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미스릴 (3)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모두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눈치챈 사람은 단 둘.
나와 노상우 차장 뿐이었다.
“···그렇군요. 실례지만 그게 왜 필요한 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흠흠. 전 아직 아무런 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요.”
시치미를 뚝 잡아 땠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국정원 차장이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분석해왔을 지를 생각하면 조금 전의 내 반응에 속내를 짐작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을지도 모른다.
‘설마 마침 내가 필요하던 걸 부탁할 줄은 몰랐지.’
그것도 소형이 아니라 대형 입자 가속기란다.
이러면 내가 원하는 동위원소를 그야말로 마구 찍어낼 수 있는 수준인데, 잘만하면 미스릴을 지속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뭐, 그래봐야 1g 정도가 한계이긴 하겠지만.’
만약 연구용 소형 입자 가속기였으면 한 달에 1g도 나오기 힘들었지 모른다.
안정적으로 하루에 1g이라도 꾸준히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뭘 더 만들어낼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워프 드라이브도 만들어 버리는 거 아냐?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무튼 제가 원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건 입자 가속기의 사용 여부고, 이왕 내가 건설에 참여하는 입자 가속기라면 조금 더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겠지.
아라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 입자 가속기는 몇 대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직경이나 길이나 몇 미터 수준의 소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형, 그것도 마침 내가 딱! 원하던 동위원소 생성 가속기가 건설된다.
어차피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부탁을 해야 사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 입자 가속기, 저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역시···. 아까 반응을 보고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별 건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합금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동위원소를 얻고 싶어서요.”
“그렇군요. 사실 동위원소 생성 가속기는 핵융합이나 동위원소 생성이 아니라면 그 실용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덕분에 카이스트 교수들의 반대가 꽤 심했었죠.”
한국에서 핵융합로에 대한 연구는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진행중이다.
아무래도 과학 분야에서는 한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그래도 분명 도움이 될 텐데, 왜 반대를 했을까요? 이상하네요.”
핵융합로 연구에 동위원소는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헬륨-4 결합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핵융합로 기술의 핵심인 플라즈마의 진단에도 동위원소가 사용된다.
주요 원료인 트리튬과 드터륨 역시 동위원소들로 구성된 물질이고.
“교수들은 범용성이 더 뛰어난 사이클로트론 방식의 입자 가속기를 원했거든요. 어쩌면 정말 교수님들의 말처럼 그게 더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긴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입자 가속기 방식이자 핵융합 연구에서 플라즈마를 가열하는데 쓰이는 사이클로트론.
하지만 교수들이 그걸 원했던 이유는 의료, 산업, 연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학술 연구와 입자 물리학이나 핵 물리학의 교육적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해서였을 가능성이 높을 거다.
사이클로트론 방식도 동위원소를 조합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오히려 다행이네.’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단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입자 가속기의 등장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그럼, 건설은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사실 기초 공사를 시작한 지는 이미 꽤 됐습니다. 원래는 냉각 시스템도 다른 곳과 계약이 되어있었는데, 이번에 그 쪽에서 SW 공업사를 강력하게 추천하더군요.”
“저희 공업사를요?”
최근에 냉각 시스템으로 유명세를 조금 얻기는 했지만 굳이 자기들의 이득을 포기하면서 다른 회사를 추천한다는 게 보통 가능한가?
게다가 이미 계약이 되어 있었다면 더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게 한두 푼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고···.’
적어도 수천 억 단위다.
십 년도 이전에 지어진 PAL(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 투입된 예산만 5천 억에 달한다.
심지어 동위원소 생성 가속기는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입자 가속기.
‘적어도 1조원은 들어갈 텐데, 그걸 공사 계약을 넘겨?’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는 입자를 빛의 속도에 준할 정도로 가속할 수 있다.
그럼 이 때 발생하는 열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냉각 시스템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금액의 계약이었을 텐데, 다른 사람을 추천하면서 넘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배포가 큰 건지, 계산을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누군지 조금 짐작이 간다.
“···그게 어디죠?”
“일성 중공업입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고 싶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 문제는 제가 따로 이야기 해보죠.”
설마 싶기는 하지만, 왠지 핵융합로 연구 때문에 날 여기로 밀어넣으려는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리고 솔직한 말로, 길이만 3km가 넘어가는 대형 입자 가속기의 냉각 시스템을 처음부터 설계할 자신은 없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의 성능 자체야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입이 벌어질 수준이지만, 그것들 모두가 소형 부품에 적용되는 크기였다.
그저 CPU나 GPU의 발열을 식히는 수준이었지.
장비 하나를 관리하는데 수십 명의 전문 인력과 더불어 슈퍼컴퓨터에 준할 수준의 컴퓨터까지 필요한 냉각 시스템을 만들라고 한다면 자신은 없다.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지.’
내가 공학 쪽으로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이건 마치 ‘날 찾으시오.’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
건축 사무소의 대표가 오늘도 어김없이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대표님, 토대 작업을 마무리하고 지하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전기 배선 공사에 꽤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한전에서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네, 그 부분은 미리 협의를 끝냈거든요.”
바로 앞 길 건너편에 SW 공업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국전력에서 일단은 가정집으로 분류되는 이 건물에 그걸 허락해 줄 지가 걱정이었지만, 어디에나 편법은 있는 법.
154kV 변전소 부지를 제공하고 변전소 신설 공사비를 부담하면 22.9kV 고객소유선로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한 마디로 집 모퉁이 한 부분을 변전소로 만들고, 공사비 일체를 부담한다는 조건이면 가능했으니 나로선 거리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만 1회선에 접속할 수 있는 부하설비 용량이 최대 20,000kW라는 게 아주 조금 아쉽지만.
“소장님께서는 변전소 부지를 정해주시고, 공사 시에도 협조 부탁드립니다. 특히 변전소 주변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신경 써주세요.”
“물론이죠. 그리고, 담장의 높이는 어떻게 할까요?”
너무 높아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테고, 너무 낮으면 경호 업무나 보안에 취약해진다.
최근에는 있던 담장도 허무는 추세이긴 하지만 과연 괜찮을까 싶어서 고민을 좀 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
“담장 높이 제한이 1.2미터죠?”
“네, 그렇긴 하지만 부지가 있으니 더 높게 만들어도 허가는 나올 겁니다.”
1.2미터의 담장이라면 사실 있으나 마나.
굳이 운동을 하지 않은 이라도 성인이라면 담장을 넘기에 충분하기도 하고.
“가장 겉에는 나무를 심죠.”
“최근에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방법이긴 합니다.”
“그리고 나무 안쪽으로 담을 세우세요.”
담장을 없애는 추세가 도둑을 없애고, 도시 경관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가장 겉으로는 나무가 빽빽하니 경관을 해치지 않을 테고, 도둑이 들지 못하게 막는 것이야 경비 인원이 있으니 상관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내 구역에 외부인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꼴은 이제 못 보겠다.
혹시라도 우리 집 담을 넘을 생각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
“와, 요즘 엄청 더웠지? 이제 진짜 여름인가, 그치? 오빠.”
저녁 식사를 하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들리는 설이의 목소리.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것이 이번에도 부탁이 있는 게 뻔하다.
“안돼.”
“아, 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욱기 팀장의 말을 듣고, 조금 느낀 바가 있긴 했다.
설이도 학교를 다니니 주변에서 친구들이 SW 공업사에 대해 알 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기대를 하게 된다.
굳이 물질적이 대가를 바라면서 다가오는 게 아니더라도 그게 사람의 본능인 셈이다.
그런 일이 설이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엄마도 지난 번의 동창 모임에 나갔을 때, 곤혹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빠에게서 넌지시 들은 적이 있다.
친구들이 아들이 잘 나가니 한턱 쏘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인데, 나만 그걸 몰랐던 거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그게 사람의 본능인 거다.
“뻔하지. 용돈 달라는 거 아냐?”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철없는 동생을 망나니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허구헌날 TV에 나와서 마약이니 연예인 스캔들이니 시끄럽게 만드는 재벌 2세들은 어떻게 보더라도 눈살이 찌푸려지니까.
그래서 용돈을 넉넉하게는 주지만, 또 그렇다고 신나게 펑펑 쓸 정도로 주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더 해줬다.
–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그런 건 얼마든지 사줄 테니까.
– 진짜? 그럼 나 노트북!
그 외에도 비상시에만 쓰라고 준 카드 한 장이 있었지만, 아직 카드의 결제내역이 날아오진 않아서 그나마 기특하게 보는 중이었는데.
“이번엔 용돈 아냐!”
“그럼 사고 싶은 게 있어서?”
“···그것도 아니고.”
수저를 내려놓고, 설이를 빤히 바라봤다.
평소에는 바락바락 대들기만 할 줄 알던 녀석이 오늘은 마치 고양이 앞의 쥐라도 된 것처럼 다소곳하다.
이게 바로 돈이 만드는 권력이자, 힘인가.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그런 귀여운 표정 징그러우니까, 그냥 말을 해.”
“들어줄 거야?”
“들어보고.”
그 말에 설이는 입술을 한 번 삐죽이더니 의자에 걸려있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스윽 내밀었다.
“···이게 뭐야?”
물론 나도 눈이 있으니 이게 학교 성적표라는 건 안다.
그걸 왜 엄마나 아빠가 아니고, 나한테 주냐는 거지.
“큼큼, 아빠는 봤다.”
“엄마도 벌써 봤지.”
“···이걸 나도 봐야 되는 거야?”
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아니, 이걸 보여주고 뭘 달라고 하려고?
세 번이나 꾹꾹 눌러 접힌 성적표를 펼치자 오랜만에 보는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기억 속에 있던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숫자들이 눈 앞을 가득 채웠다.
끝없이 펼쳐진 1의 향연.
혹시나 싶었지만 성적표에 분명하게 찍혀있는 임설의 이름 두 글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물었다.
“···이게 뭐야? 너 진짜 1등이야?”
“응! 이거 우리 기말고사 성적표인데, 나 이번에 1등 했다?!”
내 말은 성적표 위조한 거 아니냐고 물은 건데.
“허, 참···.”
요즘 열심히 공부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전교 1등을 할 줄이야.
엄마나 아빠를 보니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게 엄청 좋아하시는 게 뻔히 눈에 보인다.
확실히 이런 건 나는 한 번도 드리지 못했던 종류의 기쁨이지.
그걸 한참 어린 동생이 대신해 주고 있으니 기특하기는 하네.
하지만 칭찬만 해주면 기고만장 해질 수 있으니, 한 명이라도 현실을 알려줘야 한다.
“···잘했네. 너, 한국대 전자공학과 간다며? 이 정도는 해야 그나마 원서라도 쓸 수 있을 걸?”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입꼬리가 실룩거리기는 한다.
이까짓 성적이 뭐라고.
최대한 덤덤하게 숟가락을 다시 들고, 국을 한 술 떴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뭔데?”
“그게··· 나, 방학하면 수능 전에 마지막으로 여행가면 안 돼?”
“응? 그건 내가 아니라 엄마한테 허락을···.”
아, 표정을 보니 엄마는 이미 허락하셨구나.
“그럼 아빠한테···.”
아, 셋이 다 같이 다녀오겠다는 말이었구나.
두분, 막내딸에게 총대를 매게 하신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 아빠까지 합세했다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어딜 가고 싶어하는 지도 알 것 같긴 하다.
설이가 미국에서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어찌나 아쉬워했는지 알고 있고, 엄마도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가고 싶어하셨지.
‘진작 보내드릴 걸 그랬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을 못 썼다.
갈 곳이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싶은데?”
“나, 미국!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단 말야.”
역시.
첫 가족 해외 여행에 나만 빠질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