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처음은 역시 (3)
세세한 분야는 직원들에게 맡길 수 있지만,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 하는 내가 알아야만 한다.
골렘을 만드는 것처럼 돌덩어리에 마석을 박아넣으면 끝인 것과는 다르기에, 나 역시 공부가 필요했다.
그나마 저쪽에서 기간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도움이 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인지 기술에 들어가야 하는 센서도 필요하겠구나. 소프트웨어야 공개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쓰면 될 것 같고···.’
로봇에 대한 책을 사고, 인터넷에서 관련 논문도 찾아봤다.
그리고 인정해야 했다.
내가 로봇 공학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하는 걸.
‘그나마 제어 기술은 마법진으로 대체해도 되겠네.’
가장 어렵다는 신체 밸런스 조정에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미 오성락 어르신에게 보여주면서 한 번 해본 적도 있고, 인간의 체형을 쏙 빼닮았던 기간트를 제작할 당시에도 많이 사용했던 마법진이니까.
‘크기가 커지고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으려면 그보다 복잡해야겠지만 이건 가능하겠어. 우선 뼈대랑 근육만 완성하면···.’
AMD에서 만든 CPU에서 조금 손을 보면 에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울 정도의 인공지능 탑재가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AI를 구성하는데 있어서는 CPU보다 오히려 GPU의 역할이 크니, 그 부분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엔비디아에 꽤 기술력이 쌓였을 텐데···.’
AMD역시 GPU에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래픽 카드 분야에서 AMD는 엔비디아에게 한 수가 뒤쳐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단순한 개인용 컴퓨터 뿐 아니라, 엔비디아에서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GPU를 이용한 AI를 이용한 자율 주행이나 게임 속 NPC의 인공지능 구현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자료를 받을 수 있으면 엄청 도움이 될 텐데···.’
내가 아닌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게 확실한데,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엔비디아에 몰래 침입해서 자료를 빼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마리아 수 회장한테 부탁해 볼까?’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면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과연 해줄까?
상대는 AMD의 가장 큰 적이자, 경쟁 업체인데.
CPU에서는 인텔에 밀려 2위, GPU에서는 엔비디아에 밀려 2위.
나라는 존재와 손을 잡은 덕에 만년 2위라는 꼬리표를 땔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을 게 분명한 사람이, 과연 이런 기회를 경쟁자와 공유하려고 할까?
‘···물어라도 보자.’
두 사람의 번호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AMD코리아의 권석영 대표.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는 있겠지만, 정작 결정권은 없는 사람.
그리고 본사의 CEO인 마리아 수 회장.
결정을 내릴 권한은 있겠지만 한 번 이야기를 꺼내면 되돌 릴 수 없다.
‘뭐, 어차피 모 아니면 도지.’
내 선택은 마리아 수 회장.
마침 시차도 괜찮은 시간이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임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연락을 주셨네요.”
“그랬나요? 무슨 일 때문인데요?”
마침 상대 쪽에서도 볼 일이 있었다니 오히려 잘 됐다.
이걸 들어주고 나면 이야기를 꺼내기가 수월하겠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임선우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응? 설마, 아니겠지?
이 정도면 살짝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
“미국에 또 가시는 겁니까? 다녀오신지 얼마 안됐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번에는 엔비디아에서 보자는데, 마침 우리도 볼 일이 있었으니 잘 됐죠. 그래도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다녀올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쪽에서 과연 그런 조건을 거기서 받아들일까요?”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느낌이지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AMD가 그렇듯, 엔비디아 역시 골머리를 썩히는 제품이 있는 것 같으니까.
정 안되면 AMD의 자료를 받으면 되는 일이고.
아직 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니 저쪽의 애간장을 조금 태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린 조금 시간을 끄는 것이 더 낫다.
“참, 그리고 어르신께서 일간 공장에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성락 어르신이요?”
왔다 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또 오겠다는 거지?
바라는 게 있으니 건물을 빌려준 것도 알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감사드리지만 너무 잦다.
혹시 날 압박하려는 의도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어째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오늘 오후에 일정 없죠?”
“오후 2시에 클린룸 시공사에서 설계 도면 최종 확인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을 직접 확인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4시에는 AMD코리아에서 마이크로 성형 장비의 설치로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이건 개발 팀장님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어르신과 약속 잡아주세요.”
“네. 대표님.”
건물을 무료로 임대해준 것에는 감사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를 볼 수는 없다.
‘이번에 아주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겠어.’
하지만 오후에 찾아온 오성락 어르신의 용건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자리에 앉은 뒤 뜬금없이 시작된 가족사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우선은 듣기로 했다.
“전쟁으로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 남으로 내려오면서 마누라가 그렇게 먼저 가고, 한국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고선 철공소를 시작했다. 그나마 북에서 배운 기술이라곤 그것 뿐이라,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지.”
비슷한 연배의 어른이 들었다면 눈물 바다가 되었을 듯한, 구구절절한 사연들.
당시 핏덩어리에 가까웠던 두 아이들을 내리고 오성락 어르신이 남으로 내려온 것은 전쟁 막바지인 1954년.
많은 이들이 오간 시절이지만, 목숨을 걸고 내려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내려와 차린 게 바로 ‘오공 철공소’
어느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듣고 있었지만,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지?’
1954년에 태어났다면 이미 70세가 넘은 노인이다.
어르신이 아무리 젊었을 때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당시에는 결혼식이라는 것도 없었어. 그냥 집안 어른들끼리 이야기해서 정해주면 같이 사는 거지. 당시 아내는 고작 16이었고, 나도 겨우 17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때는 나이가 17만 넘으면 죄다 군인으로 끌려갔었지. 갓 태어난 아들 녀석을 품에 안아보기도 전에 총을 쥐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살아있었으면 이제 곧 70이겠구나. ”
“···죽은 겁니까?”
“아마도 그랬을 거다. 30년이 지나도록 제 자식만 맡겨놓고 나타나지도 않는 걸 보면··· 분명 그랬겠지.”
영화로 만들면 한 편의 신파극이 나올 인생.
갑자기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걸 싫어하는 분이 이러는데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참고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어느 날 집 앞에 나가보니 갓 걸음마를 땐 남자 아이 하나가 서 있었지. 한 손에는 편지 한 통과 작은 사통 하나를 물고서 말이다.”
“손주였나요?”
“그래. 아들 녀석이 집을 나가고 정확히 3년이 지난 뒤였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연락 한 번은 오지 않았겠냐?”
30년도 전에 2~3살 이었으면 지금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그야말로 한창 일할 나이의 손주가 있다는 소린데.
“그럼 왜 손주 분에게 뒤를 잇게하지 않으시구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무리 미워도 핏줄에게 끌리는 마음이라는 건, 특히나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법.
“그러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내 밑에서 일을 배운 녀석은 특출난 재능은 없었지만, 열심히 배웠으니까. ···아니, 내가 그렇게 몰아넣었다는 말이 어울리겠지.”
주름진 눈가에 맺히기 시작한 눈물.
그 순간, 깨달았다.
손자에게 사고가 났구나, 그리고 그 죄책감을 지금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도.
“철강은 경험이 최고라고, 대학교도 보내지 않고 현장에서 배우라고 억지로···.”
티슈 한 장을 건네고,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슬슬 본론을 꺼내야 한다.
“제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신 거죠?”
“···로봇 팔을 만든다고 하던데.”
“이제 겨우 계획 단계일 뿐입니다. 완성되려면 시일이 좀 필요해요.”
이야기가 처음 나온 지가 고착 며칠인데, 벌써 소식이 전해졌다니.
직원들 중에서 꽤 많은 수가 예전에 문래동에서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니 알아내고자 하면 알아낼 수는 있었을 거다.
거기다 아직 사내 보안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기 전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 그렇겠지. 로봇 제작이라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없으니.”
“완성 단계에 들어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회사 내부 정보가 궁금하시면 저에게 직접 물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봇 제작은 이후로 대외비 수준의 보안을 유지할 예정이라서요. 외부로 정보를 유출한 사람은 가차없는 법적 대응은 물론이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겁니다.”
“···이번엔 내가 미안하네. 다시는 뒤에서 수작 부리지 않지. 약속함세.”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경고도 너무 강하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나는 법이니까,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좋다.
“혹시 제게 부탁하실 게 그쪽이랑 관련이 있는 겁니까?”
훌쩍-.
어르신은 티슈로 눈가의 물기를 마저 닦은 후,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내 손을 덥썩.
“손주 녀석이 몇 년 전에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에 절단기에 끼어 양팔을··· 크게 다쳤어. 수술로도 치료가 어려워서 결국 절단해야 했네.”
“하지만 어르신··· 의수라면 지금도 있습니다.”
티타늄으로 만드는 건 물론이고, 근육의 신호를 감지해서 팔꿈치나 손목, 손가락까지 섬세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게 가능한 세상이다.
물론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도 알지. 물론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의수도 꽤 좋아. 하지만 그래도 완벽한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건 무리야. 반응은 느리고, 오류가 많은 데다 결정적으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뇌에서 신경을 보내는 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자네는 이미 알고 있잖아?”
물론 알고는 있지만, 지금은 확답을 해드릴 수가 없다.
감각까지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경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것만은 첨단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마법진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는 구축이 가능하겠지만, 과학 기술력과 접목 시키는 것이 어려우니까.
‘마법진은 보조적인 수단으로 생각해야해.’
“어르신, 지금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자네가 내게 보여줬던 로봇들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 나야 그저 평생 철조각이나 녹이고 살아온 늙은이라 원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 세간에 알려진 기술력을 훨씬 웃도는 거였어.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답할 수 없는 질문.
내 손을 잡은 어르신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제발 내 이렇게 부탁하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로봇 팔을 만드려고 하는 것 아니었어?”
설마,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저는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그랬나? 그럼 왜 하필 팔이었던 거지?”
팔이나 다리는 안드로이드의 신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가장 만들기 쉬운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인공 장기나 두뇌에 비교적 단순하니까.
“처음이라면 역시 팔이나 다리가 먼저 아니겠습니까?”
내 표정에서 살짝 자신감이 엿보였나?
어르신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주름진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고 있던 물기도 어느새 사리진 상태로 잡고 있던 손을 다시 한 번 쓸어내리셨다.
“자네만 믿네.”
“···최선을 다하죠.”
미국에 다녀오는 일정을 조금 앞 당겨야겠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관한 것들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 최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