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5
5화. 택배 발송(2)
마법진을 어디에 새겨야 좋을까.
꽤 고민을 많이 해봤다.
‘어차피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냥 보이는 데 새겨도 되지 않나?’
마법진이 당연하던 세상에서는 절대 외부에 드러나는 곳에 마법진을 새기지 않았다.
일종의 지식 재산권 개념이기도 하지만, 제작자가 아닌 이가 함부로 건드렸다가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자칫 마나 폭주라도 일어나면 한 두 사람이 죽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마법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겠지?’
당연한 생각이고, 의심조차 없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찜찜하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까지 더해서 결국 마법진은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넣기로 했다.
미리 그려둔 마법진 위에 은으로 만들어진 실을 얹고, 마나를 흘려 보내자 은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마법진 위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나중엔 이 작업도 기계로 찍어내야 할 텐데···.’
마나와 감응할 수 있는 금속이 이곳엔 현재로선 은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여기도 마나는 있으니까, 혹시 다른 금속에 반응할 수도 있으려나?’
가능성은 몇 가지가 있다.
미스릴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미스릴이라는 이름이 아닌 경우.
아마도 엄청나게 희귀한 탓에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연구의 목적으로만 쓰이는 것 같은 금속 중에 하나 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미스릴처럼 마나에 감응을 하지만, 완전히 다른 금속일 가능성도 있다.
몬스터나 아종족이 넘쳐나던 세상과는 생태 환경이 다르니, 이곳에서는 다른 금속이 마나를 품는 성질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겠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건··· 나중에 차차 생각하자.’
시간을 가지고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니까.
마음만 급해봐야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스스스-.
조용히 움직이던 은실이 드디어 마지막 맺음을 지었다.
워낙 가늘어서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이야, 이런 크기에도 마법진이 되긴 되는 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마법이 있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크기와 정교함.
이곳에 있는 과학이라는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크기였다.
‘거기였으면 최소한 A4용지 크기는 됐어야 할 텐데.’
아니, 그보다 더 컸어야 할 거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업을 한다고 해도 가루를 뿌리거나 용광로로 녹여서 뽑아내는 금속의 두께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여기처럼 미세 공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손바닥으로도 충분히 가려질 크기의 마법진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도형들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많은 마법을 중첩하거나 이보다 복잡한 마법을 넣으려면 더 커지긴 하겠지만.
우웅-.
마나를 주입하자 짧은 울림과 함께 마법진이 발동했다.
은으로 만든 탓에 성능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겠지만, 목적 자체가 얼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온도를 좀 낮추는 것 뿐이라 크게 상관은 없을 거다.
“그래도 일단 내가 테스트를 해보고 보내야겠지?”
동생의 방에 있는 것에 테스트를 하기는 좀 그렇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사기로 했던 컴퓨터나 알아 볼까.
***
학원을 간 사이, 동생의 방에 들어갔다.
딱히 허락을 받지 않았지만 가족인데 이 정도야 괜찮겠지.
오랜만에 보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뒤졌다.
매일같이 사고가 나지 않는 날이 없다는 중고세계로 들어가 봤지만, 가격이 마음에 드는 매물도 없고, 무엇보다 개인간의 거래라 카드 결제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안되겠다. 그냥 전자 상가에 가보자.’
중고로 살 계획이었지만, 생각이 변했다.
중요한 건 비싸게 사지 않는 것이니까.
“엄마, 저 나갔다 와요.”
“좀 아까 들어왔는데, 어딜 또 나가?”
“뭐 좀 살게 있어서요.”
“그래··· 근데, 선우야. 요즘 엄마한테 왜 갑자기 존댓말 써?”
그게 조금 서운하셨던 건가?
아빠도 말은 없지만 약간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이게 편하고,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 나이도 있고, 사회 생활도 시작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애처럼 굴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거였어? 그래, 그럼.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해.”
“네. 다녀올게요.”
혹시나 사고의 후유증 같은 게 아닌가 걱정하셨던 건지.
엄마는 그 말에 작게 안심의 미소를 지으셨다.
“아, 내일은 병원 가는 날이니까,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네.”
그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용산을 향했는데.
드래곤 마운틴은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이왕 사는 거 조금 사양을 올려보시죠?”
“아뇨. 그렇게는 필요가···.”
“에이, 그러지 말고. 가끔 게임도 하고 그러려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요. 완전 구형 부품들인데··· 요즘 이렇게 사는 사람 없어요.”
가볍게 부품 하나의 가격을 물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조립 PC 견적의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건 권유인가, 강매인가.
헷갈릴 정도다.
“그게 아니라 정말 인터넷 검색에만 쓸 용도입니다. 안 파실 거면 다른 데 가볼게요.”
컴퓨터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모델이 출시된다.
정말 자고 일어나면 어제 산 컴퓨터는 이미 구형이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요즘 이런 건 정말··· 아아! 알았어요. 그럼 진짜 이 사양대로 한다는 말이죠?”
“네. 그대로 해주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거 창고에 있을 거라 좀 찾아야 해서. ···진짜 후회 할 텐데.”
“안 합니다.”
다시 단호하게 말하자 직원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이미 몇 세대나 지난 제품이라 무상 A/S 기간이 끝난 건 물론이고, 이제는 중고로 내놔도 사람들이 잘 사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니 창고에서도 구석에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몇 군데나 돌아다녀서 겨우 물건이 있는 곳을 찾은 게 어딘가 싶다.
조금 기다리니 직원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돌아왔다.
“일단 새 제품이긴 한데, 워낙 오래 된 거라···. 나중에 마음 변했다고 와도 교환 안됩니다?”
“걱정마세요. 그럴 일 없으니까.”
컴퓨터 한 대를 조립하고 낸 돈은 겨우 20만원.
그것도 전부 새 상품인데.
물론 구형이긴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될까? 되겠지?’
방열판에 붙인 마법진이 작동하는 걸 보고 문득 든 생각이었다.
비록 냉각 유지 마법이 초급이긴 하지만, 마법진이 작동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럼 다른 마법진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컴퓨터라는 건 결국 정교하게 만들어진 연산 장치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지.
‘고도로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된다.
결국 마법이란 고도로 발전한 과학과 같다는 말이 되기도 하잖아?
***
CPU, 그래픽 카드, 메인보드, 렘.
컴퓨터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품 4개를 책상 위에 깔아뒀다.
최근에 나오는 제품들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약간은 촌스러운 디자인이지만 중요한 건 성능.
우선 그래픽 카드의 쿨러를 떼어냈다.
방열판과 냉각팬을 떼어내자 꽤 커다랗게 보이던 그래픽 카드는 초라한 녹색 기판만 드러났다.
‘우선 CPU랑 그래픽 카드에는 냉각 기능이랑 마나 변환을 기본적으로 넣고···.’
그 다음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연산 능력을 대폭 향상 시키기 위한 가속 마법이다.
단순히 이동 속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장치가 가진 동작 능력 전체를 높이는 마법진.
이건 냉각 마법보다 상위의 마법이라 마법진을 그리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만약 실로 된 은이 없었다면 적어도 1제곱 미터 크기의 판이 필요했을 작업.
특히나 코어에 직접 새겨넣어야 하기에 더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자칫 실수로 홈이 깊게 패이기라도 하면 고장이 날 수도 있으니까.
웅-.
은실을 겨우 사방 3cm정도의 코어에 빼곡하게 채워넣고 마나를 주입하자 역시나 작은 울림과 함께 마법진이 가동을 시작했다.
코어의 위에는 방열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서멀구리스를 잘 펴서 도포하고, 다시 쿨러와 결합.
메모리 렘에는 공간 확장 마법진만 새겨넣었다.
마음같아서는 냉각 마법에 마나 변환, 가속 마법까지 넣고 싶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건 도무지 마법진을 새겨넣을 자리가 없어서 포기했다.
‘진짜 미세 공정 기계라도 있으면 좋겠네.’
실이 아니라 마이크로 단위나 나노 미터 수준의 공정이 가능해진다면···.
‘어쩌면 반지 하나에 컴퓨터 이상의 에고를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려면 은으로는 턱도 없다.
마나석이나 오리할콘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스릴 정도는 있어야 그나마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언제가는 그런 비슷한 물질을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해봤다.
띠링- 띵, 띵.
어딘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첫 구동된 컴퓨터의 윈도우 화면.
생각보다 속도가 괜찮다.
CPU에 장착된 쿨러는 당연히 샘플을 이용했다.
컴퓨터 주요 장치들의 온도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구동했더니 다행스럽게도 너무 이상할 정도로 낮지는 않았다.
CPU의 온도는 32도.
그래픽 카드는 34도.
적당하다면 적당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이니까.
“뭐라도 해봐야···.”
높은 사양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작동 시키면 올라가는 온도가 가장 중요하다.
게임을 하려고 산 컴퓨터는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테스트를 위한 것.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워낙 오래 전 모델이라 구동이 가능한 게임을 찾다 보니 꽤 오래 전에 즐겼던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왔다.
하나의 국가를 정해서 고대 시대부터 시작해 중세와 현대를 넘어 미래의 기술까지 연구하며 문화를 발전시키는, 발매 당시에 꽤 인기가 많았던 게임이다.
아슬아슬하게 최소 요구 사항에 걸쳐 있어서 테스트를 하기에도 적당하다.
심지어 오래 전 게임이라 가격도 굉장히 저렴하고.
아빠가 준 카드로 결제를 하고, 온라인 스토어에서 게임을 다운로드 했다.
익숙한 게임 회사의 로고 화면이 지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이제 막 중세 시대를 넘어서 소총이 등장하려는 순간.
“선우야, 저녁 먹어.”
“응, 저녁?”
들려온 엄마의 부름.
시간을 봤더니 게임을 시작한 지 어느덧 5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다행이다. 하루가 지난 건 아니네.”
그제서야 난 다시 기억해냈다.
이 게임이 왜 악마의 게임이라 불렸었던 건지.
‘그래도 테스트는 성공인 거지?’
5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면서 컴퓨터가 버벅인다거나 온도가 50도 이상으로 올라간 적이 없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테스트가 아니었나.
저녁을 먹고 남은 9개의 샘플에 모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에어캡까지 잘 둘러싼 쿨러는 인터넷에서 찾은 9개의 회사의 주소로 택배를 보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난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 수록 더욱 많은 컴퓨터 자원이 필요해진다는 걸.
덕분에 최소 사양의 컴퓨터로는 절대 즐길 수 없는 게임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영성 실업.
한국에서 컴퓨터 관련 부속을 만드는 회사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회사.
컴퓨터 케이스와 냉각팬, 쿨러 같이 비교적 단순한 부품들이 매출의 전부를 이루긴 하지만 최근에는 전력 공급 장치인 파워 서플라이 시장에 진출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나름 국내 컴퓨터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중견 기업이다.
그곳의 회의실에 초췌해 보이는 몇 사람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파워 서플라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입니다. 상위 라인 업에서 최소한 ‘플러스 80골드’ 인증은 받아야 하위 라인 제품에도 신뢰가 갈 거예요.”
“그것도 그렇지만 발열도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 만드는 팬 성능으로는 고전력 파워 서플라이 냉각은 무립니다.”
“발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지. 지금은 우선···.”
똑똑-.
한창 회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들려온 노크 소리에 이욱기 과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뭐야?”
“과장님. 저 마케팅 함 대리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회의에 개발팀 직원들은 지금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위에서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 만을 바라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함 대리가 우리 팀 회의하는데는 어쩐 일이야?”
그리 달갑지 않은 인사가 건네진다.
그렇지 않아도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 함 대리는 잔뜩 얼어붙었다.
어느 부서가 더 중요한 가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회사마다 중심이 되는 부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컴퓨터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분명 개발팀이고,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시기에 여길 찾아오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다.
이 망할 놈의 택배만 아니었다면.
“바쁘신 건 아는데,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