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뭘 짓고 있는 거야. (1)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진행되는 화상 회의.
오늘도 처음 시작은 아론이었다.
“디자인 어때? 날렵해 보이지?”
화면에 직접 올릴 수 있는데 굳이 프린트를 해서 화면에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그런 궁금함 보다는 아론이 들고 있는 종이에 멋들어지게 그려진 검은 색의 세단이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차선에 어딘가 조금은 투박한 듯한 느낌이 잘 어우러진 디자인이었다.
“멋진데요? 고급형 세단인가요?”
“하아. 이걸 단순히 ‘세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kWh당 6.2km의 미친 연비와 모터 최고출력은 1,530에 제로백은 무려 1.65초를 자랑하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무려 4,960km! 다들 믿어져? 한 번의 충전으로 무려 5천 킬로미터의 주행이 가능하다는 게?!”
뭔가 계산이 안 맞는데.
“···설마, 배터리를 2개 넣은 겁니까?”
“아, 이 부분은 꽤 고심했었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충전을 하지 못하는 만큼 배터리의 지속성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마나 배터리의 제작은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라 상관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마나 충전기인데.
“아론, 전에 말한 베이랜즈는 어떻게 됐어요?”
“그때도 말했지만 거긴 완전히 자연 생태계 보존을 위한 곳이라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마나는 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늘 일정한 밀도를 유지한다.
혹시나 누군가 주변의 마나를 모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수복되는 게 마나다.
하지만 아주아주 드물게, 주변의 마나가 마치 거대한 회오리가 치듯 한 곳을 향해 모여드는 장소들이 있다.
그래봐야 다른 곳에 비해 서너 배 정도이지만, 마나의 밀도가 높다는 건 마나 배터리에 그만큼 빠르게 충전을 할 있다는 말과 같으니까.
‘거기가 딱이긴 한데, 뭐··· 정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베이랜즈를 관리하는 곳이 연방 자원 관리국이라고 했나?
이름도 생소하지만 나름 알아보니 미국에서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한 기관이라고 했다.
공원이나 자연보호 구역을 관리하거나 천연자원 개발 같은 산업에 대한 허가나 감독도 겸한다고 해서 혹시나 기대를 해봤다.
아론이라면 돈이 많은 것도 있긴 하지만, 나름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차를 만들면서 그쪽과는 꽤 연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아론을 탓할 수는···.’
“하지만! 내가 누구야. 몇 가지 조건이 있긴 했지만, 건설 허가를 따냈지! 으하핫!”
설마 이걸 나름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인간은 나이를 ㄸ··· 됐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가지 말자.
“몇 가지 조건이 뭔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걱정말고. 아,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이미 준공 시작됐어.”
“제가 거기에 뭘 지을 줄 알고요?”
“뭐긴, 배터리 충전소를 지을 생각 아니었나?”
이럴 때는 또 눈치가 빨라.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뭐,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마침 바로 앞에 테슬라의 프리몬트 공장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아론도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공장의 바로 앞이니 적어도 충전된 제품을 공장으로 운송하는 비용은 아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슬라의 프리몬트 공장에는 고객들이 찾아와 구경할 수 있는 쇼룸이 있다.
‘거기서 배터리 대여나 반납을 할 수 있게 해도 되겠어.’
베이랜즈 지역에 단층으로 지어지는 건물.
충전기와 대부분의 시설은 지하에 들어가게 되고, 단층 건물에는 베이랜즈의 관리인들이 지낼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기로 했단다.
자재나 배터리의 운송도 지하 통로를 뚫어서 공장까지 연결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연방 자원 관리국에서 직원들을 위해 만든 작은 시설처럼 보이게 될 거다.
‘일종의 비밀 시설이 되는 건가?’
미국에서 ‘연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건, 해당 분야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주마다 다른 법 체계를 가질 정도로 자치단체의 힘이 강력한 나라지만, 연방이 관련된다면 그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릴 정도로.
‘그러고 보면 뇌물 따위가 통할 곳이 아니긴 한데.’
이렇게 생각하니 아론이 새삼 대단하긴 하다.
경제와 정치는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는 말이 정확하다.
나 역시 정치계와 연관이 전혀 없다는 말은 이제 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고.
“그럼 발표는 언제쯤 할 생각인가?”
“그러게. 이 배터리가 알려지게 되면 엄청난 파장이 생길 텐데··· 스노우, 감당할 수 있겠어?”
“무슨 소리에요. 우리는 그냥 테슬라의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것 뿐인데요.”
“···자, 잠깐! 그럼 지금 나 혼자서 그 모든 폭풍을 다 막아내라고?!”
“싫으면 지금이라도 무를까요?”
“아, 아니! 내 말은 절대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혼자서 이걸···.”
푸웁-.
잭슨과 마리아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뿜어버렸다.
아론이 두 사람을 째려보는 눈빛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끅끅거리는 모양새가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나 보다.
물론 아론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잔뜩 뿔이 났지만.
“칫! 두 사람 다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때가 오면 내가 필사적으로 비웃어 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아니, 왜. 벌써 가려고?”
“그래, 대책 회의하러 간다! 대책 회의! 이걸 무슨 수로 설명하라는 건지···.”
투덜거리긴 하지만, 아론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거라는 걸 안다.
고생이야 조금 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이건 테슬라와 스페이스X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과정이다.
마나 배터리는 이제 자동차 뿐 아니라, 앞으로는 로켓을 비롯해 다양한 첨단 기기에 거의 필수로 들어가게 될 테니까.
‘소형 사이즈 제품도 미리 준비해야 겠네.’
“스노우, 슈렌의 포인트 구매 신청자가 생각보다 많아. 아직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리소스 제공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두분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일단 데카 랩에서 이번에 스카디 구매를 신청했어요.”
그 말에 마리아 회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무리야. 펜타곤 작업도 아직 마무리 작업이 안 끝난 상황이었는데, 테슬라에서 구매 요청을 하는 바람에 지금 슈퍼컴퓨터 설치 팀을 두 배로 늘렸지만 그래도 정신이 없어. 앞으로 적어도 세 달은 다른 부분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마리아, 그래서 하는 제안인데. 다른 슈퍼컴퓨터 제조사랑 협업을 할 생각은 없어요?”
“그건 너무 위험해. 스카디가 어디 보통 물건이야? 괜히 남의 손에 맡겼다가 카피라도 당하면···. 어우, 난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잭슨과 마리아, 두 사람은 아직도 냉각 장치의 보안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기술력의 카피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누누이 말을 해줘도 두 사람의 말은 늘 똑같았다.
-어떤 기술이든 영원히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거야. 언젠가는 분명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전에는 그렇게 앙숙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슨 죽마고우라도 된 양, 저런 의견을 말할 때는 한 마음 한 뜻이 된다.
이러다 정말 둘이 결혼이라고 하는 건···.
적어도 내가 알기로 두 사람은 배우자가 없다.
자세히 묻진 않았지만 잭슨은 오래 전에 결혼을 했다가 이혼했다고 들었고, 마리아는 입양한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긴 하지만, 남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에이,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상상을.’
갑자기 든 쓸데없는 생각에 고개를 젓고, 다시 두 사람을 쳐다봤다.
“기술 유출은 절대 안될 테니까, IBM과 협업하는 것도 생각해 보세요.”
“···IBM? 그런데 왜 하필 IBM이야?”
“거긴 이미 슈퍼컴퓨터보다 양자 컴퓨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잖아요. 사실상 예전 칩셋으로 스카디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고. 알아보니 아직 슈퍼컴퓨터 관리부서랑 설치팀은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아무리 스카디가 최강의 칩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의 슈퍼컴퓨터가 완전히 망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애초에 지금 설치한 곳이 펜타곤 한 곳 뿐이고, 다음에는 테슬라까지.
예약된 작업이 다 끝나려면 적어도 반 년은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다 구매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까.
그저 성능 하나만 보고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슈퍼컴퓨터를 제조해왔던 IBM에서는 관리를 해주고 있는 곳도 아직은 많을 테니까.
“관리부야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겠지만, 설치팀은 좀··· 불안하긴 하겠네.”
“제가 보니까, 양자 컴퓨터는 설치가 간단하더라구요. 아마 본격적으로 슈퍼컴퓨터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면 잉여 인력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야 양자 컴퓨터는 한 대로 끝나는 거니까.”
초전도체를 따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건 아직 무리다.
양자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곳은 세계적으로 봐도 몇 군데 되지 않고, IBM은 그 중에서 단연 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BM측에서는 아마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까 마리아 회장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뭐··· 임 대표가 그렇게 말하면 연락해 볼게. 만약 협업을 진행하게 되면 다음 수해자는 데카 랩이 되는 거고?”
“아마 그렇게 되겠죠. 회장님도 데카 랩을 아세요?”
“당연히 알지.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난 그렇게 정교한 의수는 앞으로도 십수 년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얼마 전부터 퍼지기 시작한 영상 덕분에 데카 랩은 지금 주식 시장에서도 핵이나 다름 없다.
상장을 한 곳은 아니지만, 데카 랩이 조금이라도 관련된 회사들의 주식이 그야말로 폭등하면서 과학계나 주식시장에서 데카 랩을 모를 사람은 없을 정도다.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해. 아니, 많이 이상해.”
잭슨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화면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눈이 살짝 찡그린 채로 정확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다니, 임 대표가?”
“난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데카 랩이라는 곳이 참 대단한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었거든.”
“대단한 건 사실이지, 세상에 금속으로 만든 의수를 이식하고 어떻게 감각까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수억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이식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비싼 돈을 지불함으로서 덩달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수십 명의 상이 군인들.
영상에 등장하는 건 대부분 군인들이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 이건 꼭··· 진짜 제 팔 같아요.
– 손 끝으로 제 아내의 부드러운 볼을 다시 느끼게 될 날이 오다니, 데카 랩은 제 목숨의 은인입니다.
– 모든 감각이 예전과 같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 눈을 감고 있으면 제가 팔을 잃었던 순간이 마치 꿈이었던 것 같아요.
– 이건 정말이지··· 마법 같아요.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정말 가능할 줄은···.
데카 랩에서는 뉴럴링크의 기술력 지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데카 랩에 납품되는 의족과 의수를 머나먼 아시아의 SW 공업사에서 제작한다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납품 계약을 체결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 여기까지는 모두 나의 계산 안이었다.
“나도 임 대표가 데카 랩의 의수 제작을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마리아. 우리는 조금 전에 봤잖아.”
“···우리가, 뭘?”
“생각해 봐. 차세대 배터리를 만든 사람이, 전면에 아론을 어떻게 내세웠는 지를. 아마 데카 랩의 딘 케이먼 소장도 그런 상황을 겪었을 거라는 의심이 드는 건··· 나 뿐인가?”
그 말에 마리아 회장의 눈가에도 살짝 주름이 맺혔다.
저 눈빛이 뭔지는 잘 안다.
무언가에 대해 강력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는 그런 시선이다.
“···잭슨의 말이 정말이야. 임 대표?”
“분명해. 어때? 내 말이 맞지?”
아마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의기양양해 진 잭슨이 결국 해서는 안되는 말을 입에 담아버렸다.
“어쩐지! 딘 소장이나 아론한테 방패막이를 시킨 것처럼 저번에 완성한 양자 컴퓨터는 내게 시키려고 하는 거지?!”
잭슨의 말에 난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양자 컴퓨터라는 말에 마리아 회장의 표정이 금세 차갑게 식어 가는 게 보였으니까.
“···잠깐, 양자 컴퓨터라니? 두 사람, 혹시 나 몰래 양자 컴퓨터를 완성해서 쓰고 있던···. 아하, 그래서 요즘 엔비디아에서 나오는 반도체 설계가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던 거구나?”
꿀꺽.
화면 너머로 잭슨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와, 8K 화질이라 그런가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한 줄기 식은 땀이 선명하게 보인다.
요즘 기술력이 이렇게 좋아요.
“크흠, 우선 두 분 이야기 잘 나누시고···. 저는 다음 회의에서··· 아참, 잭슨. 마리아에게도 양자 컴퓨터 접속 경로 공유해 줘요.”
뭐, 아직 양자 컴퓨터를 세상에 선 보이기엔 너무 이르다.
그래도 잭슨이 먼저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니 다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