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더 크게, 더 깊이. (5)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마자 설이에게 공격(?)을 당했다.
“오빠!”
난데없이 내 목에 매달리는 다 큰 동생을 밀어냈다.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침부터 뭔데?”
“지금 오빠가 뭔데 라고 할 때가 아냐. 새벽부터 완전 난리란 말야!”
“···왜?”
짝!
갑자기 날아든 동생의 손바닥에 나도 모르게 등을 내줬다.
이 녀석이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이제 막 일어난 사람의 등을 내려치진 않을 텐데.
문득 어제 저녁에 리아가 했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고, 홀린 듯 티비 앞으로 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침 뉴스 화면에는 클라리아라는 이름과 함께 내 사진도 함께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LA 한인타운에서 있었던 콘서트에서 SW 공업사 대표가 모습을 드러내며 두 사람의 열애설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침묵을 일관해 왔는데요. 몇 시간 전, 현지에서 클라리아의 소속사가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인정하면서···.]“오빠, 저거 진짜야? 오빠가 진짜 ‘그’ 클라리아의 남자친구라고?”
“글쎄. 내 생각에는 남자친구 보다는 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긴 한데.”
“와··· 말도 안돼. 그 언니 제정신이야?!”
순식간에 언니라고 부르는 네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만.
콘서트가 끝난 뒤,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마음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연애라는 게 마음만 생긴다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연애관 차이에서 오는 작은 오해지만, 여기서 내가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나설 수는 없다.
어쨌든 만남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기도 하니까.
‘이게 문화 차이라는 건가.’
좋은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 게.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아침을 먹는 내내 설이는 내게 리아에 대해 캐물었고, 나는 얼렁뚱땅 대답을 회피해 버렸다.
“아빠, 회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내가 가진 지분은 만호와 호석이한테 넘기기로 했다. 이번 주까지는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하고, 대표 자리는 호석이가 앉기로 했고.”
“잘하셨네요.”
작은 공업소이긴 하지만 그걸 아무 대가도 없이 넘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물론 아들은 내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니 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확실히 아니다.
그리고 공장장인 만호 삼촌 보다 영업을 주로했던 호석 삼촌이 대표 자리에는 어울릴 테고.
앞으로도 SW 공업사도 영일 공업소와는 계속 거래를 할 예정이니 영영 인연이 끊기는 것도 아니다.
“아들, 엄마도 편의점 정리하기로 했어. 곧 본사에서 나와서 재고 처리한다고 하더라.”
“누가 이어서 하는 게 아니라요?”
“다른 매장에 비해 매출액이 적어서 관심있는 사람이 없나 보더라고.”
그간 속으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까 생각하니 또 마음이 울컥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저 엄마의 손을 말 없이 잡았다.
“그나저나··· 넌 그 아가씨랑 어떻게 되는 거냐?”
“아들, 엄마는 외국인 며느리라도 괜찮아.”
“그런 거 아니에요. 이제 겨우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며느리는 무슨···.”
“크흠.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그 콘서트인가 거기 같이 가서 볼 걸 그랬지. 진작 말해주지 않고는.”
“아까 뉴스에 나오는 거 봤는데, 엄청 미인이던데? 우리 아들, 능력 좋네?”
“그래도 엄마랑 결혼한 아빠만 하겠어요?”
내 능청스러운 말에 두 분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도 신혼이네.
***
회사 입구에서 차에서 내리자 경비과장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희 국수는 언제 먹는 겁니까?”
“과장님까지 놀리시깁니까?”
“어휴, 놀리다뇨. 정말 부러워서 그렇습니다. 저희 딸이 그러던데, 전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가수라면서요? 크- 역시 우리 대표님, 요즘 말로 정말 클라스가 다르시네요.”
경비 과장을 시작으로.
“대표님, 멋지세요!”
“역시 상남자시네요. 시원하게 열애 인정! 크으.”
대표실까지 올라오는데, 만나는 직원들마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등에서 흐르는 건 땀인가, 부끄러움인가.
이놈의 지구 온난화가 문제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응. 심 비서도 좋은 아침.”
또 무슨 소리를 할까 싶어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심 비서가 따라 들어왔다.
이런 경우는 하나 뿐이다.
내가 출근도 하기 전에 이미 어딘가에서 연락이 왔다는 거고, 그게 제법 중요한 경우다.
“출근길에 미국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미국이면, 아론인가?”
이상하다.
미국에서 연락을 할 사람은 지금 셋이고, 모두 심 비서를 통하기 보다는 나와 직접 연락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인데.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심 비서를 통해 연락을 할 사람은 없다.
“아뇨. 데카 랩이었습니다.”
“데카 랩에서···. 그럼 메일도 왔겠네?”
데카 랩에서 연락이 올 일이야 뻔하지.
그리고 그건 자료없이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없다.
“아, 네. 대표님 메일로 보내뒀습니다.”
“아침부터 수고했어.”
“···네.”
나가라고 하진 않았지만 평소라면 알아서 나갔을 심 비서가 머뭇거린다.
“하아- 굳이 심 비서까지 날 놀려먹어야겠어?”
“노, 놀리다뇨. 제가 어떻게··· 죄송합니다!”
딱히 화가 난 건 아닌데, 너무 미안한 표정을 지으니 내가 되려 당황했다.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솔직히 전 국민이 내 사생활을 알게 된 게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오히려 속은 시원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뭐 그렇게까지 미안할 필요는···.”
“그게 아니라, 제가 최근 대표님에게 버릇없이 굴었던 거요.”
음. 그 부분은 심 비서에게 조금 미안하다.
나에게 어떤 마음인지 대강 예상을 했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자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서 피하고 싶은 대화였는데, 먼저 이야기를 꺼낸 이상 매듭은 지어야겠지.
‘그래. 확실하게 거절하자.’
그게 나에게도, 심 비서에게도 좋을 테니까.
비록 그 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고.
“아냐, 그건 내가 심 비서 마음을···.”
“죄송해요. 전 대표님이 이미 클라리아 씨랑 연인 관계인 줄도 모르고··· 괜히 제 친구가 상처만 받고 끝나게 될까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건데. 제가 오해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오해라니.”
“저는 처음에 서연이가 대표님에게 관심이 있어서 이번에 휴가도 같이 가자고 하는 줄 알았거든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건가? 내 팬이라며.
“어제 둘이 이야기하다 알았어요. 서연이는 그냥 콘서트에 같이 갈 사람이 필요했다고 하더라구요. 알고보니 대표님이 아니라, 클라리아 씨의 팬이었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어요.”
“···뭐,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이고.”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간지러워 온다.
분명 나한테 내 팬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나는데.
‘뭐, 상관없나.’
팬심이라는 게 꼭 한 사람에게만 향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 자리가 민망해서 에둘러 말한 걸 수도 있고.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굳이 팬이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럼 그건 서로 잊자고. 개발팀에게는 한 시간 뒤에 회의 있다고 알려주고, 오늘이 건축사무소에서 진행 상황 보고하러 오는 날이지?”
“네. 맞습니다.”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간 심 비서의 또렷한 대답.
“올 때, 전에 봤던 모형인가? 그것도 좀 가져오라고 해주고.”
“네. 더 지시하실 사항은 없으세요?”
“아, 그리고 최성환 공장장님도 개발팀 미팅에 같이 좀 뵙자고 전달해 드려. 딱히 준비하실 건 없고 재고만 좀 확인한다고.”
“알겠습니다.”
공장이야 지금도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요즘 국제적으로 금속 가격이 심상치 않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희토류 무기화를 선언하고, 실제로 몇 가지 희토류는 중국 내에서 수출 자체가 전면 금지된 탓이 가장 크다.
덕분에 대체 가능한 금속들이 덩달아 오르면서 그야말로 국제 금속 시세가 난장판이 된 상태다.
최성환 공장장님이야 워낙에 경력도 있고, 리더쉽도 좋은 분이라 알아서 잘 하고 계시긴 하지만 이쯤에서 한 번 정도 확인을 해줄 필요는 있다.
“이거, 티타늄 가격이 너무 올랐는데?”
국제 금속 시세를 확인하는데 죄다 상승 곡선 밖에 보이질 않는다.
심 비서가 나가자마자 확인한 데카 랩에서 온 메일은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
[의수 이식 수술 선정자 명단]세상에 돈은 많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스카이 다이빙을 하다가 팔이 절단된 사람, 헬기 스키를 타려고 뛰어내렸다가 두 다리를 잃은 사람.
제일 어이없던 건 바다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상어에게 한 쪽 팔을 물어 뜯긴 사람이었다.
정말 그 유형도 가지가지.
데카 랩에서는 그 모든 이들의 상세한 자료를 첨부해서 메일로 보내왔다.
오민혁에게 이식했던 팔보다 훨씬 다운그레이드를 했음에도 제작 비용은 최소 10만 달러 이상.
가격의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던 그래핀 섬유를 30%수준까지 낮추고, 대신 그래핀 섬유를 가닥으로 묶어 나일론과 실리콘, 콜라겐을 이용해 보강했다.
덕분에 팔의 두께를 조절하기 수월해지고, 제작 시간과 금액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그리고 이제 데카 랩에서 선정한 인원들의 자료를 검토해서 제작을 하기만 하면 된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수술과 재활은 모두 이쪽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1차 선정 인원의 수술이 끝나면 데카 랩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의수 제작에는 SW 공업사의 이름도 들어가겠지만,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정교한 의수를 만드는 곳은 공업사보다는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는 편이 훨씬 더 믿음직스러운 법이니까.
의수는 모든 제작이 커스텀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개발팀의 지원이 필수다.
하지만 오민혁 때처럼 전 개발팀이 모두 그것에만 매달릴 수 없으니 결국 제작 자체는 이제 공장에서 맡아서 해줘야 한다.
오늘 최성환 공장장을 따로 부른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이것 때문이다.
삑-.
“대표님, 공장장님과 개발팀 모두 올라왔습니다.”
“응, 다들 들어오라고 해.”
살짝 긴장한 표정의 개발팀이 들어오고, 나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았다.
평소라면 개발팀의 자료를 먼저 확인하고 진행하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사전에 다 이야기를 한 상태라 회의 준비를 할 시간도 한 시간만 준 거니까.
“공장장님, 우선 티타늄 합금 재고가 얼마나 되죠?”
“지난 달에 추가 구매한 것까지 들어오면 총 1,700kg 정도 됩니다. 추가 구매한 물건은 다음 주 도착 예정입니다.”
“생각보다 양이 많은데요?”
“희토류가 들어가는 합금 자석을 티타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가 최근에 발표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곧 금액이 오를 것 같아 독단적인 판단으로 조금 무리한 주문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배가 아빠와 거의 비슷한 분이 고개를 숙이려고 하길래 얼른 손을 들어 막았다.
“아뇨, 아뇨. 너무 잘하셨어요. 그 정도면 당분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능력이 좋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 채용을 하긴 했지만, 국제 정세까지 분석해서 주문을 할 정도로 센스가 좋은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철강으로 유명한 한영제강에서 공장장 경쟁에 밀리셨다고 했었나?
거긴 대체 사람보는 눈이 얼마나 없는 거지.
“혹시 희토류 주문한 것도 있습니까?”
“네, 갈륨도 중국에서 수출제한을 하기 전에 미리 주문해둔 양이 아직은 넉넉하게 있습니다.”
“···이거, 제가 한 수 배워야겠네요. 혹시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길 것 같다면 언제든 저한테 따로 보고하지 않고 주문하셔도 됩니다.”
아예 시원하게 전권을 주고 싶지만, 아무리 욕심이 없다고 해도 견물생심인 법이다.
충분한 권한은 주되 곳간의 열쇠를 맡기는 건 어리석은 짓.
언제든 내가 확인할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놔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필요한 재료는 충분한 것 같고, 이제 제작 단계로 넘어가 보죠.”
“그런데 대표님이 주신 이 자료를 보면···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아무리 커스텀 제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을 높게 책정한 건 맞다.
거기다 이 금액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아니라, 우리가 데카 랩에 물건을 넘겨주면서 받는 금액.
환자에게는 더욱 커다란 금액이 되어 돌아갈 거다.
“압니다. 저도 이게 비싸다는 건.”
팔 하나의 의수를 제작하는 비용으로 100만 달러.
그것도 팔꿈치 아래일 경이고, 관절이 포함되는 경우가 되면 50만 달러가 추가된다.
의수 하나를 맞추는데 150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하면 말도 안된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비밀리에 오민혁의 사례를 본 사람들이니 거절하지 않을 거다.
그런 금액은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 사람들로만 선정한 게 바로 1차 명단이니까.
“금액이 이렇게 높으면 정말 재벌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텐데요. 설마, 대표님께서 돈을 목적으로 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따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욱기 과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게 맞겠지?’
나 역시 그깟 몇 억 더 벌자고 이런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다.
“그 수익금으로는 상이 군인들에게 혜택을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한국인으로 제한할 생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