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26
26화. AMD (7)
푸우우욱-.
하얀색 방진복에 고글, 마스크, 장갑까지 착용한 채로 에어샤워를 마치고서야 겨우 입장한 클린룸은 말 그대로 깨끗했다.
온몸을 흰색으로 돌돌 말아둔 복장에 주변도 온통 하얗게만 보이는 게 상당히 어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워서 불편한데, 무엇보다 옆에서 날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이 참 묘하다.
마치 1등을 빼앗긴 2등의 질투 가득한 눈빛?
전부 가려져서 겨우 눈 부위의 주름과 피부색으로 인종이나 나이 정도만 유추할 수 있었다.
“저기, 선생님?”
“선생님은 무슨, 그냥 셰퍼드라고 부르게.”
“···그럼 셰퍼드. 전에 사용했던 쿨러 좀 보여주실래요?”
“물론이지.”
셰프드가 테이블에 올려둔 건 파이프에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의 방열판이었다.
바닥은 순수한 구리에 니켈을 도금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파이프를 연결해 냉각수만 부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방열판의 크기는 공랭 쿨러에 비해 확연히 작았다.
“기계 작동법만 설명해 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한다고 했다지?”
“네.”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
수십 년간 공기 역학을 연구하면서 AMD의 방열판과 냉각팬을 담당했던 사람이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동양 남자한테 자신의 역량을 시험받는 기분이 드는 걸지도.
‘뭐, 내가 이해해야지.’
“보기엔 단순하지만 굉장히 예민한 기계야. 대강 사용법만 배운다고 하루 만에 쓸 수 있는 그런 기계들과는 다르다고.”
“괜찮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 다시 물어볼게요.”
“···이게 마이크로 미터 단위로 금속 성형이 가능한 장비라는 건 알고 있겠지? 여기 보이는 화면에 수치를 입력하고, 여기에서 정확한 위치 좌표를 설정하면···.”
설명은 나름 길었지만 결론은 제법 간단했다.
세공이 필요한 부분의 위치를 지정하고 깊이를 입력하면 마이크로 미터 단위로 성형된 구리 방열판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홈에 마법진을 구성하는 니켈을 부어주면 완성이다.
어차피 원래도 니켈 도금이 되어 있던 부분이라 겉으로 봐서는 티도 나지 않을 거다.
“지금 당장 PLC 제어까지는 필요없으니 간단하겠지만, 과연 한국에 돌아가서도 할 수 있을까?”
“괜찮아요. 거긴 저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 있으니까요.”
“···흥!”
나름 공대를 나온 터라 PLC제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가 그런 복잡한 제어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하지만 지금 문래동에는 평생 쇠를 다루며 살아온 사람들이 우글거리는데?
그 중에서는 PLC제어를 전문적으로 했던 이들도 있고, 이미 오성락 어르신이 건물을 지을 때부터 자동화를 염두에 둔 곳이다.
“그럼 잘해보라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으니 난 이만 나가서 기다리지.”
셰퍼드가 나가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방열판에 손을 살짝 얹어봤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구리판.
이 작은 판 안에 상당히 복잡한 빙결 마법진을 새겨 넣어야 한다.
아마 얼마 전의 나였다면 감히 여기다 빙결 마법을 집어넣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은으로는 절대 완성할 수 없으니까.
방열판의 옆에 놓인 금속.
성형이 끝난 구리로 된 방열판의 홈에 열처리를 한 뒤에 부어서 마법진을 구성할 금속, 니켈이다.
니켈의 위에 손을 얹자 아주 희미하게 온기가 느껴졌다.
‘미스릴 정도는 아니지만···.’
이미 한국에서 테스트까지 해본 결과, 은보다는 분명 효율이 높았다.
미스릴과 은, 그 엄청난 간격의 어디 쯤에 존재하는 듯한 니켈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다.
희소 금속 중에서 고작 3개를 테스트를 했는데 그 중에서 마나를 품을 수 있는 금속을 발견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다.
‘돌아가면 희토류나 다른 희소 금속도 빨리 연구를 해봐지.’
이러다 정말 미스릴 수준의 금속을 발견하면 그때는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걸릴 지경이다.
***
삐익-.
컴퓨터에서 나는 오류 신호에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아직도 겹치는 거냐?”
빙결 마법과 전기 에너지의 마나 변환 마법진.
거기에 니켈이기에 그나마 가능한 마나 증폭 마법진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몸집을 키운 마법진은 이미 영성 실업에 납품하던 방열핀의 마법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져 있었다.
하나만 하나만 그려도 복잡한 마법진을 세 개나 중첩하려니 겹치는 경로가 너무 많아서 이미 수십 번을 넘게 수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입력한 경로를 체크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기초 오류 검사를 하는 작업에만 수십 명이 달라 붙어서도 며칠은 걸렸을 일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태블릿을 들고, 다시 마법진을 살폈다.
단순히 겹치는 선을 지우고 옆으로 옮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공간이 워낙 협소한 것도 있지만, 마법의 난이도가 상승하면서 2차원이었던 마법진이 3차원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일정한 폭을 유지했던 냉각 지속 마법과는 달리, 원근감이 생기면서 새겨넣어야하는 마법진의 폭이나 깊이에도 변화가 오니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후우···.”
잠시 머리를 식히러 밖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뭐하세요. 다들?”
설마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심지어 설이는 반쯤 잠에 빠진 상태였고.
권석영 대표와 레이는 그런 설이와 함께 있어주느라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제가 호텔에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도 굳이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하셔서···.”
“지금 몇 시죠?”
“이제··· 2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오후가 훌쩍 넘어서 연구실에 들어갔으니 낮은 아니겠네.
벌써 새벽이라니, 시간이 이렇게 흐른지도 모르고 있었다.
거기다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회장님, 안 바쁘세요?”
“집에 가도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리고 이왕이면 완성된 순간을 함께 맞이하고 싶기도 하고.”
“죄송해서 어쩌죠?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겠는데요.”
조금 자만 했었나.
마이크로 공정을 처음 시도하면서도 나라면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은 대체 왜 생겼던 건지.
“으음··· 오빠, 끝났어?”
“그래. 오늘은 일단 가서 자고, 내일 다시···.”
“아악! 그건 절대 안돼! 오빠, 무조건 오늘 끝내자! 응? 내가 도와줄게. 뭐하면 돼?”
“어, 어?”
자다 일어난 사람 눈이 왜 이렇게 희번득거리는 거야.
놀이공원이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 건가?
“이게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나도 머리를 좀 식히고 와야···.”
“흐잉···. 그럼 난 또 내일 하루종일 여기서 기다려야 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슬퍼하니 조금 미안하긴 하다.
한국에 돌아가서 해결해도 되긴 하겠지만, 이왕 시작을 했는데 그냥 가는 건 똥싸고 뒤 안 닦은 것처럼 찜찜할 것 같고.
이래저래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었는데.
“임선우 대표님만 괜찮으시면 동생 분은 제가 내일 시내 구경을 시켜드리면 어떨까요? 놀이동산도 잠깐 들리고.”
레이의 말에 설이의 고개가 번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그, 그럴래?”
차마 이것도 안된다고 말은 못하겠네.
그랬다간 한국에 돌아가서도 두고두고 욕할 것 같아.
“응!”
“역시 하루 만에 완성을 하기는 무리였나요?”
“사실 작업 자체는 거의 끝났습니다. 마지막 조정이 조금 필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좀 오래 걸리네요. 지난 번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업이어서.”
“혹시 AI의 도움을 받아도 어려울까요?”
AI라.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우선 AI에게 마법진에 대해 학습을 시켜야 하는데.
“그건 어려워요. 무엇보다 학습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하긴, 임선우 대표만의 기술인데 유출될 우려도 있겠네요.”
아무리 마리아 수 회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눈 앞에 욕심나는 물건이 보이면 마음이 동하는 법.
“죄송합니다.”
“아뇨. 당연한 일인데요. 오히려 쓸데없는 꺼내서 제가 죄송하죠.”
“연구실은 내일까지 제가 사용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오실 때까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조치해둘게요.”
레이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 뒤, 정말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는데, 문득 설이가 물어왔다.
“근데 오빠, 언제부터 영어를 그렇게 잘했어?”
“응?”
“아니, 어제 보니까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 오빠 원래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잖아.”
원래 통역 마법은 말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다.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에게 언어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지만, 조금 손을 봤다.
마법이 당연한 곳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어도, 이곳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주변 사람들이 대번에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영어 하나 밖에 변환이 안되게 됐지만···.’
모든 언어, 심지어 외계인을 만나도 소통을 할 수 있었던 마법이 단순화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시간을 내서 더 업그레이드하면 되는 일이고.
“글쎄? 막상 해보니까 되던데?”
“···그게 말이 돼?”
“외국어는 자신감!”
설이가 모닝빵을 입에 물고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오늘 레이 씨 너무 귀찮게 하지 말고, 말 잘 들어. 알았지?”
“걱정마. 내가 애도 아니고.”
“너 애 맞거든?”
“주민등록증도 있다, 뭐.”
“아무튼··· 자, 이건 가지고 있다가 혹시 필요한 일 생기면 쓰고.”
그래도 미국에 왔는데, 주머니에 돈 한 푼도 없으면 괜히 위축될까 싶어서 천 달러를 건넸다.
너무 큰 돈인가 싶은 느낌도 있는데 구경하다가 사고 싶은 게 생길 수도 있으니까.
“와아! 고마워, 오빠! 오빠가 최고다!”
가증스러운 녀석 같으니.
레이의 차를 타고 나는 AMD의 본사에서 먼저 내렸다.
“어제도 얼마 못 주무셨을 텐데, 제 동생 때문에 죄송해서 어쩌죠.”
“원래 잠을 많이 자는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게 제 일인데요.”
원래는 반도체 설계팀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안내인 역할을 하면서도 불만이 하나도 없는 건가.
“그럼 오늘 제 동생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동생 분은 걱정마셔도 됩니다.”
탁-.
차 문을 닫고 돌아서자 이번에는 권석영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담스럽게 뭘 또 마중까지 나오시고 그런데.
“회장님은 오전에 회의가 있어서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오후에는 시간을 내서 연구실에 들른다고 하시네요.”
“그러실 필요는 없고, 완성되면 제가 연락드린다고 전해주세요.”
괜히 방해를 받으면 집중력만 흐트러진다.
“그러겠습니다. 그럼 바로 연구실로 가실 겁니까?”
“네. 일초가 아까운 상황이니까요.”
미국에 온 지 벌써 3일째다.
원래 일정이었다면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겨서이긴 하지만 시간을 더 지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가시죠. 연구실은 어제 임선우 대표님이 나간 이후로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제 떠났던 그대로였다.
혹시나 싶어서 문에 마나로 흔적을 남겨뒀는데, 그대로인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생각도 했었는데.
“자, 그럼···!”
고개를 한 번 꺾어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선을 그리고, 지우고, 수정하기를 수십 번.
수 없이 겹치던 마법진의 선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가며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마치 깨진 자동차 유리처럼 복잡하게 얽힌 선들이 잠깐만 집중력을 흐트러뜨려도 길을 잊을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런 마법진이 세 개가 중첩되면서 겹치지 않도록 해야하는 건 확실히 어려웠지만.
띵동-.
컴퓨터에서 처음 듣는 맑은 종소리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 몸을 길게 걸쳐 앉았다.
그 상태로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후- 이제 테스트만 하면 되네.”
니켈로 도금된 방열판은 잠시 두고, 마법진의 경로 검사를 했던 컴퓨터의 하드는 빼냈다.
어차피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최소한의 조치는 필요하니까.
끼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어제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마리아 수 회장까지.
“표정을 보니 완성하셨나 보네요.”
“네. 그래도 마지막 테스트가 남아있으니 안심할 수는 없죠.”
“글쎄요.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실패할 것 같단 생각은 안 드는데요?”
마리아 수 회장이 웃으며 말했고.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안 바쁘세요?”
어째 어제부터 이 말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건물 안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뭐, 그건 그렇네요. 다들 들어오시죠. 셰퍼드, 테스트 준비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지.”
나이 지긋한 선임 연구원을 이렇게 부려먹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권석영 대표와 마리아 수 회장보다 쫄따구(?)인 사람이 당신 뿐인 걸 어쩌나.
그렇다고 외부인인 내가 설치는 것도 우습고.
위이잉-.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자, 냉각수가 들어간 펌프가 특유의 고주파 음을 내며 작동을 시작하고, 라디에이터에 달려있던 팬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잉···.
그런데 힘차게 잘 돌아가던 팬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
뭐지?
“이거 갑자기 왜 멈추죠?”
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의 표정이 마치 판에 찍어낸 듯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PWM 제어 기능 때문입니다···.”
이 아저씨가 왜 이렇게 말끝을 흐려.
그런데 나는 PWM 제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내 표정에서 그게 다 드러났는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마리아 수 회장이 설명해줬다.
“한 마디로 말하면 냉각팬이 돌 필요도 없을 수준까지 냉각수의 온도가 낮다는 소리죠.”
고장난 게 아니면 됐지, 뭐.
“아무리 올레핀이 섞인 냉각수지만 이 정도 온도까지 떨어지다니, 생각보다 더 성능이 대단한데요? 셰퍼드, 이제 일반 냉각수로 교체해 줘요. 만약 정말로 70도··· 아니, 80도 수준만 유지할 수 있어도 대박입니다!”
마리아 수 회장의 부름에도 셰퍼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석상처럼 굳어버린 듯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셰펴드?”
두 번의 부름에야 겨우 고개를 돌린 그는 어딘가 고장난 듯한 표정이었다.
약간 울먹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웃는 건가?
“저··· 이게 지금 일반 냉각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