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56
화
한 달.
나와 포포니가 제2 데블 플레인의 몬스터 점령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한 기간이다. 그 사이에 듀풀렉 게이트를 이용한 헌터와 일개미의 숫자는 도합 25만을 조금 넘었다.
그리고 집계된 일개미와 헌터 희생자의 수는 75만. 그 중에 일개미는 68만이다.
지역 코어 때문에 난리가 난 지역 안에 살고 있던 헌터와 일개미의 수는 헌터가 27만, 일개미가 88만이었다. 도합 115만 중에서 75만이 죽었는데 그 중에 일개미 68만이 포함된 것이다. 일개미 중에서 20만이 살아남았고, 그들 대부분은 듀풀렉 게이트를 이용한 이들이다. 일개미는 자력으로 몬스터를 피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는 이들이었으니 당연하다. 헌터 15만 정도는 자력으로 몬스터 창궐 지역을 빠져 나왔다. 물론 그 대부분은 지역 외곽에 있던 헌터들이었다. 그들 15만이 빠져 나올 때에, 같은 지역에 있던 일개미는 전멸을 당했다. 헌터들이 빠져나간 곳에서 일개미들이 몬스터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던 거다.
어쨌거나 구조 작업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통계도 수치화 되어서 툴틱에 공개되었다.
모든 데블 플레인에서 일개미들이 태업과 파업이 일어났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번 일로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이 난 모성에서까지 부랴부랴 일개미, 그러니까 헌터 보조 지원 임무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법이 만들었졌다.
먼저 일개미들에 대한 게이트 이용 비용이 없어졌다. 누구든 모성에서 데블 플레인으로 갈 때에는 게이트 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일개미가 되기 위해서 최소한의 에테르 방어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거기에 데블 플레인 내에서 일개미들의 급여와 처우에 대해서 약간의 상향된 지침이 내려왔다. 쉽게 말하면 기본급이 조금 더 올랐다는 말이다.
다만 일개미로 데블 플레인에 올 때에는 미리 직장을 정해서 일정 기간 그 직장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조항이 생겼는데, 이것은 일개미로 오자마자 헌터로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게이트 이용료는 무료로 해 주지만 일정 기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거다.
이건 사실 이전에 비해서 일개미들이 불리한 조건인데 이제부턴 텔론으로 빚을 갚고 자유가 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반드시 계약 기간을 채워야 데블 플레인 내에서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거기에 이제부터 식민 행성에서도 일개미들이 데블 플레인으로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모성에서만 뽑기에는 일개미의 수급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식민 행성의 원주민들이 에테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명확한 연구가 없어서 아직은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단다.
하긴 식민 행성의 원주민을 헌터로 받아들일 때에도 말이 많아서 특정 행성의 원주민들에게만 허가가 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일개미도 그런 식이 될 확률이 높다.
뭔 비밀들이 그렇게 많은지, 에테르에 대한 연구 내용은 기본적인 사항 말고는 거의가 대외비나 극비란다.
그래서 도통 모성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로 제2 데블 플레인의 기반 시설이 절반 이상은 날아가 버렸다. 몬스터 사냥을 중심으로 하던 도시들이야 그대로 남아 있지만 기본적인 생산 시설들은 대부분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제2 데블 플레인의 헌터 연합도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중이다.
그런 중에 나는 텀덤과 포포니를 데리고 은밀하게 연합 본부가 있는 도시를 빠져나왔다.
우리를 안내하는 이는 잠쉬레 그랜드 마스터다. 그리고 탁테드와 고다비, 쿠나메는 지금 한창 우리를 찾아서 동분서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속이고 몰래 빠져 나온 것이니 말이다.
“정말 할 텐가?”
잠쉬레가 묻는다.
“그러려고 나온 거잖습니까? 대신에 중재는 잘 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일이 틀어지면 우리 셋의 목숨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3 데블 플레인의 헌터들과 원주민 사이가 험악해 질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걸 바라시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내가 다른 데블 플레인의 실력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치졸한 수를 써서 제3 데블 플레인을 곤경에 빠트릴 정도로 원한 같은 것을 가진 것은 아니네. 그리고 지금이라도 생각이 바뀌었다면 돌아가도 될 일이지. 이번 일을 꾸민 것은 세이커 자네지. 내가 아니잖은가.”
맞는 말이다. 이번 일은 오직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듀풀렉 포인터 하나를 깔아 뒀다. 그것도 몬스터 점령 지역 안쪽의 도시에 만들어 둔 것이니 당분간은 들킬 일도 없다. 만약 일이 꼬여서 위험하게 되면 우린 모두 세포니 행성의 허브 기지로 갔다가 그 듀풀렉 포인터로 제2 데블 플레인으로 돌아오면 될 일이다. 그런 계산이 있으니 이렇게 위험한 줄을 알면서도 따라 나서는 것이다.
“그래도 원주민과 소통 통로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싸우느라 그런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요.”
“허허허. 전쟁을 해도 사신들은 간혹 오가곤 하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역 코어가 사라진 땅을 서로 반씩 나누어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겠나?”
“하긴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이번에 저쪽도 피해가 상당하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래도 그들은 조금 나을거야. 우리처럼 일개미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전투에 완전히 맹탕인 경우는 없다는 말이지.”
“하긴 일개미들은 전투력이라곤 기대할 수가 없는 이들이긴 하죠. 그래서 그렇게 희생이 많았던 거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건 나로서도 할 말이 없어. 특히 헌터들이 빠져나간 지역에서 일개미들이 전멸을 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
몬스터 사태가 일어난 지역의 외곽에 있던 헌터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 지역의 일개미 45만 가량은 그냥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개미들과 헌터들 사이의 벽이 더욱 높아지고 두꺼워진 상태다.
그건 모든 데블 플레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 앞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 다독일 것인지 지켜보는 내 입장에선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은 이번에 벌일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일단 잠쉬레가 이곳 행성의 원주민들과 연결된 선이 있다고 했다.
그 선을 이용해서 이번에 헌터들과 일개미들을 구출한 내용을 원주민 측에 알렸고, 그와 같은 구조 활동을 해 줄 의향을 은근히 비쳤단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왔다는 것이 문제다.
곧바로 우리를 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는 것이다.
그 쪽에도 툴틱이 있다는 말에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물론 원주민들에게 툴틱을 만들어주진 않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 쪽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 또 어떻게 개조를 했는지 이쪽 툴틱을 저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있단다. 뭐 그런 걸 만들어서 파는 쪽은 역시 이쪽의 기술자들이다. 텔론이 되는 거라면 어떤 일이건 가리지 않고 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제2 데블 플레인이 열리고 원주민과 전쟁이 시작된 것이 몇 백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헌터들의 과학 기술 일부가 저들에게 넘어간 것이 신기할 것이 뭐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적극적인지 알아 봤습니까? 알아본다고 하더니요.”
나는 잠쉬레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분위기 아닌가 말이다. 발뺌도 없이 그냥 단박에 허락이라니 말이다.
“그게 좀 웃기게 되었어. 원주민들이 몇 개의 종족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알지?”
“네. 알죠. 자세한 부족 구분은 모르지만 우리 제3 데블 플레인 쪽도 그러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여기 원주민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치솟는 번개 부족이라고 있네. 그들이 우리들과 싸우는 원주민들의 중추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요?”
“그 부족의 후계자가 지금 그 지역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야. 실력이야 워낙 좋으니까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그것도 시일을 오래 끌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아무리 호위가 있다고 해도 그 호위들 조차도 조금씩 죽어 나가는 마당이니 말이야.”
“거기서 뭘 한답니까?”
“동족들을 구하는 거지. 사람들을 구해서 외부로 데리고 나오고, 다시 들어가는 것을 반복하는 모양이야. 뭐 그 덕분에 거의 영웅 취급을 받는 모양이더군. 그러니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입장인데 그 놈이 고집이 보통이 아니어서 말을 들어먹지 않으니까 안전한 방법으로 세어커 자네를 찾게 된 거지.”
영웅 탄생이라. 그럼 그 놈이 살아남게 되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네?
“적을 강하게 만들 지도자의 탄생을 도우란 말이군요? 그거 위험하지 않습니까?”
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잠쉬레에게 물었다.
“뭐 적이야 언제나 거기 있었던 거고,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까 그런 건 잊어야지. 나중에 다시 싸우게 될지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말이야.”
저렇게 말을 할 때는 저 인간도 참 된 인간이지 싶은데, 워낙 그랜드 마스터들이 괴물들이라 그 속을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 이건 어쩌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약자라고 생각하니 언제나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편.”
포포니가 어느새 다가와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나를 올려다보며 베시시 웃는다. 나를 위로 하려는 포포니만의 배려다. 이여자는 점점 감이 좋아져서 내 기분을 쉽게 알아차린다. 나도 포포니에게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서로 나누는 체온이 이렇게 깊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