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72
72화. 미스릴 (4)
“휴가요?”
“이번에 우리 가족들이랑 휴가를 다녀올까 해서, 심 비서도 그 기간에 어디든 다녀와.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개발팀이 고생하는 거야 공업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 늘 눈 밑이 퀭한 채로 회사를 배회하고 다녀서 오죽하면 별명이 좀비 군단일까.
하지만 심 비서의 업무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쉬워 보이는 업무지만, 그녀의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건 다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나라도 몰래 챙겨줘야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은 혹시 어디로 갈 계획이세요?”
“우린 다 같이 미국에 다녀올까 하는데.”
“설마 가서 또 일하실 건 아니죠?”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냐고 손을 저으려다 보니, 미국에 가서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네.
뭐, 겨우 사람들 만나서 회의나 하는 게 무슨 일이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늘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걱정마. 이번엔 진짜 일에 관련된 건 거들떠도 안 보고 놀기만 할 거니까.”
“그럼··· 혹시 제가 같이 가도 되요?”
“···어, 어?”
순간 당황해서 살짝 말을 더듬었다.
미국 출장을 갈 때야 ‘일’이니까 당연히 동행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일이 아니라 휴가인데?
직장 상사가 가족들과 휴가를 가는데 따라나서겠다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아아, 그게 아니라 저도 이번에 정말 보고 싶은 공연이 있어서 미국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혹시 또 알아요? 가면 제가 대표님께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
무슨 공연을 보러 미국까지 가나 싶기도 하지만.
왠지 든든하기는 할 것 같다.
‘확실히 만약의 상황에 심 비서가 있으면 안심이 되긴 하니까.’
“심 비서만 좋다면 그렇게 해. 설이가 방학을 하면 갈 테니까 혹시 다른 일정 있으면 정리 좀 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환한 얼굴로 나가는 심 비서의 뒷 모습.
‘심 비서, 설마 나를···.’
분명 착각이겠지만, 괜스레 기분이 좀 묘해졌다.
***
동위원소 생성 가속기를 건설하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인 비용이라 한 번에 투입하려면 부담스럽다는 것도 있지만,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최첨단 장비로 이뤄지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시간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최소 3년.
길면 10년은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앉아서 한가하게 기다릴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았다.
“아라야, 한국에서 네가 말한 동위원소 생성이 가능한 설비가 있는 곳을 찾아봐.”
– 마스터, 중이온 가속기 연구소 지하에 동위원소 생성이 가능한 입자 가속기가 존재합니다.
“그거면 바로 가능한 거야?”
– 네. 총 54개의 모듈로 제작되어 최대 빛의 속도의 20% 수준까지 입자를 가속 시킬 수 있도록 제작되었지만 아직은 내부적인 시험 단계인 상황이라,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 입니다.
일종의 시범 운영 중이라는 소리인데, 그 정도야 내가 직접 해결해야지.
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장관님, 저 SW의 임선우 입니다.”
“네. 설마, 벌써 냉각 시스템의 설계가 완료된 건 아니죠?”
“물론 그건 아직입니다.”
하루 이틀에 완성시킬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지만,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절대 무리다.
최소한 참고할 정도의 자료는 있어야 아라에게 시킬 수 있지.
해킹을 해서 자료를 빼오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무얼하든 불법적으로 손에 넣는 자료는 뒤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수용 회장을 만나기로 한 거고.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부탁할 것은 냉각 시스템의 설계와는 관련이 없다.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부탁을 조금 앞당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부탁이라면··· 입자 가속기의 사용 권한 말입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완공이 된 이후에야 가능한 데, 그걸 앞당겨 달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곳에 있는 걸 먼저 쓰게 해주셨으면 해서요.”
“다른 곳이라··· 하지만 한국에 아직 그 정도 수준으로 동위원소를 생성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물론 동일한 수준으로는 안되겠지.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수천 억의 예산을 투입해서 새로운 입자 가속기를 만들겠다고 했을 리도 없고.
괜히 혈세를 낭비한다며 기삿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당장 하루에 1g 이상의 동위원소를 찍어낼 수 있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스릴이라면 아주 소량만 첨가해도 분명 효과가 있으니까.’
진짜 먹물은 커다란 세숫대야에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전체 물을 금세 까맣게 물들인다.
미스릴 역시 그 작은 한 방울이라면 충분하다.
소량, 아니 미량이라도 섞이는 순간.
합금이 가지는 마나 적응력은 믿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
‘거기다 은보다 마력 효율이 좋은 니켈과 섞으면···.’
순수 미스릴로 만든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은과 섞은 미스릴보다 마법진에서는 더욱 뛰어난 성능을 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숨이 가빠질 정도로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더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다.
“왜 그러세요. 한 군데 있잖습니까. 대전에 있는 중이온 가속기 연구소요.”
“···하, 하지만 거기도 아직 시험 단계일 뿐입니다. 차라리 다른 입자 가속기를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알아보겠지만,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곳의 설비는···.”
“알아요. 위험하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산하 기관 기초과학연구원.
그리고 기초과학연구원에 소속된 곳이 바로 중이온 가속기 연구소다.
몇 번이나 정권이 바뀌면서 점차 강조된 과학벨트의 중심에 선 곳이 바로 기초과학연구원이고, 그곳에서 10년을 넘게 공들이고 연구해서 겨우 성과를 보기 직전인 곳이기도 하다.
‘10년을 공들인 녀석을 자기들이 맛도 보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낼름 집어 삼키려고 하는데, 그걸 수긍할 리가 없지.’
이건 아무리 과기정통부 장관이라도 함부로 밀어붙이기가 어려울 거다.
장관직이야 대통령이 바뀌면 대번에 자리에서 내려오기 일쑤지만, 연구원들은 이미 저곳의 터줏대감일 테니까.
거기다가 입자 물리학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한국 최고에 손 꼽히는 사람들일 게 뻔한데, 장관이랍시고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모듈 가동해도 동위원소를 원하는 데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상태죠?”
과기정통부 장관이 입자 물리학에 대해 얼마나 알겠냐 만은, 이런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보고를 받았을 거고.
그런 보고를 받은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게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나도 아라에게 들은 걸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 뿐이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아무리 중이온 가속기가 정상작동을 한다고 해도 거기까진 무리겠죠. 만약 정말 양자 컴퓨터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합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
이 분자 구조를 관찰하려면 최소한 백만 배로 확대할 수 있는 트랜스미션 전자 현미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분자 구조를 구성하는 원자를 확인하려면 수천 만 배로 확대해야 하고, 이보다 훨씬 더 작은 원자핵은 사실상 직접 확인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원자핵의 내부에 중이온이나 중성자를 임의대로 충돌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입자 가속기이다.
입자의 속도가 이미 빛의 속도와 비교할 수준인데, 이걸 정확하게 조절하겠다는 발상의 단계부터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셈이다.
컴퓨터.
그것도 말도 안될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계산할 정도의 병렬 계산이 가능한 컴퓨터가 필요하다.
“만약 프론티어 수준의 슈퍼컴퓨터라면 어떻습니까?”
“그건···. 전문 분야에 대해 제가 원하는 대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차라리 임선우 대표가 연구원장을 직접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중간에서 이야기를 전달해드리는 것보다 그 편이 더 확실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이건 뭐, 새우 싸움에 등이 터질 걱정을 하는 고래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오히려 나 역시 그 편이 마음에 든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이야 차고 넘치니까.
물론 그것도 아라라는 존재의 덕이긴 하지만.
***
“이번에 미국에 또 온다면서요?”
“네. 하지만 캘리포니아로 가진 않을 겁니다. 이번엔 정말로 휴가 차 가는 거라.”
“하지만 관광이 목적이라면 캘리포니아만한 곳도 드물 걸요? 끝내주는 해변에 적당한 날씨, 근처에는 라스베이거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 거리도 잔뜩 있겠지.
캘리포니아에 갔다가는 저 세 사람이 날 가만히 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특히 지금 눈을 빛내고 있는 아론 머스크는 당장이라도 날 납치해서 지하실에 가두고 군만두만 먹이면서 연구를 시키고 싶어하는 눈인데.
저 눈은 한 마디로 정상이 아니다.
“아뇨. 캘리포니아 쪽으론 아예 눈 길도 안 줄 겁니다.”
“친구, 어디로 가든 말만 하라고. 미국 곳곳에 우리 회사 별장이 널려 있으니까.”
마리아 회장이나 잭슨 회장은 몰라도.
“아론, 당신에게는 더욱 비밀로 할 건데요?”
“하하. 누가보면 내가 친구를 납치라도 하려고 하는 줄 알겠어.”
······.
화상 회의 시간에 이런 침묵이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근데 저렇게까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조금 안쓰럽기는 하다.
지금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테스트 중인 자율 주행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 뒤는 본격적인 법안 마련과 새로운 모델 출시 발표가 기다린다.
아마 그 전에는 어떻게든 차세대 배터리를 넣어서 만들고 싶겠지.
아직은 말해주기 이른 단계이긴 하지만···.
‘살짝 언질 정도는 해줄까?’
“크흠. 아론, 보채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 말에 아론은 카메라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다른 두 사람도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로 차세대 배터리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냉각 장치를 개선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아예 배터리를 새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잭슨은 아마도 내가 배터리 성능을 올리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이 가능할 수 있도록 냉각 장치를 개선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행보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겠지.
갑자기 차세대 배터리를 만든다고 나서는 것보다야.
“네. 사실 이미 완성 단계이긴 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서 늦어지는 거예요.”
“문제? 내가 해결하지! 뭐든 말만 하라고!”
“저도 도울 게 있으면 도울게요.”
살짝 언질만 줄 생각이었는데, 세 사람의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여기서 멈췄다간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끌려갈 것 같다.
“별 건 아니고··· 재료 하나가 부족해요.”
“재료? 겨우 그런 거라면 내가 당장 전용기로 보내주지!”
미스릴이라고 하는데요.
이걸 뭐라고 설명하냐.
“음···. 이게 전에는 없던 새로운 조합의 합금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합금을 새로 만들었다고?”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조금 전까지 뭐든 해주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던 아론 조차도.
새로운 금속 원소의 조합이란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연금술이란 이름 아래 끊임없이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될 정도의 합금은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는 단순히 금속을 섞어서 찾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했는지.
합금 과정에서 온도나, 가스, 압력 등 주변 환경까지 통제하면서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일명 형상 기억 합금이라 불리는 메모리 금속도 아르곤 가스로 보호한 상태로 제온을 이용해서 재련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은 모두 오랜 시간 계속된 연구와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 말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연히 찾은 합금을 배터리에 넣는 게 아니라··· 배터리에 넣기 위해 합금을 만들었단 말인 거죠, 지금?”
뭔가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잭슨과 마리아 회장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초반부터 내 옆에서 어렴풋이 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 덕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 사람들조차 이렇게 놀랄 정도라니.
차라리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 세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운을 띄워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참고로, 이 합금은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만들기가 어려운 겁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라라는 존재가 양자 컴퓨터와 만났기에 찾아낼 수 있었던 거다.
미스릴이라는 건 애초에 다른 누군가가 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나 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못을 박아둬야겠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혹시나 달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