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4)
“언제까지 쉴 거야? 이제 다음 곡도 준비 해야지?”
매니저의 잔소리에도 클라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게임에만 열중했다.
얼마 전, 어렸을 때부터 미치도록 좋아했던 마법사의 이야기가 게임으로 나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최근에는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고 게임만 파고 들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 나 트롤 도저히 못 잡겠어. 얘 너무 쌘데?”
“···이리 비켜봐.”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넘겨 받은 매니저가 신들린 움직임을 보이자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던 트롤은 화려한 공격 마법을 온 몸으로 맞아내다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눕혔다.
“와, 역시 언니는 프로게이머를 했어야 한다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그보다, 너 이미 써둔 곡도 많잖아, 그 중에서 하나 골라서 얼른 ···리아!”
아무리 유명세를 얻기는 했지만, 클라리아는 이제 겨우 첫 번째 앨범을 성공시킨 신인 가수일 뿐이다.
지금 세간에서는 그저 초심자의 행운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매니저로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아가 얼마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단번에 잠재우기 위해서는 차기 음반을 내야 한다.
이미 만들어둔 곡 중에서 눈 감고 아무거나 골라 잡아도 단 번에 그런 헛소문이 사라질 텐데.
정작 클라리아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채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건 본인이 아니라 매니저였다.
“언니, 우리 조금만 천천히 가자.”
“너 아직 신인이야. 알지? 늦으면 늦어질 수록 사람들 기억 속에도 점점 잊혀진다?”
데뷔 곡이 생각보다 워낙 엄청난 히트를 쳐서 그리 쉽게 잊혀지진 않겠지만.
“알아. 그보다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누군지는 알아냈어.”
“정말?!”
“그런데 그 사람, 리아 네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인 가 봐. 어제 CNN 뉴스에도 나왔었고, 지금 인터넷에서 온통 그 사람 이야기 뿐이야. 아마 지금은 너보다 유명할 걸?”
“정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도 아무 것도 안 나오던데?”
“그랬지. 그런데 이틀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큰 행사에 참가했는데, 그 행사가 컴퓨터 쪽에서는 상당히··· 아무튼, 꽤 유명한 행사였어.”
매니저는 자세히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클라리아가 게임을 즐겨하기는 해도 정작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니까.
아는 것이라고는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게 전부다.
‘대체 이런 사람은 또 어떻게 만나서···.’
만난 경위에 대해서는 대강 들었지만, 인연라는 게 참.
처음으로 관심이 생긴 상대가 하필 저렇게 거물일 줄이야.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으면 접근을 하기도, 거리를 두기도 쉬울 텐데, 저런 사람에게는 함부로 접근을 하기도 힘들다.
“뉴스보니까 국방부 차관이 한 제안도 거절했다고 하는 것 같더라.”
“국방부?”
아무리 음악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리아지만, 미국의 국방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엄청나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국방부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그래. 자세히는 모르지만 AI기술인가? 그 분야에서 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 가 봐. 무슨 부품을 만드는데 그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 같고.”
“나, 만나고 싶어!”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왜?!”
함께 여행도 하고, 무려 하룻밤을 함께 보낸 사이기도 하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는 12시간 동안 밥도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래도 안돼. 그때는 그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너도, 그 사람도 너무 유명해. 이제는 둘이 만나면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거라고.”
SW라고 알려진 남자는 사실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뉴스에도 나오고, 그 업계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리아처럼 대중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찍히기라도 했다간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괜찮아!”
“너뿐 아니라 그 사람한테도 피해가 갈 걸? 그래도 괜찮아?”
···히잉.
리아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매니저로서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야 했다.
“개인 연락처를 알아보고는 있는데, 아마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다른 곳도 아니고, 국방부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라 괜히 개인정보에 접근하다가 들키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그 사람, 아직 미국에 있지? 어디··· 아, 실리콘 밸리인가?’
“가도 만나지는 못해. 어떤 의미로는 너보다 경호가 더 삼엄하거든. 그리고 어차피 내일 아침 일찍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
컨퍼런스가 끝나고,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은 마치 내가 국빈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어딜 가든 경호원 넷 이상이 따라다니는 건 기본이었고, 호텔 방문 앞에서도 늘 교대로 두 명이 보초를 서 있었다.
잭슨 회장과 함께 엔비디아를 방문했을 때는 직원들이 거의 사열을 한 채로 기다리고 있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일일이 악수를 해주며 들어갔고, 회사를 안내 받는 동안 뒤에서 수행원처럼 따라다니던 임원들까지.
불편해서 죽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꽤 기억에 남는 일정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롤러코스터는 타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국방부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어차피 제가 진짜로 팔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마지막 저녁 식사.
호텔 레스토랑에서 마리아 회장과 잭슨 회장이 함께 자리했다.
“그럼 왜···.”
“싸게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비싸게 사겠다는데 안 팔 이유야 없죠. 그냥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열 받아서 그랬어요.”
처음에는 압력을 행사해서 물건 값을 후려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선구매를 하는 조건으로 후한 가격을 제시했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약간의 오해에서 시작된 작은 언짢음은 금세 풀어졌고.
“그보다 물건은 잘 도착했죠?”
“그거라면 잘 받아서 확인까지 마쳤습니다. 소량이긴 하지만 늦어도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총 5천개의 방열판.
초도 물량이라는 점을 생각해도 너무 적은 숫자지만, 우선 스카디의 시범 생산을 위해서라도 급하게 항공으로 보내온 물건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마나를 활성화 시켜둔 것들이 있어서 보낼 수 있었다.
현재는 조금씩이지만 생산 시간을 단축하는 중이고.
“돌아가면 추가 물량을 곧바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임선우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이미 스카디의 제품 출시가 알려지면서 SW의 이름도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겁니다. 또, 회사의 보안 등급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설계도를 훔쳐가서 만들어도 어차피 동일한 성능은 만들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보안이라면 저희도 두 분 회사 못지 않습니다. 아, 그럴 게 아니라 마리아 회장님도 저희 공업사에 한 번 오시는 게 어때요? 저희 회사도 한 번 보여드리고 싶은데.”
AMD의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류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한국에서 왔다는 소개를 할 때마다 느껴지던 묘한 시선들.
마치 ‘한국? 그런 후진국에서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었지?’ 라는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마 30~40년 전의 한국을 떠올린 모양인데, 실제로 와서 보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은 아직도 후진국으로 생각하고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적어도 나를 알고, 나와 함께 일을 할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어떤 곳인지 한 번은 보여줘야지.
“좋은 생각이네요. 다만 지금은 스카디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이 일이 마무리되면 한 번 찾아가 볼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인천 공항에 도착한 순간.
전원을 켜자마자 심 비서의 스마트폰이 열심히 울리기 시작했다.
“대표님. 일성전자인데요?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네요.”
조금 빠르긴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대한민국 부동의 1위이자 세계적으로 각종 전자제품이나 TV, 스마트폰이 유명하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파운드리로 대만의 TSMC와는 1위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대한민국 최대의 다국적 기업이 바로 일성전자다.
반도체 분야는 물론이고 디스플레이 업계, 특히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애플과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을 정도의 기업에서 만남을 요청해 왔다.
‘이건 거절할 수 없지.’
“알겠다고 해. 우선 당장은 처리할 일이 있으니 다음 주 정도로 일정 잡아서 연락 달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신제품 출시 부진 소식이 들리면 한국의 통화 비율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곳이다.
아무리 지금 SW가 엔비디아나 AMD와 협력을 시작했다곤 하지만, 한국에서 일성전자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
하지만 지금 당장은 스카디의 본격적인 판매 시작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거기다가 워낙 짧은 일정으로 미국에 다녀오는 일이 정말 피곤하기도 하고.
‘지난 번에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리아가 있어서 그랬나?’
미국을 다녀와서 그런가.
리아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에는 입국장에서 내가 좀 창피했었는데···.’
위잉.
촤좌자자자작-.
입국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지난 번보다 훨씬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인터뷰는 회사에서 보도 자료를 보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심 비서가 앞장서서 기자들에게 말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뒤따라 오는 사람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뒤에 누가 있는 기분이 들어서.”
이번에도 혹시나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건 아니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저 사람들이 기다리던 게 내가 맞았나 보다.
“임선우 대표님! 한 마디만 해주세요. 정확히 SW공업사에서 납품하는 물건이 뭡니까?!”
“계약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미국 국방부에서 슈퍼컴퓨터 구매를 의뢰했는데, 정말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SW공업사가 주식 시장에 진출할 계획은 있나요?!”
뭐, 저런 말 한 마디 했다고 물러나면 기자가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하나씩 대답해 주고 있다가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대표님께서 워낙 피곤하신 상태라 대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보도 자료를 확인해 주시고, 인터뷰 요청이 있으신 분은 정식으로 회사 홍보실을 통해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 비서는 기자들이 혹시나 기분 상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어떻게 미리 알고 공항에서 안전 요원들을 배치해 준 덕에 차가 있는 곳까지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심 비서가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 미리 기사에게 연락을 해둔 게 정말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아마 생각도 못했을 텐데.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
“저는 회사로 가죠. 심 비서는 피곤하면 집으로 가서 쉬어도 됩니다.”
이미 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사람이라 이 말이 겉치레가 아닌 것을 알 텐데, 심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회사로 가겠습니다.”
“그럼 그건 알아서 하고, IBM코리아 직원들이 내일 몇 시에 오기로 했지?”
“오후 2시로 잡혀있습니다.”
이제 막 도착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겨우 오전 10시.
스카디의 생산 현황도 다시 체크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일은 양자 컴퓨터 설치를 위해 IBM코리아에서 직원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잭슨 회장의 소개로 성사된 만남이기도 하지만, 이게 일반적인 컴퓨터가 아니라 설치를 할 공간과 전력 시스템을 확인해야 설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아마 냉각 시스템때문이겠지?’
액체 헬륨을 통한 절대온도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전력.
거기다 내부의 진공 상태와 냉각 상태를 위해 필요한 거대한 크기의 시스템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뭐, 처음부터 그런 곳은 정해져 있지만.
작은 트럭 크기의 컴퓨터가 2대나 들어가야 하는데다, 냉각 시스템 유지를 위한 전력이 감당 가능한 곳은 지금 건물 내에서는 클린룸뿐이다.
‘그래도 거기보다는···.’
상당한 수준의 보안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긴 하지만, 사실 침입자가 마음먹고 들어가자면 들어가지 못할 것도 없는 곳이 클린룸이다.
막말로 문을 부셔버리면 되는 일이기도 하고.
‘마법진을 사용하면 절대 침입 불가 지역이 되긴 하겠지만.’
다른 직원들도 함께 이용해야 하는 공간을 마법으로 도배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설치 이후에 정말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갈 필요가 없는 곳이라면?
양자 컴퓨터는 그 정도의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심 비서.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설치 다 됐지?”
“네. 거길 사용하실 건가요?”
지하 깊은 곳에, 비밀스럽게 만들어져 있던 공간.
양자 컴퓨터는 그곳에 설치할 작정이다.
그러려면 핵 미사일이 직격으로 떨어져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야겠지.
‘···설치가 끝나면 엘리베이터도 없애 버리고.’
들어갈 사람이 나 혼자 뿐이라면, 물리적이 아닌 다른 접근 방법을 만들면 된다.
이를 테면, 공간 이동 마법진 이라던가.
그도 아니면 텔레포트 마법진을 써도 되는 일이고?
···아, 그게 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