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8
8화. 박람회 (2)
이번 일을 해결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과학과 마법의 조합이 생각보다 더 좋아.’
아마 그곳에서도 내가 과학에 관련된 지식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여러가지를 시도해 봤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있는 세상에서 마법이 딱히 쓸모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심지어 마법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자부했으면서 말이다.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
애초에 과학과 마법이라는 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학문이 아니었다.
이 둘은 마치 쌍둥이 형제와 같다.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둘이 힘을 합치면 그 누구보다 궁합이 잘 맞는 그런 쌍둥이.
오늘의 저녁 반찬은 불고기.
최근 밥상에 고기나 생선이 절대 빠지지 않는데, 아무래도 이유는 나 때문인 것 같다.
깻잎에 소불고기와 함께 볶아진 팽이버섯을 조금 얹고 잘게 자른 청양 고추까지 한 조각 넣으면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간이 어우러져 밥 한 공기가 금세 비워진다.
“그래.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아마 하루 종일 상황이 궁금하셨을 텐데, 저녁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을까.
엄마가 후식으로 딸기를 내오고 나서야 아빠의 물음이 들려왔다.
“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말씀드리려던 참이예요.”
“그래. 그럼 어떻게···.”
“무슨 말이야? 혹시 오빠 또 사고쳤어?”
또? 어이없는 단어에 설이를 살짝 노려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보, 이게 무슨 소리야? 선우가 무슨 일을 해결해?”
엄마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서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빠는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라는 눈빛을 보냈고.
“대단한 건 아니고··· 공업소에 있던 재고를 오늘 처리할 수 있게 됐어요.”
“공업소에 있던 재고라니?”
“성광 산업에 납품하기로 했던 물건들이요.”
“성광? ···아! 근데 그걸 오빠가 어떻게?!”
내용이야 대충 들어 알지만, 업체 이름까지 기억하지 못했던 설이도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일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최근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는지는 옆에서 봐왔으니 모를 수가 없다.
“운이 좋아서 조금 개량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간단한 아이디어인데, 그걸 높게 사준 회사가 있어서··· 아무튼 잘 됐죠.”
“가격은 얼마나 받을 수 있고?”
“성광이랑 계약했던 금액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방열핀 하나 당 350원이요.”
엄마와 설이는 다행이다 싶은 표정이었지만, 아빠는 달랐다.
엄마와 설이는 물건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정확한 가격을 몰랐을 거다.
그러니 이 가격을 듣고 놀라는 건 아빠 혼자다.
“어, 얼마를 받기로 했다고?!”
“개 당 350원이요.”
“여, 여보··· 왜 그래? 너무 싸게 넘기는 거야?”
“뭐야, 오빠 때문에 우리 집 망하는 거야?!”
“저, 정말이냐? 개 당 350원이라고?”
허탈한 듯한 아빠의 표정은 묘했다.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내가 보더라도 대체 무슨 심정인지 감이 오질 않는 그런 표정.
“왜 그래. 뭐가 잘못된 거야?”
“아, 아냐. 가격을 너무···.”
“너무?”
“너, 너무··· 잘 받았어. 대체 어떻게 그 가격에···.”
약간은 과묵한 스타일이라 좀처럼 당황하는 적이 없는 아빠의 모습에 엄마와 설이의 표정도 덩달아 놀랍다는 듯 변했다.
“너무 잘 받았다니. 그럼 잘 된 거 아냐?”
“당연하지! 이건 정말이지···. 밀린 기계 할부금도 한 번에 지불할 수 있을 정도라고!”
공업소 운영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았었구나.
기계라고 해봐야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그게 다 빚이었다니.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게 죄송스러울 정도다.
‘한 번도 내색을 한 적이 없으시니까···.’
괜히 코끝이 찡···.
“아빠, 그럼 나 용돈도 올려주는 거야?!”
할 뻔 했다.
***
계약서에 관한 사항은 전적으로 아빠에게 맡겼다.
나는 몰랐지만 공업소도 회사인 이상 계약할 때 독소 조항이 있는지를 검사해 주는 계약 변호사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고.
‘솔직히 내가 계약서에 대해 뭘 알겠어.’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오늘은 그 계약서를 찾아가기 위해 공업소를 찾았다.
“선우, 이 놈아!”
“임선우. 이야기 들었다. 사고 제대로 쳤다며? 와, 다시 봤네. 그런 능력이 있었어?”
공업소에 발을 디디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분의 앞에 서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키는 내가 더 큰데도.
“호석 삼촌, 만호 삼촌.”
“아주 그동안 골 머리를 썩던 일인데, 어떻게 네가 일어나자마자 한 번에 해결을 해 버리네. 영업 이사가 돼서 아주 내가 쪽이 다 팔린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았어서···.”
“너무 겸손할 필요 없어. 운도 실력이라는 말 알지? 다들 말은 안 해도 너한테 고마워할 거다.”
공장 안에 있던 직원들 몇몇이 눈이 마주치자 멀리서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들 나이도 나보다 많은 분들인데.
그래서 나도 엉겁결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
“오늘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간다며, 어떻게 삼촌이 같이 가 줄까?”
“어허, 영업 이사님. 지금 어디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시나. 조카 밥상에 욕심내지 말고 다른 데 영업 뚫을 생각을 하셔야지.”
“농담이다, 농담.”
만호 삼촌의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호석 삼촌도 그간 무거운 마음으로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건 아마 만호 삼촌이 제일 잘 알겠지.
서로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분들이니까.
“제가 벌인 일이니까, 제가 마무리까지 해보려고요.”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흐뭇해졌다.
뭐지, 저 표정은···.
“그래. 얼른 사무실 들어가봐. 영일 형님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신 거 같더라.”
“네, 그럼 가 볼게요. 다음에 봬요.”
며칠 전에 찾아왔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공업소 안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가자 아빠가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줬다.
“왔어? 이거, 서류 준비해뒀다.”
“문제는 없겠죠?”
“그럼, 어차피 표준 계약서에서 세부 사항만 조금 바꾼 거라 그쪽에서도 딱히 수정을 요구할 것도 없을 거야.”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거기에 가서 처음봤다는 티를 내기 싫기도 해서 먼저 서류를 꺼내봤는데.
영일 공업소의 대표 란에는 이미 직인이 찍혀 있었다.
‘나 이건 처음 보는구나.’
그간은 딱히 관심을 두지도, 둘 필요도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인데.
당연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지금은 왠지 죄송스럽다.
“그런데, 선우야. 아이시스에서 메일이 하나 왔더라.”
“아이시스에서요?”
모른 척 물었지만, 왜인지 알고 있다.
“그래. 왜 그런 결정을 한 건지, 물어도 되겠니?”
며칠 전 카페에서 진행된 공개 입찰.
어떻게 보면 경매 형식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그건 경매가 아니라 입찰이었다.
즉, 회사에서 금액을 써 내면 가격을 보고 우리가 납품할 업체를 고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날, 입찰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불렀던 건, 아이시스였다.
“그냥요.”
“···그냥? 적어도 수천 만원은 차이가 났는데, 이유가 없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히 아무 이유도 없이 영성 실업을 고른 건 아니었다.
처음에 자리에 앉자마자 350원의 금액을 낸 뒤로 영설 실업에서 나온 이욱기 과장이라는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추가 입찰을 하지 않았다.
1원이 아니라 0.1원 단위로 입찰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에도.
‘한 번에 자기가 가진 모든 패를 깐 거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패를 낸 거였다.
하지만 그 눈은 절대 포기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가득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흔들림 없는 굳건한 그 무언가.
나는 그걸 보고 영성 실업을 골랐다.
“열정이 있어 보여서요.”
“···열정이라고?”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한 말에 아빠는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열정, 패기, 자신감.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나이를 먹어가며 서서히 잊게 되지만, 자기 스스로도 그런 감정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살아왔기에 알 수 있는 울림이 있다.
영일 공업소 역시 그렇게 시작된 곳이었으니까.
“그래. 선우, 네 선택을 믿는다. 덕분에 회사가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됐어.”
“아빠랑 삼촌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좋은 물건을 만들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였어요. 전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녀석···.”
이게 입에 발린 말이라는 걸 아빠도 알겠지만, 더 이상은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계약 끝나고 다시 올 거지? 저녁에 모처럼 공업소 식구들 전체 회식하기로 했다. 너도 참석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 전 저녁에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래?”
아쉬운 표정이시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셨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아직 제대로 친구들을 만난 적도 없고, 무엇보다 공업소 아저씨들과 있는 것보다야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편할 나이라는 걸 아시니까.
“그래, 알았다. 그럼. 조심하고.”
“네, 아빠도 약주 너무 많이 드시지 말고요.”
“흠흠, 그래야지.”
하루 종일 먼지 속에서 기름과 쇠를 만지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내일은 마침 주말까지 겹친 상황에서 기분 좋은 일로 회식을 하는데, 술이 빠질 리가.
내 말 한 마디로 마시는 술의 양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혹여라도 회식 중간에 내 당부를 스치듯이 떠올리시기라도 한다면 그걸로 됐다.
***
영성 실업 대표실.
“너 진짜 이거 자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대표님도 어제 샘플 성능 확인하셨잖아요.”
그 말에 대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나도 보기는 했다만···.”
솔직히 놀랍긴 했다.
컴퓨터라는 게 성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성능을 온전히 뽑아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냉각 성능이 받쳐줘야 가능한 건데.
이건 숫제 기존의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말이 되지 않는 온도를 유지했으니까.
“근데··· 그거 우린 진짜 못 만들겠냐?”
“알아보긴 했는데, 특허 신청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에요. 그래도 어차피 우린 만들 수가 없어요. 애초에 어떤 매커니즘으로 이런 성능이 나오는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거든요.”
“아예 모르겠다고?”
대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욱기 과장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실력있는 개발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영성 실업에 입사한 뒤로는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그의 입에서 ‘이해조차 할 수도 없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아무튼, 계약은 이미 했고··· 앞으로는 팔아 치울 일만 남았네.”
“잘 팔리기만 하면 추가 발주도 같은 가격에 하기로 이미 약속받았습니다.”
“잠깐, 그럼 이거··· 지금은 우리 독점도 아니란 거야?”
손가락 두 마디 넓이의 얇은 알루미늄 판을 무려 개당 350원이나 주고 사왔는데.
독점도 아니다?
‘아니지, 일단 5만개 제작이면 그리 적은 숫자도 아니고···.’
이욱기 과장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장담하고 있지만, 정말 만에 하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 편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대표님,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성능 보셨으니까 알잖아요. 이거 일단 너튜브에서 신제품 리뷰하는 애들한테 몇 개 나눠주고, 입소문 타기 시작하면 진짜 난리 납니다. 제가 장담한다니까요?”
“알았어, 인마. 그래서 가격대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어? 이거 원가에 세금, 거기다 공정 수정하느라 기계 못 돌리는 기간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소비자가로 6만, 아니지. 7만은 받아야 된다.”
“무슨 소리에요. 전 지금 10만 이상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하, 이게 미쳤나?
대표는 딱 그런 표정을 지었다.
“이 과장, 아무리 그래도 10만원은 너무 간 거 아니냐? 요즘 수냉 쿨러도 싼 거 많다, 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어지간한 수냉은 얘 앞에서 이름도 못 내밀 거라고.”
이름이 아니라 명함이라고 했었지만.
대표는 그걸 굳이 꼬투리 잡진 않았다.
“그래도 수냉이랑 경쟁하기엔 메리트가 없을 것 같은데.”
“수냉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주기적으로 냉각수 충전하는 것도 그렇고, 그 펌프 소리 거슬려하는 사람도 많고, 거기다 잘못해서 터지기라도 하면 어떻고요.”
소문의 확산성만 따지면 패션 업계보다 월등하게 빠른 게 바로 컴퓨터 시장이다.
이 정도의 성능이라면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도 자연히 알려질 물건이긴 하지만···.
“그래서 말인데요. 대표님, 우리 홍보를 좀 해보시죠.”
“홍보야 늘 하지. 잡지에도 실을 거고, 너튜브나 플랫폼 배너 광고도 하고···.”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요.”
대표의 말을 잘라먹는 건 조금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이욱기 과장은 지금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럼 뭐, 무슨 홍보를 더 해?”
“이번엔 아주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보자는 거죠.”
“···대체 뭘 얼마나 공격적으로?”
대표는 이욱기 과장의 저 광기 어린 눈빛이 조금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