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6
6화. 얼마 주실 겁니까?
이욱기 과장은 갑자기 찾아온 함 대리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이렇게 회의 중에 와서 꺼낼 정도라면 분명 회사 차원에서 중요한 일일 테니까.
“보여주고 싶은 거?”
“그게··· 회사 앞으로 택배로 CPU 쿨러 하나가 도착을 했는데요. 그걸 좀 봐주셨으면 해서···.”
말을 할 수록 이욱기 과장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보고 있자니, 함 대리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목소리가 작아졌다.
“···함 대리.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야?”
“아뇨, 과장님. 그게 아니라···.”
“나랑 우리 애들 며칠 째 집에도 못 들어갔어. 위에서 이번 달 안에 어떻게든 문제 해결하라고 하도 지랄을 해서. 근데 지금 뭐? 나보고 쿨러 좀 봐달라고?”
“과장님, 이게 진짜 이상해서 그래요.”
함 대리의 표정이 정말 억울하다는 듯하자 이욱기 과장의 표정이 그제야 살짝 풀렸다.
이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물러나지 않는 게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고.
“···대체 뭔지 한 번 보기나 하자. 진짜 별 거 아니기만 해.”
퀭한 눈으로 으름장을 놓았지만 정작 함 대리는 당당했다.
“직접 보면 아실걸요? 이게 진짜 말이 안 돼서···.”
“아, 알았으니까 얼른 꺼내봐.”
그 말에 함 대리는 가지고 온 종이 박스에서 작은 쿨러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뒀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뭔가 신기한 게 나오는 건가 싶어 기대하고 있던 개발팀 직원들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 이거 이번에 알파 테크에서 신제품으로 출시하려고 했던 거네요. 이름이 무슨 쿨링인가··· 아무튼 되게 유치한 이름으로 나올 뻔 했던 건데.”
“그럼 출시가 취소됐다는 거야?”
개발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잘 안다.
물건 하나를 만들고, 홍보하고, 출시까지 일정을 잡았는데 취소한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거라고.
“그게 얼마 전에 성광 산업이라고 부도 났잖아요.”
“아, 그건 나도 들었어.”
같은 업계인데다, 그리 넓지 않은 바닥이라 소문은 제법 빨랐다.
“아마 이게 그쪽에서 만들던 거였을 걸요? 거기 부도 나면서 나가리된 거죠, 뭐.”
“근데 이게 왜 갑자기 우리 회사로 날아와?”
“글쎄요?”
그 대답은 물건을 가져온 함성욱 대리가 했다.
“여기 들어가는 방열핀을 만든 곳에서 보내온 건데, 이름이··· 영일 공업소 라고 씌여있네요. 아무튼 거기서 보내온 겁니다.”
“에이. 함 대리님, 방열핀 같은 건 다 하청 주고 해요. 우리만 해도 냉각팬은 하청 쓰잖아요.”
개발팀 직원의 말에 함 대리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다른데,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리 말로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무튼 이건 직접 보셔야··· 여기 컴퓨터 있죠?”
“회의할 때 자료 화면용으로 쓰는 게 있긴 한데··· 왜?”
“이거 한 번만 껴보세요.”
이욱기 과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함 대리를 쳐다봤다.
대체 얼마나 욕을 해야 제 발로 여기서 나갈까 싶은 마음으로.
함 대리도 그 눈을 봤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진짜 이거 한 번만 껴보시면 알게 된다니까요? 이게 진짜 말이 안돼요.”
“···알았어. 컴퓨터 잠깐 끄고, 우리도 좀 쉬었다가 하자.”
네-.
개발팀 직원들이 모두 별 관심없다는 듯 회의실을 벗어나고, 이욱기 과장은 컴퓨터 본체를 열고 기존의 쿨러를 뜯어냈다.
서멀 구리스를 닦아내고 다시 도포하고···.
“하아-. 진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함 대리, 너 다음에 나한테 술 한잔 사라?”
“아마 이거 보시면 과장님이 저한테 술 산다고 하실걸요?”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평소 소심하던 함성욱 대리와는 완전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자식이 오늘 진짜 왜 이래?’
이욱기 팀장이 어느덧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어 간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업계였지만, 최근에는 그도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누구는 컴퓨터 제조 공정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느끼기에도 이제는 양자 컴퓨터 시대로 넘어가지 않는 한 크게 도약하기는 힘들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좁혀지는 기술력의 차이.
그 작은 격차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금 더 세밀하고 디테일한 조절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상품의 가치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기 때문에 매일 회의를 하면서 직원들을 갈아넣고 있는 게 아닌가.
끼릭.
예전 사용하던 쿨러에 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걸 보고 이욱기 과장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왕 교체한 거, 그냥 저걸로 써야겠네.”
“이제 켜보세요. 아마 과장님이라면 단번에 아실 겁니다.”
이욱기 과장은 이제 대답하기도 지친다는 표정을 짓고선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 프로젝터에서 쏘아진 화면을 보며 성능 체크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쿨러 하나 바꾼다고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으면 우리들이 뭐 한다고 매일 같이 회의를 하겠···.”
심드렁하던 그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고.
“······뭐야, 이거? 잠깐, 쿨러가 제대로 안 꽂혔나?”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쿨러가 제대로 결합이 되지 않았으면 온도가 더 높아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CPU의 온도는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어때요. 제 말 맞죠? 이상하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상식적인 범주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 순간 이욱기 팀장은 지금 이게 꿈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요즘 너무 잠을 못 잤어···. 그러니까 지금 헛게 보이는 거지.’
다시 눈을 부비고, 벽면에 쏘아지고 있는 화면을 한참을 바라봤다.
분명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음만 내며 돌아가는 냉각팬의 성능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그렇다면 저 방열핀이 원인이라는 건데···.
“함 대리. 이거 누가 보낸 거라고?”
***
하암-.
“어우, 오랜만에 푹 잤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는데 허리가 쫙 당겨지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었으니 이제라도 더 열심히 움직여야지.
‘그나저나 슬슬 택배가 도착할 때가 됐을 텐데?’
한국의 택배는 대부분 발송하고 하루면 배송지에 도착한다.
이미 보낸 지 삼 일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연락이 올 때도 됐는데, 연락이 하나도 없는 게 내심 불안하다.
“아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분명 성능을 보면···.”
설마 회사 이름도 없는 공업소에서 보냈다고 확인도 없이 그냥 무시한 건 아니겠지?
“악! 그 생각은 못했는데?!”
진짜 확인도 안하고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해 버렸다면?
‘아냐. 그래도 한 곳 정도는 확인을 하겠지.’
적어도 한 곳은 할 거다.
···꼭 해야 하는데?
드드드-.
아침부터 혼자 발악을 하며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드디어 책상 위에서 충전중이던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잠긴 목을 얼른 풀었다.
큼큼!
‘그러고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잖아?’
늦잠을 잤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보통 회사라면 이제 겨우 업무를 시작할 시간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얼른 초록색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잡고 옆으로 밀었다.
“네, 이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영성 실업이라고 하는데요. 거기가 혹시 쿨러 샘플 보낸··· 영일 공업소 맞습니까?”
아주 약간 남아있던 의심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
난 숨소리도 죽인 채 혼자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살짝 심호흡을 한 뒤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제가 쿨러 샘플을 보낸 거 맞습니다.”
“혹시 이 샘플을 몇 군데나 보내셨습니까?”
그건 왜 묻는 거지?
“한··· 열 군데 정도요?”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작은 소란이 느껴졌다.
뭐라고 하는 것 같긴한데, 수화기 부분을 손으로 가렸는지 아주 희미하게만 들릴 뿐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뭐지?’
그러기를 잠시.
건너편에서 살짝 긴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지금 어디시죠?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여길 오신다고요? 저야 집에 있는데···.”
갑자기 집에 찾아온다는 사람에게 당황하고 있는 사이.
띠띠-. 띠띠-.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남자의 목소리 사이로 통화 중 대기음이 바삐 울렸다.
‘아침부터 왠 전화가···.’
스마트폰 액정에는 모르는 또 다른 번호가 찍혀 있었다.
***
뭔가 잘못됐던 건가?
처음에는 한 곳이라도 연락만 오면 기쁠 것 같았다.
‘설마 전부 다 연락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평일 오전부터 카페 하나를 거의 통으로 빌리다시피 해버렸다.
아홉 곳에 샘플을 보낸 결과.
지금 이곳엔 나를 포함해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게 됐다.
약간은 혼잡한 카페에서 은근히 먼저 다가온 남자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고, 명함에는 꽤 익숙한 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다.
“임선우 씨, 저희 회사 아시죠? 아이시스.”
알지.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설이 방으로 간 컴퓨터에 장착한 쿨러도 아마 아이시스에서 만든 제품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대한민국에서 쿨러 제조중에선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네, 제가 쓰던 컴퓨터에도 아이시스 쿨러가 달려있는데요.”
“역시! 그럼 더 이상 고민하실 게 있겠습니까? 한국 최고의 쿨러 회사와 계약하시는 게 임선우 씨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게 분명합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어허, 무슨 소리. 아이스라? 확실히 예전엔 잘나갔죠.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요즘 용산에서 아이시스 누가 알아줍니까. 대세는 바로 저희 엘릭서죠! 지난 달 저희 엘릭서 쿨러만 몇 개가 팔린 지 아십니까? 무려 10만개가 넘습니다. 아마 지난 달에 한국에서 컴퓨터 산 사람이라면 절반은 저희 제품을 썼다고 봐야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해 자신의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열변을 토해낸다.
혹시 사장님이라도 직접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사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저기, 모두들 잠시만요.”
목을 가다듬고선 단단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시골 오일장처럼 소란스럽던 카페 안이 잠잠해지며 모두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전이라면 이런 상황 자체로도 긴장됐을 텐데.
“죄송하지만 다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 대 회사로 계약과 납품에 대한 조건을 비교하려고 온 겁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
아마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날 보는 시선은 거의 그럴거다.
이제 겨우 대학교 다닐 나이야 그렇다 쳐도 아마 대부분은 나에 대해 알고 왔을 테니까.
영일 공업소라는 이름과 내 이름 석자면 자세한 개인정보 까지야 몰라도, 근황을 듣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니까.
‘얼마 전까지 혼수 상태였다가 이제 막 깨어난 녀석···.’
관련 업계에서 경험은 고사하고, 회사 운영의 기본조차 모르는 애송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그게 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난 회사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고 국내 컴퓨터 부품 생산 업체에서 나름 잘 나간다는 회사에서 나온 이 사람들에 비해 아는 건 더욱 없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있나?
내가 볼 건 딱 하나다.
“얼마 주실 겁니까?”
지금 나한테, 아니. 영일 공업소에 중요한 건 돈이다.
다른 건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