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더 크게, 더 깊이. (7)
톡···. 톡···.
종이가 넘갈 때와는 전혀 다른 소리.
테블릿 PC의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자꾸만 헛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까독, 까도독.
눈 앞에는 이 테블릿을 넘겨주고선 마음 편히 게 다리를 물고 사투를 벌이는 사람이 앉아 있다.
재벌이라고 해도 게장을 먹을 때는 서민들과 별 다를 게 없구나.
‘하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밑 닦아 줄 사람을 고용하지는 않는 거니까.’
톡-.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내가 먼저 먹지 않았다면 화면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뻔 했다.
앞에서 게 껍질 까는 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 테블릿 PC가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걸 언제부터 준비하신 거에요?”
“시작한 건 이미 10년이 되어 갑니다. 전 세계에서 핵융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오래고, 한국에서도 핵융합 에너지연구원를 만들고 ‘K스타’라는 이름의 핵융합로 건설을 막 완공한 시기였죠.”
15년 전.
20세기 말부터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 연료가 곧 고갈된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각국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차세대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을 때다.
‘하지만 그건 국가 차원이잖아.’
이터(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는 이미 1985년에 시작됐지만, 아직도 초기 기능 테스트조차 해보지 못했다.
한국 돈으로 2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는 국제 프로젝트.
20세기 말 한국도 가입을 권유 받았지만 IMF 때문에 2000년이 넘어서야 가입하게 되면서 사실 그리 많은 지분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이터 프로젝트의 1/25크기로, 같은 초전도 전자석 핵융합 실험로로 제작된 것이 바로 한국 에너지 연구원에서 만든 K스타다.
“설마 그때부터 준비한 건가요?”
“아뇨, 그때는 아직 민간 기업에서 핵융합로를 연구한다는 개념도 불가능했죠. 우리가 시작한 건 K스타가 실험로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2013년부터 입니다.”
그럼 국가에서 연구를 한 뒤로도 5년 가까이 준비만 했다는 말인데.
확실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맞는 것 같다.
“그럼 그때부터 시작한 거군요.”
“맞습니다. 하하,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꼭 무슨 내가 컨닝이라도 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근데, 회장님. 그거··· 컨닝 맞지 않아요?”
“······.”
까도독-.
이 회장님이 게장 못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아무리 재벌이라도 혼자서 이 비싼 간장 게장을 세 마리나 먹는 사람이 어딨어.
“···안 짜요?”
“···원래 게장은 짠맛으로 먹는 겁니다.”
***
“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에 대전으로 내려가서 뵐게요. ···네,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고, 다시 테블릿 PC를 손에 들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일성그룹의 핵융합로를 촬영한 영상.
그걸 보고 있으니 이수용 회장이 설명을 곁들였다.
“화면을 보시면 알겠지만, 설비는 이미 90%이상 완성된 상태입니다. 지금 부족한 건···.”
“중성 입자빔 가열장치만 없네요.”
“마, 맞습니다. 사진만 보고 그걸 어떻게···.”
– 마스터, 마나석을 이용한 마법구를 적용하면 중성 입자빔 가열장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장치를 분해해 토카막 중심관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을 분석하는 거야, 아라의 역할이었지만.
“보면 알죠. 아무튼 그건 필요없어요. 저는 다른 방법을 쓸 거거든요. 그보다 이거 다 분해하는데 얼마나 걸리죠?”
“분해라뇨? 이걸 전부 말입니까?!”
“네. 아까 자료 보셨죠? 제가 설계한 대로라면 주장치 중심에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장치가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넣을 수가 없어요. 그게 없이는 작동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겠지만,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이수용 회장은 아직 혼란스러운 상태.
“임 대표님. 자, 잠시만요. 아직 실물을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일단 가서 직접 확인을 한 뒤에··· 그 뒤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잘 됐네요. 마침 지금 막 저녁 약속 취소했어요.”
어차피 현시점에 완성된 핵융합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K스타는 물론이고, 이터에 있는 핵융합로 역시 모두가 실험을 위한 설비들.
만약 이걸 본격적으로 상용화 할 생각이라면 업그레이드는 필수라고 봐야 한다.
“현재 수준까지 만드는데 10년 동안 투입된 자금만 무려 3천 억이 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다시 분해한다니··· 잘못하면 지금까지의 진행된 연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 연구, 어차피 성공 못했잖아요.”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성공률을 높여나가는 방식으로···.”
이수용 회장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창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가 필요했던 건가.
“···정말 확실한 겁니까?”
“정 못 믿으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전 그럼 다른 실험로를 알아보는 수 밖에.”
“협박··· 입니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뭐, 압박이라고 해두죠.”
***
축구를 해도 충분할 정도의 넓은 실내.
그곳에 2층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금속 구조물이 주변 장치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게 왜 현대 과학 기술을 집대성했다는 말이 나왔는지 알 정도다.
관련 지식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말이지.
‘아라야, 이거 분석 해봐.’
– 네, 마스터. 현재 분석 중입니다.
아라가 분석을 ‘하는 중’이라니, 처음 듣는다.
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거대한 금속 장치 주변을 돌며 천천히 둘러 봤다.
‘누구야?’
‘모르지. 대체 누구길래 회장님이랑 함께 온 거지?’
‘근데 나 분명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유명한 사람이야?’
그룹 회장이 시찰을 왔다는 소리에 연구진들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모여 있었다.
“흠흠. 저, 회장님. 여기까진 갑자기 어쩐 일로 오셨는지.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는 잘 받으셨죠?”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잠시 둘러보려고 온 거니까 너무 긴장하실 것 없어요. 그보다, 보고서 내용 중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내용이 있던데요? 1초 미만이지만 드디어 1억도 유지에 성공하셨다면서요.”
“네, 네! 여기에 중성 입자빔 장치만 추가한다면 플라즈마를 더 안정화 시켜서···!”
그 말에 연구소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양반이 뿌듯한 얼굴로 좋아하는 것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요.”
“···네?”
“마지막 테스트에서 토카막 내부의 압력이 얼마나 됐습니까?”
“자기장을 이용해서 3기압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회장과 함께 왔으니 함부로 하진 못해 마지못해 대답한다는 느낌에 답을 해준 건 이수용 회장이었다.
“아, 제가 소개를 깜빡했네요. 여기 이 분은 SW 공업사에서 오신 임선우 대표입니다.”
“임선우 입니다.”
짝!
“맞다! 스카디의 스노우!”
뭔가 좀 섞인 느낌이긴 하지만, 아마도 세계 정상급에 속할 과학자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여기 보시면, 중간에 있는 교차 분배 전선 보이죠?”
“네. 그게 왜···.”
“이 부분을 초전도 선재로 교체해 보세요. 전압이 증가해서 초전도 자석의 자기장을 더 높일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예비로 보유하고 있는 것 있죠?”
“단지 거기 한 곳만 교체한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초전도 선재 가격이 얼만 지는 알고 그런 말을···.”
그래.
과학자라면 이 정도 고집은 있어야지.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들의 그 고집을 꺾는 일이다.
그래서 아라에게 분석을 하라고 시켰던 거고.
“여기서 쓰는 게 뭡니까. 어차피 HTS(고온 초전도체)일 건 뻔하고, 나이오븀-티타늄? 아니면 이산화마그네슘 인가요?”
“···나이오븀 합금입니다만.”
“가져오세요. 아니면 제가 직접 해요?”
아버지 뻘 되는 분에게 살짝 강압적인 말투인 점은 조금 죄송하긴 하지만, 이걸 분해하는 작업은 직접 이 구조를 설계하고 사용해온 이들이 없이는 안된다.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정말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작업 기간이 늘어날 거야.’
최대한 빠른 작업을 위해서는 이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이곳의 연구진들을 우선 납득 시켜야 한다.
연구소장이 당황한 얼굴로 이수용 회장을 돌아보자, 이수용 회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소장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초전도 선재를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냉각 장치를 연결해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천천히 해도 됩니다. 저 오늘 시간 많거든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상태가 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냉각 장치는 필수다.
다행히 이곳에는 이미 초전도 자석을 위한 액체 헬륨 분배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니 오래 걸릴 일은 없다.
연구진들이 초전도 선재로 전선을 교체하는 사이, 나는 이수용 회장에게 다가갔다.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크네요.”
“크기만이 아닙니다. 이 건물 자체가 두께만 2m의 콘크리트로 지어졌어요. 그야말로 핵융합로 시설 하나만 보고 만든 곳이죠. 주장치실부터 헬륨저장실, 전원공급장치, 진단장치나 통합운전제어실··· 실제로 들어간 예산은 3천 억이 아니라, 5천 억을 넘습니다. 거기에 운영자금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일성그룹이라도 허리가 휠 정도였다는 건 확실합니다.”
한국 기업 중에서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해 핵융합로를 연구하는 곳은 아마 일성그룹 뿐일 거다.
다른 대기업에서도 맘먹고 달려들면 가능한 곳이야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연구’단계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거겠지.
이미 다른 곳에서 완성된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일성그룹이 대단한 일을 하는 건 맞다.
‘5천 억이라.’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금액이 분명하지만.
지금 통장에는 1조원이 넘는 금액이 쌓여있고,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중이다.
“차라리 저한테 통째로 파시는 건 어때요?”
“···그건 안되죠.”
“어차피 제가 아니면 앞으로 얼마나 더 연구만 해야 가동이 가능한지 기약도 없는 기술인데요?”
이런 설비가 있을 줄 알았으면,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보여주기 전에 여길 먼저 샀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혹시나 해서 찔러봤다.
“이제 임 대표님이 여기 이렇게 오셨잖습니까.”
역시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였지.
그래도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입장이 돼야 한다.
“여차하면 전 다른 곳을 찾아봐도 됩니다?”
“하하, 한국에 이 정도 설비가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아, K스타는 국가 기관 소유라 애초에 판매나 뭐 그런 건 말도 안되는 거 아시죠?”
“외국에는 연구하는 민간 기업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어차피 외국으로 갈 생각은 없다.
기껏 핵융합로 완성해서 외국 좋은 일만 시킬거면 굳이 뭐하러?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껏 핵융합로를 만들었는데 외국에요? 뭐, 전기 에너지 판매라도 하실 겁니까? 이야, 그것 참 국민들이 알면 아주 인기가 하늘을 찌르시겠는데요?”
“와···. 회장님, 와아···.”
“크흠, 아. 이건 제가 잠시 실언을.”
둘이 되지도 않는 실랑이로 시간이 꽤 흘러갔다.
그리고 난 어차피 이수용 회장을 버리지 못한다.
그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마나석을 통째로 훔쳐올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저··· 회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테스트 시작할까요?”
이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초전도 자석의 자기장을 유지하기 위한 전력 공급, 냉각 설비, 이온 공명 장치나 중성 리튬빔 입사기를 제어하기 위한 데이터 처리 장치까지.
이 모든 설비에 공급되는 전력과 초기에 투입되는 수소 원자와 헬륨 값만 해도 수천 만원에서 수억 원까지의 비용이 발생한다.
아마 테스트를 비용 걱정 없이 무한정 할 수만 있어도 핵융합로 연구는 더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우우웅-.
강화 유리 수십 장을 겹쳐 만든 관찰실에 들어서자, 마치 건물 전체가 울리는 듯 공명이 시작됐다.
“작동 하고 있습니다! 프, 플라즈마 안정화 상태 유지 중!”
“뭐, 뭐?! 안정화 상태라고?! 비켜봐!”
“3초··· 4초···! 소장님! 5, 5초 넘겼습니다!”
연구진은 이수용 회장이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것도 잊은 모양인지.
자기들끼리 난리가 났다.
그걸 당연한 듯 보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떨리는 숨소리와 함께 바라보는 이수용 회장.
“···하아. 임 대표님이랑 같이 일하면 이거 심장 몇 개 정도는 예비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제 심장의 수명이 5년은 줄어든 것 같거든요.”
“그건 걱정마세요. 여차하면 교체해 드릴 게요.”
“임 대표님이 하니까 이제 그런 말도 농담같이 안 들리네요.”
농담이 아니니까요.
“분해, 하실거죠?”
“당연히 해야죠. 지금 이 장면을 보고도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그럼 메일 확인해 보세요. 설계도 보내드렸으니까요. 아마 여기도 지금 보다 꽤 더 커져야 할 겁니다.”
나는 7초를 넘기면서 꺼져가는 핵융합로가 있는 내부를 슬쩍 둘러보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 그리고 바닥도 좀 더 깊이 파야겠네요.”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옆으로도, 위로도 더 커질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