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18
화
“세바스찬!”
나는 급히 세바스찬을 불렀다.
“미안하다. 이건 뭐 피해볼 길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저 쪽의 두 마리를 잡고 있을 테니 일단 피해라. 저 두 놈만 지나치게 되면 어떻게 수가 나지 않겠냐? 그 다음부터는 네가 리더다.”
와우, 이 양반 죽을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네?
하지만 지금 죽은 거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살아야지. 그리고 저 앞에 두 마리 지나치면 그 앞에는 몬스터가 없나? 그리고 세바스찬 죽고 나면 저 놈들이 더 이상 우리를 안 쫓아온다는 보장은 있고?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약속 하나 해요.”
“응?”
“살려 줄 테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거 하나만 약속해요. 지금 급하니까 다른 사람들 모두를 대표해서 약속해요. 그럼 같이 살고, 아니면 우리 셋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수가 있어요.”
“하하핫. 도망은 갈 수 있고? 그럼 그렇게 해. 너희 셋이라도 살 수 있으면 그거야 우리로선 축하해 줄 일이지. 아무렴.”
“아나. 이 양반이 잘난 척은 엄청 하려 드네. 그냥 대답이나 해요. 살려 준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네? 어쩔래요?”
“좋아. 약속한다. 이후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도 않는다.”
“비밀도 지킬 거죠?”
“그렇게 하지. 약속한다. 우리 열 세 명 모두의 목숨이 걸린 거니까. 어기면 목숨으로 갚는다.”
이런다고 그게 어찌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방법이 없다.
츠츠츳.
“응? 뭐냐?”
“들어가요. 들어가면 알아요.”
“엇? 야, 이 회색 벽으로 어떻게 들어가? 엇?”
나는 듀풀렉 세이커로 던전 벽에 창고의 입구를 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회색의 사각형 평면이 벽에 붙은 것 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세바스찬이 뭐라 하는데 거길 포포니가 냉큼 걸어 들어가 버렸다.
“어서 서둘러 들어가! 해골 다 왔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세바스찬의 팔을 잡아 끌어서는 입구로 밀어 넣었다.
“우악, 뭐야? 너 지그….”
세바스찬을 던진 나는 알프레를 노려 봤다.
“모두 데리고 뛰어 드러가요. 어서! 시간 없어.”
“그, 그래.”
알프레는 어리둥절 하면서도 일행들을 끌어다가 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씩 벽 너머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알프레가 들어간 후에 텀덤과 내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 오면서 뒤쪽에 어머어마한 에테르의 폭풍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어둠고 침침하면서 파괴적인 기운이 등 뒤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창고 입구로 들어오면서 곧바로 입구를 닫아 버렸고, 그 뒤에 던전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제 우리완 전혀 상관 없는 세상의 일이 되었다.
여긴 데블 플레인이 아니라 세포니 행성인 것이다.
고개를 드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어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한다. 맞지요?”
내 말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지만 세바스찬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야, 어차피 여기서 있었던 일은 비밀이라면서? 그럼 설명을 해 줘도 좋잖아. 어차피 나가면 말도 못할 일인데 궁금증이나 풀자. 응?”
하아, 역시 이 사람은 정신 세계가 남다르다. 여기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뭐 그래도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것 보다는 조금 이야기를 해 두는 쪽이 좋을까?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여긴 제 개인 아지트고 다른 방들엔 개인적인 연구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접근을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포포니와 텀덤은 뭐 먹고 마실 거라도 좀 가지고 와. 일단 쉬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내 말에 포포니와 텀덤이 식당으로 향하는 통로로 나가고 세바스찬 일당들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원래 창고로 쓰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일종의 이동 경유지 같은 형식이라 텅 빈 공간에 몇 곳으로 통하는 통로만 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정육면체의 지하 공간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들이 벽에 뚫려 있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그래도 그 동안 좀 꾸민다고 바닥을 석재를 다듬어 깔아 놓아서 깔끔한 맛은 있다.
“자, 이야길 해 봐라.”
세바스찬이 성질 급하게 재촉을 한다.
“여긴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제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통하는 입구를 열 수 있는 방법이 제게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순간에 그 입구를 열어서 여러분을 이리로 모신겁니다.”
“여긴 어딘데?”
“지하입니다. 땅 속에 있는 공간입니다.”
“어디 지하?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여기 에테르가 이상해. 그건 알지?”
“압니다. 여기 에테르는 데블 플레인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너 그게….”
일순 괴이한 정적이 흘렀다. 이들은 머리가 나쁜 이들이 아니니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거다.
“여긴 제3 데블 플레인이 아닙니다. 여긴 어딘지 모를 다른 행성의 지하입니다.”
“야, 야. 그건 좀 아니지. 우린 그냥 이상하게 생긴 벽을 지났을 뿐인데 그게 행성이 바뀐다고? 그게 말이 되냐?”
“그래요. 그건… 그건… 플레인 게이트나 할 수 있는 일이라…”
굴리야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벌리고 나를 본다.
“서, 설마 플레인 게이트와 같은 것을 만들었다는 건가요? 그것도 개인이? 가, 가지고 다닐 정도의 물건으로요?”
믿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미 경험을 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만든 것은 바로 여기 이 공간으로 올 수 있는 게이트 열쇠가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 그것을 작동시키면 이리로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전부죠.”
“응? 여기로만 올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우린 어떻게 돌아가냐? 넌 어쩔 거야. 이젠 제3 데블 플레인에 못 가는 거냐? 여기서 살아야 해?”
세바스찬이 묻는다.
“단장님. 그래도 죽는 것 보다야 낮잖습니까? 그럼 거기서 죽어요?”
알프레가 세바스찬의 말에 딴지를 건다.
“누가 그렇데? 그냥 여기서 살아야 하나 싶어서 그런 거지.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세이커 저 놈이 여길 들락날락 했을 테니까 밖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열쇠를 작동시킬 방법이 있을 거야. 암. 그래. 그렇지?”
이 양반 머리는 참 이상하게 돌아가. 답은 맞는 것 같지만 그걸 얻어 내는 과정이 참 엉뚱해. 멋대로 흥분하고 소리치다가 스스로 결론으로 다가가니 말이지.
“제3 데블 플레인에 여기로 통하는 입구를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 열 다섯 시간에 한 번씩 작동을 하고 그 때에 열린 문으로 나가면 제3 데블 플레인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열쇠는 네팔자이언트를 잡기 위해 지어 놓은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이 생기면 이곳을 통해서 그리로 돌아가기 위한 장치입니다.”
“우와 멋지다. 멋져. 정말 대단하구나. 너. 이야, 이런 대단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다.”
세바스찬이 감탄을 하며 팔을 벌리고 나를 안으려고 다가왔지만 나는 급히 몸을 피했다. 어디 사내 새끼가 나를 껴안으려고!
“정말 놀라워요. 플레인 게이트를 만들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굴리야는 물론이고 나머지 사람들도 아직 정신이 없는 표정들이다.
“그걸로 모성으로 갈 수도 있나요?”
굴리야가 물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굴리야씨. 만약에 제가 만든 열쇠를 모성으로 보낼 수 있고, 거기서 그걸 작동시키면 여기로 입구가 열릴 겁니다.”
“아아, 가능하단 말이군요? 어떻게든 물건 하나를 모성에 보내는 것이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성으로 가는 화물은 데블 플레인에서 정기적으로 가고 있으니까 말이죠. 크기도 크지 않은 작은 거라면 충분히 보낼 수 있겠군요.”
뭔가 원하는 듯한 굴리야씨의 표정이지만 나는 그것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시도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니까요. 지금 여길 여러분에게 보인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요구하지 마십시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자자, 음식이 왔어. 손님이 오신 적이 없어서 대접할 게 별로 없네. 그래도 내가 만든 거니까 맛있게 먹어.”
포포니가 텀덤에게 큰 쟁반을 들게 해서 음식들을 쌓어 가지고 나왔다.
짧은 시간에 꽤나 많이 만들었다. 역시 포포니는 음식 만드는데도 재주가 좋아. 암. 이것도 복이지.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