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이어서 붙이면 됩니다 (1)
마리아 수 회장은 몇몇 임직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실리콘 밸리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에 발맞춰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AMD의 본사 건물 내에도 카페테리아가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맛이 뛰어나진 않아서, 정말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 아니면 마리아 회장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최근에 만났던 한국 사람이 떠올라 한식을 먹어보려고 일부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가 요즘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요즘 한국음식이 일명 K-푸드라고 불리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발효 음식이 많고,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좋다면서요.”
“그런가요? 전 고기가 좋은데.”
“하하, 한식은 고기 요리에도 채소가 많이 들어갑니다.”
약간은 불편하고, 조금은 가식적인 미소를 가지고 만나야 하는 게 임원들이지만, 적어도 식사 시간은 업무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음식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고, 임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마리아 회장의 장단에 어울려줬다.
“와,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요.”
“한식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요리일 겁니다.”
드드드-.
그렇게 짭짤하면서도 고소하고, 살짝 익은 채소가 아삭하게 씹히는 잡채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인 불고기를 한창 즐기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진동을 시작했다.
슬쩍 내려다보니 익숙하지는 않지만, 분명 연락처에 저장된 곳에서 걸려 온 전화.
[프로메테우스]‘뭐지? 프로메테우스에서 갑자기 왜···.’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500위까지 순위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다.
세계적으로 상당한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 거기에 그들이 만든 벤치마크 프로그램은 AMD도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간에 연결 고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 년에 두 차례에 걸쳐 성능을 테스트 할 때가 아니라면 사실 딱히 연락을 할 일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기도 애매한 관계.
“네, 마리아 수예요.”
마리아 회장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왜 연락을 한 건지,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건너편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마리아 수 회장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지···.”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조금 전에 갑자기 AMD프로세서 기반의 컴퓨터에서 말도 안되는 수치가 나타났습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짓이라뇨. 아무런 앞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이건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요?”
AMD가 비록 만년 2위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슈퍼컴퓨터 순위나 매기는 회사에게 얕잡아 보일 정도는 아니다.
상대 편에서도 그녀의 언성이 높아지자 약간 움찔한 듯, 일단 한 차례 숙이고 들어왔다.
“흠흠, 제가 잠시 흥분했네요. 그 점은 사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수 회장님, 이런 식으로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속이는 건 막말로 사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인 측정 결과도 아닌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전 정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식사 도중에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아무런 상황 설명도 없이 따지기만 하시네요.”
“···정말 모르는 일이란 말입니까?”
마리아는 프로메테우스 사장에게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물었다.
“혹시, 그 서버가 한국에 있는 걸로 나왔나요?”
“네, 맞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 있는 겁니까?”
‘우연? ···일리가 없지.’
프로메테우스가 정하는 순위가 곧 세계 슈퍼컴퓨터의 순위가 된다.
그 정도의 공신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들이 만든 HPL 벤치마크 프로그램의 정확성에 사람들의 신뢰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가 잔뜩 난 채로 자신에게 전화를 해서 따지는 이유도 결국 공식적으로 발표를 해봐야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게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일반 컴퓨터도 아니고,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체크하는 벤치마크 프로그램이 소스 좀 수정한다고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는 게 알려지면 그간 힘겹게 쌓아올린 신뢰도가 바닥을 칠게 뻔한데.
“그건 제가 알아보죠. 그리고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저한테 그런 식으로 전화하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 일은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를···.”
마리아 수는 대답도 마저 듣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이 떠올린 한국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마리아 수 회장]스마트폰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근은 물론이고, 여전히 침대 위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정도의 이른 시간.
‘역시 아까 그거 때문이겠지?’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명색이 슈퍼컴퓨터 성능을 검증하는 곳인데, 데이터 수집도 하지 않을까.
그래도 20년 전도 전에나 보던 도스 창에서 실행되던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 방심했나 보다.
설마 이렇게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했어.”
처음 시작은 분명 회사 내부 작업의 리소스 제공을 위해서 였지만, 개발팀에서 연구하기로 결정된 인공 신체에 쓰일 신소재 연구에도 슈퍼컴퓨터는 필요해진 상황이다.
거기에 앞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회사 전체의 컴퓨터 보안이나 PLC제어, 대형 철강 장비들도 제어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뾰족한 송곳은 결국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
“네. 임선우 입니다.”
당장 따지듯 물어올 줄 알았는데, 마리아 회장의 반응은 조금 예상 외였다.
“잘 지내고 있죠? 아, 거기는 아직 새벽인가요? 미안해요. 여기는 한창 해가 중천이라 실수를 했네요.”
“···괜찮습니다. 이미 회사라서요.”
이 사람, 혹시라도 연기를 했으면 무조건 망했을 거다.
AI에게 읽으라고 해도 저것보다는 더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읽을 것 같은데.
“부지런하네요. 단순히 안부 차원에서 한 전화는 아니고, 방열판 제작은 진전이 조금 있나 궁금해서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것은 알겠지만, 자동화 공정이라는 건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더라도 정확하게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나도 전혀 모르는 영역이라 지금 확답을 줄 수도 없는 일이고.
“PLC제어로 자동화 공정을 구축하려면 꽤 성능 좋은 컴퓨터가 필요할 텐데···. 우리 데이터 센터의 컴퓨팅을 이용해 보는 건 어때요? 임선우 대표님에게는 특별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죠.”
엔비디아 정도는 아니지만, AMD역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데이터 센터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게 마리아 회장의 미끼라는 건 알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괜찮습니다. 저도 이번에 슈퍼컴퓨터 한 대 장만했거든요.”
“슈퍼컴퓨터를 장만하셨다니 궁금하네요. 대체 어느 정도의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AMD 데이터 센터의 무료 이용권을 거부하시는지.”
“알려드리고 싶지만, 회사 기밀이라서요.”
수화기 너머인데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양쪽 모두 서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역시 맞네. 거기도 함부로 못 떠드는 거.’
어쩌면 일시적인 오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게 아니라도 그쪽에서도 쉬이 까발리지 못한다는 건 분명하다.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이용 약관을 전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서버 성능에 관한 데이터를 항시 수집한다는 게 어쩌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벤치마크 프로그램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거나?’
어느 쪽이든,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그렇겠네요. 그런데 회사에서 쓰는 서버가 혹시 AMD 제품인가요?”
“그 역시 기밀입니다.”
“그 정도는 알려줘도···! 후우, 됐어요. 기밀이라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죠. 참, 잭슨 회장과는 만났나요?”
“어제 저녁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런데 혹시 잭슨 회장과 저의 만남을 주선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정말 좋은 건 자기만 알고 싶어하는 게 사람이 가진 본능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런 비밀을 공유하는 경우가 생기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득.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 그보다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잭슨 회장과 한 가지 거래를 했거든요.”
“거래요?”
“네. 지금 당장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것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그 거래가 성사되면 거기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저도 잭슨 회장도 아닌, 임선우 대표님이 될 거라고.”
글쎄.
무슨 거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리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도움이 될 거란 기대를 품기엔 마법과 과학의 조합이 너무 좋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훗-.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지.’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기대하죠.”
***
야근도 아닌 철야 밤샘 근무를 시켜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표진수 과장에게 휴식을 줄 수가 없다.
아무리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마이크로 성형 장비의 PLC제어 구축은 윤정혁 대리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저희가 정말로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구요?”
응? 반응이 뭐 이래?
잔뜩 무게까지 잡고 말했는데.
“지난 번에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면서요.”
“그야··· 그건 그냥 일종의 희망 사항같은··· 설마 진짜로 구해주실 줄은 몰랐죠.”
“없으면 세 달이나 걸린다면서요. 그걸 어느 세월에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무튼 슈퍼컴퓨터 가져왔으니 시간이 단축되는 건 맞는 거죠?”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에 괜히 심통이 난다.
이틀 밤을 지새워서 피곤한 건가? 예전의 나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수준의 일인데 괜스레 짜증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물론이죠! 다만 연산 능력에 따라 조금 단축되는 기간이 조금 다르긴 할 텐데, 혹시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리소스가 얼마나 될까요?”
회사 내부의 컴퓨터 작업은 앞으로 죄다 서버실의 슈퍼컴퓨터가 처리하게 만들 예정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킨 것도 아니지만, 방열판 제작이 우선 순위라고 해도 개발팀에서만 모든 리소스를 잡아먹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절반 정도는 괜찮겠지?’
어쨌든 예전에 비해 터무니없이 빨라졌으니 절반의 성능만 가져도 나머지 부서에서 사용하기엔 충분하지 싶었다.
“대략 10페타플롭스 정도 될 겁니다. 그 정도면 되겠죠?”
“10페타플ㄹ··· 네? 저, 저기 대표님?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방금 페타플롭스라고 하신 건 아니죠?”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페타플롭스.”
“···테라플롭스가 아니라··· 진짜로 10페타플롭스라구요?!”
오, 이제야 반응이 좀 그럭저럭 마음에 드네.
이틀이나 밤을 새워가며 힘들게 준비한 건데, 리액션이 이 정도는 나와 줘야지.
“크흠. 제가 나름 힘들게 구해온 거니까, 유용하게 사용하셨으면 좋겠네요.”
“유용합니다! 엄청나게 유용하죠! 대체 어떻게 이런 규모의 데이터 센터와 계약을···. 아악! 제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그 정도 규모라면 하루 이용 요금이 어마어마할 텐데···! 대표님, 제가 일주일 동안 밤을 꼬박 세워서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아니. 표 과장님, 일주일 밤 세워서 일하시면 죽어요.”
의욕에 불타는 건 좋은데, 악덕 사장으로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9시 뉴스에는 좋은 일로 나가는 걸로 충분합니다.
“윤 대리, 가자고!”
“네! 과장님.”
결연한 표정을 지은 두 사람이 나가자, 이번에는 이욱기 팀장이 들어왔다.
“대표님, 무슨 일 있습니까? 방금 두 사람 표정, 살벌하던데요?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러게요. 지금 의욕이 살짝 과한 듯 한데, 팀장님이 잘 좀 조율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서야 찾아온 이유를 꺼냈다.
“합금이 도착했다고 하네요.”
“···드디어.”
도착했다는 합금은 현재 의수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티타늄 합금이다.
알루미늄 6%와 바나듐 4%가 포함되었다는 의미로 일명 ‘TI-6AL-4V’.
그리고 그 중에서도 ELI(Extra Low Interstitials-초저농도 불순물 합금)처리까지 된 최고 등급의 합금인 ‘TI-6AL-4V ELI GR23’을 구매했다.
최고 등급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임플란트나 외과용 도구를 만드는데도 대부분 ‘TI-6AL-4V ELI GR23’을 사용할 정도로 가장 일반적인 티타늄 합금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미국의 금속 공업업체에서 구매한 것이 드디어 오늘 도착한 거다.
“조금 전에 창고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가보시겠습니까?”
티타늄 합금이라 금속 자체의 금액도 비싼데, 운송료에 부가가치세까지 합쳐지면서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는 몸값을 자랑하는 녀석을 만나러.
“당연히 가 봐야죠.”
이욱기 팀장과 함께 창고로 내려가면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어쩌면 나보다 이 소식을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한 사람에게.
[어르신, 재료가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