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
화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한 거다.
맞다. 공평하지 않다.
그 불공평함이 나를 일개미로 만들었다.
일개미.
병정개미도 아니고 보모개미도 아니고 여왕개미도 아니고 수개미도 아닌 일개미.
그렇다고 내가 정말 개미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의 내 지위가 일개미인 것은 분명하다.
일개미(er·gate)
이건 나 같은 하류인생을 낮잡아 부르는 속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서도 능력이 없어서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연명하는 하류 인생을 그렇게 부른다.
여기는 식민지 개척의 선봉이며 자원 수급의 현장인 데블 플레인이다.
그냥 쉽게 생각해라. 죽음과 살육이 난무하는 지역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다.
세상 문명의 발전은 시간의 흐름과 비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게 맞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 세상의 물질문명이 크게 발전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곧 영원한 안정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한정된 행성의 자원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문명의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우주선을 통한 우주로의 진출을 모색했다.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고 그 우주선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그걸 통해서 우주를 개척하는 장대한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뭐 그래봐야 얼마 가지도 못했다.
위성인 달도 파먹어 보고, 다른 행성도 어떻게 개척을 해 봤지만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일단 수송에 걸리는 비용이 너무 컸다. 그리고 얻는 자원도 보잘 것 없고.
그러던 차에 플레인 게이트란 것이 만들어졌다.
정말 무식한 과학의 산물이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서 공간을 비트는 형태의 기구였다.
그걸 만들어 냈던 일단의 과학자 그룹은 그 플레인 게이트 안쪽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게이트를 열고 봤다.
그 결과는 물론 끔찍했다.
우주의 그 공허한 공간에 게이트를 열어서 무중력과 진공의 거대한 공간에 일상의 공간을 연결시켜 만나게 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확인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게이트가 금방 망가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게 튼튼했으면 엄청난 결과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뭐 그 상태로도 끔찍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그 후에도 무슨 행성의 내부에 게이트를 열었는지 용암이 쏟아져 나온 일도 있고, 물이나 흙이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어딘지도 모를 곳이지만 공간을 넘어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미친 과학자들이 몇 십 년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결국 어딘지 모를 행성의 지면 위에 게이트를 열었다.
그러느라 소비된 에너지가 얼마며 일어난 사고로 희생된 사람이 얼마며 파산한 후원자가 얼마인지 통계도 없지만 일단 성공을 하긴 했다.
그리고 그곳이 1차 식민 행성으로 지금도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개발이란 것은 뭐 죽이고 빼앗는 것을 말한다. 원주민이라고 침략자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봐야 거긴 정리가 된 상태다. 그냥 과거를 그리워하는 소수의 반란분자가 있을 뿐이니까 말이다. 뭐 그들도 이전과 달리 우리 문명의 혜택으로 무기가 점점 발달하고 있다지만 그들이 다시 그들의 행성을 찾아서 독립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지금 상태가 이어져서 끝내는 우리 문명에 흡수되는 것으로 결정이 나겠지. 그리고 그 행성의 주민들도 결국은 우리 정부의 국민이 되는 것이 그 결말일 거다.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는 많이 나돌고 있다.
그렇게 우리들은 여러 행성에 게이트를 열어서 침략자가 되고 있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물론 저급한 생명들에 대한 보호나 권리 보장 따위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일단 점령을 끝낸 다음에 말이다.
침략에 또 침략에 또 침략. 그렇게 행성들을 주머니속 물건처럼 챙기는 거다.
그런데 게이트란 것이 크기도 어중간하고 에너지 소비도 많은 편이라서 주구장창 열어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침략자의 입장인 우리들이 무조건 우세할 수도 없다. 특히 과학문명이란 것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사례로 화학무기나 광학무기 같은 것이 제대로 위력을 내지 못하는 곳이 있다. 현대식 무기가 위력을 낼 수 있는 곳이라면 게이트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점령이 되어 버린다.
과학 문명의 차이가 고스란히 적용되는 싸움에서 그 차이가 어느 정도 난다면 그건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 되고 만다. 그렇게 점령한 행성이 몇 개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행성들이 있다. 일종의 면역이랄까? 우린 이뮨이라 하는데 일반적인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고 아주 특별한 능력만이 충격을 줄 수 있는 그런 행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행성이야말로 자원의 보고이며 가치를 지니는 장소가 된다.
어째서? 그야 게이트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이트의 크기는 가로세로 3미터가 되지 않는다. 그 이상이 되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나마 효율성을 생각한 최대의 크기가 가로세로 3미터다.
그런데 그걸 유지하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그러니 최대한 부피가 작으면서 가치가 있는 것을 모성으로 공수해 와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데블 플레인이라 부르는 곳에서 나온다. 광석이거나 혹은 몬스터의 사체이거나 혹은 몬스터가 품고 있는 에너지코어이거나 어느 것이건 데블 플레인에서 최고의 것이 나오는 거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우리 일개미들이 일하는 곳이고 그런 곳을 데블 플레인이라고 부른다.
물론 거기서 일을 하려면 그 특별한 능력이란 것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능력을 대신한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몬스터는 강력하고 그 몬스터를 죽여야 사체를 얻거나 혹은 코어를 얻는다. 그리고 영역을 넓혀야 광산을 개발하거나 자원 채취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뭐가 되었건 몬스터를 잘, 그리고 많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갑이 된다.
하지만 그 중에도 일개미는 있다.
일개미는 모성에서 게이트 이용 비용을 대출받아서 데블 플레인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거다.
우리는 싸움을 하지 못한다. 몬스터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은 없다. 도망을 가면서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그다지 가능성이 없다. 몬스터는 빠르고 강하니까.
그래서 우리 일개미는 데블 플레인의 거점 도시 안에서 생활을 한다.
도시 밖으로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나가서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가봐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최하급의 몬스터도 어쩌지 못할 놈들이.
그럼에도 우리 일개미가 데블 플레인으로 넘어오는 것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모성에서 받는 돈의 다섯 배 이상을 받는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넘어와서 노예 취급을 받으면서도 일을 하는 거다.
다시는 모성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런 선택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모성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경우다.
그게 아니면 엄청난 야망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넘어 온 놈이거나.
뭐 대다수의 일개미는 나처럼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경우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희생을 한다.
보증인이 없으면 게이트 비용을 대출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가족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게이트를 넘어 와서 일을 해서 빚을 갚는 거다.
게이트 이용 요금은 3천만 텔론.
그 돈이면 모성에 있는 우리 부모님과 두 동생이 아껴가며 5년은 쓸 수 있는 돈이지만 나는 일개미가 되기 위해서 그 빚을 졌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곳에서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죽게 되면 부모님과 동생들이 그 빚을 대신 갚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힘겨워지겠지. 그래도 정부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돈을 다 받아 낼 거다.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처음부터 대출 따위를 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상황은 이렇다.
이렇게 일개미가 된 거다. 참, 불공평하지? 세상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