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54
화
저들이 살기 위해서 일개미를 하찮게 취급했다는 것을 두고 저들을 내가 직접 징치할 이유는 없다. 그저 그것도 데블 플레인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준다. 하지만 그런 놈들을 내가 도울 이유는 전혀 없는 거다. 저들은 저들이고 나는 나. 내 동정심의 범위에 저들은 들어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에 툴틱을 통해선지 아니면 입소문이 난 것인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 중에는 일개미도 있지만 대부분은 헌터들이다.
“아직 남아 있는 일개미들이 있을 것 같으니 여러분들이 수고를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들을 이곳으로 모았으면 합니다만.”
나는 잠쉬레를 비롯한 네 명의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부탁을 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저들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탁테드가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묻는다.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라면 어떤 놈이라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수라고 두려울 이유도 없지요. 우리 부부가 그 정도의 능력은 있습니다. 저기 저 헌터들 중에 그랜드 마스터가 있습니까?”
“허허. 그건 아니지. 뭐 그렇게 자신을 한다니 그럼 맡겨 볼까? 실력을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지. 난 남쪽으로 가지.”
“그럼 나는 북쪽인가? 너희 들은 동서로 나뉘어 가면 되겠구나.”
잠쉬르까지 북으로 가고 고다비와 쿠나메가 동서로 나뉘어 일개미들을 찾으러 갔다.
그러자 헌터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랜드 마스터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 부부를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들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잠시 자리를 비운 그랜드 마스터들이 걱정되는지 나서는 헌터들의 수가 많지 않다.
“거기서 더 다가오면 우리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고 우리도 반격을 할 것이다. 반격은 곧 죽음이다.”
나는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는 헌터들에게 큰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하지만 들어먹을 놈들이 아니다. 그럴 놈들이면 저렇게 흉흉한 기세로 달려들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츠츳.
“엇!”
“아니?”
갑자기 사라진 듀풀렉 게이트의 입구 때문에 소란이 일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저 헌터들을 정리하고 다시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나는 일개미들에게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 헌터들을 향해서 몇 걸음 다가갔다.
“물러나지 않으면 죽는다. 경고는 마지막이다.”
“개소리. 어차피 여기 남아도 죽어. 그럴 바에는 함께 죽겠다.”
헌터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곧 눈동자를 뒤집으며 쓰러진다.
털썩!
디버프에 이은 에테르 폭발이다. 뇌에서 터진 것이니 살긴 어려울 거다.
갑자기 헌터 하나가 쓰러지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는다.
“물러나라. 너희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면 그로 인해서 희생자가 늘어난다.”
“개새끼. 니가 죽였지? 그렇지? 어디 나도 죽여 봐라. 새끼야. 응 죽어 봐.”
호오? 용감하기도 하다. 죽이라면 못 죽일 거라고 생각했나? 그렇지 않아도 본보기가 몇은 더 필요하던 참이다.
“커억. 너, 너어…”
이번에는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헌터. 순간 헌터들도 일개미들도 모두 입을 닫고 굳어 버렸다.
“분명 말하지만 우릴 방해하지 마라. 너희들은 너희 힘으로 그리고 우린 우리 힘으로 사는 거다. 그리고 잊지 마라. 여긴 데블 플레인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듀풀렉 게이트의 입구를 열었다.
이미 툴틱에는 텀덤이 있는 광장에 도착한 일개미들이 올리는 소식으로 시끄럽다.
몇 걸음 걸었는데 본부 광장에 서 있더라는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광장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까지 일개미들이 비자빈에서 왔다는 증언을 툴틱으로 올려 보내고 있다.
헌터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일개미들은 신속하게 입구를 통해서 사라지고 있다. 숫자는 금방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 방향에서 그랜드 마스터들이 몇 명의 일개미들을 데리고 왔고, 그들이 비자빈의 마지막 일개미라고 했다. 물론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소수를 찾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많은 이들을 죽이게 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랜드 마스터들이 데리고 온 일개미들을 마지막으로 듀풀렉 게이트로 보내곤 입구를 닫았다. 그리고 텀덤에게도 비자빈에서의 일은 끝났다고 연락했다.
그랜드 마스터들의 등장과 함께 비자빈의 헌터들이 내게 덤빌 가능성은 확연히 떨어졌다. 저들도 머리가 있으니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덤빌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 지역으로 가지요.”
나는 잠쉬레에게 그렇게 이야길 했고, 잠쉬레는 나를 잠시 보더니 등을 돌렸다.
“진심이었군. 저들을 도울 생각이 없어.”
잠쉬레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은 제 동정심의 범위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잠쉬레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래.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 하겠나. 하지만 이게 옳다고도 말하긴 어렵군.”
“제가 어떻게 해도 옳지 않을 겁니다. 저들을 도와줘도 옳은 행동은 아니죠. 그러니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지. 그보다 어서 움직이지. 지금도 죽어가는 이들이 많을 테니.”
“네. 그렇게 하죠.”
나는 포포니와 함께 잠쉬레의 뒤로 바짝 따라 붙었다. 아직도 구해야 할 사람은 많이 남아있다.
듀풀렉 게이트. 세이커 위아드. 포포니. 텀덤. 일개미 보호. 버림받은 비자빈 헌터들.
이런 내용이 제2 데블 플레인의 툴틱 정보란을 점령했다.
비자빈에서 연합 본부가 있는 도시 광장으로 나타나는 일개미들의 모습은 고립되어 있는 이들에겐 희망에 메시지였다.
그와 함께 고립된 사람들은 헌터와 일개미를 나누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몬스터를 상대할 능력이 없는 일개미는 헌터들의 짐이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많은 일개미를 잘 보호하느냐에 따라서 생존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당연히 일개미들은 헌터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일개미를 홀대했던 지역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비자빈 이후에 태도를 바꾼 지역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뀌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전에 했던 행동들을 가지고 그들을 벌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자빈은 재수가 없었던 거다. 그들은 고립된 이들 중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었고, 또 일개미에 대한 대우가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그 때문에 본보기가 된 것이다.
나와 포포니는 잠쉬레의 안내를 받으며 정말 열심히 달렸다.
사실 잠쉬레와 탁테드 등의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나와 포포니는 일종의 짐덩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이 제대로 된 놈이라면 사실 그랜드 마스터 중에 누군가에게 듀풀렉의 한 짝을 맡기고 작동 방법을 알려서 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구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데도 나는 듀풀렉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가는 곳이 자네가 처음부터 가고 싶어 했던 곳이네.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부터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헌터와 일개미들이 하나가 된 지역이지. 자네도 툴틱에서 봐서 알겠지만 그들 모샤킵츠는 하나의 집단이라네. 공동체라고 할까? 그래서 일개미들 조차도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보호하는 것이지. 꽤나 오래 된 집단이라네.”
잠쉬레는 모샤킵츠에 가까워 지면서 그곳에 대한 설명을 했다.
모샤킵츠는 도시의 이름이면서 특정 집단의 명칭이었다. 그들은 일개미에서 헌터들까지 모두 하나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집단 경제를 실천하는 이들이었다.
일개미는 모샤킵츠에 속하면 빚을 모샤킵츠에서 갚아준다. 그리고 일개미들은 모샤킵츠의 소속이 되고 그 후로는 모샤킵츠의 공동 생산과 분배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