 해도 저마다 특색이 있다.
영일 공업소가 열처리와 금형을 이용해 방열핀을 비롯한 단순 부품 생산을 주력으로 삼듯이.
정밀 성형을 통해 소량 생산만 하는 곳도 있는 셈이다.
그렇게 기사를 찾아보면서 조금이지만 철강 산업에 대해 조금씩 지식을 쌓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날.
호석 삼촌에게는 둘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걱정하시는 듯했지만, 이것만은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
“크흠.”
어르신은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날처럼 얼굴이 구겨진 상태는 아니다.
그저 ‘나 지금 화났다’라고 말하는 꼬마 아이같은 상태라고 할까.
귀여우시네.
“이렇게 다시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자고 한 용건이나 말하거라.”
“우선 그 날은 제가 건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급한 마음에 어르신의 생각도 듣지 않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그 말에 조금 표정이 풀어졌다.
용서를 구해서인지, 건물에 대한 칭찬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크흠! 거, 젊은 패기에 마음이 앞설 수도 있지. 신경쓰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래··· 건물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더냐?”
“철강 제조에 관해 문외한에 가까운 제가 보더라도 얼마나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썼는지 느껴질 정도였어요. 특히, 사무실에서 공장 구역이 내려다 보이게 만든 것에 감탄했습니다. 현장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거리감을 없애려고 그렇게 만드신 거겠죠?”
“호오. 그걸 알았어?”
소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무려 5중으로 강화 유리를 쓴 것이 단순히 전경을 위해서라면 말이 되질 않지.
성격과는 별개로 일에 관해서는 정말 진심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들었다는 건물.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있나.
“거길 보고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이 원하시는 게 단순히 철강 산업의 명맥을 잇는 것 만은 아니겠구나 하구요.”
“그럼 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지?”
보고 싶다고 했었다.
문래동에서 시작된 철강 산업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장 앞서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그 영광의 시절.
수 백의 직원이 일해야 제대로 돌아가게 될 공장을 짓고, 첨단 기계 설비까지 두루 갖춘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봤고, 결론은 하나 밖에 나오질 않았다.
“보고 싶으신 거겠죠. 문래동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말이죠.”
아무런 말도 없는 어르신의 눈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는 걸.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를 더해 쐐기를 박았다.
“제가 보여드리죠. 아니, 아마 저밖에 보여드리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