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37
화
“누군지 알겠어?”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멀어서 확신은 할 수가 없네요.”
내 질문에 마샤가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나저나 한 사람이 분명한 걸까? 여러 사람이 온 건 아닐까?”
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여긴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니까요. 헌터들이 몰려 왔을 이유는 전혀 없어요. 그럼 여기 올 사람은 없죠. 나 같은 에스폴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종족들도 이쪽으로 볼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또 에스폴은 절대 저런 짓은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국 던전에 볼일이 있는 사람 중에서 저런 화려한 돌파가 가능한 사람을 떠올리면 되죠. 그렇게 줄이고 나니까 몇 사람 밖에 생각이 안 나요. 거기다가 자주 이곳 던전을 찾아와서 수련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그 사람일 것 같아요. 헌터 중에서 그랜드 마스터 고다비. 그가 맞을 거예요.”
“그랜드 마스터 고다비. 여성 그랜드 마스터로 성격이 화통하고 직선적인 사람입니다. 그랜드 마스터지만 정신 능력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 어차피 정신 능력자나 육체 능력자의 구별이 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동격으로 봅니다.”
정신 능력자 그랜드 마스터라. 거 무시무시하네.
내가 생각해도 육체 능력자는 소수의 정예를 상대하는데 특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거기에 비해서 정신 능력자는 원래부터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들이 많다. 에테르를 모아서 범위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한 이들이 정신 능력자이니 말이다. 뭐 나는 디버프에 집중을 해서 정신 능력으로 공격을 하는 것은 마스터의 칼질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뭐 연습을 하고 했어야 늘지. 그저 디버프에 집중을 하느라고 에테르 원거리 공격은 조금 등한시 한 면이 있다.
아, 이쪽도 좀 더 노력을 해야 하겠구나.
“보아하니 결국 던전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데 어쩌지? 인사를 하고 함께 움직이나?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우리끼리 가나?”
“만나봐야 할 거예요.”
내 말에 마샤는 그렇게 딱 잘라서 대답한다.
“왜?”
“그녀가 우릴 봤다면 곤란하니까요. 못 봤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만약 봤다면 우리가 자신을 무시한 것을 좋게 보지 않을 거예요.”
“저렇게 멀리 있는데도 우리를 발견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니까요.”
뭐가 그랜드 마스터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수준의 대답이잖아? 하긴 까흐제 보니까 무시무시하기는 하더라. 저 고다비도 그런 괴물 중의 하나니까 우리를 이미 발견했을 수도 있다는 건가?
뭐 발견을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를 생각하면 위험한 도박은 하지 말자는 것이 마샤의 생각이겠지?
“좋아. 그럼 저 사람이 여기까지 올 동안 우리는 뭐 따뜻한 먹을 거라도 준비를 해서 손님 맞이를 해 보자. 이런 추운 곳에서 저렇게 운동을 했으니 여기 오면 땀이 식어서 싸늘할 거야. 따뜻한 마실 거라도 주면 좋아하지 않겠어?”
“남편, 창피해.”
“포포니 이런 걸 두고 삶의 지혜라고 하는 거야. 어차피 실력에 밀려서 잘 보이려고 하는 짓인데 이럴 때는 첫 인상을 좋게 해서 점수를 따 두는 것이 좋지. 안 그래?”
“우웅. 그래도.”
마땅치 못하단 표정의 포포니지만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곧 헤실거린다.
“나도 알아. 하지만 약간의 수고가 서로의 첫 만남을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 난 까흐제도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러니 고다비라는 그랜드 마스터도 무섭지 않아. 그저 사람을 호의로 맞아서 또 호의를 얻고자 하는 것 뿐이야.”
그렇게 포포니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이런 그거 듣기 좋은 말이네?”
“엇?!”
“누구!!”
텀덤과 마샤는 물론이고 나와 포포니도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온통 붉은 색의 옷감을 몸에 두른 여자가 거기 서 있다. 굉장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외모는 이미 의미가 없다.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말이다.
이번에도 내 본능은 그 여자가 괴물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붙으면 진다고 말이다.
“아아, 미안. 난 고다비야. 방금 저 아이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지. 저 쪽에서 한바탕 몸을 풀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야.”
무기도 없이 등에는 자기 몸만큼 큰 배낭을 메고 있는 고다비다. 그걸 보고 있자니 그랜드 마스터도 참 별 것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런 곳에 오려면 그랜드 마스터도 뭔가 준비물을 챙겨서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린 참 간편한 차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서 오십시오. 오시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굉장히 빨리 오셨군요. 음. 어떠십니까? 마침 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말이지요. 자리를 같이 하시겠습니까? 사실 고다비님이 오시면 따뜻한 차라도 대접을하려고 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요.”
“준다면 마다하지 않지. 아까 들은 대로 호의로 주는 것이면 호의로 받고, 나도 호의로 돌려 줄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야.”
고다비는 우리가 자리잡고 있던 작은 공터의 한쪽에 딱딱하게 얼어붙은 눈덩이를 슬쩍 손으로 쓸어서 앉을 자리를 만들고는 거기에 걸터 앉았다.
“그럼 포포니 부탁을 좀 할까?”
“웅. 남편. 맛난 거 만들어 줄게.”
포포니는 내 부탁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면서 한쪽에 음식을 만들 준비를 차리기 시작했다.
그 곁에는 텀덤과 마샤가 붙어서 돕는다.
“그럼 그 쪽은 나하고 이야길 좀 할까?”
고다비가 나를 부른다.
나는 곧바로 고다비 앞으로 가서 그녀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도 눈으로 만든 것이다. 마치 나무 둥치처럼 의자 대용으로 쓰기에 적당한 정도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도 고다비의 손짓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쉼쉬는 것처럼 정신 능력을 쓰고 있는 고다비다.
“까흐제 영감을 만난 적이 있나봐?”
“네. 얼마 전에 찾아와서 던전을 발견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제자가 되라고 하시더군요.”
“제자? 까흐제의 제자가 제1 데블 플레인에서 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새로 제자들 들였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고다비는 뭔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건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해서 그렇습니다. 제자가 되고 대리인이 되는 것이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거절을 했습니다.”
“까흐제 영감의 제자가 되란 소리를 거절했다고? 그래서 그 영감이 그냥 물러났단 말이야?”
“빚을 갚기 위해서 제자가 되라고 한 건데, 그 것을 제가 거부한 것이니 빚은 없어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그렇게 생각하겠다시며 돌아가셨지요.”
“호호호호홋. 그 영감 얼굴이 얼마나 구겨졌을지 짐작이 가는군. 하긴 그렇다고 너와 저 타모얀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겠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겠군. 호호호. 그거 참 기분이 좋은 일이야. 아주 좋아.”
어쩐지 고다비의 호감도가 무척 올라간 것 같다. 설마 고다비가 까흐제랑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아이구나. 그래 사람이 그래야 하는 거다. 실력을 무시하는 것은 제 명을 재촉하는 것이니 마땅히 실력이 모자라면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굽히는 것도 비굴한 것이 있고 당당한 것이 있다. 너는 그렇다. 당당하구나. 그래서 마음에 든다. 물론 까흐제 영감에게 한 방 먹인 것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일이고 말이다. 호호호.”
역시 까흐제과 사이가 좋지 않은 그랜드 마스터다.
“응? 궁금하냐?”
“네. 조금.”
“별 것 아니다. 까흐제는 육체 능력자고 나는 정신 능력자인데 그 영감이 정신 능려자를 깔보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가 여자를 깔보는 경향도 있지. 그 두 가지가 다 내게 해당이 되다보니 그 영감과 내가 서로 사이가 나빠진 거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런 거란다. 별 것도 아닌 거지.”
고다비 그랜드 마스터는 정말로 별 것 아니란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저 사소한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