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악연 (2)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겨우 하루 전에 오간 이야기.
아니, 시간으로 따지면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해킹을 시도하려고 했다.
카밀라 회장과 마리아 회장.
두 사람과 나눈 이야기의 주제만 생각하면 단순한 이야기였다.
현재 IBM 소속의 슈퍼컴퓨터 설치 팀의 파견, 그리고 1만 큐빗이 넘는 반도체의 제작을 위한 두 회사의 협력.
‘파견에 대한 건 이미 전부터 진행하던 내용이었고.’
새롭게 나온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초전도체 기반의 반도체 이야기 뿐이다.
키워드를 검색했다는 건, 해커가 원하던 정확한 목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고, 그게 IBM과 관련되어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설마, 찾던 자료가 어제 이야기했던 양자 컴퓨터의 CPU에 관한 내용인가?’
거대 기업을 이끄는 전자공학 박사인 두 명의 CEO.
높은 확률로 일 중독이거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업무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게 뻔하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IT업계의 선두에 설 수 없었을 테니까.
아마 돌아가자마자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는 정리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아라야. AMD 서버에서 IBM과 관련된 서류 있어?”
–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확인해 볼까요?
“···아니.”
양자 컴퓨터의 이런 위험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걸 스스로가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걸 중국에서 어떻게 알았을까?’
어제 갔던 인도 식당은 그리 유명한 곳도 아니었다.
마리아 회장이나 카밀라 회장이 워낙에 유명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해킹을 시도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당할 가치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건 어제 세 사람이 ‘양자 컴퓨터’의 반도체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걸 안다는 말인데.
‘설마, 카밀라 회장?’
나를 포함해 이야기를 나눈 건 세 사람이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남은 건 둘이다.
그렇다고 마리아 회장을 의심하기에는 함께 해 온 시간이 꽤 길고 두텁고.
‘그럴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 마스터와의 만남 이후 카밀라 회장의 행적을 모두 추적해 볼까요?
아라의 제안에 잠시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 아라가 제안한 방법이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건 한 번 가버리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안 뒤에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양자 암호로 만들어진 보안 체계가 아닌 이상 양자 컴퓨터가 뚫지 못하는 방화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 양자 컴퓨터를 제어하고, 유사 자아까지 가진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라가 신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양심이라는 녀석이 걸린다.
지금 카밀라 회장을 의심해서 조사하면 의혹은 남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후에 나는 과연 떳떳하게 그녀와 파트너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래.
만약 다른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쪽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다.
“아라야, 최근 일주일 동안 그 음식점에 왔던 사람들을 모두 조사해 봐. 종업원이나 손님까지 전부.”
– 네. 마스터. 단, 온라인에 연결된 기기를 소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정확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괜찮아.”
외곽이긴 했어도 실리콘 밸리에 있는 식당이었다.
전 세계 IT산업의 중심인 곳에서 스마트폰 하나 없이 돌아다닐 사람이 많지는 않았겠지.
심지어 양자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걸 다른 곳에 흘릴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
호텔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심 비서에게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인천행 비행기 운항이 취소돼?”
“네. 예정에 없던 기체 결함 발생으로 점검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봤다.
그래도 명색이 국책항공사였던 곳인데 항공사가 식으로 비행을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다른 항공사 비행기는?”
“산호세 공항은 한국에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 아니라서요. LA공항이라면 비행편이 더 있을 겁니다. 바로 확인해 볼까요?”
오늘 오후에는 출발해야 내일 과기정통부 민우석 장관과의 약속에 늦지 않는다.
중입자 가속기 연구소의 사용에 대한 것도 그렇고, 새로 지어질 동위원소 생성 가속기에 대한 중요한 사안이 있어서 미루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이건 민우석 장관보다 내쪽에서 급한 일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지. 우선 그렇게 라도 ···아니, 잠깐만.”
심 비서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마리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어제 저녁 비행기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개인적인 일로 조금··· 그보다, 전에 말했던 전용기 말인데요.”
“아, 그거? 안 그래도 다음에 오면 보여주려고 했는데.”
물건이 있구나.
게다가 할리우드는 LA에 있는 곳이니 어쩌면.
“지금은 어때요? 온 김에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바로? 아마 가능하긴 할 텐데··· 연락 해볼게. 그런데 물건이 LA공항에 있을 텐데. 괜찮겠어?”
“마침 잘 됐네요. 저도 지금 막 그쪽으로 가려고 했거든요.”
혹시 집에 활주로가 있는 사람이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미안한데, 나도 오늘은 시간을 내기가 바빠서 함께 가지는 못할 것 같아. 아마 그쪽으로 가면 중개인이 나와있을 테니까 걱정말고.”
“마리아, 혹시 예전 주인이 누군지 물어봐도 되요?”
“음, 그건 내가 답해 주기가 조금 애매하네.”
하긴, 형편이 어려워져서 비행기를 파는 거라면 알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국처럼 중고를 팔아먹으면서도 연예인 프리미엄이랍시고 가격을 더 받으려는 어이없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심 비서, LA 공항으로 가자.”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구간이라 그런가.
비행기가 많아서 티켓을 구하는 건 금방이었다.
1시간 30분이 걸리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어이없는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다.
***
미국으로 올 때와는 달리, 비교적 작은 비행기라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석에 탑승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 보니, 구름 아래 언뜻언뜻 도시가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거대한 산맥이었다.
같은 캘리포니아의 주에 있는 도시를 가는데도 국내에서는 가장 긴 인천-제주보다 더 먼 구간.
이 미친 듯한 넓이의 땅은 언제 생각해도 부럽게 느껴진다.
– 마스터, 한국 뉴스에 오민혁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추정되는 인물이라니?’
–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라 얼굴을 인식할 수 없지만 오민혁씨의 행적과 일치합니다.
팔에 있는 마법진을 아라가 느낄 수 있으니, 그냥 오민혁이라는 소리잖아.
그런데 이번에도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뉴스 화면 띄워봐.’
눈 앞에 아라가 전송하는 화면이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볼 수 없는 뉴스 화면 속.
[오늘 늦은 밤 경기도 인근, 이른 저녁부터 동료들과 술을 마셔 만취 상태가 된 K씨가 모는 1.5톤 트럭이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도로를 달립니다. 어두운 밤, 이 상황을 모른 채 횡단보도를 건너는 학생들을 향해 트럭이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던 여학생 세 명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 시험을 위해 손에 들린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미처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만취 트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기자가 스토리텔링을 추가한 건지, 정말 확인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설명들이 상황을 더 안타깝게 보이게 만드는 효과는 분명 있었다.
어두운데다 화질이 그리 뛰어난 영상은 아니지만, 오민혁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눈에도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한 남자가 등장했다.
평온한 듯 CCTV화면을 설명하던 기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등장과 함께 한 순간 힘이 실렸다.
[그 순간! 여학생들과 트럭 사이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끼어듭니다. 무채색 계열의 운동복을 입은 남성은 검은 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그대로 트럭을 막아섭니다. 남성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학생 세 사람도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지만 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다음 장면은 보지 않아도 머리에 펼쳐지는 상황.
‘···몸무게 때문에 버티지 못할 텐데?’
아무리 팔 힘이 좋더라도, 오민혁은 사이보그가 아니다.
그저 양 팔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팔을 한, 일반인에 비해 상당한 근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일 뿐이지.
돌진하는 트럭을 막아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대로 부딪힌다면 팔은 멀쩡하더라도 상체 뼈가 죄다 박살나던가, 아니면 몸이 아예 날아가 버릴 테니까.
하지만 내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트럭이 네 사람을 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운동복 차림의 남자가 기지를 발휘합니다. 그는 충돌하려는 순간, 정확하게 트럭의 옆 면을 양손으로 잡아채며 트럭의 진행방향을 가로수로 트는데 성공합니다. 놀라운 괴력을 발휘한 남성은 세 학생과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한 직후, 빠르게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남자가 보인 괴력은 평소 우리 뇌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한하고 있던 한계를···.]‘그만. 오민혁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 아직 경찰에서도 행방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오민혁씨는 사건 직후 곧장 자택으로 돌아간 뒤라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더 소요될 겁니다.
오민혁의 팔은 실험적인 경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처음으로 제작하는 의수라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었다.
마음을 줄곧 닫고 있던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이 생겼다는 사실에서 자신감을 회복 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도 있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이건 문제가 된다.
지금 당장이야 모르겠지만, 한 번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과연 참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을 제한해야 하려나.’
저런 상황을 눈 앞에 두고 참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참는 게 아니라, 나설 수 없었을 거라는 게 맞다.
용기가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오민혁은 자신이 가진 힘을 알고 있으니 저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이지.
오민혁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저런 상황에서도 나서지 못하게끔 근력과 속도를 제한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 마스터, 주변 CCTV영상을 삭제할까요? 경찰이 오민혁 씨의 신원을 알아내면 마스터까지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영상 삭제하고, 오민혁의 팔 상태도 점검해 봐.’
– 양 팔 모두 양호한 상태입니다.
돌진하는 트럭의 경로를 순간적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과 스피드.
– 마스터, 닥터 에밀리에게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오성락 어르신과는 심장 수술 이후에도 여전히 종종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고 있지만.
오민혁과의 관계는 그 날 이후 조금 애매하게 변했다.
처음부터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감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사이가 그렇게 되니 오민혁과 결혼을 약속한 에밀리 박사도 데카 랩의 의료진에서 빠지게 됐고, 그 뒤로는 이렇다할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타이밍에 메일을 보냈다는 건 역시 오민혁에 관한 일이겠지.
‘닥터 에밀리에게는 내가 한국에 도착해서 연락한다고 남겨둬.’
– 네. 마스터, 오민혁 씨의 팔은 어떻게 할까요? 마법진을 통해 일반인 남성들의 평균 수준까지 낮추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니, 우선 에밀리와 이야기를 해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어. 오민혁의 동선은 계속 파악하고, 혹시 다시 집 밖으로 나가면 즉시 내게 알려.’
– 알겠습니다.
개인 사생활이니 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 상황에서 또 비슷한 사건이 터지면 그때는 사람들도 알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는 걸.
그걸 원하지는 않으니까.
우웅-.
LA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해서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동생, 설이.
“응? 이 녀석이 이 시간에 갑자기 왜 전화를 했지?”
두둑한 용돈에 카드까지 손에 쥐어주니 최근에는 세상에 이렇게 나긋나긋한 동생이었나 싶을 정도로 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도 전화를 해서 애교를 부리는 녀석은 아니다.
심지어 지금 미국에 와있는 걸 모를 리도 없는데다, 한국은 지금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무시할까 싶다가,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은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왜? 오빠 바쁜···.”
조금은 퉁명스럽게 받은 전화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머릿속이 순간 새하얗게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