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2)
얼마 전.
잭슨 회장은 갑작스러운 마리아 수 회장의 미팅 요청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같은 대만계 미국인이지만 AMD와 엔비디아 GPU시장에서 경쟁관계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당연히 두 사람은 웃으며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직접 엔비디아 본사로 찾아온다고 하니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같은 실리콘 밸리, 심지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물에서 근무하면서도 두 사람은 따로 만남을 가진 적이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쳐도 그저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지나칠 정도로.
“제가 찾아와서 의외라는 얼굴이네요.”
엔비디아의 본사에서 비밀리에 성사된 만남.
잭슨 회장은 마리아 회장이 찾아온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걸 그만뒀다.
“솔직히 우리가 하하호호하면서 만날 사이는 아니니까요. 심지어 갑자기 단 둘이 만나자는데 놀라지 않을 도리가 있습니까?”
“그렇게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볼 것 없어요. 제안을 한 가지 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제안?”
경쟁자의 입장에서 제안을 한다는 건 쉽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무슨 제안을 할 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이미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분석해서 가지고 온 제안일 테니까.
“우리 둘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제안이요.”
“그런 게 가능할까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우선 들어나 보죠.”
서로에게 모두 좋은 일이 되는 제안?
그런 순진한 말을 덥석 믿을 정도로 잭슨 회장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피차 서로 바쁜 사람들이니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합작 한 번 해봐요.”
“···합작?”
지금까지야 거의 GPU시장만 양분하고 있었지만,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AMD는 CPU와 GPU를 모두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고, 인텔과는 CPU, 엔비디아와는 GPU시장에서 경쟁을 했지만, 인텔이 얼만 전부터 GPU시장에 뛰어들었고.
“우리도 이제 CPU설계를 시작한 걸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갑자기 합작 제안이라?”
심지어 그레이스는 CPU와 GPU의 일체형으로 이미 AI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는 중이었다.
주가는 폭풍 성장 중이고, 1분기 이익이 공개되면 더욱 탄력을 받을 게 거의 명확한 분위기다.
이 와중에 AMD에서 합작을 제안한다?
백기를 들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마리아 수 회장도 파산 직전의 AMD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인물.
‘이렇게 쉽게 항복 선언을 할 사람이 아닌데?’
서로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후우.
마리아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먼저 이야기를 꺼낸 제가 먼저 패를 보여야겠네요. 아마 이걸 본 뒤엔 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테니까.”
‘저 가방 안에 진짜 뭐가 있는 건가?’
비서조차 대동하지 않은 두 사람만의 공간.
처음부터 금속 프레임으로 된 서류 가방이 심상치는 않아 보였는데, 안에 정말 뭐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마리아 수 회장이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그레이스 슈퍼칩이 완성되고, 잭슨 회장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전 세계의 컴퓨터 시장은 엔비디아가 장악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인텔도 AMD도, 심지어 서버나 슈퍼컴퓨터에서 절대 강자로 통하고 있는 IBM도 모두 그레이스 앞에서는 평등하게 될 거라고.
CPU와 GPU를 통합해서 만들어진 그레이스는 혁신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고,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
실제로 이미 전 세계에서 AI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나 관련된 스타트업 기업들에서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무슨 자신감이지?’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체크하는 게 바로 업계 동향이다.
서로 쉬쉬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파이 하나 둘 쯤은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 세계라 잭슨 회장 역시 AMD의 사정이라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기에 AMD에는 한동안 이렇다 할 뉴스가 흘러나온 적이 없었다.
‘인텔에서 잠깐 이상한 소문이 돌기는 했었지만···.’
AMD에서는 이렇다할 이야기가 없었다.
아시아에서 온 청년 한 명에 대한 이야기는 잭슨 회장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마리아 수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케이스를 연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코어가 256개?”
엔비디아 역시 만들자고 달려들면 못 만들 것도 없다.
나노 공정이야 TSMC나 한국의 일성전자에서 1위를 두고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형국이고, AMD나 엔비디아 모두 대부분 그 두 곳 중의 하나를 파트너로 선정해서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코어를 CPU 하나에 때려넣으면 미친 듯이 오르는 발열을 감당할 수가 없다.
“난 또 뭐라고. 이게 정말 실용성은 있습니까? 가성비가 최악인 건 그렇다 쳐도, 이걸 감당할 냉각 시스템이 없는데?”
“설마 내가 구동도 못할 시스템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이미 일반 냉각수를 이용한 테스트까지 다 마쳤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만 마리아 수 회장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절대 허풍이 아니었다.
***
무려 2배 이상의 성능.
적어도 지금 기술력에서는 최강의 성능이라 자부했던 그레이스 슈퍼칩에서 CPU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성능의 향상을 이뤄냈다.
하지만 잭슨 회장에게 보고하던 연구원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거라면 GPU 코어를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성능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이미 CPU를 AMD 제품으로 교체하는 걸로도 2배의 성능이 향상됐는데?
“그 정도가 아닙니다. 만약 제대로 V링크가 가능하도록 설계를 변경하면 동적 프로그래밍 속도가 올라가면서 효율이 믿기 힘든 수준까지 높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을 담당하지만 그만큼 코어 수가 적은 CPU.
단순하고 쉬운 계산을 담당하지만 코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덕분에 AI 구성에 핵심이 되는 GPU.
문제를 단순한 하위 계산으로 분해하는 것이 동적 프로그래밍이 가진 핵심 기능이다.
한 마디로 CPU의 코어가 2배 이상 늘어나면 계산을 담당할 GPU 코어가 늘어도 감당이 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까지?”
“단순 계산으로만 생각해도 최소한 지금의 4배 이상의 성능을 보일 겁니다. 문제는 발열인데··· AMD에서 가져온 쿨러를 GPU에도 장착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입니다.”
“···만약에 둘다 AMD의 제품을 사용하면?”
엔비디아의 수석 연구원은 그 물음에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대답을 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아마 지금의 그레이스보다 조금 더 뛰어난 성능이 나올 겁니다.”
AMD는 CPU를, 엔비디아는 GPU를 가지고 있다.
두 개를 합치면 4배 이상의 성능 향상이 가능하지만, 합치지 않는다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는 상황.
결국 다시 같은 출발점에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두 회사가 합작을 하게 되면 상황이 애매하게 흘러가게 된다.
‘그러면 영영 헤어지지 못하게 되는 수가 있는데.’
단 시간 내에 독자적으로 CPU를 개발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당장 AMD와 결별을 선언하면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그런 걸 신경쓰면서 살 정도로 감성적인 자신은 아니지만, 만약 그 상황이 반대가 된다면?
이건 꽤 골치아픈 문제다.
“으음···.”
고민이 깊어지는 찰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던 수석 연구원의 한 마디가 잭슨 회장의 결심을 더욱 흔들었다.
“회장님, 그레이스의 4배 성능을 가진 슈퍼칩으로 AI를 구성하면 양자 컴퓨터 개발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겁니다.”
양자라는 건 인간의 기술로 완벽히 제어할 수 없기에 결국에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도 완전한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
여기서 더욱 월등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면?
“마리아 수 회장한테 당장 만나자고 전해.”
그 말에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어졌다.
어차피 지금의 슈퍼컴퓨터는 양자 컴퓨터로 가기 전에 지나치는 길목일 뿐이니까.
***
AMD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
마리아 수와 잭슨 왕 회장이 실리콘 밸리의 고급 클럽에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와인을 좋아했지만, 오늘만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와인 대신 가벼운 샴페인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SW는?”
“엊그제 도착했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SW는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던데.”
“언젠가는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야. 어쨌든 두 회사를 이어줄 곳이 필요한데,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듯이 SW 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왕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한다면 내일만큼 좋은 날은 없을 걸?”
잭슨 회장의 말에 마리아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그렇네요. 어차피 SW의 방열판이 스카디의 핵심이니까. 그런데 설마하니 두 회사가 힘을 합칠 날이 오다니···.”
“훗-. 그래, 상상도 못했지. 그것도 동양에서 온 이름도 몰랐던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사람들이 알면 무슨 생각을 할 지.”
“내일이 기대되네요.”
“기대라··· 난 무서운데 말이지.”
며칠 전, 한국에서 2,000개의 방열판이 도착했다.
하루에 겨우 천 개 정도만 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이 드는 자신을 보고 약간 씁쓸하기까지 했다.
기술이나 과학의 발전이라는 건 단계가 있는 법이다.
바퀴가 만들어지고, 수레가 등장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지금 스카디는 그 과정을 뛰어넘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조금씩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던 반도체 분야에서 갑자기 나타나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물건을 선보였다.
자신들은 아무리 뜯어봐도 작동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성능을 가진 물건.
‘···이런 게 진짜 천재라는 건가?’
인류 역사에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문명의 단계를 끌어올렸던 몇 안되는 사람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
어쩌면 자신이 지금 그 격변하는 역사의 한 가운데 함께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엔비디아를 세계 10위 안의 회사로 만든,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고 있으면서도 동양의 그 젊은 청년이 부러웠다.
가진 바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젊음.
앞으로 그가 살아가면서 인류의 문명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어딘가 두렵기까지 했다.
“왜 무서워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그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상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신을 무서워 하는 이유는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간혹 자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으로 사람이 죽어가던 시절.
사람들은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어 공포를 몰아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지만, 당시 그들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대상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공포는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지기도 하고, 가끔은 그런 공포에 잠식되어 미친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나오기도 한다.
“오마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내일 스카디가 세상에 발표되면, 인텔이 받을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가는 밑바닥을 모른 채 곤두박질 치게 될 게 뻔하고, 당장 그들과 슈퍼컴퓨터 계약을 하려던 이들은 모든 조건을 초기화 하게 된다.
수십 년간 컴퓨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도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겠지만, 과연 그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될 거다.
자신이 그러고, 마리아 회장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나면 깨닫게 되겠지.
그 기술을 자신의 손으로 재현해내는 게 불가능하든 걸.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할 거야.”
그게 기술이든, 사람이든.
인텔의 CEO인 오마르 셰피로라면 그런 미친 일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찾아온 대망의 컨퍼런스 당일.
마리아와 잭슨의 손을 잡은 한 동양인 남자가 연미복을 입은 채로 무대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