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과학자야, 의사야. (1)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으로 가득한 표정 속에서 적개심만 가득한 눈.
금속으로 만든 듯한 검은 의수를 착용한 채, 전동 휠체어에 탄 남자는 그런 표정과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 간호사로 보이는 이가 서 있었는데, 몇 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듯하고.
“다리도 다친 거였나요? 전 팔만 다친 줄 알았는데.”
“···양 팔 없어본 적 있어요? 사람들은 팔이 없으면 걷는 건 상관없을 줄 아는데, 팔이 없으면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무의식 중에 팔을 뻗으려고 해서 자꾸만 넘어지더군요. 그래서 아예 ‘나는 이제 장애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일부러 타고 다닙니다.”
사고가 난 지 10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하긴, 팔이 없이 지낸 날보다 그 팔로 많은 것들을 해온 날들이 더욱 많을 테니까.
‘아니, 팔이 없이 지낸 10년은 이 사람에게 텅 빈 시간이었겠지.’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흘러가 버려서 비어버린, 그런 시간.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시죠. 이해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는 눈빛, 정말 역겨우니까.”
“단단히 꼬이셨네요. 원래 성격이 그런 겁니까? 아니면 팔을 잘라내고 그렇게 변한 겁니까?”
“뭐야?!”
오민혁은 당장이라도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날 생각이었는지, 상체를 앞으로 숙였지만 그가 착용하고 있는 의수는 그의 의지를 따르지 못했다.
결국 상체만 앞으로 쏠리면서 넘어질 뻔한 걸 얼른 받아냈다.
내가 아니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오성락 어르신이.
“···항상 조심하래도.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넘어진다니까.”
“할아버지. 제가 사기꾼은 안 만난다고 했잖아요. 왜 여기까지 데려오세요!”
“이 놈아, 사기꾼이라니. 너는 뉴스도 안 보고 사냐? 맨날 앉아서 뭐해, TV나 좀 보고 살지.”
“···뉴스요?”
[여러분, 오늘은 요즘 완전 핫한 회사죠? 임선우 대표가 있는 SW 공업사에 대해 알아 볼까합니다. 우선 위치는 문래동에 있습니다. 예전에 문래동에 오공 철공소라고 굉장히 큰 철공소가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문을 닫았다가 갑자기 SW 공업사로 이름을 바꿔서 얼마 전부터 다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미국에서···.]너튜브에서 영상을 보던 오민혁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할아버지, 문래동 건물을··· 이 사람한테 빌려주신 거였어요?”
오공 철공소 공장을 물려받은 게 나였다는 것도 몰랐던 건가?
그 사이에 너튜브에서는 영상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스카디가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잖아요? AMD의 마리아 수 회장이 임선우 대표에게 스카디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였잖습니까? 캬, 진짜 우리나라 사람이 AMD와 엔비디아를 대통합 시키는 날이 오다니! 여러분들은 이게 믿겨 지십니까?!]“대통합은 무슨···.”
오민혁은 입술을 한쪽만 올린 채 나를 흘겨 봤다.
하지만 눈빛에서 나오던 적개심은 조금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그쪽이··· 여기 나오는 임선우 대표예요?”
“네. 제가 바로 거기 나오는 스카디의 아버지, 임선우 입니다.”
설마 내 입으로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래도 이런 유치찬란한 수식어가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그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의수를 만든 겁니까?”
“뭐,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긴 했죠.”
“···그럼, 저··· 정말로···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당장이라도 눈물 한 줄기가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눈망울.
그리고 그 안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가 나와 오성락 어르신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죠.”
흔들리던 눈빛이 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10년의 시간을 절망 속에서 숨어,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살아온 사람의 감정, 깊은 회한.
솔직히 나는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어설픈 위로를 건넬 마음도 없다.
그런 위로의 말을 해줄 능력도 없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그 구렁텅이 속으로 밧줄을 던져주는 것 정도다.
그 줄을 잡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말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거다.
“신경과 근육을 인위적으로 연결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까짓 고통? 당신도 이런 신세로 하루만 살아보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생길 겁니다. ···그런 고통 같은 건 고통도 아닙니다. 내 뼈를 가루로 만든다고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뭐든 지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수술을 통해 의수를 접합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수술을 할 때야 마취를 하겠지만, 완전히 죽어 있던 신경을 다시 깨우고, 완전히 사라졌던 근육을 인공 근육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이미 아물어버린 단면을 다시 잘라내서 억지로 연결해야 하는 일이 그리 쉬울 리가 없지.
‘거기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고.’
“왜 그렇게 봅니까?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못 버틸 인간처럼 보입니까?”
“아뇨.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게 다 거짓말이라면 그냥 당신 죽이고, 나도 콱 죽어버릴 거니까. 제대로 말해요. ···그거 정말로 가능한 겁니까?”
처음에는 절망과 적개심으로 가득했던 눈, 조금 전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고, 이제는 조금씩이지만 희망이 차오르고 있다.
“꽤 많이 힘든 과정이 될 겁니다.”
수술이 완료된 뒤에 마법진을 활성화 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자동으로 활성화가 되도록 만들고 싶지만, 장착한 이후가 아니라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단순히 혼자 작동하는 게 아니라 뇌 신경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니까.
“각오 됐다니까요?”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법진을 몸 속에 새겨 넣는다는 건 그런 의미다.
사람은 누구나 몸에 마나를 가지고 있고,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흐름을 억지로 비트는 거다.
세상을 유지하는 모든 규칙, 자연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법칙을 인위적으로 비트는 것, 그게 바로 마법의 본질이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을 수도 있다니?!”
오성락 어르신이 깜짝 놀라 물었지만, 안심시켜드리겠다고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가능성은 적지만, 어떤 수술이든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는 있는 법이잖아요.”
“임 대표! 그런 말은 없었잖아! 안 된다!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걸고 수술을 받는 건 절대 허락 못해!”
“어르신, 맹장 수술만 해도 사망 확률이 제로는 아닙니다. 심지어 절단된 양 팔의 뼈와 신경, 근육까지 연결하는 수술인데, 그 정도 각오는 당연한 거죠.”
“···할게요. 할아버지, 저 할 겁니다.”
“민혁아! 안 된다. 이 할아버지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마. 선우, 이 놈아! ···처음부터 말을 했으면!”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지만 오민혁이 마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면? 의수에 새겨진 마법진이 활성화 도중 폭주를 하거나, 마나 역류 현상이 일어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마나 역류가 일어나면 나까지도 위험해 진다.’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 자료를 분석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구성했지만, 결국 의수가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가장 큰 줄기는 마법진이다.
아론이 넘겨준 자료도 아직은 그저 연구 중일 뿐이라,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의수에 들어가는 수많은 신경과 근육의 움직임을 완벽히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아뇨.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삽니다. 저, 할게요.”
“민혁아!”
“임선우 대표님, 이것만 대답해 주세요. 만약 성공하기만 하면 정말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건 모르겠지만,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려드릴 수는 있다고 장담합니다.”
“···해주세요. 수술 받겠습니다.”
희망이 차오르던 눈에 결단이 들어섰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이 말도 안되는 수술을 해줄 수 있는 사람만 찾으면 된다.
***
AMD에서 스카디에 들어가는 방열판의 첫 정산금을 보내왔다.
초기에 공장 부지 매입에 사용하려고 받은 투자금에 스카디의 판매금액에 대한 정산금까지 들어오자 통장에 찍힌 숫자는 읽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까지 늘어났다.
[미 국방부, 스카디가 6대가 장착된 노드 512개를 연결한 슈퍼컴퓨터 SKD SW100 계약] [마리아 수 회장, ‘SKD SW100의 연상 성능 12엑사플롭스 이상’]기사를 보고는 나도 조금 놀랐다.
설마하니 12엑사플롭스까지 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으니까.
기존에 전 세계 슈퍼컴퓨터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중국의 ‘천룡4’가 1엑사플롭스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그 12배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튀어나올 줄이야.
‘심지어 그게 내가··· 아니, 우리가 만든 거라니.’
아무리 냉각 시스템이 좋다고 한들, 기본이 되는 칩들의 성능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데도 모델명에 SW를 붙여버렸다.
심지어 그 앞에 붙인 이름도 스카디의 약자이고.
스카디는 지금 생산하는 족족 미국으로 보내고 있고, 판매 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마리아 회장과 잭슨 회장에게 일임했다.
나도 가격 결정에 관여하려면 관여할 수 있겠지만, 슈퍼컴퓨터는 팔아본 적도, 사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러쿵저러쿵해봐야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슈퍼컴퓨라는 건 정찰제로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시스템 셋업이나 구축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
국방부에서 슈퍼컴퓨터를 무인 드론이나 정찰기, 심지어 군사 위성의 제어에 사용할 용도라고 하니 보안 시스템까지 구축해야 한다.
12엑사플롭스의 연산 능력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성능이 나오는 게 확인만 된다면 아마 전 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지게 될 거다.
AMD가 CPU 칩셋과 캐쉬 메모리를 담당하고, 엔비디아에서는 GPU 칩셋 제작과 V링크 인터페이스를 담당한다.
SW 공업사에서 하는 거라곤 구리 방열판 하나 뿐이고, 심지어 냉각 시스템에 사용될 워터블록이나 펌프, 라디에이터 같은 장치들은 모두 외주 제작사에 의뢰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국방부의 시스템 구축을 위한 화상 회의가 있는 날.
모니터에는 이제는 꽤나 익숙한 마리아 회장과 잭슨 회장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고, 그 옆에 한 사람이 추가 됐다.
한 번이지만 얼굴을 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레븐 차관님, 저 때문에 한동안 곤란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크흠. 괜찮습니다.”
딱히 의도를 한 것이 아니긴 했지만.
[미국 국방부 제안을 발로 까버리는 SW] [국방부 차관, 흑역사 생성 순간 영구 박제] [한국 일반인 남성에게 제대로 굴욕 당하는 미국 국방부]누가 촬영을 한 건지, AMD 컨퍼런스에서 대놓고 거절한 영상이 다양한 이름의 제목을 달고서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었다.
얼굴 합성은 기본이고, 정말 내가 발로 레븐 차관을 차버리는 영상까지 나와서 나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물론 그 뒤로 슈퍼컴퓨터 ‘SKD SW100’의 첫 구매자가 미국 국방부라는 뉴스가 보도된 즉시 관련 영상은 온라인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시스템 구축은 그럼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그럴 계획입니다. 문제는 지금 중국 정부 쪽에서 희토류를 무기 삼아 심각한 수준의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칩셋을 만드는데 반드시 희토류가 필요한데, 거기서 수출 제한을 걸어버리면···.”
잭슨 회장의 하소연에는 레븐 차관이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 주에 산업안보정책국에서 중국 실무진과 반도체 수출 통제 관련 문제로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희토류 수출 제한 문제도 해결할 겁니다.”
최근 점차 심해지고 있는 미중 경쟁에 정작 엉뚱한 나라들의 등이 터져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미국 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에서는 반도체 안 팔면 희토류 수출 안 한다고 하고, 미국에서는 중국에 반도체 팔지 말라고 하니 중간에서 등허리가 터져나갈 수 밖에.
“그거 참 좋은 소식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중간에서 입장이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각하께서 중국 경제가 이 이상 커지는 걸 원하지 않으세요. 특히 임기 중에는 더욱 말입니다.”
난 그저 방열판을 만들어서 파는 장사꾼일 뿐인데, 내가 끼어있을 대화가 아닌 느낌이다.
세계 경제 1, 2위를 차지한 대국에서 일어나는 국제 분쟁 문제까지 나올 줄이야.
‘보안은 제대로 되고 있는 거겠지?’
이쪽도 나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해킹을 방어하고 있지만, 겨우 20페타플롭스에 불과하다.
저쪽은 미국 국방부에 슈퍼컴퓨터 제조사들인데, 비교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양자 컴퓨터만 개발되면 한 방에 역전이긴 한데.’
아직 제대로 마법진 구상도 못한 상태지만, 니켈 이상의 마나 친화도를 가진 금속을 구할 수 있다면 단번에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희토류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고.
‘마침 희토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까···.’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이 아닐까?
“잭슨 회장님. 그 희토류, 저도 좀 받을 수 있어요? 아, 이왕이면 정제된 걸로요.”
돈은 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