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악연 (1)
지하에 수로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폭 넓은 통로.
그 안에는 수십 명이 넘는 인원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공사 중이었고, 한 쪽으로는 임시로 만들어둔 듯한 모습의 도로가 깔려 있었다.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과 베이랜즈에서 공사 중인 현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m.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의 먼 거리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는 또 애매한 거리다.
“이 정도면 덤프트럭이 아니라 비행기도 지나다니겠는데요?”
혹시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렇게 크게 만든 건가 싶기도 하고.
“아예 통로 자체를 여러 층으로 나눌 계획이거든. 배터리의 운반은 완전 자동화 시키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거야. 그리고도 남는 공간에는 다른 일을 하기에도 충분하지.”
“정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맞아. 친구가 얼마 전에 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거.”
의미심장하게 웃는 아론.
이수용 회장을 비롯해 주변에 꽤 인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부탁했던 게 있었지.
“입자 가속기요?”
“그래. 어때? 이 정도면 길이라면 입자 가속기를 가동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이 거대한 통로가 새롭게 보인다.
입자를 최대한 가속하기 위해서는 직선 구간이나 도넛 형태로 건설되어야 하는데, 확실히 300미터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정말 그걸 생각하고 만든 겁니까?”
“아무래도 친구가 만드는 거라면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마침 이런 깊이라면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설치할 수 있지 않겠어?”
막대한 금액을 들여 공사를 확장하는 이유가 날 위해서였다니.
이건 살짝 감동인데?
“아아- 그런 표정은 이 다음 걸 본 뒤에 지어도 충분하다고.”
“저 끝에는 이것보다 더 대단한 게 있어요?”
“그야 당연하지. 자, 얼른 가 보자고.”
원래 허세가 조금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감이 넘치니 나도 덩달아 궁금해진다.
처음에 생각했던 건 그냥 지하나 지상에 둘 수 있는 작은 공장 크기의 공간이었을 뿐이라,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살짝 부담스럽긴 하지만.
부웅-.
지하를 오가는 용도로 쓰이고 있는 픽업트럭을 타고 통로를 이동하자,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짜릿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으로 몸을 관통하는 듯한 이 기운.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마나는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충만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아론, 베이랜즈는 언제부터 보존되어 왔던 겁니까?”
“언제부터? 글쎄, 내가 알기로는 애초에 개발된 적이 없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오래됐지만, 그 전에도 이렇다할 정도의 건물이 들어서거나 한 적은 없었을 걸? 친구도 봤으니 알겠지만, 지반이 그리 단단한 곳은 아니라서.”
그 이름도 유명한 금문교 아래를 지나 들어오는 바닷물.
베이랜즈는 육지 깊은 깊은 곳에 있는 바다다.
쑥 들어온 지형 때문에 맑은 바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늪보다는 뻘에 가까운 지형이 바로 베이랜즈다.
“그런 곳에 용케도 건설 허가를 받아냈네요?”
마나가 몰아치듯 응집되는 곳.
자연이 보호되어서 마나가 응집되는 건지, 마나가 응집되는 곳이라 자연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드는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아론이 꽤 이곳에 건물을 짓는 허가를 받기 위해 내 생각보다 더 노력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지.
“자연보호 구역이긴 하지만, 관리소 건물 정도는 다른 구역에도 있으니까. 아마 관리국에서도 우리가 공짜로 지어준다고 해서 좋아했을 걸? 그게 아니었으면 허가해 줄 녀석들이 아니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하에서 공사중인 것도 알린 거죠?”
“당연하지! 아무리 나라도 연방법을 어길 정도로 막 나가는 건 아니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을 했는데, 그건 참 다행이네.
“···뭐, 규모에 대해서 따로 말하지 않았긴 하지만.”
그 뒤로도 뭔가 말을 한 것 같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아론도 딱히 내게 들리라고 한 말은 아닌 것 같고.
피차 모르고 있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삑- 삑-.
차가 도착하자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문이 경고음을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통로의 높이보다 훨씬 더 높게 지어진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도 더 높아 보이는 천장을 올려다 보며 다시 물었다.
“아론, 이거··· 정말 안 무너지겠어요?”
지하 깊은 곳에 빈 공간이 있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하중을 받는다는 소리인데, 이게 구조학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물론 그 정도 생각도 하지 않고 설계를 했을 리는 없을 테고, 중간 중간 몇 아름은 되는 기둥들도 보이긴 했지만.
“가운데 있는 저 기둥 보이지?”
저런 걸 단순히 ‘기둥’이라는 말로 부르기에는 꽤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아론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여기서 가장 든든하게 이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한 기둥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이는 기둥.
“혹시 저 안에 뭔가 만들 수 있는 구조인가요?”
“역시··· 정확해. 사실 친구가 만들어 준다는 배터리 충전 장치의 크기를 몰라서 최대한 크게 지으려고 한 것도 있지만, 저 기둥을 중심으로 지상까지 5겹의 콘크리트를 추가로 설치할 거야. 아마 핵폭탄이 직격으로 떨어져도 여기가 무너질 일은 없을 걸?”
대체 이걸 짓겠다고 돈을 얼마나 쏟아부은 걸까.
묻기가 두렵다.
‘그냥··· 묻지 말자.’
어차피 배터리 충전기는 돈을 받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리 한 번 충전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긴 하지만, 배터리를 지정된 장소에서만 충전할 수 있다는 건 이용자들에게도 꽤 불편한 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전기 충전소처럼 많은 곳에 보급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이곳과 서울의 공장에서만 가능할 테니까.
‘근데, 저 기둥··· 충전기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가 아닌데.’
기둥이 자리 잡은 모양새가 묘하게 익숙하다.
명색이 ‘기둥’ 이니 둥근 형태로 되어 있긴 하지만 직경이 적어도 10미터는 되어 보이고, 굳이 이렇게 넓고 높은 공간이라니.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장소를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설마, 아니겠지?’
이수용 회장과 진행중인 인공태양은 아직 극비에 속한다.
아론은 물론이고, 잭슨이나 마리와 회장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일.
괜한 기우겠지.
“어때? 이 정도면 친구가 원한 것 이상이라고 자신하는데.”
“물론이죠.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좋아! 직접 와서 확인해야 할 게 있다는 건?”
본디 마나가 응집되는 구역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아론의 감이 좋은 건지.
‘역시 마나 밀도가 굉장히 높다.’
마나를 측정하는 장치같은 게 없으니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장소에 비해 거의 3배의 마나가 몰려드는 곳에 정확하게 자리를 잡았다.
밀도가 3배나 된다는 건, 마나를 소모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빠르게 채워진다는 말이다.
적어도 이곳에서 마나가 고갈되는 일은 없을 거다.
“벌써 확인했어요. 문제는 없습니다. 참, 충전 장치는 한국에서 제작해서 부품으로 들여올 겁니다. 기간은 대략 2주 정도 생각하시면 될 거구요.”
“2주면··· 생각보다 빠른데? 친구가 직접 가지고 오는 거야?”
“네. 아무래도 민감한 장치라, 설치 후에 조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최대한 빠르고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들고, 충전된 배터리는 곧장 공업용 벨트로 이동해서 길 건너의 테슬라 공장으로 옮기면 된다.
그 부분은 아론이 해결해야 하는 거고.
***
“미안, 내가 너무 늦게 연락했지?”
6시 이전에는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아론과 지하에서 보낸 시간이 꽤 길었다.
공사가 공사이니 충전기를 비롯해 다른 장비들의 레이아웃도 정하고, 대략적인 운송 방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다 보니 오후 8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으응.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은 스케줄이 하나도 없었거든.”
“하나도?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헤헤.”
웃으면서 갑자기 껴오는 팔짱에 살짝 당황했다.
공식적으로 연애를 인정한 뒤로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라 그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지금 여기는 실리콘 밸리의 한 복판에 있는 음식점 거리다.
멋진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채로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주변에 즐비하다는 말이다.
“리, 리아.”
“싫어. 이거 절대로 안 뺄 거야!”
“그래도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그게 뭐가?”
20대 초반의 솔로 여가수가 남자와 번화가에서 팔짱을 끼고 다닌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기자들한테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뭐 어때? 우리는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이인데?”
이거 내가 꽉 막힌 사람인가.
리아가 너무 개방적인가.
‘아니면 그냥 미국 사람들은 사고 방식 자체가 다른 건가?’
‘공장’을 지어달라고 했더니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아론도 그렇고.
아무래도 나 역시 이곳 사람들의 기준에 조금 맞추는 편이 좋겠다 싶다.
“어디 가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까?”
“그렇지 않아도 예약해둔 곳이 있어요. 얼른 가자!”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묘한 화법.
리아도 아직은 내가 완전히 편하게 느껴지지 않다는 말이겠지.
그녀의 작고 보드라운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물 앞이었다.
초록색의 둥글고 긴 아치형 천막이 건물 입구에 설치된 작은 레스토랑.
끼-익하는 나무 마찰음과 함께 열린 문 안쪽으로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와 약간은 어둡게 느껴질 정도의 양초 불빛만 흔들거리는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네. 손님이 우리 뿐인가?”
“···헤헷.”
그 표정을 보고선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제 알겠다.
리아는 대답하기 민망할 때는 저렇게 웃는구나라는 걸.
어둑하던 실내가 갑자기 환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맑은 웃음은 내가 잠이 부족하다는 것도 잊게 만들 정도로 화사하게 느껴진다.
이 잠깐의 휴식이 미국에서 있었던 그 어떤 일보다도 보람차게 느껴지다니.
‘제대로 콩깍지가 씌였구나, 나.’
그리고 결심했다.
먼 곳이지만 이렇게 자주 오게 될 거라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은 하나 구해야겠다고.
***
-마스터, 마스터.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이른 새벽.
아라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호텔 침대에서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 마스터, AMD 내부에 있는 서버 컴퓨터가 비허가된 외부 경로로부터의 강제 접속에 노출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나라도 일어나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거··· 해킹 당하고 있는 말이야?”
– 네, 마스터.
이 녀석이 요즘 날 놀리려고 드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단 말이지.
쉬운 말을 놔두고.
“AMD에서는? 모르고 있는 거야?”
– 해킹 대응팀이 방어 중이지만, 상대의 속도에 따라가기 버거운 상태로 보입니다.
“대체 누가··· 아니, 그보단 일단 AMD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도와줘.”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CIA나 펜타곤의 서버마저 뚫는 이들은 있다.
아무리 IT업계의 공룡 기업이라도 AMD의 서버가 펜타곤의 서버보다 뚫기 어려울 수는 없는 법.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라에게는 엔비디아나 AMD, 테슬라와 데카 랩처럼 인연이 있는 곳의 서버를 감시하라고 했었다.
당연히 마리아나 잭슨에게도 알리지는 않았다.
아무리 보호해 주는 게 목적이지만, 다른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다는 것 자체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알 수 없으니까.
– 마스터, 노출된 외부 침입 경로를 모두 차단했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대응팀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됐어. 그 정도는.”
마리아 회장이 혹시라도 눈치채고 물어온다면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제는 양자 컴퓨터에 대한 것도 알렸으니,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면 이해를 하지 못할 사람도 아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으니까.
“유출된 자료는?”
– 유의미한 자료가 유출된 흔적은 없습니다.
“다행이네. ···대체 누가 AMD를 해킹하려고 한 거야?”
이런 상황이되면 늘 떠오르는 곳이 있다.
대강 짐작이야 되긴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요한 일.
– 아이피 주소 역추적 결과 중국 국가안전부 기업국으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역시나, 이런 예상을 빗나가질 않는 구나.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하나 남는다.
“왜 하필 지금 시점에 AMD를 해킹하려고 한 거지?”
아무리 막무가내 중국이라도 만에 하나 들켰다가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는 거다.
만약에 스카디가 목적이었다면 늦어도 너무 늦은 뒷북이고.
하지만 중국에서 원했던 것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 마스터, 침입자가 활성화를 시도한 검색 키워드는 ‘IBM’이었습니다.
이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