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미스릴 (1)
“···이거 참, 나도 손자도 자네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르신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제 옆에서 그 빚 다 갚으셔야 합니다. 그 전에는 어디 못 보내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 말에 오성락 어르신은 힘없이 웃었다.
아직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 심장 때문에 숨을 거둘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내 정말 염치 없는 부탁이지만··· 민혁이 녀석을 용서해주면 안되겠나?”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그 녀석이 임 대표, 자네에게 몹쓸 마음을 먹었었다는 거, 알고 있지 않나.”
별 사고가 나지는 않았었지만,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병실에 도착한 직후, 이민혁이 다가오면서 보냈던 눈빛에는 분명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었으니까.
아마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분명 주먹 한 번은 날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자네도 알겠지. 가진 게 많은 사람일 수록 행동, 말 한 마디,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하는 법이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말로 하는 구두 약속이라도 함부로 어기지 못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네. 그걸 지키지 못하면 결국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니까.”
“···좋은 말이네요.”
이건 아마도 오성락 어르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신념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의 손자에게 전해주고, 그가 이어받아 주었으면 했을 신념.
“걱정 마세요. 전 제가 하는 말의 무게를 이미 잘 알고 있거든요.”
“신기하지···. 평소에는 안 그런데, 가끔 자네가 내 친구 같아 보일 때가 있단 말이야.”
난 아무런 말없이,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
“제가 그렇게 노안은 아닌···.”
똑똑-.
“보호자 분, 면회시간 끝났어요.”
다행이다.
흑역사로 남을 뻔 했는데.
***
병실 밖에서 무릎까지 꿇고 오열하는 오민혁을 겨우 일으켜 사과를 받아준 뒤에야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유경준 실장님, 이번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됐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보다 어제 엔비디아에서 프로그램을 공개했던데, 문제는 없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리소스 관리 센터에서 해킹이나 그 외 모든 불법적인 연산은 즉각 차단되도록 해놨습니다.”
유경준 실장은 그 말에 안심을 하면서도 끝까지 우려를 나타냈다.
“그걸로 충분할까요? 중국이 워낙 해킹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 그 관리 센터는 확실히 괜찮겠죠?”
“걱정마세요. 인간의 해킹으로는, 아니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절대 뚫지 못하니까요.”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그걸 관리하는 게 바로 양자컴퓨터인데.
중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슈퍼컴퓨터를 동원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다른 분야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해킹에서는 지금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한 게 바로 엔비디아의 리소스 관리 센터니까.
“네, 그러니까 그 파일의 내용을 중국에서 알아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선우 대표님의 말인데 믿어야겠죠. 그리고 장관님께서 조만간 식사라도 하시는 게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과기정통부 기조실장이 장관이라고 부를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좋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잘 됐네요.”
지금 유럽에서는 10개가 넘는 국가에서 모두 수십 조원을 모아서 거대규모의 핵융합로가 건설중이다.
한국도 참여하기는 했지만, 뒤늦게 들어가면서 그 지분이 꽤 빈약한 편이다.
심지어 그건 정말 가동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연구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정부에서 도움을 주면 훨씬 수월할 지도 몰라.’
이미 아라가 수십, 수천 경이 넘는 금속의 원소 구조를 가지고 시뮬레이션하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합금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거릴 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손에 넣지 못하는 금속도 있으니, 그 부분에서는 정부에 은밀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좋은 거래가 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쪽에서 너무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좋은데.’
워낙에 욕심만 가득한 인간들이 많은 곳이라, 어떨지는 만나봐야 알 것 같다.
우선은 선입견이라도 가지지 말고 만나보자.
***
우선 지금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건 역시 아론과의 협업.
‘마나 저장랑 전력 변환 장치를 먼저 끝내야겠어.’
여러가지 산재한 일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게다가 테슬라에서 시작한 대규모 자율 주행 테스트가 지금 캘리포니아의 전지역에 걸쳐 진행중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도 굉장히 좋았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램버트 씨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얼마 전 테슬라의 자율 주행 테스트에 신청했고, 운 좋게도 천 명의 테스터에 당첨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됐습니다. 테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정말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아마 저라면 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하고 차로 치었을 지도 모릅니다.] [램버트 씨는 도로에서 갑자기 등장한 행인을 만약 자신이었다면 미처 피하거나 정차하지 못했을 상황이었다며 당시 아찔했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최신 AI기능이 탑재된 자율 주행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단 0.1초. 인간이라면 반응을 하는 게 불가능했을 속도로 차량을 급정거 시킨 탓에, 운전자인 램버트 씨와 행인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와, 진짜 이런 시대가 오는 구나.”
“그러게, 엄마는 살아있는 동안 자율 주행 차가 도로를 돌아다닐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엄마, 엄마. 저 차에도 오빠가 만든 컴퓨터가 들어간대.”
“뭐? 그게 정말이야?”
설이의 말에 엄마는 놀란 눈을 하셨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컴퓨터 부품은 엔비디아에서 만드는 거라, 제가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오빠네 회사 부품이 들어가는 거 아냐?”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뭐, 누가 만들었음 어때, 돈만 벌면 되는 거지. 안 그래?”
참 단순 명료한데, 그게 또 맞는 말이긴 하다.
어쨌든 슈렌은 이미 방열판을 붙여서 판매되고 있어서 한 몸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저런 기술은 컴퓨터 자체의 성능도 있긴 하겠지만, 프로그램이 더 대단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오빠, 그럼 저 차 나오면 한국에서도 탈 수 있는 거지?”
“글쎄다. 한국은 아직 힘들 걸.”
“어? 왜?!”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미 레벨5 수준의 자율 주행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아직 레벨3 수준의 자율 주행도 힘든 게 사실이다.
“미국은 땅도 넓고 도로도 직선이 많지만, 한국은 좁은 골목길도 많고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훨씬 더 복잡하거든. 아마 법안 마련에도 시간이 꽤 필요할 걸.”
“씨! 그런 게 어딨어!”
“···네가 왜 화를 내?”
“그야 난 면허 따도 운전하는 건 무서울 거 같단 말야.”
“어차피 차도 없잖아.”
설이는 그런 나를 빤히 보더니, 씨익 웃었다.
“히히, 오빠가 사줄 거잖아. 내 입학 선물로.”
“···내가?”
“생각해 봐. 내가 오빠 동생이라는 거,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나쁜 놈들이 오빠 돈을 노리고 날 납치라도 하려고 하면···. 악!”
“이 놈의 기집애가 정말 못하는 말이 없네.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안했어!”
“아, 왜! 내 말이 맞잖아. 그리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다니면 뭐라고 하겠어? 사람들이 오빠 욕 해요!”
등짝을 연신 두드려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할 말을 하는 설이를 보면서 작게 한 숨을 쉬었다.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맞는 말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녀석은 어째 갈수록 더 뻔뻔해 지는 것 같네.’
***
“하하하.”
“팀장님, 웃을 일이 아니에요. 그 녀석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하하··· 죄송합니다.”
눈물까지 흘린 건지, 살짝 눈 밑을 찍던 이욱기 팀장은 목을 가다듬었다.
“근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겠는데.
이 앞뒤 꽉 막힌 고지식한 양반이 이런 말을 하면 그냥 넘기기가 힘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사람들이 누굴 떠올릴 것 같습니까.”
“이수용 회장님?”
“···뭐, 그건 그렇지만 아마 대표님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겁니다.”
“에이, 말도 안되죠. 제가 아무리 요즘 좀 알려지긴 했지만, 다른 재벌 회장님들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도 안됩니다.”
“알죠. 근데, 사람들 생각이라는 게 그래요. 하루가 멀다고 경제면에 이름이 나오니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거죠. 어차피 저희같은 서민한테는 천 억을 가진 사람이나 이천 억을 가진 사람이나 넘사벽 세상에 산다는 건 거기서 거기거든요.”
그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는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서민이었으니까.
“재벌 집 사람들이 왜 경호원을 달고 다니는 지 아십니까?”
“납치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지키기 위한 거 아닙니까?”
“그것도 맞지만,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 라는 게 더 클 겁니다. 만약에 동생 분이 어디가서 사고라도 쳐보세요. 그럼 당장 다음날 대표님 기사가 저녁 뉴스 탑으로 뜰 걸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설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지금 이곳에서 가진 게 적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 깨어나기 전, 그러니까 내가 영혼 소멸의 각오를 하면서까지 돌아오기 전에 가지고 있던 힘은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았다.
각 왕국의 국왕이나 귀족들도 함부로 하지 못했고, 재력은 어지간한 나라보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몇 씩이나 둔다는 제자도, 함께 술 한잔 기울일 친구도.
그리고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있는 가족도 없었다.
‘그래. 난 지킬 사람이 없었지.’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히 시기하고 질투를 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가진 돈을 노리고, 가족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재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그들의 세상에는 또 그들만의 고통이 있는 거니까요.”
“···근데 팀장님.”
“네.”
휴가에서 복귀한 첫 날.
이욱기 팀장은 어딜 다녀왔는지, 얼굴은 살짝 그을렸고, 피부에서는 광이 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복귀 첫 날부터 바로 일감을 던져 주는 게 전혀 미안하지 않을 정도라 나름 휴가를 준 것이 뿌듯하고 대체 어딜 다녀왔길래 이렇게 기력을 찾았는지 처음부터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딜 다녀온 건지 묻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게 생겼다.
“팀장님, 혹시 재벌이셨어요? 아니면 혹시 제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가요? 절대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 택시만 40년 모셨는데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묘하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이욱기 팀장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조금 전 내게 설교를 하던 말투와는 확연히 달라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라마 보고 배운 겁니다.”
드라마는 애들만 망치는 게 아니었구나.
지금까지 한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삐이이익-.
삐이익!
머릿속에 울리는 비상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라야, 무슨 일이야?”
이건 아라가 보내온 긴급 신호.
어지간한 일로 잠에서 날 깨울 아라가 아니니, 이건 정말 엄청나게 다급한 상황이라는 거다.
서둘러 일어나 옷을 입으려는데, 아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 마스터, 찾았습니다.
“···찾아?”
반사적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아직은 잠결인 상태.
‘내가 뭘 시켰었지?’
아라에게 찾으라고 했던 것.
잠이 서서히 달아나며 멍했던 머리가 깨어났다.
“···미스릴 조합식을 찾았다고?”
시키긴 했지만, 반신반의 했던 것.
설마하니 정말로 미스릴을 만들 수 있을 줄이야.
옷을 입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