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더 크게, 더 깊이. (3)
사람들이 아직 콘서트의 여운을 가진 채 웅성거리던 홀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지금 이곳은 한인타운.
공연장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
그렇기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가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웅성웅성.
“지금 선우라고 하지 않았어?”
“선우가 누군데?”
“그 왜 SW 공업사 대표있잖아.”
“아아, 그 사람··· 근데 그 이름이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두근.
잠잠해졌던 내 심장이 그녀가 부른 작은 목소리 하나에 다시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이건 좀··· 당황스럽네.’
분명 눈을 마주쳤을 때, 무언가 느낌이 오긴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돌렸고 그 뒤로 무대가 끝날 때까지 더 이상 눈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건데.
지금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행동이 곧바로 이해가 됐다.
‘나름 프로라 이건가.’
울먹이는 목소리 안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담겨 잔잔하게 떨렸다.
노래를 하면서 얼마나 억지로 버텼을지.
지금의 무대 위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출구로 향하던 사람들은 이 묘한 분위기 속에서 붕 떠있는 상태였다.
지금 여기서 내가 나서면···.
‘그건 안되지. 아라야, 클라리아의 스마트폰 번호를 알아봐.’
나는 어찌 돼도 상관없지만 리아는 아니다.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던 노래의 가사를 듣는 순간 어쩌면 알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부정하려고 했다.
유타 사막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맥주 캔을 부딪히던 순간을 혼자 가슴에 품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클라리아는 이제야 겨우 재능을 발하기 시작하는 가수.
여기서 재벌과의 스캔들이 터지는 건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다.
– 마스터의 스마트폰에 ‘리아’라는 이름으로 저장했습니다. SNS 계정도 팔로우 할까요?
‘···아니, 번호면 됐어.’
홍보실에서 제발 개인 계정 하나만 만들자고 해서 만든 계정이고, 가끔 사진같은 걸 올리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팔로우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갑자기 클라리아를 팔로우하기 시작하면 기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꼴이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던 감미로운 노래의 한 소절이 채 지나기 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반응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
리아는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지금 정황을 보고 짐작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내게서 온 전화라는 걸 알고 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뿐이고.
“제 번호를 벌써 알고 있었나 보네요.”
잠시 침묵이 지나고.
그녀는 역시나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죄, 죄송해요.”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멋대로 리아 씨의 번호를 알아냈으니까··· 비긴 걸로 치죠.”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네요. 선우 씨는.”
“리아 씨는 여전히 아름답구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흠칫해서 고개를 돌리니, 다섯 명의 시선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이 녀석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사고를 치긴 친 것 같은데.
“오빠··· 지금 누구랑 통화하는 거야?”
“어어? 어··· 친구지?”
“친구? 오빠, 저쪽 마이크··· 아직 켜진 상태거든?”
···아, 망했네.
***
[클라리아, 열애설! 상대는 한국 SW 대표?] [미국 여 가수. 콘서트가 끝난 후의 은밀한 밀회?!]– 미쳤······.
└ 안돼!!
– 형이 이렇게까지 행복해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 이거 아직 확실한 거 아니지 않나?
└ 나 아는 사람이 콘서트에 갔던 사람한테 들었는데, 대놓고 고백했다고 함.
└ 누가 누구한테 한 건데?
└ 뻔하지. 돈으로 환심사려고 접근 했겠지.
└ 이게 맞지. 클라리아가 미쳤다고 자기 콘서트에서 공개고백하냐.
– 재벌이랑 연예인 만나는 거 하루 이틀이야? 이제 관심도 없다, 난.
– 이미 둘이 만난 지 꽤 오래됐다. 안 그러면 왜 그렇게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했겠어.
└ 로맨틱하구만?
└ 가족이랑 갔으면···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려고 했나 보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 와중에 없던 이야기까지 살이 붙어서 조금 있으면 둘 사이에 아기가 있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콘서트가 끝나고 조용히 자리를 함께했던 이후부터 연락은 꾸준히 주고 받고 중이지만 클라리아는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표님, 지금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어서 홍보팀이 마비 상태입니다.”
“···알아. 하지만 지금 내가 나서면 리아의 입장이 더 곤란해 질 거야.”
“차라리 깔끔하게 인정하시고, 공개 연애를 하시는 게···.”
그 생각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
하지만 매니저의 입장이 너무 단호했다.
– 리아는 인기가 많다곤 해도 이제 겨우 신인 가수를 벗어난 상태, 공개 연애는 절대 안됩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직업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미국은 한국에 비해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 아닌가?’
“아무튼, 지금은 나보다 리아의 입장이 중요하니까. 저쪽에서 발표를 하기 전까지 기다려야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설마 대표님이 그 클라리아와 연애 중이셨을 줄은···.”
“아니. 나도 오래 전에 한 번 우연히 만난 거고, 콘서트에서 만난 것도 정말 우연이었어. 나도 얼마나 놀랐다고.”
말을 하고 보니 왠지 바람피다 걸린 남자친구의 변명처럼 들린다.
어딘가 뾰루퉁한 심 비서의 표정을 보면 왠지 모르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진짜로 미안할 일은 절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성전자에서 연락이 왔는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나길 원하신다고 합니다.”
“왜 나한테 직접 전화를 안하시고?”
“글쎄요. 뭔가 화날만한 일이라도 하신 게 아닐까요?”
“···내가?”
“뭐, 전 모르겠네요.”
휘잉-.
갑자기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든다.
한 여름이라고 에어컨을 너무 강하게 틀었나.
···분명히 그랬겠지.
“알겠어. 오늘 저녁에 바로 약속 잡아줘.”
“오늘 바로 만나시게요?”
“응. 그리고 저녁까지 사무실에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고.”
“알겠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수용 회장이 만나자고 할 일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핵융합로 진행 상황에 관한 이야기.
두 번째는 얼마 전 부탁한 입자 가속기 사용에 대한 내용인데, 아마도 타이밍으로 봐서는 이쪽일 가능성이 99%다.
핵융합로에 대한 문제는 옆에서 누가 재촉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이수용 회장도 그걸 재촉하려고 만나자고 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 두 가지 모두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인데···.
‘가속기 연구소 일을 벌써 들은 건가?’
수 조원이 투입된 입자 가속기가 겨우 완성되기 직전인데, 아무리 부탁한다고 해도 그걸 혼자 조작하게 둘 곳은 없다.
당연히 미스릴을 만들 때도 옆에 연구소 직원들이 몇 명이나 있었고, 그 장면을 모두가 눈 앞에서 봤다.
완전히 새로운 금속이 눈 앞에서 만들어졌는데, 소문이 안 나길 바라는 것도 양심이 없는 거지.
물론 서약서를 쓴 직원들이 대놓고 소문을 낼 수야 없겠지만 일성그룹의 회장 정도라면 그런 정보를 듣는 것 쯤은 쉬운 일일 테니까.
후웅-.
공간 전이 마법진을 활성화하자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아라야, 21번 파일 띄워봐.”
지하로 내려와서 가장 먼저 중력 마법구의 홀로그램을 펼쳤다.
양자 컴퓨터에는 역중력 마법구를 사용했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그 중에서 초극저온을 이용해 자기력과 중력을 제거하면서 양자 컴퓨터를 완성했지만, 핵융합로는 다르다.
완전히 상반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중력과 온도를 최대한 높여야 하네.’
어마어마한 초고열과 그 온도를 유지할 플라즈마를 가둬둘 수 있을 정도의 자기장과 중력.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에는 크기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핵융합로야 한 번 만들어두면 이동할 필요도 없으니, 크기가 조금 크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전혀 없다.
필요한 것은 적당한 압력과 적당한 온도.
내가 할 일은 이 두 가지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뿐이다.
그 외에 세부적인 작업은 일성전자에서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아라야, 작업 시작하자.”
– 마스터, 현재 여분의 미스릴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시뮬레이션만 해보는 걸로.”
– 알겠습니다. 21번 파일 수정 작업을 개시하겠습니다.
***
웅웅-.
휴대폰의 진동음에 시간을 확인했더니 벌써 퇴근 시간까지 10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각.
“일단 진행 상황 저장하고, 크기만 30% 수준까지 축소시켜서 3D 프린터로 제작해봐.”
– 네, 마스터. 재료는 니켈과 은, 백금만 사용할까요?
“미스릴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렇게 해.”
– 그럴 경우 시뮬레이션한 수치와 차이가 심하게 날 수 있습니다.
“괜찮아.”
미스릴을 만드는데는 니켈과 은, 백금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동위원소가 수십 종이나 들어간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해봤지만, 아라가 만든 모든 원자핵은 지구상에서 자연적으로 발견된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원자핵에 중성자가 추가되는 순간, 원자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테스트용 제작이 큰 의미가 없긴 하겠지만, 지금 확인하려는 건 성능이 아니라, 작동 여부다.
니켈과 은만 사용해도 마법구를 만드는 건 가능하니, 성능이야 현저히 낮아져도 크게 상관없다.
– 대형 중력 강화 마법구 제작을 시작합니다. 완료까지 총 12시간 소요될 예정입니다.
“음, 딱 좋네.”
워낙 크기가 커서 저번처럼 여러 부위로 나눈 뒤 조립을 해야 하는 형태.
“내일 출근해서 바로 조립하고 테스트 해보면 되겠다.”
딱 적당한 시간이다.
그리고 마침 이제 이수용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가서 할 이야깃거리도 생겼고.
마법진을 가동해 사무실로 돌아와 잠긴 문을 열고, 바로 정장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정확히 6시가 되자 심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차 대기시켰습니다.”
“아니, 오늘은 내 차로 가지. 심 비서도 오늘은 같이 갈 필요 없어. 퇴근해.”
이수용 회장님이 오늘은 혼자 오라고 당부했다.
지금 당장이야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가서 확인하면 될 일.
“네? 아, 네.”
위이이잉-!
그리 한산한 도로는 아니었지만, 차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게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슈퍼카를 이런 맛에 타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
“오늘 약속 장소는 좀 의외인데? 아라야, 거기 뭐가 있어?”
이수용 회장이 만나자고 한 곳은 쌩뚱맞게도 경기도 구석에 있는 한 산이었다.
지도를 찾아봤지만, 주변에는 그 흔한 계곡 백숙을 파는 음식점 하나 없는 야산.
보통 호텔 라운지, 그것도 룸으로 된 곳에서만 만나자고 하던 이수용 회장이기에 오늘의 약속 장소는 꽤 의외였다.
– 주변에 확인되는 건물은 없습니다. 다만, 토지의 소유주는 이서연 양으로 확인됩니다.
딸 이름으로 된 사유지? 그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게 이해가 되지.
아마도 어떤 자원이 묻혀 있거나, 골프장이나 리조트 같은 것을 지으려고 매입해둔 땅일지도 모르고.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이서연이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었는데.
설마 오늘 약속 장소에 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불편한데···.’
차는 시내를 벗어나면서 잠시 막히는 듯 하더니, 이내 빠르게 달려갔다.
도로가 안정적이라 자율 주행을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도 슬쩍 들긴했지만, 이내 관뒀다.
그렇게 달려가 도착한 곳에는 이수용 회장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막 도착한 참이니까요. 근데, 산을 조금 올라가야 하는데··· 그 복장으로 괜찮겠습니까?”
“지금 산을 오른다구요?”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5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거든요.”
이수용 회장은 지금까지 나를 만나면서도 경호원을 적어도 5명 이상은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겨우 한 명.
물론 저 한 명이 엄청난 사람일 확률이 높겠지만, 원래 다굴에는 장사없는 법 아닌가.
그런데 이 멀리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인데.
‘얼마나 비밀스러운 곳이길래?’
“네, 괜찮습니다.”
다행히 산 길은 그리 질척거리거나 험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앞에 작은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이 산 전체가 어떤 시설을 감추기 위한 장소라는 걸 깨달았다.
깊은 지하에서 느껴지는 이 공허한 감각은 문래동 공장으 처음 봤을 때와는 비교하기도 힘든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증거니까.
“지하에 시설이 있군요.”
“제 아버지 때부터 준비해온 곳이죠. 뭐가 있는지는 내려가 보시면 금방 알게 될 겁니다.”
문래동에서 처음 느꼈었지만, 돈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그래서 전 세계의 재벌들이 비밀 장소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많이 해봤다.
다만, 아라가 찾아봤음에도 파악하지 못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말은 이곳에 대한 정보는 컴퓨터 데이터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시대가 오기 전부터 존재해왔다는 말이네.’
이건 뭐, 거의 고대 던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안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기대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