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53
화
나는 우리가 거쳐가야 할 지명들을 살피다가 한 지명에서 멈췄다.
비자빈이란 지역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지명이 내 신경을 건드린 것은 그곳의 헌터들이 일개미들을 몬스터들에게 먹이로 내어주고 방패로 삼은 것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방어선을 형성한 후에도 일개미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은 그 방어선 안에 있던 일개미들조차도 외부로 내보내서 몬스터들을 분산시키는데 활용을 했다는 내용을 읽은 것이 기억난 탓이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듀풀렉 게이트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비자빈으로 향하면서 잠쉬레에게 그렇게 통보했다.
“무슨 소린가?”
되묻는 잠쉬레에게 나는 비자빈에 있던 일개미들이 툴틱에 올린 내용들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그들이 어째서 버림을 받아야 하는지 아실 겁니다. 수긍하지 못하시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지역에서 일개미 이외의 누구도 듀풀렉 게이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일개미들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곳의 헌터는 살리지 않을 겁니다.”
내가 워낙 강경해서였는지 아니면 비자빈의 헌터들이 한 짓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잠쉬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길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만나는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처럼 썰려 나갔다.
주로 사냥을 하는 것은 쿠나메와 고다비였은데 고다비는 정신능력자 답게 원거리 에테르 공격을 주로 했고, 쿠나메는 빠른 돌격에 이은 칼질이 특기인 모양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대상에게 달려들어 한 칼에 몬스터의 목을 잘라내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도 대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목을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건 고다비 역시 그랬는데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 줬다. 범위 공격으로 한 번에등급이 낮은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남색이나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가 등장하면 탁테드나 잠쉬레가 나서는데 탁테드는 응축된 강기를 날려서 몬스터를 잡았고, 잠쉬레는 순간 이동으로 보이는 기술로 몬스터에게 접근해서 단검을 가볍게 찌르는데 그걸로 모든 몬스터가 죽어 넘어졌다.
나와 포포니는 탁테드나 잠쉬레가 어떤 수단을 쓰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역시 수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모습들이다.
저런 자들의 기습을 받으면 그걸로 끝장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입고 있는 방어구로 한 번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있잖은가 파트별로 나누어진 방어구 중에 하나라도 파괴되면 곧바로 에테르 방패가 생기는 그거 말이다. 그걸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듀풀렉 데드존을 사용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들의 능력을 보아하니 그 확률이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그럼 누가 먼저 공격을 하느냐의 문제일까? 젠장, 아직은 그랜드 마스터에게 덤빌 수준은 못 되는 모양이다. 앞으로 조금 더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자빈에 가까이 가면서 나는 비자빈의 일개미들에게 우리가 가고 있음을 알리고 우리가 나서면 모두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이도록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자빈의 헌터들은 우리의 구호 대상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혔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 길을 찾을 것.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도와주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해코지도 않겠다는 의사표현인 것이다.
“흐음. 자력 탈출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희생은 좀 있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잠쉬레를 보며 말했다. 비자빈은 사실 위험지역에서 깊은 곳은 아니다. 어느 정도 외곽에 있으니 헌터들이 힘을 모으면 희생은 좀 있겠지만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닌 걸로 보였다.
“맞아. 우리가 지나오며 만난 몬스터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탈출이 불가능하진 않겠어. 모두 뭉쳐서 가야하고 그 둥에 희생자가 나올 것을 각오해야 하겠지만 말이야.”
탁테드가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다행이네요. 버리고 가더라도 살 길은 있을 것 같으니 말이죠.”
나는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비자빈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을 했을 때, 그 곳은 여전히 몬스터들과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비자빈은 도시였고, 그 도시의 곳곳에서 몬스터들과 헌터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개미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이십시오.”
나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미 약속되어 있는 내용이다.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단이 없으니 일단 일개미들에게 툴틱으로 도착 소식을 알리고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내 목소리가 울리자 여기 저기서 일개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건물의 지하에서 혹은 무너진 담 밑에서 또는 굳게 닫혀 있던 문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헌터로 등록된 이들은 모두 물러나시오.”
나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 사이에 육체 능력자들이 소수 끼어 있었던 것이다.
“살려 주십시오. 우리들은 지금까지 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헌터 중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일개미 몇 명이 함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 헌터들은 일개미 몇 명에게 텔론을 주고 제 목숨을 구할 길을 샀다는 것을 말이다.
“물러나라고 했소. 듀풀렉 게이트는 비자빈에서 일개미 이외에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힘으로 살 길을 찾으시오.”
나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씨팔, 사람 차별하는 거야? 엉? 뭐야? 도대체.”
헌터 중에 한 놈이 욕설을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비자빈에서 헌터들이 일개미들 몬스터 먹이로 내 몬 정황이 뚜렸하다. 또한 헌터들이 일개미를 보호하려 노력한 정황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인성을 상실한 헌터들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니 비자빈의 헌터들을 제 스스로 살 길을 찾아라.”
나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툴틱으로 텀덤에게 연락을 해서 듀풀렉 게이트를 열도록 했다. 그리고 이쪽 역시 입구를 열었다.
“자, 여길 통과하면 곧바로 연합 본부가 있는 광장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일개미 여러분들 고생 많았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흐흐흑.”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자, 어서 서둘러요. 이게 코어를 사용하는 건데 코어 소비가 심하니까 서둘러야 합니다.”
나는 내게 인사를 하며 지체하는 사람들에게 서두르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 감사 인사 듣고 있기엔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도 있다.
“경고한다. 헌터들은 물러서라. 가까이 다가오면 게에트에 오르기 전에 죽을 것이다.”
나는 일개미들 사이에 끼어서 듀풀렉 게이트를 이용하려는 헌터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게이트 입구에서 번거롭기는 하지만 일개미들의 신분을 조사하고 있었다. 툴틱조차 없는 일개미가 많다. 하지만 그들도 생체칩은 있다. 그걸 통해서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헌터들은 절대로 일개미로 속이로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다.
“야, 이 새끼야. 그럼 우린 죽으란 말이냐? 엉?”
헌터 중에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몬스터의 수준을 고려할 때에 비자빈에 있는 헌터들이 힘을 모으면 자력을 탈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랜드 마스터들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힘으로 살아라.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너희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개미에게 용서를 빌어라.”
나는 일일이 일개미들의 신분을 확인하면서 헌터들에게 그렇게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